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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시지 - 心象 / 시인의 명상(김지윤 시인)

by 탄천사랑 2007. 4. 22.

· 「월간시지-심상 /  2007년 3월호」 

 

 

나는 가끔 가벼워진다.

 


옥탑에 기저귀들이 널려있다. 바람이 슬쩍 스치고 지나가는 몸짓에도
몸살을 한다. 희다못해 푸르스름한 가뿐한 몸매를 이리저리 흔들어댄다.
조금만 더 세게 건드리면 아예 빨래줄을 박차고 날아오를 것만 같다.
지상의 오줌 똥으로 몸 더럽히던 기억 버리고 흰 날개 퍼득이며
비상할 것만 같다. 기저귀들이 안달을 한다. 날이 억세게 좋은 날
그들을 위해 창공이 열려있는 것만 같은 날
희다못해 푸른 옥양목 흰 천들이 하늘을 향해 온몸이 달아오른다.
아직은 남아있는 제 몸의 물기 그 조금의 무게만 버리면 
지상의 오욕은 모두 잊어버리고 하늘의 넓은 품을 향해 솟아오를 것이다.
이런 날 옥탑에 널린 기저귀들은 살아있다.
날개를 퍼득이며 힘찬 비상을 준비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날이 좋은 날 옥탑에 오르면 하늘로 날아오르는 
세상에서 가장 희고 가벼운 새를 볼 수 있다 

 

 

 

시인의 명상
'장자'의 내편 대종사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물고기들이 메마른 땅에 모이면 서로 물기를 뿜어주고 거품으로 적셔주며 서로를 위해 주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만 못하다'

또 외편의 달생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큰 목수로 유명한 공수라는 사람은 
 그냥 줄을 그어도 그림쇠나 곱자를 댄 것보다 낫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손가락을 사물과 더불어 움직여서 따로 마음으로 해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정신이 통일되어 막히는 바가 없었다.
 발을 잊게 되는 것은 신발이 잘 맞을 때이고, 허리를 잊게 되는 것은 허리띠가 잘 맞을 때이다.
 또 시비를 잊게 되는 것은 마음이 대상과 편안히 맞을 때이다.
 안에 있는 마음이 변하지 않아서 밖의 사물을 좇는 일이 없음은 
 사물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대상에 알맞게 적응할 수 있어서 무엇에나 알맞지 않음이 없는 것은 
 적응하겠다는 생각조차 잊은 진정한 알맞음이다.'

여기서 나는 대상을 관찰하고 가공하는 예술가의 자세를 생각하게 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리분별을 끊고 대상과 하나가 될 수 있어야,
또 나를 얽매어 놓는 수많은 관념이나 의식에서 
진정으로 놓여날 수 있어야 최상의 작품을 얻어낼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나를 버리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상을 보는 것이 창작의 기본 자세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나 고정화되고 습관화된 나의 눈은 
늘 대상에 내 나름대로의 편견이나 잣대를 들이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시를 쓸 때 어디선가 배우고 주워들은 것을 
총동원하여 끄집어 내놓으려는 오래된 습관을 쉬이 버리지 못한다. 

고정관념의 색안경 너머로 보이는 대상은 극히 제한적이고 편협한 범주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존재하는 많은 것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읽어내려면
지금까지의 상식과 지식을 고집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과감하게 버리고
대상에 접근해야 함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본다.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의 군상들은 우주적 실재에 닿아있음을 가슴깊이 자각하면서 ...  (p142)


월간시지-심상 2007년 3월호 

[t-07.04.22.  210419-173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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