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연작소설 제4편) 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어머니․영호․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 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 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통장이 이걸 가져왔어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조각마루 끝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게 뭐냐?”
“철거 계고장예요.”
“기어코 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집을 헐라는 거지?
우리가 꼭 받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이제 나온 셈이구나!”
어머니는 식사를 중단했다.
나는 어머니의 밥상을 내려다보았다. 보리밥에 까만 된장, 그리고 시든 고추 두어 개와 졸인 감자.
나는 어머니를 위해 철거 계고장을 천천히 읽었다.
낙 원 구
주택 : 444,1― 197×. 9. 10
수신 :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 김불이 귀하
제목 : 재개발 사업 구역 및 고지대 철거 지시
귀하 소유 아래 표시 건물은 주택 개량 촉진에 관한 임시 조치법 따라
행복 3구역 재개발 지구로 지정되어 서울특별시 주택 개량 재발 사업 시행 조례 제15조,
건축법 제5조 및 동법 제42조의 규정에 의하여 197×. 9. 30까지 자진 철거할 것을 명합니다.
만일 위의 기일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을 경우에는 행정 대집행법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강제 철거하고 그 비용은 귀하로부터 징수하겠습니다.
철거 대상 건물 표시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39
구조 건평 평
- 끝 -
낙 원 구 청 장
어머니는 조각마루 끝에 앉아 말이 없었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 그림자가 시멘트담에서 꺾어지며 좁은 마당을 덮었다
동네 사람들이 골목으로 나와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통장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방죽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식사를 끝내지 않은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두 무릎을 곧추세우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부엌 바닥을 한 번 치고 가슴을 한 번 쳤다.
나는 동사무소로 갔다.
행복동 주민들이 잔뜩 몰려들어 자기의 의견들을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들을 사람은 두셋밖에 안 되는데 수십 명이 거의 동시에 떠들어대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떠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바깥 게시판에 적혀 있는 공고문을 읽었다.
거기에는 아파트 입주 절차와
아파트 입주를 포기할 경우 탈 수 있는 이주 보조금 액수 등이 적혀 있었다.
동사무소 주위는 시장 바닥과 같았다.
주민들과 아파트 거간꾼들이 한데 뒤엉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했다.
나는 거기서 아버지와 두 동생을 만났다. 아버지는 도장포 앞에 앉아 있었다.
영호는 내가 방금 물러선 게시판 앞으로 갔다.
영희는 골목 입구에 세워놓은 검정색 승용차 옆에 서 있었다.
아침 일찍 일들을 찾아 나섰다가 철거 계고장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돌아온 것이었다.
누군들 이런 날,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 옆으로 가 아버지의 공구들이 들어 있는 부대를 둘러메었다.
영호가 다가오더니 그것을 넘겨주면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영희를 보았다.
영희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몇 사람의 거간꾼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아파트 입주권을 팔라고 했다.
아버지가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책을 읽는 것을 처음 보았다.
표지를 쌌기 때문에 무슨 책을 읽는지도 알 수 없었다.
영희가 허리를 굽혀 아버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아버지는 우리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난장이가 간다.” 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말했다.
어머니는 대문 기둥에 붙어 있는 알루미늄 표찰을 떼기 위해 식칼로 못을 뽑고 있었다.
내가 식칼을 받아 반대쪽 못을 뽑았다.
영호는 어머니와 내가 하는 일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 주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무허가 건물 번호가 새겨진 알루미늄 표찰을 빨리 떼어 간직하지 않으면
나중에 괴로운 일이 생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손바닥에 놓인 표찰을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영희가 이번에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너희들이 놀게 되지만 않았어도 난 별 걱정을 안 했을 거다.” 어머니가 말했다.
“스무 날 안에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겠니.
이제 하나하나 정리를 해야지.”
“입주권을 팔려고 그래요?” 영희가 물었다.
“팔긴 왜 팔아!” 영호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아파트 입주할 돈이 있어야지.”
“아파트로도 안 가.”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여기서 그냥 사는 거야. 여긴 우리 집이다.”
영호는 성큼성큼 돌계단을 올라가 아버지의 부대를 마루 밑에 놓았다.
