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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단편글(수필.단편.공모.

조세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3)

by 탄천사랑 2022. 8. 9.

(연작단편소설) 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4단락)



3.
거실에 걸려 있는 부엉이가 네 번을 울었다. 
이렇게 긴 밤을 세워 보기는 처음이다. 
한 밤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나의 열일곱 해는 얼마나 긴 것인가. 
그러나 큰오빠가 셈해 본, 우리 선조 대대로의 세월에 비하면 열일곱 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선조 대대로의 세월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달에 가서 천문대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달에서는 머리카락좌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지섭의 책에 의하면 머리카락좌의 성운은 오십억 광년 저쪽에 있다. 
오십억 광년에 나의 열입곱해를 대보일 수는 없다. 
천년이라고 해야 모래 몇 알이 될지 모른다. 
오십억 광년이라면 나에게는 영원이다. 
나는 영원을 어떻게 느낄 수 없다. 
영원이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다면 나는 죽음을 통해 그것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가 죽음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사막으로 이어지는 지평선이다. 
어둘 녘에 모래 섞인 바람이 분다. 
선 하나로 표시될 그 지평 끝에 내가 알몸으로 서 있다. 
다리를 약간 벌리고 팔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머리도 반쯤 숙여 나의 머리카락이 나의 가슴을 덮었다. 
눈을 감고 열을 세면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바람 부는 회색의 지평선만 남는다. 
이것이 내가 아는 죽음이다. 
이러한 죽음이 영원과 무관할 리가 없다. 

우리의 생활은 회색이다. 
집을 나온 다음에야 나는 밖에서 우리의 집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회색에 감싸인 집과 식구들은 축소된 모습을 나에게 드러냈다. 
식구들은 이마를 맞댄 채 식사하고, 이마를 맞대고 이야기했다. 
작은 목소리라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실제 모습보다도 작게 축소된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다 말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까지 회색이다. 
나는 나 자신의 독립을 꿈꾸고 집을 뛰쳐나온 것이 아니다. 
집을 나온다고 내가 자유로워질 수는 없었다. 
밖에서 나는 우리 집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끔찍했다. 
두 오빠와 마찬가지로 나도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 직전에 읽은 부독본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다. 

‘물, 물, 어디를 보나 물뿐, 
 그러나 한 방울도 마실 수 없다.’ 배를 잃은 늙은 수부가 바다에 떠 있었다. 
 물 가운데서 그는 목말라 했다. 
 밖에서 회색에 싸인 축소된 집과 축소된 식구들을 들여다보고 늙은 수부를 생각했다. 
 그와 똑같았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가 흔들렸으나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만약을 위해 한 번 더 약병의 뚜껑을 열고 수건을 대어 흔들었다. 
그 수건으로 그의 입과 코를 가볍게 누르고 속으로 열을 세었다. 
처음 일이 떠올랐다. 
그는 나이든 사람이 매매 계약서를 쓰는 동안 내 옆에 서 있었다. 
철거 계고장이 나온 날 내가 동사무소 앞으로 달려갔을 때부터 그는 나를 보았다. 
어머니가 소중하게 싸 두었던 것들을 내놓을 때 그는 내 옆을 떠났다. 
돌아서면서 그는 바른손을 내려 나의 가슴 쪽을 살짝 건드렸다. 
어머니가 두 손으로 돈을 받아들고 있었다. 
내가 나오는 것을 아무도 못 보았다. 

나는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나는 방죽가 골목길을 빠져나와 동사무소 앞으로 갔다. 
낮에 그렇게 붐비던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의 승용차는 게시판 옆에 세워져 있었다. 
나는 승용차 앞에 서서 그를 기다렸다. 
그는 그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큰소리로 이야기하며 내려왔다. 
나를 보자 우뚝 섰다. 
나이든 사람이 검은 가방을 넘겨주었다. 
그는 그의 사람들을 돌려보내고 나를 향해 걸어 왔다.

 “나를 기다렸나?”  그가 물었다.

