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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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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 카락스-퐁네프의 연인들4/축제

by 탄천사랑 2007. 4. 27.

「레오 카락스 - 퐁네프의 연인들」

 


축제
미셸은 아우성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달리는 전철 안이었다.
속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전철의 문이란 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그녀는 일어서서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아마 어느 종점인 것 같았다.
미셸은 전철이 플렛홈에 닿기 전에 뛰어내렸다.

거리로 나왔다.
인파가 열광하고 있었다.
가는 곳이 다 군대의 행렬이었고, 그들을 환호하는 인파들로 아우성이었다.
미셸은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어딘지는 자기도 몰랐다.
단지 달려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달리는 미셸의 눈에 육군의 행렬이 보였다.
미셸은 그들과 그들을 환호하는 군중 사이를 달렸다.
그들을 축하하기 위한 악단도 뛰어넘어 달렸다.

미셸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시야 떄문에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는 수백 대의 헬리콥터가 뒤덮여 있었고, 공원의 비들기떼가 모두 날아오르고 있었다.

마침내 미셸의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알렉스였다.
그는 미셸의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병을 입에 물고 쳐든 채 떼지 않았다.
그는 웃통을 벗고 있었으며, 여러 개의 술병이 그의 옆에 쓰러져 있었다.

미셸은 곧바로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의 술병을 빼앗아 자기의 입에 쏟아부었다.

"얼마나.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

미셸은 숨을 몰아쉬었다.
알렉스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몸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미셸도 알렉스를 쳐다보았다.
알렉스는그녀를 보고 웃었다.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미셀은 다시 술병을 높이 들고 입에 물었다.
그때, 알렉스는 한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한스는 다짜고짜 여자가 물고 있던 술병을 쳐서 떨어뜨렸다.

"우라질."

깨어진 술병을 보곤 그는 중얼중얼거리며 다리 한쪽으로 걸어갔다.
둘은 멍청하게 한스의 뒤를 바라보았다.
한스는 무척 화가 난 표정이었지만, 곧 멀리 사라졌다.

"왜 그러지?"  미셸이 물었다.
"몰라."
"아마 별일 아닐 거야.
 별일이 있더라도 할 수 없지." 

그녀는 다른 술병을 땄다. 
싸구려 포도주였다.

"넌 알아?"
"몰라."
"별일 아니겠지.
 우리 함께 술이나 마시자."

그녀는 뚜껑을 연 술병을 알렉스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자기는 다시 새로운 술병을 땄다.

"자, 마셔."

알렉스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술병을 입에 물었다.
그녀가 막았다.

"그렇게 벌컥벌컥 마시지 말구,
 마치 고급 와인 마시듯이 말야.
 천천히...,"

그녀가 먼저 한 모금 마셨다.
알렉스도 그녀처럼 조금씩 마셨다.

"난, 눈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  미셸은 외눈을 껌벅거리더니 손으로 비볐다.
"너와 취하고 싶어.
 그러면 네가 웃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겠지?"

알렉스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처럼 거푸 술을 마셨다.
알렉스는 미셸이 너무 반가웠다.
그는 여자가 다시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셸이 전철을 탔을 떄, 그는 모든 것이 끝난 것으로 생각되었다.
여자는 오직 남자를 찾기 위해 방황했고, 그리고 그 남자를 찾았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도 일찍 그 자를 발견해서 쫓아냈더라면 미셸이 떠나지 않았을 것을...,'
알렉스는 이렇게 후회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남자를 만나 떠나갔고, 
알렉스는 어제 번 돈을 모두 털어서 술을 샀던 것이다.

그런데 여자는 다시 돌아왔다.
그 남자를 버리고 내게 돌아온 것이다.
알렉스는 너무 기뼜다.
다시는 미셸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리에서 함께 살고 싶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래서 돌아온 건지도 모른다.

미셸은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알렉스도 그녀를 따라 마셨다.
알렉스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녀에게 잘보이고 싶었다.