한 달 전만 해도 그런 이야길 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어머니가 내준 철거 계고장을 막 읽고 난 참이었다.
“시에서 아파트를 지어놨다니까 얘긴 그걸로 끝난 거다.”
“그건 우릴 위해서 지은 게 아녜요.” 영호가 말했다.
“돈도 많이 있어야 되잖아요?” 영희는 마당가 팬지꽃 앞에 서 있었다.
“우린 못 떠나.
갈 곳이 없어. 그렇지 큰오빠? ”
“어떤 놈이든 집을 헐러 오는 놈은 그냥 놔 두지 않을 테야.” 영호가 말했다.
“그만둬.” 내가 말했다.
“그들 옆엔 법이 있다.”
아버지 말대로 모든 이야기는 끝나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당가 팬지꽃 앞에 서 있던 영희가 고개를 돌렸다. 영희는 울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희는 잘 울었다. 그때 나는 말했다.
“울지 마, 영희야.”
“자꾸 울음이 나와.”
“그럼, 소리를 내지 말고 울어.”
“응.”
그러자, 풀밭에서 영희는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나는 손으로 영희의 입을 막았다. 영희의 몸에서는 풀 냄새가 났다.
개천 건너 주택가 골목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나는 그것이 고기 굽는 냄새인 줄 알면서도 어머니에게 묻고는 했다.
“엄마, 이게 무슨 냄새야?” 어머니는 말없이 걸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엄마, 이게 무슨 냄새지?” 어머니는 나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걸음을 빨리 하면서 말했다.
“고기 굽는 냄새란다.
우리도 나중에 해 먹자.”
“나중에 언제?”
“자, 빨리 가자. ” 어머니는 말했다.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집에 살 수 있고, 고기도 날마다 먹을 수 있단다.”
“거짓말!”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면서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나쁜 사람야." 어머니가 우뚝 섰다.
“너 방금 뭐라고 했니?”
“우리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야.”
“너 매 좀 맞아야겠구나. 아버지는 좋은 분이야.”
“나도 주머니가 달린 옷을 입고 싶어.”
“빨리 가자. ”
“엄마는 왜 우리들 옷에 주머니를 안 달아 주지?
돈도 넣어 주지 못하고, 먹을 것도 넣어 줄 게 없어서 그렇지?”
“아버지에 대해 말을 막 하면 너 매맞을 줄 알아라.”
“아버지는 악당도 못 돼. 악당은 돈이나 많지.”
“아버지는 좋은 분이다.”
“알아.” 나는 말했다.
“수백 번도 더 들었어.
그렇지만 이젠 속지 않아.”
“엄마, 큰오빠는 말을 안 들어.” 영희는 부엌문 앞에 서서 말했다.
“엄마 몰래 또 고기 냄새 맡으러 갔었대.
나는 안 갔어.”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영희를 흘겨보았다. 영희는 또 말했다.
“엄마,
큰오빠가 고기 냄새 맡으러 갔었다고 말했더니 때리려고 그래.”
영희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나는 영희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영희를 풀밭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 잘못이었다.
영희를 때려주고 나는 후회했다.
귀여운 영희의 얼굴은 눈물로 젖었다.
우리는 그때 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는 철거 계고장을 마루 끝에 놓고 책을 읽었다.
우리는 어버지에게서 무엇을 바라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그 동안 충분히 일했다.
고생도 충분히 했다.
아버지만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아버지보다 더 심한 고생을 했을 수도 있다.
나는 공장에서 이상한 매매 문서가 든 원고를 조판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짜기 위해 나는 열심히 손을 놀렸다.
‘婢 金伊德의 한 소생 奴 今同 庚寅生, 奴 今同의 양처 소생 奴 金今伊 丁卯生,
奴 今同의 양처 소생 奴 德水 己巳生, 奴 今同의 양처 소생 奴 存世 辛未生,
奴 今同의 양처 소생 奴 永石 癸酉生, 奴 金今伊의 양처 소생 奴 鐵壽 丙戌生,
奴 金今伊의 양처 소생 奴 今山 戊子生.’ 나는 그때 이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 판을 짜고 다음 판을 짜나가다 겨우 알았다. 노비 매매 문서의 한 부분이었다.