 “왜?”

 “우리 거도 그 안에 있어요?”  내가 검은 가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안에 있겠지.”

 “그걸 따라 왔어요.”

 “어떻게 하려구?”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할 테야? 난 가야 하는데.”

 “그건 우리 집예요.”  겨우 내가 말했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젠 아니지.”  그가 말했다.

 “내가 돈을 주고 샀어.”

그는 열쇠를 꺼내 승용차의 문을 열었다. 
검은 가방을 넣고 그는 차에 올라탔다. 
내가 손바닥으로 유리문을 두드렸다. 
그가 반대쪽 문을 열었다. 
나는 그의 차에 올라탈 때에서야 기타를 들고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기타를 받아서 뒷자리에 놓아주었다. 
그는 동사무소 앞에서 차를 돌려 나갔다. 
나는 자리에 비스듬히 누워 몸을 숨겼다.

 “바로 앉아.”
 
그가 말했다. 
차는 행복동을 떠나 낙원구를 벗어나고 
그는 운전을 하면서 나의 얼굴을 보았다. 
차가 빨간 신호를 받자 나의 머리에서 팬지꽃을 가져다 냄새를 맡았다. 
그는 작은 꽃송이를 왼쪽 윗주머니에 꽂았다.

 “우리 집은 영동이야.”  그가 말했다.

 “조금 가다 내려줄 테니까 집으로 돌아가.”

 “싫어요.”  내가 말했다.

 “돌아갈 집이 없어졌어요.”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이 가방을 강탈해 갈 셈야?”

 “생각 중예요.”

 “좋아.”  그가 말했다.

 “네가 할 일을 주지. 
  말을 잘 들어야 돼. 
  그렇지 않으면 내쫓을 테야. 
  사실은 전부터 너를 봤어, 예뻐서.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든 ‘안 돼요.’ 하는 말을 내 앞에서는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돼. 
  그러면 나는 너에게 내가 고용한 어떤 사람보다 많은 돈을 줄 용의가 있어.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

나로서는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큰오빠는 우리의 집을 짓는 데 천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뜻을 잘 몰랐었다. 
큰오빠의 말에는 물론 과장도 섞여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열일곱 살이 되자 
여자가 가져야 할 가족과 가정에 대한 그 전통적 의무가 어떤 것인가를 은연중 가르치려고 했다. 
순결도 입이 닳게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어머니는 내가 어둠 속에서 남자를 생각하는 것도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내가 집을 나와 한 생활을 알았다면 어머니는 목을 맸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친절하게 해 주었다. 
제일 먼저 옷을 맞추어 주었다. 한꺼번에 여러 벌을 맞추어주었다. 
나는 그를 위해 나를 치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아파트는 영동에 있었다. 사무실도 영동에 있었다. 
나는 그의 사무실에서 주택에 관한 신문 기사를 오려 스크랩북에 옮겨 붙였다. 
날마다 같은 일만 했다. 
주택에 관한 기사가 없을 때는 일반 기사를 읽으며 소일했다. 
그의 광고도 신문에 날마다 났다.  

‘잠실은 우리 모두의 관심입니다. 
 잠실 아파트에 대해 상담하실 분은 지금 곧 전화를 하세요. 
 은아는 당신의 성실한 부동산 안내자입니다. 
-은아부동산.

주택 분양 광고도 났다. 
‘신천호대교, 잠실지구, 강남 1로에 붙은 급속도 발전 지역. 
 꿈이 깃들인 주택을 염가 분양 중이오니 이 기회를 이용하십시오. 
-은아주택.

그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스물아홉에 못 하는 일이 없었다. 
우리 동네에서 사온 아파트 입주권은 오히려 적은 편이었다. 
그는 재개발 지구의 표를 거의 몰아 사들이다시피 했다. 
영동 일대에 잡아 놓은 땅도 많았다.
 
