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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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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도 없으니 어쩌냐!

by 탄천사랑 2022. 8. 22.

 「 유정옥 -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우리 부부는 아침 식사 후 동부 간선도로 밑 하천가를 산책한다.
장마 때만 되면 상습적으로 범람 위기에 처하는 월릉교 근방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물이 많지 않은 건천에 가깝다. 
군자교 밑에서 의정부 근처까지 주민들을 위한 긴 산책로가 시설되어 있다.

옆에는 줄지어 달리는 자동차 행렬에서 내뿜는 매연이 하천에서는 생활 폐수가 흐르지만 

딱히 갈 곳이 없는 서울 시민들은 그런 곳이나마 감지덕지하며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유일하게 흙을 밟을 수 있는 곳이니 다행이다.

우리 부부는 중년의 무거워지는 몸 때문에 운동을 할 마음으로 이곳에 오지만 

나에게는 운동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수십 마리의 비둘기 때문이다.
집에서 먹다 남은 빵이나 라면 부스러기를 절구에 빻기만 하면 얘들에게는 맛있는 먹이가 된다.
얘들은 마음도 참 예쁘다.
혼자 먹지 않고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어 하루하루 모이는 숫자가 늘어난다.
처음에는 1Km 정도 걷고 난 곳에 먹이를 주었는데 지금은 2 Km에서 또 한 번 나누어 준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줄 때는 내가 준 것에 대해 갚을 길이 없는 자에게 주어야 한다.
그러나 비둘기 같은 미물들도 내가 준 것보다 항상 많은 것으로 되돌려 준다.
우선 운동하러 나가기 싫은 날.
나를 기다리고 있을 비둘기 때문에 꼭 나가게 해 주니까 꾸준히 운동할 수 있게 한다.
또 아무리 걷기 싫어도 최소한 왕복 4Km는 걷게 만든다.
또 비둘기에게 먹이를 줄 때 남편은 은근히 나 아내는 착한 아내라고 감동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어떤 유익보다 내 스스로 마음이 기뻐져서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해 준다.

우리 동네에는 생활이 궁핍하거나 지체 부자유자, 독거노인들이 많다.
그분들에게 여름엔 시원한 콩국수를 겨울에는 따끈한 칼국수를 만들어 점심을 같이 먹는다.
그러면 그 분들이 하시는 말속에서 우리 부모님들이 우리들에게 숨기고 있는 아픔의 소리를 전해 들을 수 있다.
우리에게 내색 안하고 겪고 있는 부모님들의 외로움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이 분들중에는 저녁 잡수신 것이 체했다고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렸다고 나에게 전화하시기도 한다.
어떤 분은 사시는 집을 못 찾았다고 나를 찾아오신다.

작년 12월
저녁을 준비하느라 한창 바쁠 때에 독거노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활명수 하나 사가지고 빨리 좀 와줘.
 아이고 나 죽겠어."  달려가 보니 방안을 기어 다니고 계셨다.  얼굴에서는 진땀이 흐르고...

급히 119에 연락하여 백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위급 상황 인 것 같아서 노인의 주머니에 있던 아들, 딸들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을 했다.
3시간이 지나도 네 명의 자녀 중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는 저 분이 내 어머니라면 어떻게 할까? 에 나의 모든 행동의 기준을 두었다.
내가 보호자로서 보증을 설 테니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의사와 간호사의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내 손을 잡았던 손을 늘어뜨리며 숨을 거두었다.

의식이 있는 동안 어머니의 임종자리에 오지 않는 아들 딸들 때문에 나에게 미안해서인지

"아들이 사는 곳이 여기서 멀어. 아주 멀어."  이 말만 반복하셨다.

나는 아들의 집이 이곳에서 30분 거리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요. 아드님이 서둘러 오고 있는 중이니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말했다.

끝까지 자식의 허물을 덮어 주려는 어머니의 사랑은 아들과 딸을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마지막으로 얼마나 보고 싶으셨을까?
몸이 아프니까 내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는 그 할머니는 나에게 무엇이 그리 고마웠는지
'고마워, 고마워.'를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하시고 떠나셨다.


며칠 전. 그 분과 친구였던 한 할머니를 만났는데

"나는 내친구가 부러워.
  나도 죽을 때 사모님이 내 곁에서 있어줘."라고 하신다.

어떤 할아버지는 생계보조비를 받았다고 내 목도리를 사 오셨다.
점심 한끼에 나를 사랑해 주는 부모님이 이렇게 많아진다.

주님은 내가 준 사랑에 대해 무엇이든 갚을 길이 없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라고 하셨는데
이 세상엔 받은 사랑을 갚지 못할 사람이란 한 사람도 없으니 어쩌랴!

따뜻한 차라도 끓여서 옆집 사람을 초대해 보자.  
그러면 많은 친구가 생길 것이다. 
아침엔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해 드리자.  
부모님이 행복해하시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노점에서 장사하는 사람에게 커피 한 잔 대접하자. 
종이컵의 온기에 시린 손을 덥히는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한 없이 기쁘게 할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한없이 커져 가는 것이다. 

 

 


※ 이 글은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유정옥 -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소중한 사람들 - 2013. 0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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