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난장이 연작소설 4 단락)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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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죽가 풀숲에 엎드려 있었다.
온몸이 이슬에 젖어 축축했다. 조금만 움직이면 잡초에 맺힌 이슬방울이 나의 몸에 떨어졌다.
한밤을 나는 방죽가 풀숲에 엎드려 세웠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어둠이 조금씩 뒷걸음쳐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밤을 우리의 집에서 보내지 못했다는 아픔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동네는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비행접시를 타고 온 외계인들이 영희를 태워갔다는 소문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얘들아!” 어머니가 말했다.
“이러고만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
“찾아 봐도 없는 걸 어떻게 해요?” 내가 말했다.
나는 헐려버린 이발관집 공터에서 주정뱅이를 만났다.
“찾아 봐야 쓸데없는 일이야.”
“정말 보셨어요?”
“암, 봤다니까.” 주정뱅이는 말을 잘 못 했다. 그는 심하게 딸꾹질을 해댔다.
“영희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저씨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자세히 좀 말씀해 주세요.”
“너희 아버지는 알고 있어.”
“아버지도 모르세요.”
“그럴 리가 없다.
너희 아버지가 신호를 보내서 비행접시가 왔던 거야.”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굉장히 큰 접시였지.
그 밑에서 나온 괴물들이 영희를 끌어올렸어, 순식간에.
나중에 알아보았더니, 그게 비행접시라는구나.” 주정뱅이는 계속 딸꾹질을 해댔다.
“그만두세요.” 내가 말했다.
“그럼 찾아 보렴.” 주정뱅이가 말했다.
“네 동생이 어디 있나 찾아봐.
있을 턱이 없지.
나는 목이 말라 잠을 깼었어. 그 시간에 잠을 깰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들은 영희를 태우고 순식간에 날아갔어.
머리가 몹시 크고 다리는 아주 가늘었다.”
“안녕히 가세요.” 내가 말했다.
“나는 아직 안 간다.” 주정뱅이가 말했다.
“이것들을 마셔 버리고 가야지.”
그는 구들돌 위에 쌓아놓은 여섯 짝의 창문과 두 짝의 대문을 가리켰다.
그는 전날 지붕에서 걷어 내린 기왓장과 펌프 머리, 그리고 장독 두 개를 팔아 모두 마셔 버렸다.
우리 동네 주민들의 삼분의 이 이상이 이미 집을 헐어버리고 떠났다.
나는 풀숲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죽 위 하늘의 별빛이 흐려 보였다. 날이 서서히 밝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풀어지지도 않은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몇 번 껑충껑충 뛰었다.
대문을 열고 나온 형이 방죽 길을 따라 걸어왔다.
두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힘을 내, 형.” 내가 말했었다.
“이건 힘으로 할 일이 아니다.” 형이 말했다.
“그럼 뭐야? 용기가?”
형은 점심 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고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기계실 뒤에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했다.
“우리가 말을 할 줄 몰라서 그렇지,
이것은 일종의 싸움이다.” 형이 말했다. 형은 말을 근사하게 했다.
“우리는 우리가 받아야 할 최소한도의 대우를 위해 싸워야 돼.
싸움은 언제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부딪쳐 일어나는 거야.
우리가 어느 쪽인가 생각해 봐.”
“알아.”
형은 점심을 굶었다.
점심시간이 삼십 분밖에 안 되었다.
우리는 한 공장에서 일했지만 격리된 생활을 했다. 공원들 모두가 격리된 상태에서 일만 했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의 일 양과 성분을 하나하나 조사해 기록했다.
그들은 점심 시간으로 삼십 분을 주면서 십 분 동안 식사하고 남는 이십 분 동안은 공을 차라고 했다.
우리 공원들은 좁은 마당에 나가 죽어라 공만 찼다.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간격을 둔 채 땀만 뻘뻘 흘렸다.
우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공장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밤중까지 일을 했다. 물론 우리가 금방 죽어 가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작업 환경의 악조건과 흘린 땀에 못 미치는 보수가 우리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래서 자랄 나이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발육 부조 현상을 우리는 나타냈다.