그의 집은 부자였다.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은 작은 훈련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에게도 말했었다. 
그는 아버지 회사로 들어가 더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었다. 
밤에 아파트로 돌아오면 집으로 전화를 하고는 했다. 
그 전화선 저쪽 끝에 그의 아버지가 않아 있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기가 한 일을 보고하고 자문도 구했다. 
그는 거의 차렷 자세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끝나면 그의 고용인들이 정리한 대장을 하나하나 검토했다. 
그는 우리 동네에서 사온 아파트 입주권을 사십오만 원에 팔았다. 
그 이하로는 팔지 않았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나는 미리 사두었다가 일이만 원 정도 더 받고 넘기겠지 했었다. 

그가 거실에 앉아 일을 하는 동안 가정부는 음식을 차려 놓고 그가 식탁 앞에 앉기를 기다렸다. 
그는 어머니가 보내 준 가정부였다. 
그는 그 가정부에게 별도의 돈을 주었다. 
집식구들에게 나에 관한 이를 보고하면 안 된다는 조처였다. 
가정부는 내가 온 다음부터 잠을 나가서 잤다. 
나는 처음 약속대로 ‘안 돼요.’라는 말을 그에게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안 돼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전혀 다른 세상 사람과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는 출생부터 달랐다. 
나의 첫 울음은 비명으로 들렸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나의 첫 호흡이 지옥의 불길처럼 뜨거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모태에서 충분한 영양을 보급받지 못했다. 
그의 출생은 따뜻한 것이었다. 
호흡은 편안하고 달콤한 것이었다. 
성장 기반도 달랐다. 
그에게는 선택할 것이 많았다. 

나랑 두 오빠는 주어지는 것 이외의 것을 가져본 경험이 없다. 
어머니는 주머니가 없는 옷을 우리들에게 입혔다. 
그는 자라면서 더욱 강해졌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반대로 약해졌다. 
그가 나를 원했다. 
그는 원하고 또 원했다. 
나는 밤마다 알몸으로 잠을 잤다. 
나는 밤마다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오빠들은 다른 공장에 취직이 되어 일을 나갔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달을 왕복했다. 
잠이 든 듯 만 듯한 상태에서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는 했다.

 “영희야, 넌 집을 나가 뭘 하고 있는 거냐?”  그러면 나는 대답했다.

 “그의 금고 속에 우리 아파트 입주권이 들어 있어요. 
  그걸 맨 밑으로 내려 놨어요. 
  아직 팔리지 않았어요. 
  팔리기 전에 그걸 꺼내 가지고 갈래요. 
  그의 금고 번호를 알아 놨어요.”

 “누가 너더러 그런 짓을 하라고 했니? 
  빨리 일어나 옷을 입어라.”

 “안 돼요, 엄마.”

 “우린 성남으로 가기로 했다. 빨리 일어나라.”

 “안 돼요.”

 “너의 증조할머니 동생 한 분이 알몸 시체로 수리조합 봇물에 막혀 있었단다. 
  왜 그랬는지 아니? 
  주인 서방과 잠자리를 함께 했기 때문이야. 
  주인 여자가 너의 증조할머니 동생을 사매질해 숨지게 했단다.”

 “엄마, 전 달라요.”

 “같아.”

 “달라요.”
 “같아.”

 “달라요!”

 “넌 이제 그것 때문에 망한다. 
  어린 게 그것을 좋아해.”

 “그래요. 
  전 좋아해요.”

 “망할 것!”

몸부림치다 눈을 떠보면 밤중이었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날 줄 몰랐다. 
나의 몸에서는 그의 정액 냄새가 났다. 
그는 나를 좋아했다. 
그는 어린 나를 좋아했다. 
그는 완전하게 나를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도덕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의 금고에서 우리의 것을 꺼냈다. 
그의 금고 속에는 돈과 권총과 칼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나는 돈과 칼도 꺼냈다. 
나는 달 천문대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했다. 
아버지는 이미 오십억 광년 저쪽에 있는 머리카락좌 성운을 보았는지 모른다. 
오십억 광년이라면 나에게는 영원이다. 
영원에 대해서 나는 별로 할 말이 없다. 
한밤이 나에게 너무나 길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수건을 떼고 약병의 뚜껑을 닫았다. 
나에게 더없이 고마운 약이었다. 

