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날개 - 평생 힘이 되는 말」
1 - 사랑은 비 갠 후의 햇살처럼 따뜻하다.
인생이란 플러스 10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오토바이 같은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쓰지 않는 변속 기어를 갖고 있다. - 찰스 슐츠.
1 - 3. 인생이란 플러스 10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오토바이 같은 것이다.
어느 일요일 낮, 어쩌다 제목도 모르는 드라마 재방송을 중간부터 보기 시작해 끝까지 다 보았다.
중견 탤런트 고두심과 배종옥을 비롯 모든 연기자들이
자기만의 자리에서 딱 떨어지는 개성연기를 보여주어 눈을 땔 수 없었다.
특히 내 눈을 끌어당긴 것은 배종옥이 슈퍼마켓 안 생선 코너에서 일을 하는 설정이었다.
그 드라마를 쓴 작가가 삶의 한 단면을 나타내기에
생선 가게가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해서 설정한 것인지는 모르나 유심히 보았다.
오래 전 나는 슈퍼마켓의 생선 취급하는 부서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1988년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그 해 나는 일본 유학을 떠났고,
도착한 첫 해에는 랭귀지 스쿨을 다니며 오후 시간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일본에 간 지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도 나는 겁도 없이
신문에 끼워진 간지의 구인 광고를 보고 동네의 할인마트에 이력서를 들이밀었다.
꿈도 야무지게 계산대를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정작 배속된 곳은 '선어부 鮮漁部'라고 하는 생선을 취급하는 곳이었다.
지루하고도 힘든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그 때의 일들을 행복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곳에서 만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내가 아르바이트장으로 들어섰을 때
휴식시간이었는지 한 청년만이 혼자 남아 일을 하고 있었다.
당번인 모양이었다.
"이름이 카시오라고 했던가요?"
"맞아요. 카시오."
"어머, 시계 이름이잖아요."
나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지만 악의는 없었다.
나는 그 나라 말에 빨리 익숙해지기 위해 기회만 되면 누구에게나 말을 걸었다.
"에또, 전자계산기도 있지요."
손으론 잘 벼려진 칼로 여전히 가다랭어의 살을 포 뜨면서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응수했다.
"맞아요. 휴대용 전자계산기,
한국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카시오란 이름을 듣자 마자 금세 익혔어요.
회 뜨는 걸 보니 숙련된 솜씨인데요.
예술이에요. 예술." 묘기를 보는 것 같았다.
쉽게 사귀기 위해 약간 아부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이지 그의 칼 솜씨는 유연하고 빨랐고 리드미컬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터서 알게 된 그는 아직 이십 대였지만 생선회를 뜨는 숙련된 기술자였다.
어촌에서 고기를 잡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의무교육인 중학교 학력이 전부였지만 자기 분야에서 만은 프로였다.
10년 가까이 곧게 한길만 파내려 간 그는
나이는 어렸지만 이미 높은 수준의 급료를 받는 기술자였다.
정월 초하루 식탁에도 생선초밥이 오를 정도로 끔찍하게도 생선회를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곳이 바로 선어부이다.
불구 죽죽한 생선 핏물이 골을 타고 흘러내리는
선어부에서 내 덩치보다 큰 참다랑어를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이란,
펄쩍 튀어 오를 것 같은
거대한 물고기가 내 눈 앞에서 토막 내지고 담기고 날라지고 있었다.
큰 냉동 가다랭어 덩어리를 들고 나와 적당한 크기로 여러 토막을 낸 다음
부위별로 먹기 좋게 회 쳐내는 것은 기술자들의 일이었고,
정해진 장소에 서서 스티로폼 접시에 무 채를 까는 폼 나는 (?) 일이나
램으로 팩을 포장하는 고급스러운(?) 일은 고참 아주머니의 몫이었다.
신참 아르바이트인 나에게 너무나 당연하게도
얼음 물에 담긴 꽁치를 두 마리씩 건져올려 팩에 담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름에도 실내는 냉장고처럼 추웠다.
아무런 지식이나 기술을 요하지 않는 그 기계적인 동작을 몇 시간 되풀이하는 동안
고무장갑을 낀 손이 시려웠고, 추웠고, 허리와 어깨가 아파왔다.
어쩔 수 없이 첫 날만 일하고 다시는 그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춥고 비린내 나는 그곳에서 내가 장장 2년이나 일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카시오 덕분이었다.
말수가 적은 그였지만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그리고 이름 때문이긴 하지만
가장 먼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었다.
내가 혹 일에 실수라도 하면 슬쩍 다가와 대신해 주는 것도 그였고,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가사가 막히면 슬며시 알아 듣게 불러주는 것도 그였고,
표시 나지 않게 간식을 살짝 밀어 주는 것도 그였다.
카시오 말고도 그 곳에 두 명 더 그 나이 또래의 프로가 있었는데,
그들 역시 카시오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기술자가 된 청년들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선어부 삼총사'로 불렸다.
생선회를 잘 뜨는 데 학력 같은 건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학력에 대한 열등의식 같은 걸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당당했다.
진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매우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마트 폐점 시간이 가까워지면
그들은 앞치마를 벗어놓고 깨끗한 작업복 차림으로 매장에 나가 판매를 거든다.
"싱싱한 참치 회가 500원 할인이요. 할인."
방금 전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들고 노래라도 부르듯 큰 소리로 선전을 한다.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그들의 귀여운 호객행위에 미소를 띄고 바라보다가
가격 인하 딱지가 붙은 생선회 접시를 기꺼이 장바구니에 담는다.
야채부 아가씨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원들도 바로 그들이었다.
생일이나 밸런타인데이엔 그들 삼총사에겐 선물이 넘쳐났다.
휴식 시간이면 셋은 장난치기 좋아하는 강아지들처럼 한바탕 떠들며 장난을 치고 놀았다.
지나가는 어른들은 그들 삼총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이름은 다 잊어바렸는데 카시오만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시계나 전자계산기 이름으로서가 아니라
파닥파닥 싱싱하게 삶을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 등 푸른 생선의 이름으로서.
*나중에 알았는데 내가 그 날 본 드라마는 노희경 작가의 <꽃보다 아름다워>였다.
※ 이 글은 <평생 힘이 되는 말>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24.03.24. 20240302-153655-3]
'명상의글(종교.묵상.좋은글. > 평생 힘이 되는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 - 5. 인간이 사는 방식에는 두 종류밖에 없다. (0) | 2024.04.01 |
---|---|
1 - 4. 한 문이 닫힐 때 다른 문은 열린다. (0) | 2024.03.31 |
1 - 2. 당신이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하라 (0) | 2023.07.05 |
1 - 1. 향기가 멀리 간다고 해서 다 아름다운 꽃은 아니야 (0) | 2023.06.27 |
평생 힘이 되는 말 - 추천의 말 (0) | 2023.05.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