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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생각의 거울/고양이와 개

by 탄천사랑 2022. 5. 29.

미셸 투르니에 - 「생각의 거울


고양이와 개는 가장 가정적인 동물들,  

즉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가장 잘 통합되어 있는 동물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집에 통합되어 있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고양이에 대해서 사람들은 집 안에 있는 호랑이, 

조그만 야생 동물이라고 말한다.
고양이가 개처럼 사람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고양이를 '가축' 이라기보다는 '길들어진 야생 동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가축과 길들여진 야생 동물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가축은 집 안에서 태어난다.
길들어진 야생 동물은 자연에서 태어난 뒤, 나중에야 집 안에 들여진다.
그런데 암고양이가 새끼를 집 밖에서 낳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암고양이는 집 밖에서 새끼를 낳아 가지고는 한 놈씩 한 놈씩 사람이 사는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고양이가 독립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드러나지만, 
특히 개가 정신을 못 차리고 좋아하는 설탕과 단 음식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행동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 고양이의 독립적인 특성을 가장 잘 보여 준다.
장 콕토는 자기는 개보다는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경찰 고양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양치기 고양이라든지,  사냥 고양이,  장님 길잡이 고양이,  서커스 고양이,  썰매 끄는 고양이도 없다.
고양이는 명예를 걸고 그 무엇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고양이가 집안에서 개보다 못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고양이는 장식이며 사치이다.

고양이는 또한 고독한 존재이기도 하다. 
개가 열심히 친구들을 찾아다니는 데 반해서 고양이는 동족들에게서 도망친다.
개는 사람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고통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강제로 비천한 일을 시키는 주인 때문에 품위를 잃기도 한다.

개는 그 보다 더 나쁜 경우를 당하기도 한다.
개사육자들은 더 추악하고 더 괴물 같은 개 종자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온갖 유전 과학의 기술을 동원하는 것 같다.
테켈(짧은 다리 때문에 거의 뱀처럼 보이는)과 불독(헉헉거려야 겨우 숨을 쉬는)을 만들어 낸 이후에도,
사람들은 엉덩이 부분이 축 처진 셰퍼드와 언제나 달달 떨리는 몸 때문에 힘들어하는 암컷 그레이하운드,
털 없는 개 등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개들의 불구성은 주인의 동정심과 걱정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주인으로 하여금 개들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고양이의 성정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의 성정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특성이 공존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사람들은 개에게 산책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가 사람의 산책을 이끈다.
사람은 개가 자기를 대신해서 거리나, 

집 주위에 있는 들판이나 숲의 모든 구석구석을 탐험해 주기를 바란다.
개의 후각(고양이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은 멀리에서도 수식을 할 수 있는 도구이다.
사람은 그 후각을 가로채고 싶어 한다.

반면에 고양이는 집 안에 남아서 난로가나 등잔 아래에서 빈둥거리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꾸벅꾸벅 졸기 위해서가 아니라 깊은 생각에 잠기기 위해서이다. 
고양이가 쓸데없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지혜롭기 때문이다. 
개가 일차적 동물이라면, 고양이는 이차적 동물이다. 

개가 스스로 문을 열고 바깥을 정복하러 떠나는 충동이 있다면,
고양이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 위해 난롯가나 등잔 아래 빈둥거린다.  (p48)
 이 글은 <생각의 거울>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미셸 투르니에 - 생각의 거울

역자 - 김정란
북라인 - 2003. 06.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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