회사 사람들과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우리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불황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힘껏 일한 다음 자기와 공원들이 함께 누리게 될 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우리는 그 희망 대신 간이 알맞은 무말랭이가 우리의 공장 식탁에 오르기를 더 원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이었다.
한 해에 두 번 있던 승급이 한 번으로 줄었다. 야간작업 수당도 많이 줄었다,
공원들도 줄였다, 일 양은 많아지고, 작업 시간은 늘었다.
돈을 받는 날 우리 공원들은 더욱 말조심을 했다. 옆에 있는 동료도 믿기 어려웠다.
부당한 처사에 대해 말한 자는 아무도 모르게 밀려났다.
공장 규모는 반대로 커갔다.
활판 윤전기를 들여오고, 자동 접지 기계를 들여오고, 옵셋 윤전기를 들여왔다.
사장은 회사가 당면한 위기를 말했다.
적대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지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공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었다. 사장과 그의 참모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었다.
큰 공장이 문을 닫으면 수많은 공원들은 갈 곳이 없었다.
작은 공장들이 채용할 인원은 한정이 되어 있다.
나는 돈도 못 벌고 놀게 될지도 모른다. 새로운 일터를 찾는다고 해도 낯선 곳이다.
작은 공장이라 작업장은 더 나쁘고 돈도 오르지 않은 채 받는 액수보다 훨씬 적을 수가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공원들 대부분이 어린 나이에 들어와 중요한 성장기의 삼사 년을 이 공장에서 보냈다.
익힌 기술을 빼 놓으면 성장의 기반이랄 것이 없다.
우리 공원들은 우리가 아는 것만큼 밖에는 사물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땀으로 다진 기반을 잃고 싶어하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다. 공원들은 일만 했다.
대다수 공원들이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 상태를 인정했다. 무엇 하나 일깨워 줄 사람도 없었다.
어른들도 자기들의 경험을 들려 줄 것이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옳은 것이 실제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지는 것만을 그들은 보았었다.
우리는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았다. 사장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그 집 식구들은 정원 잔디를 기계로 밀어서 깎았다.
그 집 정원에서는 손질이 잘된 나무들이 밝은 햇빛을 받아 무럭무럭 자랐다.
그 집 나무들은 ‘나무종합병원’에서 나온 나무 의사들이 돌보았다.
나도 나무병원 앞을 지나가 본 적이 있다.
간판에 ‘귀댁의 나무는 건강합니까?’라고 씌어 있었다.
그 밑에는 작은 글씨로 ‘병충해 진단․생리적 피해 진단․외과 수술․건강 유지 관리’라고 씌어 있었다.
함께 지나던 어린 조역이 말했다.
“우리 집에는 나무가 없습니다.
나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허리를 잡고 웃었다.
무엇이 그렇게 우스웠는지 모른다.
어린 조역은 그때 거의 날마다 코피를 흘렸다.
형은 웃옷을 벗어 나의 등에 얹어주었다.
풀숲으로 들어간 형의 바짓가랑이도 이슬에 젖었다.
“영희를 보았다는 사람은 주정뱅이 아저씨밖에 없었어.” 변명하듯 내가 말했다.
“비행접시가 내렸다는 곳이 여기야.”
“그래 밤새도록 뭘 봤니?”
“형은 내가 그 아저씨 말을 믿었던 것 같아?”
“아니.”
“찾아 나설 데가 있어야지.”
“그만 들어가자.”
“형은 영희가 왜 집을 나간 것 같아?”
“너희들 때문이야.” 어머니는 말했다.
“너희들이 핑핑 놀고 있기 때문에 나갔어.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모든 게 너희들 책임이야.
다른 아이들은 멀쩡하게 남아서 일을 하는데 너희들은 왜 쫓겨났니?”
“어딜 가면 꼭 말을 하고 나갔었잖아?
나는 영희가 집을 나간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참을 수가 없었겠지.” 형이 말했다.