첫날 그 약이 괴로워하는 나의 몸을 마취시켜 잠 속으로 몰아 넣었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처음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나는 손가방을 열어 그 안의 것들을 확인했다. 
모두 가지런히 넣어져 있었다. 
나는 옷을 입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가야 할 것은 이제 없었다. 
집을 나올 때 입었던 옷, 뒷굽이 닳은 신발, 큰오빠가 사준 줄 끊어진 기타는 이미 그 집에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가 반대로 밀었다. 
문은 닫히면서 스스로 잠겼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다. 
나는 아파트 앞에서 택시를 기다려 탔다. 
택시는 불을 켜고 빈 영동 거리를 달렸다.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제3한강교를 건널 때 나는 차를 세웠다. 
문을 열고 나가자 시원한 공기가 몽롱한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난간을 짚고 이제 희뿌연 빛을 반사하며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운전 기사가 따라나와 난간에 기대어 섰다. 
그 자세로 담배를 피우며 나를 보았다. 
날이 밝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누워 난 한겨울 동안 어머니는 취로장에 나가 일했다. 
어머니가 집을 나설 때마다 맞았던 그 새벽을 빛깔을 이제 알았다. 
자갈 채취선에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들려왔다. 
내가 탄 택시는 남산 터널을 빠져 시내를 가로질러 달렸다. 
죄인들은 아직 잠자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 구할 자비는 없었다. 
나는 낙원구에서 내렸다. 
나는 낙원구의 거리와 골목을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다방에 들어가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면서 아버지의 도장이 찍힌 매매 증서를 꺼내 찢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이 일대는 채마밭이었다. 
나는 차를 마시고 채마밭 위에 깔아놓은 포장 도로를 따라 걸었다. 
이제 더 이상 헤맬 필요가 없었다. 
나는 곧장 행복동 동사무소를 향해 갔다. 
동사무소는 아침부터 붐볐다. 
내가 줄 뒤에 가서 서는 것을 건설계원이 힐끗 보았다. 
그는 일을 하다 말고 나를 뚫어지게 보았다.

 “난장이 딸 아냐?”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렸다. 
나는 똑바로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도장 찍는 소리, 표찰 떨어지는 소리, 웃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우리 집 표찰을 꺼내 들었다. 
어머니가 남긴 식칼 자국이 손끝에 느껴졌다. 
나의 차례가 되었다.

 “어쩐 일이지?”  건설계원이 물었다.

 “집이 이사간 건 알아?”

 “네.”  나는 말했다.

 “철거 확인증이 필요해서 왔어요.”

 “철거 확인증은 왜?”  그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입주권을 팔았잖아? 
  팔아버리고 무슨 필요로 그러는 거야?”

 “그 세단차 사나이가 사 갔지.”  옆 사나이가 말했다. 나는 몇 초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아저씨는 어느 편예요?”  내가 말했다.

 “아파트에 들어가야 할 사람은 저희예요.”

 “딴은 그래.”  계원이 옆 사나이를 보았다. 그들은 어깨만 들었다 놓았다.

 “서류를 갖고 있어?”

 “서류는 무슨 서류야? 
  당사자 입주인데. 계고장과 표찰만 있으면 돼. 
  그걸 갖고 있다면 우리가 할 말은 없어.”

 “여기 있어요.”

나는 표찰과 철거 계고장을 내주었다. 
두 사람이 그것을 받아 대장과 비교해 보았다. 
옆 사나이가 표찰을 큰 통에 던져 넣었다. 
그 안에 많은 표찰이 들어 있었다. 
우리 표찰이 가벼운 생철 소리를 내며 그것들 위에 떨어졌다. 
건설계원이 용지를 내주었다. 나는 
거기에 써 넣었다.

