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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단편글(수필.단편.공모.

유용주-그러나 나는 살아 가리라/먼 바다에서 온 물봉선

by 탄천사랑 2022. 7. 31.

(산문집) 유용주 - 「그러나 나는 살아 가리라


그 눈길을 따라 아주 떠나간 사람이 있었다.
눈 녹은 발자국마다 마른 풀잎들 머리 풀고 쓰러져
한쪽으로만 오직 한편으로만 젖어가던 날이 있었다.

박남준을 떠올리면 우선 눈물부터 난다.
눈물 속에서도 사악하고 비열한 인간은 자기 식대로 슬품을 해석하고 자기 설음에 젖어 눈물을 흘린다. 
내가 그런 인간이다.
언제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던가.
남들이 다겪어온 평범한 삶을 살아내면서도 내 고통이 더 크고 힘들었다고 엄살을 떨고 
과장스런 몸짓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불평을 했던 게 사실이다.

박남준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두 마디 풍경이 있다.
지금은 없어진 다리골의 우리 집과 1985년도에 행방 불명된 작은형이 그 그림이다.
처음 박남준이 사는 모악산방을 올라가며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럴 수가! 
아무리 우리 나라 산세가 특별한 데가 없고 바슷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같을 수가 있단 말인가.
올라가면서 오른쪽으로 다랑이 논이 있는 것을 빼놓고는 
수룡골에서 내려오는 계곡물하며 낙엽송과 감나무 오동나무가 어우러진 집터와
계곡을 따라 무리지어 살고 있는 물봉선과 그 주위를 에워싸는 칡넝클 다래 넝클 개망초 산나리 
흙보다는 돌이 더 맑은 작은 길을 올라가면 
아,  마당 가운데 박힌 돌과 집이 앉은 방향, 개울 건너 나지막한 등성이까지 쏙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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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나는 박남준을 대하면서 내 식대로 해석한다.
박남준이 각시처럼 조용조용 설거지를할 때나 화전을 부치거나 목욕을 할 때, 정지에서 군불을 땔 때, 
나무를 해 오거나 텃밭을 맬 떄, 특히 김추자나 배호의 노래를 들을 떄 작은형을 보는 것이다.
장수에 가서 벌초를 하거나 성묘를 하고 가능하면 모악산방을 들렀다가 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방을 보면서 우리 집을 떠올리고, 
노래하는 박남준을 보면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행방불명된 작은형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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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온 나라가 다떠내려 가고있다.
욕망으로 쌓아올린 바벨탑을 위해 빚을 내왔고 이자를 갚기위해 또 빚을 둘러대야 하는 판국에 물난리 까지났다. 
당연한 수순이다. 
우리가 우리의 편함을 위해 생각없이 쓰고 버렸든 것들이 다시 살아나 복수를 하는 것이다.
개발과 성장이란 명분아래 찢고 할퀴고 더렵혔던 자연이 물과 불과 가뭄과 바람으로 앙갚음을 하는 것이다. 
오존층에 구멍이 뚫리고 바닷물이 더워지고 해수면이 높아지는 이유가 모두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 때문이다.
너무 엉뚱한 이야기 같지만 해결책은 박남준에게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연간 에너지 소비량이 가장 적은 사람중에 하나다.
침수 걱정할 집도 떠내려갈 차도 책임지고 먹여 살려야할 부양가족도 없고 
신문도 없고 텔레비도없고 수돗물도 없는 곳에서 산다.
하루에 두 끼 먹을 때도 있고 
한끼 먹을 때도 있는데 그나마 장정 숫가락으로 두어번 뜨면 없어질 정도로 적은 양이다.

적게 먹은 만큼 똥도 적게 싸는데 
그마저도 아궁이에서 나온 재와 함께 호박 구덩이나 텃밭으로 돌아가니 도무지 버릴게 하나도 없다. 
거름 문제 해결을 위해 오는 손님들에게 제발 집에 가서 싸지 말고 여기서 해결하고 가라고 부탁할 정도다.
치약 대신 구운 소금을 쓰고 설거지도 모래나 재를 쓰고 
빨랫비누나 세숫비누도 다 물에 잘 풀어지기 때문에 버들치 살아 가는데 별 지장이 없는 용량을 쓴다.
이런 일들이 무슨 환경 친화운운 하는 관념론자 얼굴 알리기가 아니라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난 사람이다. 
머리만 안 꺾았을 뿐 이런 스님 보기 힘든 세상에 그가 살아 숨쉬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궁색이나 떠는 가난뱅이는 아니다. 
누구 보다도 그는 부자다.
장가는 안갔지만(결코 못 가지 않았다) 버들치 삼십여마리가 자식으로 등록 되어 있고.
복수초와 물봉선과 진달래와 산나리와 온갖 산새들이 그의 가족이며 
감나무 오동나무 낙엽송 도토리나무 들이 그의 식구다.

