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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이야기가 있는 미술관/4장 벽을 넘어, 사로잡힌 사람들

by 탄천사랑 2022. 7. 7.

김승현 - 「이야기가 있는 미술관




키이스 해링 '빛나는 아이'를 몰래 헐어 7백 달러를 마련, 뉴저지 주 해변의 롱비치 섬으로 화려한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도시의 세련된 젊은이들과 또래 애들이 몰린 롱비치에서 해링은 철저한 고독의 소외를 맛봤다.
그렇지만 소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롱비치의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완전한 예술의 세계를 경험했다.

해링은 고교를 졸업한 76년 피츠버그의 직업 예술 학교인 아이비 스쿨에 진학했다.
이 학교에서 그는 향후 자신의 미술 작업의 기본이 되는 순수 예술의 기본 기법과 함께 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광고 기술, 실크 스크린등 상업 예술의 기초를 배웠다.
그리고 그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여자' 애인 수진을 만났다.

그러나 해링은 1년을 채 다니지도 않고 자기만의 어휘와 스타일을 발견, 학교를 뛰쳐나간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잠재된 조숙한 천재가 드디어 기를 발휘한 것이다.
여기에는 192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의 화가 로버트 헨리의 저서 '예술혼'의 영향이 켰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예술 작업은 물론 예술가의 개념에 대해서도 이해했다.

아직 히피 문화에 탐닉해 있는 해링은 어렸을 때부터 꿈꾸어 왔던 대륙 횡단 히치 하이킹 여행을 시도했다.
애니 수잔에게 동행할 것을 제의하자 수잔은 이에 기꺼이 동의, 
반년 18세의 청춘 남녀들은 배낭을 하나씩 짊어진 채 서부로 떠났다.  
이때 해링이 가져간 것은 헨리의 저서 '예술혼'과 그가 그린 그림을 프린팅 한 티셔츠 몇 벌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들 젊은 남녀의 밀월여행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해링과 수잔은 히치 하이킹을 하며 티셔츠를 팔아 오하이오, 시카고, 위스콘신을 거쳐 
미네아폴리스에 도착해 미네아폴리스 예술 디자인 대학에 잠시 적을 두었다가 내쳐 서부로 향했다.

그들은 다시 사우스 다코다와 몬타나, 시애틀을 거쳐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들은 버클리로 들어가고, 스패니쉬계의 잘생긴 남자는 해링을 유혹했다.
해링은 거기서 자신이 동성에 더 관심이 많은 게이임을 깨달았다.
해링과 수잔은 다시 로스엔젤레스를 거쳐 피츠버그로 1977년 돌아왔다.

피츠버그로 돌아온 해링은 수잔과 동거하며 카페에 취직했다.
이 카페는 한쪽의 조그만 벽면에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 해 말 해링은 주인의 권유로 석판화와 잉크를 이용한 소품을 몇 편 발표했다.
해링으로서는 첫 번째 전시인 셈이다.

이 전시가 피츠버그에서 제법 알려져 

그는 피츠버그의 예술 및 수공예 센터의 회원 자격으로 들아가 미술에 대해 새로운 개안을 했다.

로버트 헨리뿐아니라 잭슨 플록, 파울 클레, 알폰소 오소리오, 마크 토베이 등 
고전적 현대 미술가들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하게 되면서 동양적인 미의 개념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미술이 지향해야 할 지점이며 

또 그 방향으로 간 선배 작가들이 당당히 세계적인 작가가 된 것을 확인,

자신의 예술적 방향에 대한 자신감도 얻게 된 것이다.

또 그는 이 시절 '신은 개다',  '예수는 원숭이다', 등 벽에 함부로 과격하게 쓰인 낙서에서 묘한 생명력을 발견한다.
이것이 그가 짧은 삶을 불태워 꽃 피울 원시적이면서 동양적인 낙서 그림의 씨앗이 된다. (p226)
이 글은 <이야기가 있는 미술관>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입니다.

 

 


김승현 - 이야기가 있는 미술관

컬처클럽 - 2002. 0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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