형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형은 언제나 나보다 생각이 깊었다. 아는 것도 많았다.
학교를 그만두자 더 많은 책을 읽었다.
아버지가 난쟁이만 아니었다면 형은 학자가 될 사람이었다.
형은 틈만 있으면 책을 읽었다.
나는 형을 위해 기계에서 돌아나오는 인쇄물을 접어다 주고는 했다.
아주 어려운 것도 형은 참고 읽었다. 돈을 타면 헌책방에 가서 사다 읽기도 했다.
책은 형에게 무엇이든 주었다.
형은 고민하는 사나이의 표정을 종종 지어 보이고는 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공책에 옮겨 적기도 했다.
형의 공책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도 적혀 있었다.
-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도 폭력이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이다.
누가 감히 폭력에 의해 질서를 세우려는가?
십칠 세기 스웨덴의 수상이었던 악셀 옥센스티르나는 자기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세계가 얼마나 지혜롭지 않게 통치되고 있는지 아느냐?”
사태는 옥센스티르나의 시대 이래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지도자가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면 인간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희생이라는 말은 전혀 위선으로 변한다.
나는 과거의 착취와 야만이 오히려 정직하였다고 생각한다.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
세대와 세기가 우리에게는 쓸모도 없이 지나갔다.
세계로부터 고립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에 무엇 하나 주지 못했고, 가르치지도 못했다.
우리는 인류의 사상에 아무 것도 첨가하지 못했고……
나의 사상으로부터는 오직 기만적인 겉껍질과 쓸모없는 가장자리 장식만을 취했을 뿐이다.
지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할 일을 준다는 것,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목적 없이 공허하고 황량한 삶의 주위를 방황하지 않게 할 일을 준다는 것이다.’ -
나는 형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공책을 읽는 동안 형은 고민하는 사나이의 표정을 지었다.
그야말로 의젓한, 고민하는 사나이의 얼굴이었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형은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비웃었을 것이다.
“도대체 이걸로 뭘 하겠다는 거야?” 내가 물었다.
“영호야.” 아버지가 말했다.
“너도 형처럼 책을 읽어라.”
“뭘 하겠다는 게 아냐.” 형이 말했다.
“나는 책을 통해 나 자신을 알아보는 거야.”
“이제 알겠어.” 나중에 나는 말했다.
“형은 이상주의자야.”
말을 하고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나도 형만큼 자랐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어려운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자랐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나는 고민하는 이상주의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기대는 일그러졌다.
형은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그때 형이 화를 내야 하는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나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우리는 난쟁이의 아들이었다.
형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풀숲으로 나갔다.
나는 돌멩이를 집어 방죽을 향하여 던졌다. 소리 없이 물방울만 올랐다.
마당에서 나는 계속 돌멩이를 던졌다.
“영호야.” 어머니가 말했다.
“그 돌멩이질은 그만두고 동회 앞에나 나가 봐라.”
“가 보나마나예요.
한 시간 전에 이십이만 원 했는데 또 올랐겠어요?”
“그래도 가 봐.
이십오만 원이면 팔겠다고 그래.”
나는 다시 돌멩이를 집어 방죽을 향해 던졌다.
동사무소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승용차도 몇 대 서 있었다.
그곳에는 두 부류의 사람밖에 없었다.
입주권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었다.
팔려는 사람들은 초조한 얼굴로 거간꾼의 눈치만 보았다.
한결같이 영양이 나쁜 얼굴들이었다.
거기서는 눈물 냄새가 났다. 나는 눈물 냄새를 가슴으로 맡았다.
누가 나의 팔을 끼었다. 영희였다.
영희는 햇볕에 발갛게 탄 얼굴을 옆으로 저어 보였다. 잠실까지 갔다 오는 길이었다.
아파트를 짓고 있는 현장 근처의 복덕방 시세도 이십이만 원이라고 했다.
이젠 더 이상 버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작은오빠,
엄마더러 그만 팔자고 그래.” 영희가 말했다.
“갑자기 내려가면 어쩌려고 그러지?”
