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투이 - 루」
나는 원숭이해가 시작되던 구정 대공세 동안에,
집앞에 줄줄이 걸어놓은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경기관총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울려 퍼지던 때에 태어났다.
내가 세상에 온 날 사이공의 땅은 폭죽 잔해들로 붉게 물들었다.
버찌 꽃잎처럼 붉은빛이었고, 둘로 갈라진 베트남 도시와 마을에 흩뿌려진 200만 병사의 피처럼 붉은빛이었다.
나는 불꽃이 터지고 빛줄기가 화환처럼 펼쳐지고 로켓과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환한 하늘의 그림자에서 태어났다.
나의 탄생은 사라진 다른 생명들을 대신하는 임무를 지녔고, 나의 삶은 어머니의 삶을 이어갈 의무를 지녔다.
이름은 응우옌 안 띤Nguyễn An Tịnh이고,
어머니의 이름은 철자 부호만 하나 다른 응우옌 안띤Nguyễn An Tĩnh이다.
내 이름은 어머니 이름을 조금 바꾸기만 한 것이다.
어머니 이름의 ‘i’자 밑에 더해진 점 하나만이 내가 어머니와 다른 사람이고,
어머니와 구별되고 어머니와 분리됨을 말해준다.
이름의 의미부터 이미 내가 어머니를 이어갈 것임을 뜻한다.
베트남어로 어머니의 이름은 ‘평화로운 환경’을, 내 이름은 ‘평화로운 내면’을 뜻한다.
바꾸어 써도 무방할 만큼 비슷한 두 이름을 통해 어머니는 내가 자신의 후속편임을,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임을 확실히 했다.
베트남의 역사, 대문자 H로 시작하는 역사가 어머니의 계획을 무너뜨렸다.
베트남의 역사는 우리가 시암만을 건너던 30년 전에
어머니의 이름과 내 이름에 붙은 철자 부호들을 바닷물 속에 던져버렸다.
우리의 이름은 그 안에 담겨 있던 의미를 잃어버린 채 그저 낯선 다른 나라의 소리,
이상한 소리로 프랑스어 속에 남았다.
베트남의 역사는 무엇보다 어머니를 이어가야 한다는 임무에서 나를 떼어냈다.
내가 열 살 때였다.
베트남을 떠나왔기에, 나의 아이들은 나를 잇고 나의 이야기를 이어간 적이 없다.
내 아이들의 이름은 파스칼과 앙리이고, 나를 닮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밝은 색이고 피부가 하얗고 속눈썹은 짙다.
새벽 3시에 자다가 깨어난 아이들이 내 품으로 파고들 때,
생각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모성애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머니로서의 본능은 한참 뒤에, 밤을 지새우면서, 더러운 기저귀를 갈면서, 해맑은 미소를 보면서,
예기치 못한 기쁨을 맛보면서 그렇게 찾아왔다.
그제야 나는 선창에서 마주 앉았던,
머리에 냄새나는 옴딱지가 가득한 젖먹이를 품에 안고 있던 그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했다.
며칠이고 내 눈앞에는 계속 똑같은 그 모습뿐이었다.
아마 밤에도 똑같았을 것이다.
어차피 천장에 박힌 녹슨 못에 끈을 걸어 매달아 놓은
작은 전구 하나가 낮이나 밤이나 똑같은 희미한 불빛으로 선창 안을 비추었다.
배 밑바닥에 모여 앉은 우리에게 낮과 밤은 더 이상 다르지 않았다.
항상 똑같은 그 불빛이 우리를 광대한 바다와 하늘로부터 지켜주었다.
갑판에 앉은 사람들 말로는, 바다의 푸른색과 하늘의 푸른색 사이 경계가 사라졌다고 했다.
우리가 하늘을 향해 가고 있는지 바닷물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지조차 알 길이 없었다.
우리가 탄 배의 배[腹] 속에는 천국과 지옥이 얽혀 있었다.
천국은 우리의 삶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고, 새로운 미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약속했다.
지옥은 우리 앞에 온갖 두려움을 펼쳐놓았다.
해적이 나타날까 봐, 굶주려 죽을까 봐, 엔진 오일이 배어든 딱딱한 빵을 먹고 병이 날까 봐,
물이 부족할까 봐,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게 될까 봐,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옮겨 다니는 붉은색 단지 안에 또 오줌을 누어야 할까 봐,
아이의 머리를 덮은 옴이 옮을까 봐, 다시는 육지에 발을 디딜 수 없을까 봐,
희미한 불빛 아래 웅크린 200명 사이 어디엔가 앉아 있을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 이 글은 <루>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킴 투이 - 루
역사 - 윤진
문학과 지성사 - 2019. 11. 29.
[t-22.12.24. 20211204-145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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