그녀는 눈을 자꾸만 비볐다.
눈이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맞바람을 받으면서 오래 달려온 탓이었다.
그녀는 술이 해롭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쯤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마시고 마셔서 취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낮에 쏟아져 나왔던 사람들은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들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서로 어울려서 혁명의 밤을 보냈다.
성당의 종소리도 어느 때보다도 크게 울렸다.

퐁네프 다리 위에도 혁명의 밤은 찾아왔다.
그러나 거기에는 쓸쓸한 정적만이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골재 부스러기와 함께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미셸은 다리 한복판에 사지를 벌리고 누워 있었다.
그녀의 바지는 한쪽 가랑이가 고여 있던 물에 푹 젖어 있었다.
몸뚱이도 술에 젖어 물먹은 솜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한쪽 눈만은 여느 때보다도 맑게 개어 있었다.
그녀는 뚫어지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따금씩 한 무리의 헬리콥터들이 열을 지어 밤하늘을 가르곤 했다.

"알렉스."

그녀는 알렉스를 불러보았다.
알렉스 역시 그녀와 거의 머리를 맞대고 반대쪽에 누워 있었다.
그도 여자처럼 똑바로 하늘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셸이 부르자 그는 대답 대신 손에 쥐고 있던 술병을 가볍게 딸캉거렸다.

"알렉스."

그녀는 다시 알렉스를 불렀다.
알렉스는 다시 술병 소리를 냈다.
한스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갑자기 그들을 비추었다.
둘은 똑같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자동차는 철망 앞에서 멈추었다가 다시 돌아 시내 쪽으로 돌아갔다.
길을 잘못 든 모양이었다.

다시 침묵이 흘렸다.
알렉스는 술을 많이 마셔서 몸이 근질거렸다.
어젯밤 불춤을 추면서 많이 그을렸던 모양이다.
그러나 알렉스는 긁지 않고 참았다.
미셸이 조용히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미셸이 키득거렸다.
그녀는 이 정적이 우스웠다.
그리고 지금의 자기 모습이 우스웠다.
가족을 떠나 사랑을 찾고자 하였으나 이제 그마저 떠나버렸다.
그리고 눈까지 점점 안 보였다.
그림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왠지 웃음이 나왔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까닭 모를 우스움이 목을 간지럽혔다.
알렉스도 영문도 모르고 키득키득 따라 웃었다.

그녀의 웃음은 한번 터지기 시작하자 주체를 할 수 없었다.
봇물 터지듯이 마구 쏟아져나왔다.
알렉스도 지지 않으려는 듯 낄낄거렸다.
둘은 정신없이 웃기 시작했다.

웃음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퐁네프 다리는 느닷없는 웃음 소리에 휘감겼다.
4백 년이나 지나 폐쇄된 아름다운 퐁네프는 
프랑스 혁명 2백 주년을 기념하는 모든 파리 시민의 눈 밖에서 
두 젊은 남녀의 웃음 소리만으로 뒤범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알머리의 사내와 애꾸눈의 여자는 더 웃을 기운이 없을 때까지 웃고 있었다.
목이 막혔고 숨이 턱 밑에서 끊어질 것 같았다.
여자는 목 쉰 암고양이 소리로 끅끅거렸다.
그리고 남자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노랫소리처럼 욱욱거렸다.

그떄, 난데없는 폭발 소리가 들렸다.
둘은 눈을 번쩍 떴다.
폭발은 바로 둘의 머리 위 하늘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한 번뿐이 아니었다.
처음 한 번을 신호로 사방에서 연이어 들려왔다.
번쩍하는 섬광과 함꼐 오색찬란한 빛덩어리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왔다.

"폭죽이다!"
"불꽃놀이야!"

둘은 다리의 난간으로 달려갔다.
하늘이 온통 불꽃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불덩이들이 하늘로 치솟았다.

둘은 나란히 난간에 기대어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타지 않은 불덩이 하나가 다리 위로 떨어졌다.