“저에게 파세요.” 웬 여자가 말했다.
“소개업자가 아녜요.
직접 입주하려고 그래요. 명의 변경이 가능한 건가요?”
“물론 가능한 거죠.” 내가 말했다.
“우린 표찰이 있어요.”
“그 표찰이란 거 어떻게 생긴 거예요?”
“작은 알루미늄판입니다.
무허가 건물 번호가 새겨져 있어요.”
“무찰은 또 뭔가요? 무찰은 값이 싸던데.”
“표찰이 없는 집을 무찰이라고 그래요.
몇 년 전 무허가 건물 일제 조사 때 시에서 잘못 조사해 빠뜨렸든가,
사유지 건물로 판단, 무허가 건물 등록 대장에서 빠진 겁니다.”
여자는 땀을 흘리고 서 있었다.
손수건으로 땀을 찍어내며 게시판을 가리켰다.
무허가 건물 명의 변경 신청 양식이 붙어 있었다.
그 밑에는 갖추어야 할 구비 서류가 적혀 있었다.
“신청서 1통, 매도자 인감 1통, 매매 계약서 사본 1통, 인우보증서 1통” 하고 여자가 읽었다.
“매매 계약서 한 통만 쓰면 됩니다.” 내가 말했다.
“철거 계고장이 나온 날짜보다 한두 달 앞서 산 거로 하면 돼요.”
“그럼 정말 안전한가요? ”
“아주머니 이름으로 바꾸어진다니까요.
아파트에 아주머니 이름으로 입주하게 돼요.”
“그건 불법 아녜요?” 여자는 빳빳한 자세로 서서 땀을 찍어 냈다.
“동회에 들어가서 건설계 직원에게 물어보세요.”
“이십이만 원은 비싸요. 만원만 깎아 줄래요?”
“아주머니.” 내가 말했다.
“헐릴 저희 집 같은 걸 새로 지으려면 백삼십만 원은 있어야 됩니다.
저희 아버지가 평생을 일해 지은 집예요.
우린 그걸 이십이만 원과 바꾸어야 될 입장예요.
거기서 전세 주었던 돈 십오만 원을 제하고 나면 칠만 원이 남습니다.”
“어쨌든 이십일만 원에는 안 되겠다는 얘기 아녜요?”
나는 말하지 않았다.
여자가 돌아섰다. 영희가 작은 주먹으로 나의 등을 쳤다. 잠시 후에 또 한 번 쳤다.
영희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영희에게는 청바지도 잘 어울렸다.
나는 영희의 얼굴을 보지 않고 돌아서 걸었다.
“팔지 말고 기다려요.” 승용차 안에서 한 사나이가 말했다.
“내가 사겠소.”
“얼마예요?”
“얼마면 팔겠어요?”
“이십오만 원.”
“좋아요.
내가 저녁에 가죠.
이웃에 팔 사람이 또 있으면 싸게 팔지 말고 기다리라고 그래요.”
“조금만 더 기다려라.” 아버지가 말했었다.
“진실을 말하고 묻혀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너희들이 그 꼴이 되었구나.”
우리는 개천 위에 놓은 시멘트 다리 위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난간 사이에 두 다리를 내리고 앉아 술을 마셨다.
아버지가 술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리 저쪽 끝에서는 곯아 떨어진 주정뱅이가 코를 곯았다.
아버지의 주량은 그의 반도 안 되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주정뱅이 주량의 반을 마셨다.
밤이 늦어 동네 사람들은 불을 끄고 자리에 들었다.
두 집만 깨어 있었다.
주정뱅이네 집과 우리 집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돌아갈 것 같았다.
형도 아버지가 든 술병을 빼앗아 버리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가 마지막 눈을 감는 날의 일을 생각했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다.
언덕 위 교회의 목사는 달랐다. 그는 인간의 숭고함․고통․구원을 말했다.
나는 인간이 죽은 다음에 또 다른 생을 시작한다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는 숭고함도 없었고, 구원도 있을 리 없었다.