나는 열흘 동안 같은 책을 조판했다. 그 열흘 동안 나는 아버지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하고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할머니, 할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할머니들이 최하층의 천인으로서 무슨 일을 해왔는지 알고 있었다.
어머니라고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음 편할 날이 없고, 몸으로 치러야 하는 노역은 같았다.
우리의 조상은 세습하여 신역을 바쳤다. 우리의 조상은 상속․매매․기증․공출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엄마를 잘못 두어 이 고생이다.
아버지하고는 상관이 없단다.”
어머니는 장남인 나에게만 말했다. 외할머니에게 들은 말을 나에게 전한 것이다.
천년을 두고 우리의 조상은 자손들에게 이 말을 남겼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씨종의 자식이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대에 노비제는 사라졌다. 증조부 내외분은 아무 것도 몰랐다.
나중에서야 해방을 맞았다는 것을 알았으나 두 분이 한 말은 오히려 '저희들을 내쫓지 마십시오.'였다.
할아버지는 달랐다. 할아버지는 유습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늙은 주인은 할아버지에게 집과 땅을 주었다. 그러나 쓸데없는 일이었다.
모르는 면에서는 할아버지나 증조부나 같았다.
증조부대까지는 선조들이 살아온 경험이 도움이 되었으나 할아버지대에는 그것이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할아버지에게는 어떤 교육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집과 땅을 잃었다.
“할아버지도 난장이였어?”
언젠가 영호가 물었다.
나는 영호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좀 큰 영호는 말했다.
“왜 지난 일처럼 쉬쉬하는 거야?
변한 것이 없는데 우습지도 않아?”
나는 가만 있었다. 영희는 손수건을 꺼내 두 눈에 대었다 떼었다.
아버지는 계속 책을 읽었다. 어머니는 뒷집 명희 어머니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얼마에 파셨어요?”
“십칠만 원 받았어요.”
“그럼 시에서 주겠다는 이주 보조금보다 얼마 더 받은 셈이죠?”
“이만 원 더 받았어요.
영희네도 어차피 아파트로 못 갈 거 아녜요?”
“무슨 돈이 있다구!”
“분양 아파트는 오십팔만 원이구 임대 아파트는 삼십만 원이래요.
거기다 어느 쪽으로 가든 매달 만오천 원씩 내야 된대요.”
“그래 입주권을 다들 팔고 있나요?”
“영희네도 서두르세요.” 어머니는 괴로운 얼굴로 서 있었다. 어머니를 명희 어머니가 다그쳤다.
“저희는 내일이라도 떠날 준비가 돼 있어요.
영희네가 돈을 해준다면. 집이야 도끼질 몇 번이면 무너질 테구.”
영희의 눈에 다시 눈물이 괴었다. 커도 마찬가지였다. 계집애들은 잘 울었다.
내가 영희 옆으로 다가갔을 때 영희는 장독대 바닥을 가리켰다.
장독대 시멘트 바닥에 ‘명희 언니는 큰오빠를 좋아한다’고 씌어 있었다.
집을 지을 때 남긴 낙서였다.
영희가 웃었다. 우리에게는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랑에서 돌을 져왔다. 그것으로 계단을 만들고, 벽에는 시멘트를 쳤다.
우리는 아직 어려 힘드는 일을 못 했다. 그래도 할 일이 많았다.
우리는 며칠 동안 하루에도 몇 차례씩 떼를 지어 동네를 돌았다.
그때만은 더러운 옷을 입은 어린 아이들도 울음을 그쳤다.
윽박지르는 주인의 기세에 눌린 개들도 짖기를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온 동네가 조용해졌다.
갑자기 평화스러워져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풍기는 냄새가 창피했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허리 굽혀 인사했다.
그들과 악수할 때 아버지는 발뒤꿈치를 들었다. 아버지가 어떤 자세를 취했건 상관이 없었다.
난장이 아버지가 우리들에게는 거인처럼 보였다.
“너 봤지?” 내가 물었다. 영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봤어.” 영희가 말했다.
그때 아버지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사람은 개천에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고,
우리 동네 건물을 양성화시켜 주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른들을 따라 크게크게 손뼉을 쳤다.
