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내가만난글/비문학(역사.사회.문학.

힐러리 로댐 클린턴-살아 있는 역사/인생 대학

by 탄천사랑 2022. 1. 5.

(자서전) 힐러리 로댐 클린턴 - 「살아 있는 역사 1 - (비매품)」

 

 

"어머니한테 배우지 못한 것은 세상으로부터 배워라"
이 말은 언젠가 케냐의 마사이 부족에게 들은 격연이다.
1960년 가을에 이미 나의 세계는 넓어지고 있었고, 정치 의식도 발달하고 있었다.

 

.... 나는 내 일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갈 작정이었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제한되어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부모님도 나를 어떤 틀에 집어넣어 특정한 범주나 직업에 어울리는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뛰어난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격려해주었을 뿐이다.
이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분들은 나에게

“계집애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어”라든가 “계집애는 저런 일을 해서는 안 돼”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1950년대에 성년이 된 작가 제인 오레일리는 1972년에 <미즈> 잡지에 기고한 유명한 에세이에서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들을 털어놓았다.
그 깨달음의 순간을 그녀는 (섬광을 터뜨리는 카메라처럼) '찰칵!'으로 표현했다.

 

나도 그 '찰각!'을 느낀 순간이 몇번 있었다.
나는 언제나 탐험과 우주 여행에 매혹되어 있었는데,
아마 아버지가 우주개발 경쟁에서 미국이 소련에 뒤떨어지고 있음을 걱정한 것도 그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약속에 자극을 받아,
우주비행사 훈련에 지원하고 싶다는 편지를 NASA(미국 항공우주국)에 보냈다.
그러자 답장이 왔는데, 여자는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노력과 결심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에 부닥친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나는 분개했다.
하기야 내 형편없는 시력과 평범한 신체 능력으로는 어차피 우주비행사 자격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여자를 싸잡아서 일률적으로 거부한 것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고,
나중에 내가 모든 종류의 차별과 맞서는 이들에게 더욱 강하게 공감하고 동조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친구들과 토론하는 것을 좋아해서,
세계 평화며 야구 경기며

무엇이든 마음에 떠오르는 주제를 놓고 날마다 리키 리케츠를 억지로 토론에 끌어들이곤 했다.
나는 학생회 임원 선거에 출마하여 2학년 부회장으로 뽑혔다.
또한 공화당 청년회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나중에는 골드워터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운동원이 되어 'AuH2O' 라는 구호가 새겨진

카우보이 모자에 카우걸 옷을 입고 다녔다.
('AuH2O' - Au는 금의 원소기호, H2O는 물의 화학분자식. 합치면 금물(골드워터) 이라는 뜻 - 옮긴이)

 

나는 자립을 강조하는 아버지와

사회 정의에 관심이 많은 어머니 사이에서 두 가지를 조화롭게 양립시키려고 애썼는데,
1961년에 새로 부임한 도널드 존스라는 젊은 목사가 그런 내 노력을 도와주었다.

 

존스 목사는 드루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4년 동안 해군에 복무했다.
그의 머릿속은 디트리히 본회퍼(독일의 학자)와 라인 홀트 니부어(미국 신학자)의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본회퍼는 인간의 발전을 촉진하여 세계에 전적으로 참여하는 도덕적 역활이 기독교도의 역활이라고 강조했다.

 

니부어는 인간성에 대한 통찰력있는 현실주의와 정의 및 사회 개혁에 대한 불굴의 열정을 설득력있게 비교했다.
존스 목사는 기독교도의 생활은 '행동 속의 신앙'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존스 목사 같은 분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존스 목사는 일요일과 목요일 밤에 열리는 감리교회 모임을 '인생 대학'이라고 불렸다.
그는 우리가 파크리지 바깥의 생활을 좀더 잘 알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어했다.
그는 내게서 그 목표를 달성했다.
그의 '대학' 때문에 나는 처음으로 커밍스와 T.S. 엘리엇의 시를 읽었고,

피카소의 그림(특히<게르니카>)을 접했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의 의미에 대해 토론했다.