고통만 있었다.
나는 형이 조판한 노비 매매 문서를 본 적이 있다.
확실히 아버지만 고생을 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들이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첫번째 싸움에서 져버렸다.
나는 내가 마지막 눈을 감는 날의 일도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만도 못할 것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그들 시대의 성격을 가졌다.
나의 몸은 아버지보다도 작게 느껴졌다. 나는 작은 어릿광대로 눈을 감을 것이다.
아무도 우리에게 할 일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리가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았다.
사장과 그의 참모들은 회의실 창가에 서서 우리를 내다보았다.
그들이 우리의 일을 빼앗았다.
“그러니까, 다시 얘길 해 보자.” 아버지가 말했다.
“너희 둘만 남았었다 이거지?
처음엔 함께 일손을 놓고 사장을 만나 담판하기로 했던 아이들이
너희들은 배반해 너희 둘만 남았었다 이거냐?”
“술은 그만 드세요, 아버지.” 내가 말했다.
“잘했어.” 아버지는 다시 병을 기울여 술을 마셨다.
“너희도 잘했고, 그 아이들도 잘했다.”
“저희들 먼저 들어갈래요.”
“그래, 들어가라. 들어가서 너희 엄마를 내보내.”
“그럴 필요 없어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주정뱅이의 몸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잘한다!” 어머니가 말했다.
“둘이서 아버지도 제대로 못 모시는구나.”
“가만 있어.” 아버지는 빈 술병을 다리 밑으로 던졌다.
“얘들이 오늘 훌륭한 일을 했어.
사장을 만나 얘기를 했대.
회사가 잘 되려면 몇 사람의 목이 필요하다고 말야.
그리고 사장에게 당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공원들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한 거야.
이 말뜻을 엄마가 알까? 응?”
“아버지, 그게 아녜요.” 내가 말했다.
“우리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어요.
얘기가 먼저 새버려 그냥 쫓겨났을뿐예요.
“마찬가지야!”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사장을 만났으면 그런 말을 했을 거 아냐?
그렇지? 대답해 봐.”
“네.” 작은 목소리로 내가 대답했다.
“들었지? 엄마 들었어?”
“걱정할 거 없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얘들은 일류 기술자예요.
어느 공장에 가든 돈을 벌 수 있어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마.”
“모르는 소리는 왜 모르는 소리예요?
공장도 옮겨 보는 게 좋아요.”
“그게 안 된다니까.
벌써 공장끼리 연락이 돼 있어. 똑같은 공장들이야.
얘들을 받아 줄 공장이 없어.
얘들이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 당신이 알아야 돼.”
“그만두세요.
얘들이 무슨 반역죄라도 지은 것처럼 야단예요.”
“뭐라구?”
“가자.”
형은 시멘트 다리를 성큼성큼 걸어 건넜다.
그 끝에서 곯아떨어진 주정뱅이를 일으켜 업었다. 다리를 휘청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았다.
형은 지난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했다. 잠도 잘 못 잤다.
혓바늘이 돋고 입맛을 잃었다. 밤에도 머리가 맑아져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그 보상을 받기 시작했다. 형은 주정뱅이네 마루에다 주정뱅이를 내려놓았다.
어린 딸이 눈을 비비며 나와 아버지를 받아 눕혔다.
우리는 골목을 나와 밤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업고 가는 것이 보였다.
형은 돌아서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눌렀다.
공원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좁은 마당에 나와 공을 찼다.
그들은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이십 분이 지나자 땀을 뻘뻘 흘리며 작업장으로 몰려 들어갔다.
“이게 뭐람!” 혼잣말처럼 형이 중얼거렸다.
“저녁에 다른 이야길 하면 안 됩니다.” 승용차 안의 사나이가 말했다.
“이십오만 원이면 아무 말 안 해요.”
내가 말했다.
그날 밤 승용차 안의 사나이가 우리 동네의 나머지 입주권을 모두 사 버렸다.
그는 다른 투기업자들이 이십이만 원에 사가는 것을 이십오만 원씩 주고 모두 사 버렸다.