다음 사람은 먼저 사람이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겠다고 하니 구청장으로 보내고,
자기는 이러이러한 나랏일을 하겠으니 그 일을 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어른들은 또 손뼉을 쳤다. 우리도 따라 쳤다.
커서까지 나는 그때 일을 종종 생각하고는 했다.
두 사람의 인상은 아주 진하게 나의 머릿속에 남았다.
나는 그들을 증오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였다. 그들은 엉뚱하게도 계획을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은 계획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설혹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 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 줄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또 있겠니!” 어머니가 말했다.
“누구 말씀이세요?” 영호가 물었다.
“명희 엄마 말이다.
얼마나 고마우냐. 십오만 원을 대줘 건넌방 전셋돈을 빼 줬잖니.”
“영희 엄마.” 명희 어머니가 담 너머에서 말했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럼요." 어머니가 말했다.
“어떻게든 해드릴 테니 걱정 마세요.”
“그 돈이 보통 돈이우.”
“알고 있어요.
명희 생각을 하면 가슴이 메어져요.” 나도 마찬가지였다.
“명희 언니." 영희가 소리쳐 불렀었다.
“놀러 와. 우리 집에 놀러 와.”
“새 집이라 좋지?”
“응.”
“네가 장독대에 써놓은 거 지우지 않으면 너희 집에 놀러 가지 않을 거야.”
“지울 수가 없어.”
“왜?”
“세멘이 굳어져서 못 지워.”
“그럼 난 안 가.”
영희는 몹시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명희를 만났다.
그늘 방죽 오른쪽은 숲이었다. 거기 앉아 있으면 숲 사이로 인쇄 공장의 불빛이 보였다.
그 곳 공원들은 밤중에도 일을 했다.
“네가 약속하면 허락할 테야.” 명희가 말했다.
“무슨 약속?” 내가 물었다.
“넌 저 공장에 나가면 안 돼.”
“미쳤어?
난 저 따위 공장엔 안 나가.”
“정말이다? 약속했어.”
“그래. 약속했어.”
“그럼, 만져 봐.” 명희는 나에게 가슴을 맡겼다. 아주 작은 가슴이었다.
“네가 처음이야.” 명희가 말했다.
“내 가슴을 만져본 사람은 너밖에 없어.”
나는 왼팔로 명희의 어깨를 안고 오른손으로 그애의 가슴을 만졌다.
동그스름한 가슴이 따뜻했다.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돼.” 명희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애의 입김이 귀밑에 느껴졌다.
“말 안 할게.”
“동생들한테도 말하지 마.”
“말 안 해.”
“네가 비밀을 지키고, 아까 한 약속을 지키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줄 테야.”
“정말이지?”
“정말야.”
“지금 다른 데 만지면 안 되니?”
그런데, 명희는 만날 때마다 힘이 없어 보였다.
어떤 때는 정신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왜 그러니?” 나는 걱정이 되었다.
“너 어디 아프니?”
“아니.”
“그럼 왜 그래?”
“우리 집 밥은 먹기가 싫어.”
“왜?”
“질렸어.”
“그럼 넌 죽어.”
“죽고 싶어.”
“명희야,
난 저 따위 공장엔 안 나갈 거야.
공부를 해서 큰 회사에 나갈 테야. 약속해.”
“배가 고파.” 작은 명희가 웃으며 말했다.
“뭐가 먹고 싶니?” 내가 물었다.
명희는 나의 손을 잡았다.
그애는 나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짚어 가며 말했다.
“사이다, 포도, 라면, 빵, 사과, 계란, 고기, 쌀밥, 김.”
명희는 나의 손가락 하나를 마저 짚지 못했다.
그때의 명희에게는 그 이상의 것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명희가 자라면서 다방 종업원이 되고, 고속버스 안내양이 되고, 골프장 캐디가 되었다.
그애가 어느 날 핼쑥해진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그애로서는 마지막 인사였다.
어머니는 명희가 집에 올 때마다 배가 불러 있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명희는 음독 자살 예방 센터에서 숨을 거두었다.
“싫어! 엄마! 싫어!” 독약 기운에 빠져 명희는 소리쳤다.