아버지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 무허가 건물 발생 년도를 써 넣으며 나는 손을 떨었다.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았다. 
몸이 약해져서 그래, 나는 생각했다. 
큰오빠의 말대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잘 울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잠시 멈추었다가 썼다. 
철거 확인원을 건설계원 앞으로 밀어 놓았다.


번호 458

기존 무허가 건물 철거 확인원 
처리 기간 즉시
신청인 성명  김불이
주민등록번호 123456-123456
생년월일 1929년 3월 11일
주 소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93
본 적  경기도 낙원군 행복면 행복리 276번지
철거된 건물 위치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의 1893
구분 가옥주 ( ○ )           세입자 (    )
철거 일시 197x년 월 일 
무허가건물 발생년도 196x년 5월 8일
용      도  아파트 입주 신청용
위 사실을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97x년 10월 7일
신청인   김  불  이
                    
위 사실을 확인함
         
197x년 10월 7일
낙원구  행복 제1동장
 

 “철거 일시를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계원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어디 가 있었어?”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197×년 10월 1일이라고 써 넣었다.

 “이사간 곳도 모르지?”

 “네.”

 “아무 이야기도 못 들었어?”

나는 다리의 힘까지 빠지는 것을 느끼며 책상 모서리를 짚고 섰다. 
옆 사나이가 건설계원을 쿡 찔렀다. 
계원은 ‘위 사실을 확인함’ 옆에 작은 도장을 찍고 그것을 안쪽 사무장에게 넘겼다. 
나는 줄 밖으로 나서며 이마를 짚었다. 
가벼운 미열이 전신에 일었다. 
안쪽에서 사무장이 일어서며 나를 손짓해 불렀다. 
그는 ‘행복 제1동장’ 위에 직인을 찍었다. 
그것을 내주기 전에 나를 창가로 데리고 갔다. 
사무장은 큰길 건너 포도밭 아랫동네를 가리켰다.

 “위에서 세 번째 집야.”  그가 말했다.

 “그 댁 아주머니를 찾아가. 
  윤신애 아주머니. 
  전부터 아버지를 잘 아시는 분야. 
  하루에도 몇 번씩 여기까지 오셨었어. 
  너를 찾느라구.”

 “저도 전에 뵌 적이 있어요.”  내가 말했다.

 “구청에 들렀다 주택공사로 가야 돼요. 
  일을 끝내고 갈게요.”

 “그 아주머니가 다 말씀해 주실 거다.”  사무장이 말했다.

 “친절하신 아주머니야.”

 “고맙습니다.”

인사를 남기고 밖으로 나왔다. 
사무장과 이야기하는 동안 직원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 나에게 말하고 싶어했다. 
잠시도 그곳에 서 있을 수 없었다.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슈퍼마켓 앞을 지날 때 빵집이 보였다. 
다른 아이들이 내가 했던 일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고개를 돌렸다면 우리 동네를 한눈에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참았다. 
차마 고개를 돌려 볼 수 없었다. 
구청 일은 좀 쉽게 끝났다. 
나는 주택과로 가서 철거 확인증을 내주고 입주 신청을 했다. 
구청 층계를 내려오면서 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몇 년을 밖에서 산 것 같았다.


그가 나를 더욱 약하게 만들었다. 
나는 집을 나온 다음 편한 잠을 이루어 본 적이 없다. 
나는 모태에서뿐만 아니라 출생 후에도 충분한 영양을 보급받지 못했다. 
집을 나온 다음 그와 함께 한 식탁은 늘 풍성했다. 
그 영양은 축적이 되지 않았다. 
내가 받는 정신적 압박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한 그가 거기서 취한 열량을 다시 빼앗아갔다. 
마지막 밤을 꼬박 세운 것도 영향을 주었다. 
아무 데나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빨리 일을 끝내고 신애 아주머니를 찾아가야지. 
그 아주머니가 나를 식구들 옆으로 보내 줄 것이다.
  
