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외국작가

뒤바뀐 운명 - 장미정원 1 / 아일린 굿지

by 탄천사랑 2025. 5. 14.

 

 

 

장미정원 1 - 아일린 굿지 / 늘 푸른 1991. 08. 01.

서장 - 뒤바뀐 운명
뉴욕 시 1943년. 7월 3일.

----


그럼에도 결혼 첫날밤, 그의 벌거벗은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그녀를 오싹하게 만든다.
빳빳한 수제품 양복을 입고 있을 때의 그는 크고 근사해 보였다.
그러나 일몸뚱이의 그는 늙고 초라했으며, 우스꽝스러울 정도였다.
그의 배는 볼품없이 쭈글쭈글 늘어졌으며, 가슴은 어린 소녀처럼 빈약했다.
오늘날까지 실비는 그가 그녀 위에 엎드릴 때마다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을 느껴 왔다.

수백만 번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그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스스로 타일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축 처진 배가 그녀를 압박해서 그녀를 헐떡거리게 만들고,
그리고 그의 물건이 그녀 안으로 들어가는 둥 마는 둥 하고 난 뒤에,
그는 매우 고통스러운 듯 한숨과 신음 소리를 토해 내곤 했었다.
차츰 나아질 거라고, 당연한 거라고, 아직 서로 익숙지 않아 그런 것뿐이라고 그녀는 거듭거듭 자신을 타일렀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파자마를 벗어 침대 발치에 개켜 놓음으로써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때 그녀의 몸은 움츠러들었다.
그러다가 니코스가....


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모든 것을 알았다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러자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는 피우던 담배를 버리고,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가 그녀에게 키스를 했다.
니코틴 맛과 더불어 뭔가 달콤하고 향기로운 맛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실비는 여름 밤의 뜨거운 열기가 땀구멍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내장이 몽땅 녹아내리는 것 같기도 했고, 내리막길로 정신없이 미끄러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몸을 뒤로 빼고, 이러한 돌발 상태를 중지시킨 뒤, 안으로 뛰어 들어가야 했다.
그녀는 자신을 철석같이 믿고 잠들어 있는 제럴드를 생각했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수치심과 금지된 미각의 감흥이 그녀의 전신을 마취시키는 묘약인 것 같았다.
전에는 한 번도 이런 키스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느릿느릿하고, 달콤하고, 끝없는 키스, 
흡사 육지라곤 보이지 않고, 익사로부터 구출해 줄 지푸라기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그녀는 모든 게 꿈이라고 믿으며, 그를 따라 정원으로 가는 굴곡 진 돌계단을 내려갔다.
정원에 깔아 놓은 고르지 않은 블록에 슬리퍼가 걸려 넘어질 뻔하자 그가 재빨리 그녀를 붙잡아 주었다.
그의 품에 안겨 단단한 근육을 느끼자 전신이 화끈거렸다.
그녀가 넘어질 뻔한 후로 불편한 다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그녀가 어린애이기나 한 듯 
힘들이지 않고 안고 같다.
활처럼 구부려 만든 격자시령 밑을 지나 지하실로 통하는 좁은 슬레이트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말없이그녀를 침대 옆에 내려 세웠다.
그는 그녀의 허리끈을 풀고 그녀의 어깨로부터 가운을 벗겨 내렸다.
장밋빛 실크 가운이 소리 없이 방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그는 서들러 자신의 옷도 벗었다.

실비는 그를 응시했다.
그의 벗은 몸이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긴 정강이뼈가 그녀를 조바심 나게 했다.
달빛에 반사된 그곳은 그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파리해 보였다.
그는 마치 그녀와 더불어 제무 (祭舞)라도 추려는 것 같았다.
남성의 육체가 아름답다고 생각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의 왼쪽 엉덩이로부터 무릎까지 뱀처럼 기어 내려온 검붉은 상혼은 소름 끼치는 것이긴 했지만,
그가 겪은 호된 시련을 말해 주었다.

갑자기 다리에 맥이 빠지며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어 그녀는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는 그녀의 팔을 쓰다듬어 올린 뒤, 그녀의 어깨를 잡고는 가만히 그녀를 눕혔다.
그리고는 그녀 앞의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마치 기도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거기였다.
오, 하나님. 그는 그녀의 그곳에 키스를 하고 있었다.
실비는 얼얼한 충격을 받았다.
그의 행위는 그녀에게 기막힌 감흥과 함께 부도덕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손가락은 그의 축축한 곱슬머리 속을 파고들고 있었고, 그의 머리를 좀더 가까이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녀의 전신이 격렬하게 떨렸고, 두 다리가 발작하듯 움직였다.
사람들은 정말 이렇게 하는 것일까?
선량한 사람들이라면 분명 그렇지 않으리라.

그녀는 이내 자신이 좋은 여자가 못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의 등을 파고드는 그의 손가락과 그의 뜨거운 입술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혀, 그녀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그가 그녀 안으로 사납게 밀고 들어왔다.
그들의 육체는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미끈미끈했고,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사람처럼 입술에 그녀의 것을 묻힌 채로 그는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신음을 토하면서 팔과 다리로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녀의 육체는 쾌락과 충동과 욕구로 인해 전율하고 있었다.

'오, 이 형언할 수 없는 느낌!
 이런 괴성을 내지르고 있는 게 정녕 나란 말인가?
 제널드의 헐덕임이나 끙끙거리는 신음 소리도 이런 유의 것일 수 있을까?
 오, 하나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이 순간이 끝나지만 않게 해 주세요...... 좋아요...... 너무너무 좋아요.'

그의 육체가 팽팽히 긴장하면서 더 깊이, 더 빠르게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그의 등이 아치 모양으로구부러지면서 목에 힘줄이 뚜렷하게 솟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단단한 엉덩이를 붙잡았다.
숟가락처럼 구부러진 엉덩이의 굴곡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역시 목쉰 소리로 끊임없이 신음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정적이 찾아왔다.
그녀는 깃털처럼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미풍만 불어도 밤의 어둠 속으로 날려가 버릴 가벼운 깃털같이.

실비는 눈을 떴다.
니코스가 그녀를 바라보며 싱긋 웃고 있었다.
"이제 잠들 수 있을 거요" 그가 말했다. 

 

 

※ 이 글은 <장미정원 1 >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5.05.14.  20250507_16203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