"불꽃이야, 불꽃!"

알렉스가 그쪽으로 달려갔다.
하나둘이 아니었다.
미처 타지 못한 불덩이들이 수도 없이 다리 부근으로 쏟아졌다.
알렉스는 길길이 날뛰었다.
미셸이 쫓아가서 그를 막았다.

"잠깐, 잠깐 기다려."

미셸은 자기의 화구 상자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는 탄창을 눌러 탄창을 뽑아냈다.

"그 총 어디서 났어."  알렉스가 다가와서 물었다.
"우리 아버지가 육군 대령이었어."

그녀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알렉스에게 탄창을 내밀었다.
고개를 돌린 채였다.
그녀는 탄창 속에 징그러은 것이라도 있는 것처럼 고개를 외면하고 있었다.

"이걸 봐, 총알이 하나 없지?"

알렉스는 탄창을 받아서 눌러 보았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아니"
"잘 봐, 부족하잖아."
"아니."
"정말이야?
 모두 다 있어?
 열다섯 발?"

알렉스는 계속 탄창을 만지락거렸다.
그는 이리저리 들쳐보았다.

"응, 열다섯 발."
"정말이지?
 그래, 열다섯 발 전부가 말이야. 그래."

그녀는 알렉스의 손에서 탄창을 나꿔챘다.
그리고는 권총에다 꽂고 손바닥에 힘껏 내리쳤다.
그녀는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어깨를 들썩거렸다.

"마음껏 쏘아버리겠어."

미셸은 다리 한복판으로 걸어나갔다.
그 동안에도 계속해서 불꽃들이 떨어져내렸다.
그것들은 바닥에 부딪히는 순간 산산이 부서지거나 구르면서 기괴한 바람 소리를 내며 타 버렸다.
미셸은 양팔을 크게 휘저였다.

"저 하늘 높이 날려버릴 거야."

그녀는 절뚝거리며 뒤따라가는 알렉스를 돌아다보았다.

"일곱 발은 네가 쏘아.
 또 일곱 발은 내가 쏘겠어.
 그리고 나머지 한 발은 행운을 위해....,"

그녀는 절규하듯 하늘을 쳐다보며 외쳤다.
하늘을 향해 애원하는 것 같았다.
하늘을 증오하는 사람같이도 보였다.
그녀는 다시 멈춰 서서 알렉스를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권총을 장전했다.

"자, 받아."

그녀는 알렉스에게 권총을 던졌다.
알렉스가 얼떨결에 그것을 받았다.
그녀는 다시 손가락으로 허공 한곳을 가리켰다.

"쏴, 어서. 쏘란 말이야!"

알렉스는 권총을 받아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알렉스는 그녀가 하라는 대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미셸은 알렉스의 뒤를 따랐다.
알렉스는 이쪽저쪽 마구 권총을 쏘아댔다.
미셸은 알렉스가 권총을 쏠 때마다 좋아 죽겠다는 듯이 한호했다.
그녀는 숫제 깜짝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알렉스가 권총을 넘겨주었다.
권총을 받은 미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다리 한쪽 끝으로 뛰어갔다.
알렉스는 이미 목발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절룩이며 뒤쫓아갔다. 

미셸은 동상 앞에서 멈추고 동상을 올려다보았다.
말을 타고 있는 앙리 4세의 동상이었다.
퐁네프 다리를 완성했던 왕이라고 했다.

미셸은 말 위에 올라탔다.
알렉스가 그의 발을 받쳐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손을 뻗어 알렉스를 자기의 뒤에 태웠다.
앙리와 미셸, 그리고 알렉스를 태운 검은 말은 하늘을 날아올랐다.
미셸은 불꽃 사이를 나르며 권총을 쏘고 환호성을 질렸다.
알렉스는 그녀가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붙들고 그녀의 등에 뺨을 비벼댔다.

