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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 3/1별과 디펜스 (로잔에서 조윤석 올림)

by 탄천사랑 2022. 6. 30.

마종기. 루시드 폴 -  아주 사적인 긴 만남(양장본 HardCover)」

 



2008. 06. 06. fri. pm. 23:01

part - 3 별과 디펜스
음악의 길로 갈 것인지, 음악과 학문을 병행할 것인지, 
그리고 귀국할 것인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그곳에서 당분간 사는 것이 좋은지 고민을 하게 되겠군요.
그런 문제에 나는 별로 도움을 줄 만한 실력이나 혜안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거기다 나 자신이 비슷한 고민으로 젊은 시절 오랫동안 잠 못 이룬 경험도 있지요.


시간이 물 흐르듯 지나갔습니다.  
벌써 5월이 지나 6월이네요.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메일 드린 게 올해 초였는데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논문을 쓰고, 
특허 준비하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그보다 실은 속 깊은 이야기를 선생님께 전하기에 
뭔가 마음이 편하지 못한 구석이 있어서 편지를 드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논문심사와 투고가 여러 개 겹친데다, 
시간이 촉박하게 심사날짜가 정해졌고,
또 마저 마무리할 실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요.
게다가 제가 지도하게 된 석사학생의 논문도 저와 비슷한 시기에 맞물려 
마감해야 하는 상황이라 글 한 줄 남기지도 못할 만큼 바쁘게 보냈습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정신적인 여유가 너무나 없었지요.
하지만 제 무례함과 무소식을 너그롭게 이해해 주셔서 
뭐라고 감사하다는 말씀과 송구스런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보니 선생님께서 브라질에 다녀오신 이후 그 이야기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군요.
파벨라를 다니셨다니 놀랍기도 합니다.  
매우 위험한 곳이라고 들었어요.
뉴스를 보니 요즘엔 그 파벨라를 여행하는 상품이 있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도 
돈벌이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 씁쓸하다고 말하던 어느 브라질 친구가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 어렵고 가난한 땅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겐 그곳에 대한 남다른 감정이 있겠지요.

저도 잠시지만 한때 광안리 바닷가에 즐비하던 한국식 파벨라에서 지낸 적이 있었지요.
지금은 전부 개발이 되어서 근사한 건물과 호텔, 레스토랑, 카페들이 늘어서 있지만
그때는 정말 그곳에 가난한 어부들과 해녀들이 주로 살았지요.


저는 5월 말에 개별 논문심사를 끝내고 
6월 말이나 7월 초에 있을 공개 논문심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개별 논문심사는 심사위원과 지도교수, 
학생이 심사를 받는 진짜 심사이고,
공개 논문심사는 일종의 축하 의식이라고 할까요.
두 번의 논문심사가 끝나면 학위 과정을 모두 마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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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말에 개별 논문심사가 끝난 이후에는 여유 있게 휴식을 취했습니다.
친구 집에 가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인터넷으로 프로야구 중계도 보았어요.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 실험도 도와주고, 
스웨덴에 있는 친구 실험도 해주고, 
저와 같이 일하는 석사학생 논문도 봐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끝날때까지 이렇게만 있을 수는 없지요.
한 4. 5년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했으니 
한 달 정도 이렇게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투고했다가 수정 요청을 받은 논문도 살펴보고, 
새로 투고할 논문도 마무리해야 할 것 같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곳을 떠나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계속 연구생활을 할 것인지,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될지, 
아니면 음악만 하게 될지를 정해야 할 시기입니다.
아주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천천히, 
그간의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평안하십시오.

- 로잔에서 조윤석 올림.

 

※ 이 글은 <아주 사적인 긴 만남>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마종기, 루시드 폴 -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웅진지식하우스 - 2009. 0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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