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외 - 「퇴사준비생의 도쿄(간편식의 재발견)」
'미슐랭스타 셰프의 음식을 절반 이하의 가격에'
일본의 인기 레스토랑인 '오레노' 식당 시리즈의 콘셉트입니다.
오레노는 고급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내놓기 위해 회전율에 집중했습니다.
테이블 좌석을 매일 평균 2.5회 이상 채을 수 있다면,
원가율이 68%까지 높아져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레노는 서서 먹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레스토랑에 더 많은 손님을 받고, 식사시간을 단축시키려는 목적입니다.
박리다매로 수익을 내겠다는 뜻입니다.
손님들이 줄을 섰습니다.
서서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슐랭 스타 셰프가 만든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먹기 위해서입니다.
줄을 서고, 서서 먹는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미슐랭 스타 셰프의 인기는 뜨거웠습니다.
16평의 신바시 본점 매장에서 월매출 1910만 엔(약 2억 1000만 원)을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미슐랭 스타 셰프를 전면에 내세운 오레노 식당의 핵심 성공요인은
시간이 지나면서 리스크 요인으로 바뀌었습니다.
2011년 첫 출점 후 승승장구하던 오레노의 성장에 제동이 걸립니다.
30개 남짓한 매장 중 10%에 가까운 3개의 지점을 폐점한 것입니다.
무리한 확장과 매장 구성의 변형 때문이라고만 보기엔,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를 지키던 본점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더 큰 이유는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잇단 이탈에 있습니다.
상징성을 가진 본점의 문을 닫게 할 만큼 마스터 셰프들의 영향력은 막강합니다.
오레노의 성공에 득이된 만큼 독이 될 가능성도 큽니다.
오레노 사례처럼 요식업에서 요리사는 성공 요인이기도 하지만 위험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요리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면서 요식업을 할 수는 없을까요?
감각적인 선술집을 만든 ‘미스터 칸소’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켄을 파는 것으로 충분한 ‘미스터 칸소’
미스터 칸소는 150개 이상의 통조림을 안주 삼아 먹을 수 있는 바입니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인기 있는 통조림부터 물개, 말고기, 식용 곤충 등의 특이한 통조림까지
전 세계에서 공수한 통조림 셀렉션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격대는 200엔에서 2000엔까지 다양합니다.
술도 350엔부터 시작하여, 맥주, 위스키등 컵에 따라 내기만 하면 되는 종류가 주를 이룹니다.
미스터 칸소는 2002년 오사카 미나미 호리 지역 다리 밑 쓸모없는 공간을 활용해 첫 매장을 열었습니다.
방치된 공간에서 조리가 필요없는 통조림을 안주 삼아 만든 선술집,
15년여전에 현재의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의 개념을
오프라인 매장에 적용한 선구안적 지혜가 돋보입니다.
이름도 미스터 칸소로 지어 간소함을 강조합니다.
이름, 시작, 콘셉트가 모두 간소하지만 미스터 칸소의 간소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투자, 운영, 고객까지 간소함으로 이어집니다.
'칸소' 에도 깊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 1 투자가 간소하다.
매장의 크기와 위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고정비인 임대료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스터 칸소는 매장의 크기를 최소화했습니다. 8평만 확보되면 개점할 수 있습니다.
통조림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제공하기에 주방이 필요 없고,
통조림을 진열 매대에 쌓아두고 판매하기에 별도의 보관 장소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손님을 받을 공간만 있으면 되는 셈입니다.
또한 동네 손님들을 타깃으로 하기에 비교적 외진 공간에 매장을 열 수 있어 임대료도 간소합니다.
매장을 열 때 임대료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는 인테리어 등의 초기 투자입니다.
미스터 칸소는 통조림과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지향하기 때문에 초기 투자에 대한 부담도 적습니다.
테이블도 드럼통으로 구성하고, 판매를 위한 포스터 외에는 별다른 인테리어가 없다.
300만 엔(약 3.300만 원)으로 매장 오픈이 가능할 만큼 초기 투자비도 간소합니다.
# 2 운영이 간소하다.
미스터 칸소를 운영하기 위해서 주방장을 고용할 필요가 없다.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길어 식재료를 버리는 일이 없고 식재료 관리에 대한 노하우도 필요 없다.