또한 배다른 청솔모와 다람쥐와 곤충들이 그와 함께 잠들고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눈 오면 눈대로 바람 불면 풍경 소리대로 
그를 둘려싼 해와 달과 구름과 별들이 모두 그의 혈연이며 
그 많은 책과 담배와 음반과 술병들이 그의 직게 존속이며 유산 상속 대상자다.
장구와 꽹과리는 물론 노트북과 만년필과 밥솥과 된장독, 
그의 메시지를 들으려고 일부러 전화하는 사람이 많은 녹음 전화기는 그의 처가붙이다.
그런데 뭐가 외롭다고 그 청승이며 그 나이에 흑흑 대냐 이 말이다.

장가 문제만 해도 그렇다.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며칠 전에 모악산에 들렀더니 
한낮 매미 소리 쟁쟁한 개울에서 빨래를 하는데 알몸이었다.
청동 같은, 
백시멘트 가루 섞어 비벼놓은 황토 같은, 
눈비에 탈색된 상수리 나무 잎 같은, 버들치 새끼 같은,
햇된장 같은 피부에다 그 잘생긴 물건을 달랑이며 마당으로 방으로 빨랫줄로 한참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고희를 훨씬 넘기고도 법성포를 지키며 사는 홀어머니께서 땀땀이 바늘질해 만든 한복을 
빨아 널어 풀을 먹인 다음 자근자근 밟아서 다듬이질을 하는 마흔두 살 먹은, 
등이 아담하고 에쁜 사내를 상상해보라.

모악산방에서 한참 올라가면 문수암이라는 절이 있고 거기에는 고시생도 몇 명 있어  
동네 사람들 내왕도 심심찮은 곳에 거시기를 덜렁대고 그 무슨 나체족이라고, 
빨리 옷 못 입어 큰소리를 쳤더니 볼 태면 보라고,  거풍에는 옷 벗고 돌아다니는 게 제일이라고 되받는다.
쓸 구멍도 없는 거시기에 거풍은 무슨 거풍, 
흐흐, 우리는 웃고 술 먹고 목욕했다. 그러니까 몸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혹자는 성 기능 장애자가 아니냐, 호모인가, 무정자인가 별별 뜬소문이 다 떠돌지만 내가 보증한다.
박남준은 지극히 정상이다.
왜냐하면 모악산에서 흐르고 흘러 서해에서 만난 물고기들이 증언을 해주었다.
달 밝은 날 박남준이 외로움을 참지 못해 소나무를 부여잡고 용두질을 했는데 어찌나 기운이 센지
그 기운이 개울까지 뻗쳐 나가 자기가 거기서 태어났다고,
우리 아빠 만나면 잘 자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아빠 만나면 전해달라고 백세주를 다섯 병이나 사주었다.

머리에 서리가 일찍 내려앉아서 그렇지 
인물 좋지 학벌 좋지 노래 잘하지 시서화에 능통하지 도대체 뭐가 문제냐 이 말이다. 
가끔 가다 술 먹고 돌아오는 길에 전봇대마다 머리를 들이받는다든지 
볼펜으로 자기 이마를 찍어 피철갑을 만든다든지 춤과 노래가 지나쳐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십육 미리 단편 영화 같은 이 장면은 한창훈 소설집 뒤꼭지에 자세히 설명해 놓았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박남준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적은 거의 없다.
문학하는 사람치고 이 정도의 성격 결함(?)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지독한 상처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그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시와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그리운 님은 
만해의 님도 아니요 소월의 님도 아니요 윤동주나 이육사의 님도 아니다.
추측건대 어떤 여자에게 지독한 배신을 당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결론을 내리면 장가를 안 간 것은 확실히 그 자신만의 문제고, 
어떤 뜻으로 보면 즐기는 게 아닐까, 
그쪽으로 몰고 가면 박남준은 사디스트보다 마조히스트에 가까운 인물이다.
수많은 여자들을 애태우고 울려서 좋은 일 무어짜드라 있겠는가.
반성하고 반성해도 이 부분은 절대로 용서하지 말아야한다.

죄는 지은 대로 가고 공은 닦은 대로 간다고 박남준이 지은 죄는 평생을 다해 속죄해도 갚을 길이 없다.
그가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 중에서도 선별해서 잘난 남자를 가까이 하면서 
(소문과 달리 박남준은 철저하게 사람을 가려 좋아하는데 우선 순우를 매기면 
 그림쟁이를 제일 좋아하고 스님들과 음악하는 사람들이 다음을 잇고 
 글쟁이들이 맨 나중인 이유는 잘난 체를 잘 하고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람 인연이란 게 얼마나 독한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천성이 여린 박남준은 끈질긴 사람 인연 때문에 소주 마시면서 마음 아파하고 속으로 운다) 
그의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수많은 낮과 밤을 애태운 끝에 찾아온 여자들을 
물리친 비열한 행동을 생각하면 죽어 지옥 가는 행로는 당연하다.
저승에 가서 하루에 백 명씩 여자들의 속옷을 빨고 목욕시키고 
밤에 번갈아 안아준 나머지 쌍코피가 터진다 해도 그의 업(業)은 씻을 수가 없을 것이다. 
지옥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살벌한 풍경이 무섭다면 
지금이라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선업(善業)을 쌓아가길 간절하게 바란다.


