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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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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청춘불패/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대에게

by 탄천사랑 2022. 2. 5.

(에세이)  이외수 -  「청춘불패

 

 

그대여,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무릇 희망이 없는 이가 어디 있으랴.
지금은 새로운 세기의 눈부신 아침,

비롯 인정머리 한 푼 없는 주인에게 아무 잘못도 없이 쫓겨난 잡종개라 할지라도

희망을 간직하고 희망을 기대하고 희망을 노래할 자격이 있나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도 희망은 있고 죽어가는 모든 것들에게도 희망은 있다.

 

부처님은 한마디로 인생을 고(苦)라고 일축하셨다.
판쓸이를 한 놈이나 광피박을 쓴 놈이나 인생은 고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은 누구에게나 비포장도로다.
때로는 자갈밭이고 때로는 가시밭이다.
하지만 때로는 자갈밭이고 때로는 가시밭인 인생길을

그대처럼 혼자서 맨발로 피 흘리면서 걸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쒸, 최고급 승용차에 아름답고 관능적인 여자를 끼고 킬킬거리면서 내달리는 사람도 있다.

 

그대는 지금 어떤 인생을 꿈꾸고 있는가.
맨발로 피 흘리면서 자갈밭 가시밭을 걸어가고 있는 그대 곁으로

최고급 승용차가 킬킬거리면서 지나갈 때,

열받은 그대 머리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겠지.
지척이 안 보일 지경으로 뭉게뭉게 먼지도 치솟아오르겠지.

 

.... 불로소득을 꿈꾸는 사람들이 흔히 희망이라고 굳게 믿는 기대치들은 절대로 희망이 아니다.
그것들의 명백한 실체는 욕망이다.
지나간 세기들을 돌이켜보라.
전쟁과 기아, 모략과 음모, 폭력과 질병, 협잡과 증오, 

이것들은 욕망을 희망으로 착각하는 인간들의 전유물이다.

 

그대여.

명심하고 또 명심하라.
인간으로서 간직할 수 있는 최상의 희망은 바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희망이다.

 

.... 날개가 있는 곤충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날개가 없는 곤충들은 바닥을 기어다닌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날개를 가진 곤충들은 먹이를 축적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욕망을 탈피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짜를 바라지 않는다.
식물들의 꽃가루를 날라다 주거나 씨앗을 퍼뜨려주는 공생행위로 먹이에 대한 고마움을 보상한다.

 

하지만 날개가 없는 곤충들을 보라.
날개가 없는 곤충들은 바닥을 비루하게 기어 다니면서 얻어먹거나 뺏어먹거나 훔쳐먹는다.
그래서 우리는 날개가 없는 곤충들을 싸잡아 벌레라고 부른다.

 

비유컨대,
인간도 날개가 있는 인간과 날개가 없는 인간이 있다.
나는 앞에서 누에의 한살이를 보여주었다.

 

그대여 숙고해 보라.
그대가 알에서 희망을 멈추어버린다면,
그대가 애벌레에서 희망을 멈추어버린다면,
그대가 넉잠자기에서 희망을 멈추어버린다면,
그대가 번데기에서 희망을 멈추어버린다면 어찌 날개를 가질 수 있으랴.
희망을 멈추지 않는 자에게만 희망은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여.
그대가 만약 날개를 가지고 싶다면 누에의 한살이 중에서 특히 고치의 부분을 소중히 생각하라.
비록 그대에게 절대 고독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결코 도망치거나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무릇 희망이 없는 이가 어디 있으랴.
지금은 새로운 세기의 눈부신 아침,

인간으로서 간직할 수 있는 최상의 희망은 바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희망이다.
희망을 간직하자
날개를 꿈꾸자

 

길이 있어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기는 것이다.  (p147)
※ 이 글은 <청춘불패>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이외수 - 청춘불패
그림 - 정태련
해냄출판사 - 2009. 0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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