그날 밤에도 영희는 팬지꽃 앞에 앉아 기타를 쳤다.
영희는 팬지꽃 두 송이를 따 하나는 기타에 꽂고 하나는 머리에 꽂았다.
그리고, 꼼짝도 하지 않고 기타만 쳤다.
사나이가 아버지에게 담배를 권했다.
“이십오만 원이 분명하죠?”
어머니가 물었다.
사나이를 따라온 나이 든 사람이 검은 가방을 열어 돈을 보여 주었다.
그는 마루에 앉아 매매 계약서를 썼다.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가 서류가 둔 봉투와 도장을 가지고 나왔다.
아버지는 계약서 매도자란에 ‘金不伊’라고 쓰고 도장을 눌렀다.
나이 든 사람은 아버지의 이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버지 이름이 갖는 아픈 바람의 뜻을 그가 알 리 없었다.
어머니는 소중하게 싸 두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넘겨주었다.
식칼 자국이 난 표찰, 아침 수저를 놓고 가슴을 세 번 치게 한 철거 계고장,
집을 헐값에 버리기 위해 생전 처음 내 본 인감 증명 두 통,
미리 서명해 두었던 명의 변경 신청서,
힘 하나 없는 식구들의 이름과 나이가 차례대로 적혀 있는 주민등록 등본 두 통,
마당가 팬지꽃 앞에 앉아 있던 영희가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가 그것을 받았다. 꼭 삼 초 동안 들고 있다가 어머니에게 넘겨주었다.
어머니는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다음날 아침, 명희 어머니는 사람들을 시켜서 집을 헐었다.
어머니가 십오만 원을 갚았다. 두 부인은 손을 마주 잡은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용달차가 좁은 골목을 뚫고 들어와 명희네 짐을 실었다.
명희 어머니가 치마를 올려 눈물을 닦았다.
“에유, 정이란 게 뭔지!” 명희 어머니가 말했다.
“정이란 게 이렇게 더러운 게라우.”
그 말이 우리의 눈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용달차가 집 앞을 지나갔다. 아버지는 오른손을 반쯤 올렸다가 내렸다.
왼손에는 책이 들려있었다. 지섭의 책에 아버지의 손때가 까맣게 묻었다.
아버지와 지섭은 우리에게 대기권 밖을 날아다니는 사람들로 보였다.
두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달을 왕복했다.
“살기가 너무 힘들다.” 아버지는 말했었다.
“그래서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다.
내가 할 일은 망원 렌즈를 지키는 일야.
달에는 먼지가 없기 때문에 렌즈 소제 같은 것도 필요가 없지.
그래도 렌즈를 지켜야 할 사람은 필요하다.”
“아버지, 도대체 그런 일이 가능할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넌 이때까지 뭘 배웠니?” 아버지가 말했다.
“뉴턴이 그 중요한 법칙을 발표하고 삼 세기가 지났어.
너도 그걸 배웠지? 국민학교 때부터 배웠어.
그런데 우주에 관한 기본 법칙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말하는구나.”
“그런데 누가 아버지를 달에 모시고 가겠대요?”
“지섭이 미국 휴스턴에 있는 존슨 우주 센터에 편지를 냈다.
그 곳 관리인 로스씨가 답장을 보내올 거야.
후년에 우주 계획 전문가들과 함께 달에 가게 될 거다.”
“그 책을 돌려주세요.” 내가 말했다.
“그리고, 그 사람 말을 믿지 마세요.
그는 미쳤어요.”
“이 책의 사진을 봐라.
이 사람은 프란시스 베이컨이고, 이 사람은 로버트 고다드다.
당시 사람들이 미치광이로 지목했던 인물들이야.
이 미친 사람들이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아니?”
“몰라요.”
“넌 학교에서 죽은 교육을 받았어.”
“어쨌든 그 책을 돌려주세요.”
“너희들은 내가 이 땅에서 끝까지 고생하다 바짝 마른 몰골로 죽기를 바라고 있지?