나는 새벽에 왔던 길을 되밟아갔다. 
남산 터널을 빠져 제3한강교를 건넜다. 
벌판에 서 있는 그의 아파트가 보였다. 
나는 가방을 열고 안에 들어 있는 그의 칼을 만져 보았다. 
상아로 만든 칼자루 윗부분에 작은 구슬만한 쇠가 붙어 있었다. 
그것을 누르면 칼날이 튀어나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주택공사 입구에서 차를 세웠다. 
많은 사람들이 공사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서둘러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있어도 앞으로 밀려갔다. 
나는 사람들에게 밀려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건물이 햇빛을 반사해 눈이 부셨다. 
잔칫날 같았다. 
몇 군데 차일까지 쳐져 있었다. 
나는 신청 용지를 타는 곳에 가 섰다. 
차례가 되자 직원이 시 접수증을 보자고 했다. 
그 직원이 신청 용지를 내주었다. 
나는 줄 밖으로 나서며 아파트 임대 신청서의 내용을 쭉 읽었다. 
그 임대 조건 중에 
‘신청자와 입주자는 동일인이어야 하며 

 제삼자에게 전대하거나 임차권을 채권의 담보로 제공할 수 없음‘ 이라는 것도 있었다. 
죽어버린 조문이었다. 
그 조문이 든 신청서에 아버지의 이름․주소․주민등록번호를 적어 넣었다. 
다시 손이 떨렸다. 
다리의 힘도 빠져 주저앉을 것 같았다. 
신청서를 써 가지고 다음 줄에 가 섰다. 
내가 선 줄에 재개발 지구의 주민은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앞줄 책상의 직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묻고 있었다.

 “산 거죠?”  알면서 묻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물음에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산 거죠?”  그 직원이 나에게도 물었다.

 “네, 샀어요!”

아프지만 않았다면 나는 대답을 했을 것이다. 
불친절하고 기분 나쁜 사나이였다. 
나는 아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직원은 신청 용지․ 시 접수증․ 주민등록등본을 철박이로 눌렀다. 
그 위에 접수 도장을 쿡 찍었다. 
그것을 받아 돌아서다 말고 나는 몸을 숨겼다. 
줄 반대쪽으로 들어가 건물 바로 앞쪽을 살폈다. 
바로 그가 그의 승용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건강한 몸으로 서 있었다. 
나는 아픈 몸을 숨기고 그가 나가기를 기다렸다. 
그와 마주친다면 나는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는 아직까지 한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인간이 갖는 고통에 대해서도 그는 아는 것이 없다. 
절망에 대해서도 모를 것이다. 

빈 식기들이 맞부딪치는 소리, 
손과 발, 무릎, 그리고 이가 추위에 견디지 못해 맞부딪치는 소리를 그는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가 원할 때마다 알몸으로 그를 받아들이며 삼킨 나의 신음 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벌겋게 달군 쇠로 인간에게 낙인을 찍는 사람들 편이었다. 
나는 가방을 열어 칼을 만져보았다. 
그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건물 안에서 한 사나이가 나왔다. 
그가 사나이를 맞아 악수하고 함께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승용차는 사람들을 옆으로 밀치면서 주택공사 마당에서 나갔다. 
눈물이 또 나의 눈에 내배었다. 
그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나는 사람들을 따라 업무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도 줄을 섰다. 
손으로 이마를 짚고 차례를 기다렸다.

 “어디 아파요?”  나의 차례가 되었을 때 직원이 물었다.

 “괜찮아요.”

나는 말하며 들고 있던 것들을 넘겨주었다. 
직원은 나의 서류를 확인해 받고 

영수증 용지에 신청 번호를 적어주며 경리과에 가서 돈을 내라고 했다. 
한 아주머니가 물을 받아다주었다. 
나는 물을 마셨다. 
경리과 사람들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들은 돈 액수를 확인한 다음 영수증에 도장을 찍어 내주었다.

 “이제 됐어!”  내가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보았다.
 
