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J 딜로렌조 - 「링컨의 진실」
옮긴이의 말
언젠가 스누피 만화에서 본 에피소드 한 토막.
라이너스가 장작을 한 아름 옮기고 있는데, 누나인 루시가 거짓말로 장난을 친다.
'나무에 거미가 붙어 있다!"
라이너스는 깜짝 놀라 장작을 팽개친다.
루시가 동생을 놀리며 말한다.
"에이브러햄 링컨도 거미를 무서워했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라이너스가 바닥에 흩어진 장작을 주워 모으며 맞장구를 친다.
"에이브러햄 링컨도 누나가 있었는지 모르겠어."
미국인들에게 링컨은 단지 역사적 영웅이 아니라 우리로 말하면 이순신 같은 '성웅'이다.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연설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링컨은 반인륜적인 노예제를 페지했고, 분열의 위기에 시달리던 조국을 통일로 엮어냈으며,
미국이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번영을 거쳐 오늘날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된 초석을 놓았다.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또 연설로 봐도 성웅에 어울리는 업적이 아닣 수 없다.
더구나 그가 정적의 암살에 희생된 것은 성웅 이미지의 백미다.
이순신도 왜병의 흉탄에 맞아 쓰러지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미국의 성웅이며 전세계 어린이들이 읽는 위인전에 단골로 등장하는 링컨을
이 책의 지은이는 혹독하게 비판한다.
한 술 더 떠서 지은이는 대담하게도 책의 제목을 'The Real Lincoln',
우리 말로 풀면 '진짜 링컨'이라고 붙이고 있다.
어떻게 그런 견해가 가능할까?
지은이의 논지는 의외로 간단하다.
링컨의 목적은 애초부터 노예 해방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북부의 정치적 논리인 연방제의 전일적인 지배를 추구했고,
역시 북부의 경제적 논리인 보호관세와(세금으로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국내 발전의 정책을 일관적으로 추진했다.
노예제는 그러한 북부의 정치-경제 노선에 반대하는 남부의 경제적 근간이었으므로
링컨은 노예 해방을 통해 남부에게 경제적 타격을 가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기에 미국에서는
노예 해방이라는 인도주의적 명제가 피비린내 나는 대규모의 내전을 동반했던 것이다.
19세기에는 세계 각국에서 노예 해방이 이루어졌지만
미국처럼 유헐과 폭력으로 얼룩진 '해방'은 어디에서도 없었다.
지은이가 성웅을 협잡꾼으로 전략시키는 전략이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알찬 문헌을 자료로 이용한 데 있다.
지은이는 링컨에 관한 학자들의 숱한 문헌은 참고로만 활용하고,
링컨의 연설문(정치 활동 초기부터 대통령 시절까지) 그가 군 지휘관들에게 보낸 명령과 서한,
당시 공화당의 정책 문서를 근거로 삼아 링컹의 진면모를 끌어낸다.
실제로 링컨은 '도망친 노예를 잡아들릴 어떻한 압법 조차러도 해줄 것' 이라며
'노예 해방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표리부동한 언행을 보였다.
만약 그가 자신을 통렬하게 비판한 이 책을 본다면 <난중일기>처럼 구국의 정신으로 일관된 흔적만을
남기지 않은 것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게 마련아라지만 링컨이 부각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전쟁에서 패배한
남부 측의 입장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링컨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은이는 당시 남부가 미국의 건국 이념을 더 충실하게 계승할 뿐 아니라
도덕적-정치적-경제적으로 올바른 입장을 취했다는 견해를 조심스럽게 타진하고 있다.
링컨의 경제적 모순 역시 마찬가지로 시대착오적이다.
그와 공화당은 헨리클레이가 주장했던 미국식 제도라는 이름 아래 보호관세를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중상주의 전략을 추구했다.
유럽의 근대사에서 보듯이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적 국가(절대왕정)와 중상주의 경제은 찰떡궁합이다.
다만 유럽의 경우 절대왕정과 중상주의는 곧이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이어졌으나
미국은 오히려 링컨 이후 정치적 중앙집권화와 걍제적 중상주의화가 더욱 진척되었다.
어쩌면 링컨과 공화당은 신생국인 미국을 유럽 역사가 밟아간 궤적으로 이끌러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미국의 성웅을 이렇께까지 몰아붙이는 지은이의 뚝심은 대단하다.
(그만큼 링컨의 허구적인 이미지가 논리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울러 공인된 국가적 영웅을 철저히 비판할 수 있는 지적인 풍토 역시
우리에게는 아직 낮설고도 부러운 환경이다.
이 책의 핵심 내용 이외에 한 가지 흥미를 더한다면 바로 그 점이겠다. (p318)
2003년 4월
남경태.
※ 이 글은 <링컨의 진실>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토머스 J 딜로렌조 - 링컨의 진실
역자 - 남경태
사회평론 - 2003. 0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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