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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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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재너 케이슨-Girl, interrupted/처음 만나는 자유

by 탄천사랑 2022. 6. 9.

「수재너 케이슨 - Girl, interrupted」

 

정신이 건강한 상태가 주는 큰 기쁨 가운데 하나는 
내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그때 소녀의 갈색 눈이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한 소녀가 살찐 음악 선생을 무시하며 액자 바깥을 바라보는 그림이었다.
선생의 손은 소녀가 앉은 의자 등받이에 놓여 있었다.

겨울 햇빛은 흐렸지만 소녀의 얼굴은 밝았다.
나는 소녀의 갈색 눈동자를 들여다 보면서 뒷걸음질쳤다.
소녀는 나에게 무언가를 경고했다.
소녀는 나에게 무언가를 경고하고 싶은듯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소녀의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마치 '안돼!'하고 말하기 위해 숨을 살짝 들어마신 듯 보였다.
나는 뒤로 물러서서 소녀가 전해주는 절박한 분위기에서 벗어니려 했다.
하지만 소녀가 풍기는 절박감은 이미 복도를 꽉 채우고 있었다.
소녀는 말했다.

"잠깐! 
  가지 마!"   나는 소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영어 선생님과 저녁을 먹으러 나갔고, 선생님은 나에게 입을 맞췄다.
그런뒤 케임브리지로 돌아왔고, 생물에서 낙제를했다.
하지만 졸업은 했고,  마침내 정신이 나갔다.

열여섯 해 뒤에 돈많은 새 남자친구와 뉴욕에 다시 갔다.
우리는 여행을 많이 했는데, 여행 비용은 모두 남자친구가 부담했다.
그래선지 그는 돈을 쓰는데 무척 예민하고 까다롭게 행동했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이따금 내 성격,  성격 장애로 진단받았던 그 성격을 들먹이곤 했다.
어떤 때는 너무 감상적이고,  또 어느땐 너무 차갑고,  그리고 판단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남자친구가 뭐라든 나는 돈을 써도 된다고 말함으로써 그를 안심시켰다.
그러면 친구는 나와 입씨름하는 것을 멈추었다.
우리는 계속 함께 여행을 하면서 돈을 쓰고 말싸움도 반복했다.

뉴욕의 아름다운 10월 어느 날이었다.
오전내 말싸움을 하던 친구를 진정시킨 뒤 나갈 준비를 했다.
남자친구가 말했다.

"프릭 미술관에 가자."
"거기 가본 적 없는데."  그리고 나서 어쩌면 가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의심이 가는 일들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프릭 미술관에 도착했을 때 그 그림을 발견했다.

"어머, 

  네가 좋아하는 그림이 하나 있네."

"겨우 하나? 

  이 프라고나르의 그림들을 좀 봐."

나는 프라고나르의 그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그림들을 뒤로하고 안뜰로 이어지는 복도로 걸어갔다.


소녀는 열여섯 해 사이에 많이 달라져 있었다.
소녀는 이제 절박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소녀는 어리고 마음은 산란한데, 선생님은 소녀에게 집중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바깥을 내다보며 누군가 자기를 봐주길 바랬다. 
이번엔 그림 제목을 보았다.

'연주를 중단한 소녀(Girl Interrupted at Her Music..)'

음악을 중단한 소녀라.
열일곱에 중단되었던 내 삶처럼 소녀의 삶은 강탈당해 캔버스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소녀의 한 순간이 정지뒨 채 다른 순간들을 위해 고정되었다.
그 순간들이 어떻게 되든, 어떻게 되었든, 거기서 어떤 삶이 회복될 수 있을까?

"내가 널 봤어."   나는 소녀에게 해줄 말이 있었다.

"왜그래?"   남자친구가 복도에 서서 우는 나를 발견했다.

"안 보여? 
  이 여자애가 도망치고 싶어 하잖아"

나는 소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남자친구는 그림을 쳐다보고 다음 순간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넌 너 자신밖에 생각하지 못하는구나.
  넌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이렇게 말하고는 렘브란트 그림 쪽으로 가버렸다.

그 후 나는 그림 속의 소녀와 베르메르의 다른 두 작품을 보러 프릭 미술관에 다시 갔다.
베르메르의 작품은 구하기 어려운데다, 보스턴에 있던 작품 하나는 도난당한 상태였다.

다른 두 작품은 말이 없었다.
그림 속의 사람들-- 부인과 하녀, 병사와 연인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은 벽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그들을 엿보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벽은 빛으로, 확실히 존재하지만 비현실적인 베르메르의 빛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빛은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런 빛이 존재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태양이 우리를 젊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입은 옷이 반짝반짝 빛나며 우리 피부 위에서 물결치듯 흔들리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그들을 쳐다보기만 해도 밝아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편지를 전해주는 하녀나 멋진 모자를 쓴 병사가 그런 것처럼.  (p247)  
이 글은 <Girl, interrupted>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수재너 케이슨 - Girl, interrupted
역자 - 서영조
궁리 - 2004.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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