힘든 일에 눌려 허우적거리다 숨을 거두기를 바라고 있는 것 아니냐?”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너희들은 왜 지섭에게 아무 것도 배울 생각을 하지 않니?”
“도대체 뭘 배우라는 말씀예요?”
“로스씨의 편지를 받기 전에 보여줄 것이 있다.
지섭에게 말해서 쇠공을 쏘아 올려 보여 주마.”
“없지?”
“네.”
“찾지도 못하면서 밤새도록 어디 가 있었니?”
나는 돌멩이를 집어 다시 방죽을 향해 던졌다.
어머니도 기진해 다른 말을 못 했다.
형이 어머니의 등을 밀면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한 아침이었다.
백여 채의 집이 헐리고 남은 것은 몇 채 안 되었다.
우리도 영희만 집을 나가지 않았다면 전날 떠났을 것이다.
철거일을 어겨야 할 다른 이유는 없었다.
행복동 생활의 마지막 며칠은 우리에게 악몽과 같았다.
우리는 영희를 찾아 헤매었다.
영희를 본 사람은 없었다. 영희는 가방도 들지 않고 집을 나갔다.
갖고 나간 것은 줄 끊어진 기타와 팬지꽃 두 송이뿐이었다.
나는 좀 큰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이번에도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잔물결이 수초 사이로 밀려왔다.
지섭이 이발관집 공터를 지나 곧장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 쇠고기가 들려 있었다.
대문 앞까지 나온 아버지가 그의 손을 잡고 들어갔다.
아버지가 쇠고기를 부엌 안 어머니에게 넘겨주었다. 부엌 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형이 안쪽 아궁이 앞에 엎드려 불을 피우고 있었다.
형은 눈물을 씻으면서 일어나 아궁이에 나무를 넣었다. 어머니는 밖으로 나와 눈물을 씻었다.
우리는 며칠 동안 명희네 집에서 나온 나무를 쪼개 아궁이에 넣고 나왔다.
형의 몸에서 연기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밭은기침을 했다.
아버지와 지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섭은 아버지에게 빌려준 책을 읽었다.
아버지는 그가 감옥살이를 했다고 말했었다.
아버지에 의하면 그는 잘못한 것도 없이 감옥에 갔었다.
그는 마루에 걸터앉아 책을 읽었다.
형과 나는 시멘트담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집들이 다 헐려 곧바로 동사무소가 보였다. 그 너머로 밝고 깨끗한 주택가가 보였다.
그 바른쪽은 슈퍼마켓이 있는 큰길이다.
영희가 한때 일한 빵집이 보였다.
형과 내가 유리창 밖에서 본 영희는 정말 예뻤다.
아무도 영희가 난장이의 딸이라는 것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내 영희를 찾지 못했다.
부엌에서 고깃국 끓는 냄새가 났다. 고기 굽는 냄새도 났다.
어머니가 상을 내려 행주질을 했다.
동사무소 앞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헐어버린 집들 공터를 가로질러 우리 집을 향해 오고 있었다. 내가 대문을 잠갔다.
어머니가 밥상을 차렸다.
형이 상을 들어다 마루에 놓았다. 형은 나를 걱정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그들이 쇠망치로 머리를 내리친다고 해도 나는 가만히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들었다. 그 옆자리에서 지섭이 수저를 들었다.
어머니는 마루 끝에 안아 국을 마셨다. 형과 나는 밥을 국에 말았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식사를 했다.
영희가 이 시간에 어디서 어떤 식탁을 대하고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우리의 밥상에 우리 선조들 대부터 묶어 흘려보낸 시간들이 올라앉았다.
그것을 잡아 칼날로 눌렀다면 피와 눈물,
그리고 힘없는 웃음 소리와 밭은기침소리가 그 마디마디에서 흘러 떨어졌을 것이다.
대문을 두드리던 사람들이 집을 싸고 돌았다.
그들이 우리의 시멘트담을 쳐부수었다. 먼지 구멍이 뚫리더니 담은 내려앉았다.