폭죽 소리가 잠시 멈췄다.
언덕 위에서만 이따금 하나둘씩 터졌다.
둘은 말에서 내려 난간에 기대어 그곳을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민방위 본부에서 확성기로 보내는 것 같았다.

"온 시내가 음악에 가득 찼어."  미셸은 군중들 틈에 섞이고 싶었다.
"우리, 함꼐 어울릴까?"
"아니, 여기가 좋아."

알렉스는 묵묵히 물 밑을 내려다보았다.
조용히 흘려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미셀은 천천히 알렉스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음악이 바뀌었다.
빠른 템포의 댄스풍이었다.
미셸은 가벼운 걸음걸이로 알렉스의 곁을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알렉스의 잔등을 살짝 건드렸다.
그녀는 점점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에 맞추어 폭죽도 다시 요란하게 터졌다.
아까처럼 미처 타지 못한 불덩이가 나뒹굴었다.
아마 이곳이 폐쇄된 곳이라 이쪽을 향해 발사하는 모양이었다.

미셸은 이제 완전히 미치광이였다.
양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돌면서 힘차게 걸었다.
그녀는 가볍게 난간 위로 뛰어오르기도 하고 체조하듯이 양팔과 다리를 마구 흔들기도 했다.
그녀는 거의 발악적으로 몸을 뒤흔들었다.
옷이 치켜올라가면서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젖가슴이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알렉스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양손에 병 하나씩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마구 휘저였다.
고개를 뒤로 꺾고 깡충깡충 뛰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면서 앞으로 내닫기도 했다.
그의 불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신명이 난 알렉스는 용기 있게 미셸을 붙들려고 했다.
그러나 제멋에 빠져 춤 추는 것에 몰입한 그녀는 쉽게 붙들어지지 않았다.

사방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알렉스는 제일 큰 덩어리 하나를 자기 옷으로 싸 쥐고 다시 던져 올렸다.
미셸이 그것을 보고 까르르 웃었다.

곡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엔 월츠였다.
미셸은 경쾌한 걸음으로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알렉스도 따라서 그렇게 했다.
그러나 둘 다 걸음걸이는 형편없었다.

알렉스는 그녀의 앞에서 뒷걸음치며 그녀의 가슴을 쳐다보았다.
미셸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미셸의 상체가 알렉스에게 기대왔다.
그녀는 지쳐 있었다.
알렉스도 그녀의 몸에 기대었다.
둘은 그렇게 계속 왔다갔다했다.

알렉스가 그녀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엉터리 왈츠였다.
그녀도 소리를 지르며 그를 따라 한쪽 팔을 그의 허리에 감았다.
둘은 또 그렇게 빙글빙글 돌았다.
미셸은 마구 소리를 지르며 허공에 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알렉스는 그녀를 껴안으려고 했으나 발악적인 그녀의 춤을 제지할 수가 없어 번번이 실패했다.

미셸은 뭔가 털어내려는 듯이 몸부림을 쳤다.
그녀는 허공을 향해 웃고 소리를 질러댔다.
알렉스는 그녀를 안으려 할 때마다 그녀의 머릿결에 얼굴이 파묻혔다.

마침내 월츠가 멈추었다.
둘은 제각기 지쳐 나가떨어졌다.
다시 조용한 음악이 들려왔다.
폭죽은 완전히 멈추었고, 대신 세느 강에 아름다운 불꽃이 피어올랐다.
미셸과 알렉스는 난간에 기대어 강을 바라보았다.

양쪽 강변을 따라 마치 분수처럼 불꽃이 솟아올랐다.
세느 강은 마치 불꽃 분수로 가로수를 세워 놓은 거대한 포장도로  같았다.
그 한가운데를 몇 대의 모터보트가 미끄러졌다.
보트의 뒤에는 수상스키가 햐안 물포라를 일으키며 따라오고 있었다.
모토보트와 스키어들은 그 사이를 헤집으며 퐁네프로 다가왔다.
세느 강은 온통 불꽃과, 물에 비친 불꽃의 그림자, 
그리고 아름다운 불꽃의 푸른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알렉스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리를 내려와서 강변 고수부지를 따라갔다.