그들은 알았을까
 
나는 주택공사 건물을 등지고 나왔다. 
거리에 쓰러지지 않고 신애 아주머니네 집까지 갔다. 
아주머니네 집 초인종을 누르고 우리 동네를 보았다. 
우리 집이, 이웃집들이, 온 동네의 집들이 보이지 않았다. 
방죽도 없어지고, 벽돌 공장의 굴뚝도 없어지고, 언덕길도 없어졌다. 
난장이와 난장이의 부인, 난장이의 두 아들, 그리고 난장이의 딸이 살아간 흔적은 거기에 없었다. 
넓은 공터만 있었다. 
신애 아주머니가 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나와 나의 몸을 부축해 안았다.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신애 아주머니는 전에도 다친 아버지를 이렇게 부축해 안아다 눕혔다. 
딸이 물수건을 해오고, 아주머니는 나의 옷을 풀어헤쳤다. 
아주머니는 어머니처럼 나에게 해주었다.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고, 손과 발을 닦아 주고, 푹신한 이불을 내려 덮어 주었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내가 말했다. 나는 겨우 눈을 떴다.

 “자,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아주머니가 말했다.

 “의사 선생님을 모셔 오마. 
  오늘은 아무 얘기도 하지 말자.”

 “괜찮아요.”  내가 말했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잠을 못 잤을 뿐예요. 잠이 와서 그래요.”

 “그럼 잠을 자라. 한잠 푹 자.”

 “빼앗겼던 걸 찾아왔어요.”

 “잘했다!”

 “수속까지 끝냈어요.”

 “잘했어.”

 “이사간 델 아시죠?”

 “암, 알잖구.”

 “사무장님을 만났어요.”  잠이 들 듯 말 듯한 상태에서 나는 말했다.

 “아주머니가 다 말씀해 주실 거라고 했어요.”

 “다른 말은 없었지?”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한잠 자라. 자구 나서 우리 얘기하자.”

 “말씀을 듣기 전엔 못 잘 것 같아요.”

내가 다시 눈을 떴다. 
아주머니의 딸이 마루로 나갔다. 
이내 대문 소리가 들렸다. 
병원으로 의사를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
 
아주머니가 말했다.

 “네가 집을 나가구 식구들이 얼마나 찾았는지 아니? 
  이 방 창문에서도 보이지. 
  어머니가 헐린 집터에 서 계셨었다. 
  너는 둘째치구 이번엔 아버지가 어딜 가셨는지 모르게 됐었단다. 
  성남으로 가야하는데 아버지가 안 계셨어. 
  길게 얘길 해 뭘 하겠니.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벽돌 공장 굴뚝을 허는 날 알았단다. 
  굴뚝 속으로 떨어져 돌아가신 아버지를 철거반 사람들이 발견했어.”

그런데, 나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다친 벌레처럼 모로 누워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두 손으로 가슴을 쳤다. 
헐린 집 앞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아버지는 키가 작았다. 
어머니가 다친 아버지를 업고 골목을 돌아 들어왔다. 
아버지의 몸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내가 큰 소리로 오빠들을 불렀다. 
오빠들이 뛰어나왔다. 
우리들은 마당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까만 쇠공이 머리 위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갔다. 
아버지가 벽돌 공장 굴뚝 위에 서서 손을 들어 보였다. 
어머니가 조각마루 끝에 밥상을 올려 놓았다. 
의사가 대문을 들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가 나의 손을 잡았다. 
아아아아아아아 하는 울음이 느리게 나의 목을 타고 올라왔다.

 “울지 마, 영희야.”  큰오빠가 말했었다.

 “제발 울지 마. 
  누가 듣겠어.”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큰오빠는 화도 안 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그래. 죽여 버릴게.”

 “꼭 죽여.”

 “그래. 꼭.”

 “꼭.”       

 

- 끝 -  (p82~143)
 이 글은 <존재는 눈물 흘린다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입니다.



(연작단편소설)
조세희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성과힘  -  2000.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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