성장한 명희는 마지막 순간에 어렸을 적 일들 속을 헤매었을 것이다.
그애가 남긴 예금 통장에 십구만 원이 들어 있었다.
“십오만 원야요.” 명희 어머니가 말했다.
“우선 건넌방 사람들을 내보내세요.” 어머니는 돈을 받아들었다. 아무 말도 못 했다.
“헐릴 집이라는 걸 알면서 세 들어올 사람이 있겠어요?”
“그래서 그래요.”
“모진 소리 더 듣지 말고 우선 나가겠다는 사람은 내보내세요.”
“이게 어떤 돈인데!”
“명희 언니는 큰오빠를 좋아했어.” 영희가 말했다.
“큰오빠도 알았지?”
“그만둬.”
영희가 기타를 쳤다.
나는 벽돌 공장 굴뚝 위에 떠 있는 달을 보았다.
나의 라디오는 고장이 났다.
며칠 동안 나는 방송통신고교의 강의를 받지 못했다.
나는 명희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초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더 이상 나갈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공부를 계속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밀어줄 힘이 없었다.
자세히 보면 아버지는 같은 또래의 사람들보다 많이 늙어 보였다.
우리 식구들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신장은 백십칠 센티미터, 체중은 삼십이 킬로그램이었다.
사람들은 이 신체적 결함이 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아버지가 늙는 것을 몰랐다.
아버지는 스스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체념과 우울에 빠졌다.
의욕은 물론 주의력과 판단력도 줄었다.
아버지가 평생을 통해 해온 일은 다섯 가지이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 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하기, 수도 고치기이다.
이 일들만 해온 아버지가 갑지가 다른 일을 하겠다고 했다.
서커스단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처음 보는 꼽추 한 사람을 데리고 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의 조수로 일하면 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무대 위에서 해야 할 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우리들도 아버지를 성토했다. 아버지는 힘없이 물러섰다.
꼽추는 멍하니 앉아 우리를 보았다.
꼽추는 눈물이 핑 돌아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은 아주 쓸쓸해 보였다. 아버지의 꿈은 깨어졌다.
아버지는 무거운 부대를 메고 일을 찾아나갔다.
그 날 저녁이었다.
“얘들아!” 어머니가 우리를 불렀다.
“아버지의 음성이 이상해지셨어.”
“왜 그러세요?” 내가 물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안 했다.
“약방엘 다녀와야겠다.” 어머니가 봉당으로 내려섰다.
“백반을 사와.”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아주 짧은 혀가 안으로 말려드는 소리를 냈다.
어머니가 히비탄 트로키라는 약을 사 왔다.
“백반은 안 나오고 이게 더 좋은 약이래요.
이걸 빨아 잡수세요.”
아버지는 말없이 약을 받아 입에 넣었다.
아버지는 그 일 이후 말을 잘 안 했다.
혀가 안으로 말린다고만 했다. 잠을 잘 때는 혀를 이로 물었다.
“아버지는 너무 지치셨다.” 어머니가 말했다.
“알겠니?
이젠 아버지를 믿지 마라.
너희들이 아버지 대신 일해야 한다.”
어머니가 울었다.
어머니는 인쇄소 제본 공장에 나가 접지 일을 했다.
고무 골무를 끼고 인쇄물을 접었다.
나는 겁이 났다.
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으로 출발했다.
땀을 흘리지 않고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명희는 나를 만나 주지 않았다.
아주 쌀쌀했다.
영호와 영희도 몇 달 간격을 두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마음이 차라리 편해졌다.
우리를 해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들이
일정한 보호 구역 안에서 보호를 받듯이 우리도 이질 집단으로서 보호를 받았다.
나는 우리가 이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조역․ 공목․ 약물․ 해판의 과정을 거쳐 정판에서 일했다.
영호는 인쇄에서 일했다.
나는 우리가 한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싫었다.
영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영호는 먼저 철공소 조수로 들어가 잔심부름을 했다.
가구 공장에서도 일했다.
그 공장에서 일하는 영호를 보았다.
뽀얀 톱밥 먼지와 소음 속에 서 있는 작은 영호를 보고 나는 그만두라고 했다.