게다가 운영시간은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한 사람이 교대 없이 일 8시간 근무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최소한의 능력과 최소의 인원으로 요식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직원에 대한 의존도가 간소해집니다.
그럼에도 난이도가 발생할 수 있는 영역이 재고 관리입니다.
미스터 칸소에선 150~350 종류에 이르는 적지 않은 수의 통조림을 취급합니다.
좁은 공간의 매대에 쌓아두고 판매하다 보니 일일이 가격을 표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스터 칸소에서는 통조림을 가격에 따라 10개의 등급으로 구분해 색깔을 정하고,
통조림의 바닥에 색깔별 스티커를 붙입니다.
손님들이 통조림을 들고 고르다가 다른 곳에 두어도, 쌓아둔 통조림이 무너져도 문제가 없습니다.
통조림 바닥에 붙어 있는 스티커 색깔만 보면 가격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고 관리도 간소함를 추구합니다.
# 3 고객이 간소하다
'초이노미' 일본에서 유행하는 현상입니다.
초이노미는 '잠깐'이라는 뜻을 가진 속어 '초이'와 '마시다'를 의미하는 '노미'의 합성어로
'가볍게 한잔한다'는 뜻이다.
통조림을 안주로, 불편한 좌석에서 장시간 머물며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긴 어렵습니다.
퇴근길에 가볍게 즐기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 미스터 칸소입니다.
고객이 간소한 덕분입니다.
간편식에 서비스 더하기
미스터 칸쇼는 요리사에 의존하지 않는 요식업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하지만 미스터 칸쇼는 식당이 아니라 선술집이라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요리사가 필요한 업종이긴 해도 요리가 핵심인 영역은 이닙니다.
그렇다면 요리가 없으면 성립이 안 되는 식당의 경우도 요리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까요?
도쿄에서 발견한 매장들을 응용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도쿄 지유가오카에는 레토르트(즉석식품) 전문점 '니시키야'가 있습니다.
편의점, 패밀리 레스토랑,
도시락 가게 등에 레토르트 제품을 남품하던 업체로 2013년에 자체 브랜드 매장을 오픈한 것이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 재료 중심 또는 일본, 인도, 태국 등 지역 중심으로 제품을 진열합니다.
매장에 들어서면 다양하면서도 감각적인 레토르트 제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레토르트가 식탁에 올라오는 게 멋져 보이고,
레토르트를 먹었다고 자랑할 수 있는 미래를 지향하는 니시키야는 브런치 카페 등과 제휴하여
레토르트를 공급하기도 합니다.
하청업체가 아니라 당당하게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니시키야의 제휴 모델에서 요리사 없는 식당의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레토르트는 혼자서도 조리해 먹기 편하게 만들어졌기에 서비스가 필요 없는 제품이지만,
여기에 서비스를 더하면 식당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캔을 따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미스터 칸소
아직 미스터 칸소의 '간소'에 대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미스터 칸소는 투자, 운영, 고객이 간소한 만큼 운영하기 쉽고 리스크가 크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큰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사업일 수 있습니다.
미스터 칸소가 그걸 모를 리 없습니다.
그래서 미스터 칸소는 통조림에 대한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2011년에 처음으로 자체 브랜드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계란말이 통조림을 시작으로 지역의 명물 맛집과 공동 개발하여 다코야키,
빠에야 등의 통조림을 지속저으로 출시하고 있습니다.
편의점, 마트 등과 마찬가지로 자체 브랜드 제품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향입니다.
하지만 자체 브랜드 제품을 미스터 칸소 매장에서만 판매하지 않는 점이 다릅니다.
마트나 백화점, 온라인에서도 판매합니다.
매장이라는 틀을 깨고 나가 간소함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입니다.
자체 브랜드 제품을 강화하는 것은 성장을 추구하면서도 간소함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간소한 전략인 셈입니다.
간소하니까 미스터 칸소입니다. (p46)
※ 이 글은 <퇴사준비생의 도쿄>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이동진. 최경희. 김주은. 민세훈. - 퇴사준비생의 도쿄(여행에서 찾은 비즈니스 인사이트)
더퀘스트 - 2017.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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