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오빠는 집 밑에 기어 들어가서는 노란색 대나무 막대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이 정도 길이라면 인도에서 닿지 않을까?"
"그 집에 가서 손을 댈 만큼 용감한 사람이라면 낚시대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텐데.
그냥 앞문으로 가서 노크를 하는게 어때?" 내가 말하자 도리어 오빠가 큰소리를 쳤다.
" 이- 이건- 다르단 말이야.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어?"
딜이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그것을 오빠에게 주었다.
우리 셋은 조심스럽게 그 낡은 집을 향해 걸어갔다.
딜은 마당 앞 모퉁이에 있는 전봇대에 남아있었고, 오빠랑 나는 그 집 옆과 평행으로 나 있는 인도 아래로 다가갔다.
나는 오빠 뒷쪽으로 걸어가서는 커브 길을 볼 수 있는 곳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림자도 안 보인단 말이야." 내가 말했다.
오빠는 인도 위쪽으로 딜을 쳐다보았고, 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는 쪽지를 낚시대 끝에 매달고는 마당을 가로질러 그가 고른 창문을 향해 낚시대를 밀었다.
낚시대는 길이가 몇 인치나 모자랐고, 오빠는 함닿는 데까지 허리를 구부렸다.
오빠가 너무 오랫동안 찌르는 동작을 하는 걸 보고는 나는 망보던 자리를 포기하고 오빠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낚시대에서 쪽지를 떨어뜨릴 수가 없어.
그걸 떨어뜨린다 해도 제자리에 있게 할 수 없고,
스카웃!. 길 아래쪽으로 어서 돌아가."
나는 자리로 돌아와서는 커브 길을 돌아 텅 빈 길 쪽을 바라다보았다.
가끔 오빠를 돌아보기도 했다.
오빠는 참을성 있게 쪽지를 창문턱에 올려 놓으려고 애썼다.
그 쪽지가 땅바닥에 떨어지면 오빠는 그것을 다시 치켜올렸다.
마침내 나는 부 래들리가 그 쪽지를 받는다 해도 그걸 읽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길거리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종소리가 들렸다.
어깨를 움츠린 채 나는 피묻은 이빨을 드러낸 부 래들리의 모습이 보이려니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보이는 것이라곤 아빠의 얼굴에 대고 딜이 있는 힘을 다해 종을 울려대는 모습뿐이었다.
오빠의 얼굴이 너무 끔찍하여 나는 차마 그것을 보라고 말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오빠는 인도 위에 낚시대를 질질 끌며 터벅터벅 걸어왔다.
"종을 그만 울리지 못할까." 아빠가 말씀하셨다.
딜은 종의 추를 잡았다.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나는 딜이 종을 다시 울렸으면 하고 바랬다.
아빠는 모자를 뒤통수 쪽으로 젖히고는 두 손을 엉덩이 위에 올려놓으셨다.
"젬,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 아빠가 물으셨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아빠."
"그러지 말고 어서 말해봐."
"저는 - 우리는 래들리 씨에게 뭔가를 전해주려고 하고 있었어요."
"전해주려고 하던 게 무엇이지?"
"그저 편지에요."
"어디 보자." 오빠는 더러운 종이 조각 하나를 내밀었다. 아빠는 그것을 받아 읽으려고 하셨다.
"왜 래들리 씨를 나오게 하려는 거지?"
"아저씨가 우리를 즐겁게 해줄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딜이 대답했다.
아빠가 쳐다보자 딜은 입을 꼭 다물었다.
아빠가 오빠에게 말했다.
"젬, 난 지금 너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 그것도 딱 한 번만 말이다.
그 아저씨를 괴롭히지 말아라.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래들리씨가 무엇을 하건 그건 아저씨가 알아서 할 일이다.
아저씨가 밖에 나오고 싶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자기 집 안에 머물러 있고 싶다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관심을 피해 집 안에 있을 권리가 있다.
여기에서 '아이들'이란 바로 우리들을 완곡하게 지칭하는 표현이다.
우리가 밤에 방에 앉아 있는데 아빠가 노크도 하지 않고 불쑥 들어온다면 우리가 좋아할까?
결과적으로 우리는 지금 그와 똑같은 일을 래들리 씨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래들리 씨의 행동은 어쩌면 우리에게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인간과 공손하게 연락하는 방법은 옆 창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앞문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가?
마지막으로 그 집에 초대받기 전에는 절대로 그 집 근처에 얼씬거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빠가 전에 보신 것 같은 바보스러운 놀이를 해서는 안 되고,
이 거리 이 읍내에서는 어느 누구도 놀려대서는 안 된다.
"우린 아저씨를 놀리지 않았어요.
비웃지도 않았고요. 우린 다만---" 오빠가 말했다.
"바로 그랬어.
아니란 말이냐?"
"아저씨를 놀려댔다고요?"
"아니, 이웃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아저씨가 살아온 삶을 만천하에 드러낸 거야."
오빠는 조금 으스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정말이예요!" 아빠는 멋없이 웃으셨다.
"네가 방금 말했잖아.
지금 당장 그 어리석은 짓거리를 그만두거라.
너희 모두 말이다." 오빠는 입을 벌리고 아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넌 변호사가 되고 싶겠지.
아니냐?" 아빠는 마치 일직선으로 만들려는 듯이 입을 의심스럽게 꽉 다물었다.
오빠는 발뺌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소용없다고 판단하고 가만히 있었다.
아빠가 그 날 아침 잊어버리고 사무실에 같고 가지 않았던 서류를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가자,
오빠는 마침내 변호사들의 가장 오래된 꾀에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앞 현관에서 적당히 떨어져 기다리고 서서 아빠가 집을 떠나 읍내로 걸어가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만한 곳에 이르자, 오빠는 아빠를 향해 소리쳤다.
"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이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단 말씀이야!!" (p97)
※ 이 글은 <앵무새 죽이기>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하퍼 리 - 앵무새 죽이기
역자 - 김욱동
문예출판사 - 2008. 0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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