인쇄 공장의 소음도 무서운 것이었으나 그곳에는 톱밥 먼지가 없었다.
우리는 죽어라 하고 일했다.
우리의 팔목은 공장 안에서 굵어갔다.
영희는 그때 큰 길가 슈퍼마켓 한쪽에 자리잡은 빵집에서 일했다.
우리가 고맙게 생각한 것은 환경이 깨끗하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영희는 하늘색 빵집 제복을 입고 일했다.
영호와 나는 유리창 밖에서 영희가 일하는 것을 보았다.
영희는 예뻤다.
사람들은 영희가 난쟁이의 딸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지 않고는 우리 구역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한 자로 너무나 엄격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미개한 사회였다.
우리가 학교 안에서 배운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나는 무슨 책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정판에서 식자로 올라간 다음에는 일을 하다 말고 원고를 읽는 버릇까지 생겼다.
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판을 들고 가 몇 벌씩 교정쇄를 내기도 했다.
영호와 영희는 나의 말을 잘 들었다.
내가 가져다준 교정쇄를 동생들은 열심히 읽었다.
실제로 우리가 이 노력으로 잃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고입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했다.
그 해 늦가을 밤 아버지는 나를 작은 나무배에 태우고 방죽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말없이 노만 저었다.
“돌아와요.” 영희가 마당에서 소리쳤다.
“그 배 위험해요.”
그러나 아버지는 방죽 한가운데로 노를 저어 갔다.
손을 흔드는 영희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나는 방죽의 물이 별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배 안으로 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는 언덕 위에 교회를 지을 때 나무널빤지를 훔쳐 왔다.
영호와 나는 한밤중에 깨어 널빤지를 훔쳐왔다.
영희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 널빤지를 훔쳐 왔다.
교회 건물은 말짱했다.
그런데 우리 배는 망가져 물이 스며들었다.
영희는 아버지를 걱정했다.
나는 수영을 할 줄 알았다.
아버지는 방죽 한가운데서 노를 세웠다.
스며든 물이 우리의 발목을 넘어 찼다.
나는 신발을 벗어서 물을 퍼냈다.
아버지가 내 신발을 빼앗았다.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영수야.” 아버지가 말했다.
“어제 왔던 꼽추 아저씨 생각나니?”
“언제요?”
“어제.” 나는 다른 신발을 벗어서 또 물을 퍼냈다. 아버지가 다시 내 손을 막았다.
“전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모르는 척해도 쓸데없어.
난 다 안다.”
“뭘 아신단 말씀예요?”
어제가 아니라 이미 삼 년 반 전의 일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꼽추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말했다.
“그 아저씨와 전에도 일을 했었어.
아주 큰 바퀴를 탔었다.”
“아버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 일이 언제 있었어요?”
“너는 장남이야.
장남인 네가 믿지 않으니까 두 동생도 믿질 않아.”
“어머니도 모르시는 일이야요.”
“얘야.” 아버지가 말했다.
“너만은 알고 있어야 한다.
너희 어머니는 병이야.
어제 왔던 꼽추 아저씨가 또 올 거다.
나를 막지 마.
다른 일은 이제 힘이 들어 못하겠다.
너는 내가 언제까지나 수도 파이프를 갈아 잇고, 펌프 머리를 들어 달 수 있을 거라고 믿니?
높은 건물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일도 할 수가 없어.
이젠 안 돼.”
“아버지는 일을 안 하셔도 돼요.
저희들이 일을 하잖아요.”
“누가 너희더러 일하라고 했니? ” 아버지는 말했다.
“너희들은 학교에만 나가면 돼.
그게 너희들이 할 일이다.”
“알았어요. 아버지.” 내가 말했다.
“이제 그 신발을 주세요.”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다가 신발을 내주었다.
나는 물을 퍼냈다.
“어제 꼽추 아저씨는 나를 도와줄 생각으로 왔었어.
내일 또 올 거다.
너희들이 그 아저씨를 처음 본다는 건 말도 안 돼.
우리는 함께 일했었다.
생각나지 않니? 아예, 힘으로 나를 윽박지를 생각은 하지 마라.”