얼마 가지 않아 선착장이 나왔다.
파티가 끝난 선착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아무도 없었으며, 온갖 쓰레기와 색종이, 꽃다발이 잔디밭에 널려 있었다.

야외 식탁이 놓여 있는 곳에 헬멧을 쓴 순경이 한 명 앉아 있었다.
그는 술이 만취된 채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의 바로 앞에 모터보트가 매어져 있었다.

미셸은 술병을 집어들고 알렉스와 함께 살금살금 순경의 뒤로 다가갔다.
그녀는 알렉스에게 신호를 보냈다.
알렉스가 순경의 철모를 벗겨냈다.
그 순간 미셸이 술병을 높이 치겨들었다.
그러나 술병은 순경의 머리에 떨어지기도 전에 미셸의 뒤에 있던 기둥에 맞아 박살이 났다.
그것을 쳐다본 알렉스가 술병 대신 자신의 머리통으로 순경의 머리를 들이박았다.

미셸은 보트에 시동을 걸어 강 가운데로 몰고나갔다.
그리고 액셀러래이터 작동법을 알렉스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수상스키를 신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알렉스는 순경의 헬맷을 쓰고 보트를 몰았다.
그 보트는 경찰 보트였다.
머리 위에 긴 쇠막대가 걸쳐져 있었는데, 거기에 깜빡거리는 라이트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
무얼 잘못 건드렸는지 사이랜이 울리면서 빨간 불이 깜빡거렸다.
그러나 알렉스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미셸이 즐거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셸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 위를 미끌어졌다.
그녀는 보트와 연결된 긴 로프에 매달려 몸을 한껏 뒤로 젖히고 있었다.
고개를 더욱 젖혀 하늘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너무 빠르지 않아?
 속도가 어때?"

알렉스가 뒤에 대고 소리쳤다.
그는 미셸이 물에 빠질까 봐 겁이 났다.
그녀는 구명 재킷도 입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일렉스는 미셸의 목슴이 자기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에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미셸은 오로지 자기가 운전하는 보트에 매달린 한 가닥 로프에 생명을 맡기고 있는 것이었다.

"뭐라구? 안 들려.
 하지만 네가 무척 아름답게 보여."

미셸은 웃으며 소리쳤다.
그녀는 강 양편 기슭에 거의 맞닿을 정도로 스키를 크게 흔들었다.
강 양편의 언덕에서는 끊임없이 불꽃이 분수처럼 뿜어 올랐다.
미셸에게는 그것이 자기를 환영해 주는 축제같이 생각되었다.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는 세느 강 한가운데에서 미셸은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오늘은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어떤 혁명이 생기는것 같았다.

보트는 불꽃을 뿜고 있는 다리 밑으로 다가갔다.
알렉스는 경찰 헬멧을 벗어 던졌다.
가운데 교각 사이에는 불꽃 대신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알렉스는 정신을 집중하여 그곳으로 보트를 몰았다.
보트도 스키도 무사히 폭포수 밑을 빠져나갔다.

알렉스는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러나 미셸의 즐거움을 망쳐버리기는 더욱 싫었다.
미셸은 자기의 줄에 매달린 채 마음껏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강 폭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강 양편으로는 높은 콘크리트 방죽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하수처리장으로 물살이 거센 곳이 나온다는 것을 알렉스는 알고 있었다.
알렉스는 다시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제 축제를 끝낼 시간이 온 것이었다.

"미셸."

알렉스는 보트를 세우겠다는 말을 하려고 미셸을 불렸다.
그러나 미셸에게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몸을 옆으로 뉘이며 로프를 놓고 퉁겨져 나갔던 것이다.
알렉스도 보트를 달리게 내버려 두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p113)
※ 이 글은 <퐁네프의 연인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레오 카락스  - 퐁네프의 연인들
역자 - 정덕성
대흥 - 1992.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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