먼지가 올랐다. 어머니가 우리들 쪽으로 돌아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아버지가 구운 쇠고기를 형과 나의 밥그릇에 넣어주었다.
그들은 뿌연 시멘트 먼지 저쪽에 서서 우리를 지켜보았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대로 서서 우리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 숭늉을 떠 왔다.
아버지와 지섭이 숭늉을 마셨다. 숭늉을 다 마시자 어머니는 밥상을 들었다.
내가 먼저 내려가 잠갔던 대문을 열었다.
어머니는 밥상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형이 이불과 옷가지를 싼 보따리 메고 뒤따라 나갔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은 무너진 담 저쪽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어머니가 싸놓은 짐을 하나하나 밖으로 끌어냈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 조리․식칼․도마 들을 들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나왔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공구들이 들어 있는 부대를 메고 나왔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 앞에 쇠망치 대신 종이와 볼펜을 든 사나이가 서 있었다.
그가 아버지를 보았다.
어머니는 돌아앉아 무너지는 소리만 들었다.
북쪽 벽을 치자 지붕이 내려앉았다. 지붕이 내려앉을 때 먼지가 올랐다.
뒤로 물러섰던 사람들이 나머지 벽에 달라붙었다. 아주 쉽게 끝났다.
그들은 쇠망치를 놓고 땀을 씻었다.
사나이가 종이에 무언가를 써 넣었다.
지섭이 들고 있던 책을 아버지에게 주었다.
그는 사나이를 향해 걸어갔다.
“방금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지섭이 물었다.
사나이는 몇 초 후에야 지섭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가 말했다.
“삼십 일까지 철거를 하게 돼 있었죠?
시한이 지났어요.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철거 작업을 했습니다.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습니다.” 사나이가 돌아서려고 했다. 지섭이 재빨리 말했다.
“지금 선생이 무슨 일을 지휘했는지 아십니까?
편의상 오백 년이라고 하겠습니다.
천년도 더 될 수 있지만, 방금 선생은 오백 년이 걸려 지은 집을 헐어 버렸습니다.
오 년이 아니라 오백 년입니다.”
“그 오백 년이란 게 도대체 뭡니까?” 사나이가 물었다.
“모르시겠어요?” 지섭이 되물었다.
“그만 비켜요.”
“당신이 덫을 놓았습니다.
당신이 아니라면 당신 상부에서. 백여 세대 이상이 여기다 생활 터전을 잡는 것을 몰랐어요?
덫을 놓은 게 아닙니까?
가서 말해요, 내가 치더라구.”
설마 하고 서 있던 사나이는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지섭의 주먹이 사나이의 안면에 정통으로 들어갔다.
사나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상체를 수그렸다. 두 손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우리가 말릴 사이도 없었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뒤늦게 몰려와 지섭에게 달려들었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치고, 받고, 밟았다. 형과 내가 나설 차례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우리의 팔을 잡아끌었다.
“놔 둬라.” 아버지가 말했다.
“아는 사람이 말하게 해라.”
형과 나는 아버지에게 팔을 잡힌 채 보았다.
일은 간단히 끝났다.
사나이는 일어나고 지섭은 땅에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사람들이 지섭을 일으켜 세웠다.
어머니가 갑자기 몸을 떨면서 울었다.
지섭의 얼굴은 피에 젖었다. 피는 머리에서 얼굴로 흘러내렸다.
그들이 지섭을 끌고 갔다.
그들은 올 때처럼 곧바로 공터를 가로질러 갔다.
동사무소를 지나 큰길 쪽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가 돌아서더니 들고 있던 책을 형에게 주었다.
아버지가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아버지의 작은 그림자가 아버지를 따라갔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잠이 나를 눌러왔다.
나는 부서진 대문 한 짝을 끌어내 그 위에 엎드렸다.
햇살을 등에 느끼며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 식구와 지섭을 제외하고는 세계는 모두 이상했다.
아니다.
아버지와 지섭마저 좀 이상했다.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
(연작단편소설)
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성과힘 - 2000.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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