“그 아저씨가 왔던 게 언제라구요?”
“어제.”
“그 노를 주세요.”
아버지는 세워들고 있던 노를 나에게 주었다.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처음 본 꼽추였다고 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어제가 아니라 삼 년 반 전의 일이라고 해도 아버지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노를 저었다.
물가에 닿기 전에 배는 가라앉았다.
나는 아버지를 안고 수초 사이를 헤쳐나갔다.
우리는 물에 젖어 온몸을 떨고 있는 아버지를 어머니에게 맡겼다.
아버지를 어머니 이상으로 간호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아버지는 병이세요.” 내가 말했다.
“닥쳐라!” 어머니가 말했다.
“언제나 알아듣겠니!
아버지는 지치셔서 그런 거야.”
그 해 겨울을 아버지는 방안에서 났다.
나는 배를 끌어내 말뚝에다 메었다.
날이 추워지자 울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날 밤 방죽이 얼었다.
밤에 명희 어머니가 또 왔다.
“영희 엄마." 명희 어머니가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입주권이 자꾸 올라요.
아침에 십칠만 원 했던 게 십팔만오천 원으로 뛰었어요.
우리는 괜히 먼저 팔아 가지고 손해만 봤어요.”
“저런!”
“만오천 원이나!”
어머니는 낮에 떼어놓았던 알루미늄 표찰을 종이로 쌌다.
그것을 철거 계고장과 함께 옷장 안에 넣었다.
“영희야.” 어머니가 불렀다.
“아버지 어디 가셨니?”
“모르겠어요.”
“영호야.”
“아까 아무 말씀 없이 나가셨어요.”
“영희야, 큰오빠는 어디 있니?”
“방에 있어요.”
“아버지가 어딜 가셨을까?” 어머니의 목소리가 불안해졌다.
“얘들아,
아버지를 찾아 봐라.”
나는 아버지가 놓고 나간 책을 잃고 있었다.
그것은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이었다.
영희는 온종일 팬지꽃 앞에 앉아 줄 끊어진 기타를 쳤다.
‘최후의 시장’에서 사온 기타였다.
내가 방송통신고교의 강의를 받기 위해 라디오를 사러 갈 때 영희가 따라왔었다.
쓸 만한 라디오가 있었다.
그런데, 영희가 먼지 속에 놓인 기타를 들어 퉁겨보는 것이었다.
영희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기타를 쳤다.
긴 머리에 반쯤 가려진 옆얼굴이 아주 예뻤다.
영희가 치는 기타 소리는 영희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나는 먼저 골랐던 라디오를 살 수 없었다.
좀더 싼 것으로 바꾸면서 영희가 든 기타를 가리켰다.
그 라디오가 고장이 나고 기타는 줄이 하나 끊어졌다.
줄 끊어진 기타를 영희는 쳤다.
나는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일만 년 후의 세계』라는 책을 아버지는 개천 건너 주택가에 사는 젊은이에게서 빌렸다.
그의 이름은 지섭이었다.
지섭은 그 집 가정교사였다.
아버지와 그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다.
지섭이 하는 말을 나는 들었었다.
그는 이 땅에서 우리가 기대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왜?” 아버지가 물었다. 지섭은 말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
“하긴!”
“아저씨는 평생 동안 아무 일도 안 하셨습니까?”
“일은 안 하다니?
일을 했지. 열심히 했어.
우리 식구 모두가 열심히 일했네.”
“그럼 무슨 나쁜 짓을 하신 적은 없으십니까?
법을 어긴 적 없으세요?”
“없어.”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으셨어요.”
“기도도 올렸지.”
“그런데, 이게 뭡니까?
뭐가 잘못된 게 분명하죠?
불공평하지 않으세요?
이제 이 죽은 땅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다니? 어디로?”
“달나라로!”
“얘들아!”
어머니의 불안한 음성이 높아졌다.
나는 책장을 덮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영호와 영희는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나는 방죽가로 나가 곧장 하늘을 쳐다보았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맨 꼭대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바로 한 걸음 정도 앞에 달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피뢰침을 잡고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자세로 아버지는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단편 난장이 연작소설)
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힘 - 2000.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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