 

나는 들뜬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내가 배운 것을 말해주었고,
어머니는 곧 존스 목사에게서 당신 자신과 비슷한 정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생 대학'은 문학과 예술만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시카고 시내에 있는 흑인 교회와 히스패닉 교회를 찾아가 그곳의 청년회단체와 교류했다.

 

그래서 존스 목사가

어느날 오케스트라 홀에서 열리는 킹 박사의 강연회에 우리를 데려가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가슴이 뛰었다.

킹 목사의 강연 제목은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줄곧 깨어 있으라'였다.
국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혁명에 대해서는 나도 어렴픗이 알고 있었지만,
킹 박사는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을 언급하고 우리들의 무관심을 나무랐다.

 

"우리는지금 통합이라는 '약속의 땅'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낡은 질서는 사라져가고 새로운 질서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 질서를 받아들여야 하고, 세계라는 하나의 사회에서 형제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함께 죽게 될 것입니다."

 

내 눈은 서서히 뜨이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도 파크리지의 일반 통념과 아버지의 정치적 견해를 앵무새처럼 흉내내고 있었다.

존스 목사는 나를 '자유주의적' 경험 속에 내던졌지만,

폴 칼슨 선생님은 소련에서 건너온 난민들을 나에게 소개했다.
소련 난민들이 말하는 공산주의의 학정에 대한 이야기는 가뜩이나 강했던 나의 반공주의를 더욱 강화시켰다.
존스 목사는 내 마음과 영혼을 얻기 위해 칼슨 선생님과 자기가 전투를 벌이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존스 목사와 칼슨 선생님의 갈등은 그보다 훨씬 폭이 넓었고,
칼슨 선생님도 우리 교회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두 분의 대립은 결국 우리 교회에서 중대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칼슨 선생님은 '인생 대학'의 교과 과정을 비롯하여 존스 목사가 우선사항으로 여기는 것들에 반대하고,
목사를 교회에서 쫓아내려 했다.

 

나는 이제 도널드 존스 목사와 폴 칼슨 선생의 갈등이 지난 40년 동안
미국 전역에 생겨난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단층을 보여주는 초기의 지표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두 분 다 좋아했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의 신념이 정반대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었다는 것은 대학 진학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할 작정이었지만 어느 대학에 갈 것인지는 오리무중이었다.

 

나는 최근에 대학을 졸업한 두 여선생에게 필요한 조언을 얻었다.
그들은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교육학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메인 사우스 고등학교에서 정치를 가르치고 있었다.
캐린 팔스트롬 선생은 스미스 여대를 졸업했고, 재닛 올트먼 선생은 웰즐리 여대를 졸업했다.

 

10월 중순에 팔스트롬 선생과 올트먼 선생은 어느 대학에 가고 싶은지 결정했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하자, 

두 분은 동부의 7대 명문 여자대학에 속해 있는 스미스 여대나 웰즐리 여대에 지원해보라고 권했다.

 

나는 두 선생에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동부'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그분들은 부모님과 의논해보라고 고집했다.
어머니는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스미스 여대도 웰즐리 여대도 가본 적도 없었지만, 

캠퍼스 사진을 보고 입학이 허가된다면 웰즐리에 가기로 결정했다.

웰즐리 여대에 있는 워번 호수가 위놀라 호수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그후 지금까지 두 분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들었지만, 매사추세츠 주에서 일리노이 주까지 1500킬로미터나 되는 먼 거리를 달려서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어머니는 줄곧 울었다고 한다.
나도 딸아이를 멀리 떨어진 대학에 남겨두고 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때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내 앞에 펼쳐진 나 자신의 미래만 바라보고 있었다.  (p50)
※ 이 글은 <살아 있는 역사 1>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힐러리 로댐 클린턴  -  살아있는 역사 1 - (비매품)
역자 - 김석희
(주)웅진씽크빅 - 1980. 03. 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