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유라 - 저 살림하는 여자예요」
우리 집 행복 5 계명
꼬박꼬박 주말마다 성당엘 가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집안은 하느님을 믿으며 살고 있는 가톨릭 집안이다.
원래 우리 엄마의 고향이 함경남도 덕원(德源)인데
외가댁은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믿음이 강한 집안이었다고 한다.
6.25 때 피난을 내려와 강원도에 정착,
얼마 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비롯해 외할머니는 돈독한 신앙생활을 하셨는데
강원도에 예배를 볼 수 있는 웬만한 공소가 거의 외할아버지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믿음이 독실하신 분들이었다.
아빠의 집안 또한
강원도에서 일찍부터 천주교를 믿었던 집안으로 외삼촌 중에는 수사가 되신 분들도 있다.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컸고,
그 시절 나와 정임이의 꿈은 당연히 수녀가 되는 것이었다.
결혼을 할 때도 가톨릭이 아니면 안 된다는 우리 집안의 원칙에 따라 내 남편 맹 씨는
나와 교재를 시작하면서부터 교리 공부를 시작,
요셉이라는 세례명을 받고 혼배성사를 하고 나서 결혼식을 올릴 정도로
우리 집은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섬기는 집안이다.
그런 부모님의 영향으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종교적인 계율을 지키는 것이
몸에 배기도 했거니와 성서에 나와 있는 십계명은 거의 지켜나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성당엘 잘 나가지 못하고 았어 안타깝다.
그 대신 우리는 성서가 아닌 우리 집만의 5 계명을 만들어 놓고
현실 속에서나마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하루빨리 성당에 나가 신앙생활에 충실하려고 애쓰고 있다.
성서에 부부간의 사랑이나 자기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 사랑하면서 살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좀 더 세부적인 계율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결혼을 하면서 만든 우리만의 5 계명이다.
내용이 종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믿음으로써 만든 우리 집 5 계명이다.
그 5계명 중 첫 번째가 아이만큼은 남편과 내 손으로 기르자는 것이다.
요즘은 방송국에 나가는 시간에는 내 동생 정임이에게 아이를 맡기지만
준영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내가 일하는 사람을 두지 않는 걸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럴 정도로 우리는 준영이를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다.
아니 맡기기 싫었다는 게 보다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우선 남편과 내 손으로 아이를 기르자는 첫번째 계명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남편과 둘이서 준영이를 키우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드라마 촬영을 하는데 온 식구가 같이 출동을 해야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남의 손에 우리 아이를 맡기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고,
그런 면에선 남편의 도움이 무엇보다도 가장 컸다.
놀이방 '햇살나라'를 운영하면서까지 우리는 우리 손으로 준영이를 키우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이 점에선 아마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를 맡기는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두 번째, 우리 집 행복 5 계명은 언제 어떤 일이고 우리 가족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번째 도 계명은 일도 중요하지만
일보다는 가족 간의 사랑을 주고받고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만들자는 애기이다.
남편도 일이 끝나면 되도록이면 일찍 집으로 들어와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고 있고,
저녁마다 아이들 목욕만큼은 꼭 자기가 시키는 등 항상 가족을 우선적으로 배려한다.
나도 일을 하는 데 있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다거나
아니면 식사를 챙겨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바쁘게는 일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래서 각종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와도
가족들에게 지장을 주는 일이 발생한다면 고사하는 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지금은 라디오 시대>와 <밤의 이야기쇼>만으로도 사실 내 스케줄은 벅찬 편이다.
그런데 가족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내 인기영달을 위해 무엇을 더 하고 싶지는 않다.
세 번째, 우리 집 행복 5 계명은 여행을 자주 다니자이다.
물론 가족끼리 말이다.
결혼 초기에 적어도 일 년에 해외여행은 두 번,
국내는 시간 나는 대로 자주 다니자고 약속을 했었다.
해외여행은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잘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국내 여행만큼은 아무 때나 보따리 싸들고 자주 떠나는 편이다.
올 초만 해도 속초로 느닷없이 떠났다가 그만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미시령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서 할 수 없이 생방송을 펑크 내고 차 안에서 방송을 듣는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계절이나 시간에 관계없이 훌쩍 짐을 챙겨서 자주 조선팔도로 떠나곤 한다.
특히 맛있는 것을 밝히는 식도락 여행을 주로 하는 우리 식구들이라
우리는 속초에 가면 속초 중앙시장에 있는 '감나무집'에서 감자 옹심이를 먹고,
제주도에 가면 생선구이를 특별히 잘하는
탑동에 있는 '유리네 식당'에 들려 생선구이는 물론 회까지 먹고
('진미식당'은 특히 제대로 된 다금바리 회를 즐길 수 있다).
아무튼 조선팔도에 맛있는 집이 있으면 그곳을 목적지로 정해 떠나곤 한다.
나는 어린 시절 외에는 많은 곳을 다녀보지 못해서
결혼하면서 여행을 많이 다녔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이 있었다.
다행히 남편도 선뜻 그 점에 동의를 해서 이 세 번째 계명은 쉽게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 집 행복 5 계명 중 네번쨰는 상대방에 대해 최선을 다하자이다.
좀 추상적이긴 하지만 항상 나보다는 남편을,
남편은 자신보다는 나를 먼저 배려해 주는 그런 예의를 갖추자는 뜻에서 비롯된 계명이다.
우리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누구보다도 먼저 서로에게 의논을 한다.
어떤 때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통화를 한다.
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 부부는 웬만해서는 곡해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그 열두 번도 넘는 통화 속에 문제가 있으면 풀고 또 충분히 상의하기 때문이다.
혹 혼자 결정한 일이 있더라도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지 물어보고 지장이 없는 범위,
또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부부 사이에 하루 열두 번이 아니라 스무 번이라도 전화통을 붙잡고 씨름해도 괜찮을 듯싶다.
마지막 5계명 중 다섯 번째는
아직까지는 지켜지고 있지만 앞으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그런 부분이기도 하다.
바로 영원히 사랑하는 마음을 변치 말자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 약속대로 우리는 정말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생일 때 남편으로부터 너무나 큰 꽃다발과 사랑의 카드를 선물로 받았다.
진주 목걸이까지 덤으로 받았으니 나로서는 최상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그날 나는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고
선물로 받은 진주 목걸이를 서슴없이 목에 걸치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방송국에 가려고 이미 입은 옷과 진주 목걸이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눈데도
방송 도중 나는 내내 행복한 웃음을 실실 흘렸을 정도였다.
나도 아직까지는 연애할 때처럼 그런 마음이고 남편도 나와 똑같은 마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속에 안 들어가 봤으니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난 지금 행복하다.
※ 이 글은 <저 살림하는 여자예요>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최유라 - 저 살림하는 여자예요
제삼기획 - 1997.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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