다시 빗줄기가 굵어졌다.
가야산이 뿌옇게 가물거리고 천수만 쪽으로 펼처진 드넓은 들판이 모두 바다처럼 물이 넘실거린다.
구제 금융에다 물난리까지 겹친 요즈음, 
늘 고통받는 사람들은 힘없고 뒷줄 없고 가난한 백성들이다.
나무와 인쇄소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출판사에 밥줄을 걸고 있는 분들께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작가들도 더없이 어려움을 맞고 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물처럼 바람처럼 구름처럼 사는 박남준도 견딜 수 없는 날들이 흘러간다.

국민의 정부 안에서도 양심수는 많고 아직도 박노해, 박영희 두 시인이 감옥에 있다.
우리는 모두 안과 바깥의 감옥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세기를 불과 한두 해 남겨둔 지금 환멸과 권태가 문단 안팎을 조이고 있다.

흑자는 인도로 티베트로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절로 떠났다가 돌아온 다음에 쓴 삶을 해탈한 듯한 
어떤 경지에 이른 듯한 산문이 순진한 독자들에게 먹혀들어 낙양의 종이값을 올린다고 하지만 
(저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폭우 속에서도 떠내려오는 가재도구나 물고기를 낚아채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나 가까운 우리 이웃들이었다),

지금 지쳐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작은 사람은 산속으로 숨고 큰 사람은 사람 속으로 스며든다고 했는데,
지금 지쳐 있다고 권태롭다고 너도나도 숨고 떠난다면 
누가 있어 다음 세기의 우리 문학을 갈아 엎고 씨를 뿌려 경영할 것인가.

박남준의 달레마는 여기에 있다.
자신은 비겁하게 살았다고 고백하지만 그는 1980년대 한복판에서 모기 같은 놈들과 맞서 싸웠다.
마흔두 살이면 한참 나이인데 벌써 팔 년 전에 산속에 들어가 나올 줄 모른다.
세권의 시집과 두 권의 산문집은 그가 세상에 던진 울분이고 절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세속에 물든 우리들이 한번 들러 아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반성하고 
정신의 때를 씻어 맑고 정갈하게 내려오는 넉넉한 품을 제공한다는 것으로 그의 역활은 다하는 것일까.
이렇게 살다 추해지면 과감하게 세상과 결별한다는 그의 추상같은 삶의 자세는 도저하지만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 있는 나이 아닐까.

더 숨을 것인가.
박차고 나올 것인가, 
계속해서 마시고 쓸쓸해하고 흐느끼다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인가.
강요하지 말자.
그의 슬품에는 뿌리가 깊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까지 실뿌리가 뻗쳐 있다.
아픈 허리가 휠 정도로 많은 일을 한 그가 얼마나 격력한 고통을 가슴에 숨기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오체투지, 면벽수행이 아주 투명한 사리로 빛날 때까지 말없이 지켜보기나 하자.


이 비 그치면 숭늉 냄새 나는 가을이 오겠다.
나는 우는 사람을 싫어한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남들이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렸기 때문이다.
문학도 걸쭉하고 씩씩하고 땀 흘려 일해 배짱이 두둑한 작품을 좋아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박남준은 예외다.
한 인간을 과대 포장해서 신비화하거나 우상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마땅하고 그 폐해를 잘 알고 있지만,
박남준의 물봉선교에 한번 쏘이기만 하면 뽕 맞은 듯 이런 다짐들이 흐물흐물해진다.
힘이 빠져 눕고 싶고 다 말라버린 눈물도 관절이나 신경줄이나 하다못해 뼈를 뚫고서라도 차 올라 범란할 것 같으나,
물싸리나 제비꽃, 
채송화같이 여리다고 박남준을 지레짐작하면 그 술을 그 노래를 그 구신을 제대로 다 못 보는 것이다.
버들치도 뼈가 있고 풀여치도(이광웅, 박두규, 두 분을 포함한) 치 자(字) 돌림 아니던가.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별초도 하고 모악산방에 다녀와야겠다.
새벽강에 가서 밤새도록 술도 마시고
(전주 하면 우선 병천이 형이 보고 싶고, 정양 선생 모시고 용택이 성님이랑 도현이랑 술 마시고 싶고,
 이종민-지성호-김영배-장민욱과 청년 문학 친구들과 대모 강은자와 그냥 눌러 살고 싶다)

아침이 오면 유천 칡냉면도 곱빼기로 먹어야지.
모주와 콩나물해장국은 눈 푸짐한 겨울을 위해 아껴두자.
박남준이 더 늙기 전에, 
그것보다는 칡넝쿨과 으름 넝쿨이 지붕을 올라타고 눈비의 무게에 눌려 속절없이 무너지기 전에,
주인이 떠난 방구들에 잡초가 무성해지기 전에, 
글썽이는 눈과 집터와 나무를 다시 보고 와야겠다. 
대마보다 헤로인보다 코카인보다 독성이 훨씬 강한 물봉선 주사를 꼭 맞고 와야겠다.  (p130)
※ 이 글은 <그러나 나는 살아 가리라>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산문집) 유용주 - 그러나 나는 살아 가리라
솔 - 2000.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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