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다 에이미 - 120% COOOL」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거짓말이 사랑에 도움이 될까.
현명한 사람은 상대방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수도 있다고 한다.
과연 정말로 그럴까.
나의 경우를 보면 거짓말은 파국을 막기 위한 일시적인 땜질에 지나지 않는다.
즉 언젠가는 그 둑은 무너져서 관계는 모래흙에 파묻히게 되고 두 사람은 물에 빠져 숨이 막혀 버리게 될 것이란 말이다.
거짓말이 내 사랑을 원만하게 해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이 생겨서
두 사람 사이 여기저기 군데군데에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지워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이다.
거짓말을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는 묻지 말 것, 그리고 대답하지 말 것.
내가 J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은 내가 결혼하고 있다는 이유로 당당하게 서로 어깨를 껴안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두 사람의 사랑이 남의 눈에 뜀으로써 풍화(風化) 되어 가는 것을 내가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에 관해서는 겁이 많은 여자였다.
사랑을 잃는 것은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하지만 나에 관한 한 그런 일은 없었다.
얄팍한 지혜만 키운 것 같다.
마음껏 맛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런 지혜 말이다.
나와 남편과는 이미 파탄된 지 오래었으나, 나는 J에게 이 일을 알리지 않았다.
다만 결혼했다는 말만 했다.
나는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폈다.
다른 남자에게 속해 있는 여자라고 함부로 다루어도 된다는 태도를 취한다면 두 번 다시 만날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럴 경우 남자들이 취하는 태도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의 여자라는 것을 알고는 깊이 관여하지 않으려고 의식하는 남자,
또 불장난을 기대하는 남자,
그리고, 그래도 상관없이 마음과 몸의 모든 과정을 다 하는 남자.
도덕적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첫 부류의 남자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세 번째 유형이다.
그리고 J가 그랬다.
그는, 나 결혼했어라는 나의 말에, 그래 결혼했어, 라고만 대답했다.
마치, 내일은 흐린 뒤 맑음이라구, 라는 식으로.
다른 남자에 속하는 여자가 이렇게 연하의 남자와 정사를 가지는 것은 정말로 점잖지 못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도 이렇게 생각할 정도이니, 세상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에게 보다 엄격한 비평을 가하리라.
하지만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일어나는 것은 하느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보통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죽고 싶을 정도로 그를 원했다.
속된 말로 '저 사람들은 보통 사이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 '보통 사이가 아닌' 것이 섹스하는 것을 뜻한다면 나와 J는 오랫동안 '보통 사이'였다.
우리는 매우 긴 시간을 참았다.
서로를 원하는 마음만은 맛보고 또 맛보고 있었다.
그것도 나의 얄팍한 지혜 가운데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애태우는(티즈)'것이 쾌락의 가장 효과적인 애피타이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를 애태우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애태워서 가슴을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J는 이따금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 한숨이 내 귀에 닿을 때 나는 황홀한 나머지 눈을 감아야 했다.
그럴 때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마음속에 스트립티즈를 보여 주는 것인가 봐,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이렇게 참아서 어떻게 될 건가라는 생각이 들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일 죽으면 어떻게 해.
나는 J와 잘 때까지 죽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그 대신 단둘이 밤길을 걷거나 할 때는 내 말이 밤공기를 떨게 했다.
"너무 좋아해."
나는 말했다.
그는 겸연쩍은 표정이었으나, 내 손을 잡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어떻게,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 봐."
"어떻게, 무얼 좋아해?"
"당신하고 같이 있는 시간의 공기 색깔, 촉감, 냄새나 맛, 그런 것들이 좋아.
모든 게 달라져 보인다고 놀라는 것이 좋아." 그는 멈춰 서서, 곤란한 듯이 웃었다.
"왜 그럴까, 나도 그렇거든." 나는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바보, 그런 걸 사랑이라고 하는 거야."
그의 멍한 표정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나는 사랑에 빠진 남녀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에 관해 생각한다.
살을 섞는 순간, 서로 쳐다보는 순간, 속삭임에 푹 빠지는 순간, 우스갯소리에 서로 웃는 순간,
우리는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생각이 교차해서 겹치는 그 순간을 도대체 누가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모든 것이 착각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두 사람의 다른 육체를 가진 사람이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내가 말하는 것도,
지난날 나와 남편이 그렇게 느껴. 입 밖에 내어 그것을 말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된 여자에게 있어,
일심동체라는 말은 쓴웃음을 자아내게 할 뿐이다.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두 사람이 같이 지낸 시간밖에는 없다.
몇 년 몇 월 몇 일의 몇 분에서 몇 시 몇 분까지, 그 동안 둘이 같이 있었다는 것만이 사랑이 만드는 증거인 것이다.
그 시간에 둘이 무엇을 하고 있었나만 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는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일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제멋대로 된 일기이다.
그것도 앞장을 스스로 손가락으로 펼쳐 볼 수도 없는 그런 일기다.
사랑의 일기는 언제나 바람에 날려서 갑작스레 과거의 페이지를 내 눈앞에 드러낸다.
쓰여진 글자는 겸연쩍고 애잔하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할 정도로 진지하다.
나는 J가 자기 생각을 이쪽으로 흘려 보내는 느낌이 좋았다.
그는 결코 수다스러운 남자는 아니었지만, 나를 좋아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분위기를 잘 만들어 낼 줄 알았다.
거기에는 전혀 장난기가 섞여 있지 않은 것이 좋았다.
공기는 항상 뜨거웠다.
나는 아무리 뜨겁더라도 화상 입지 않고 받아들이겠다는 내 뜻을 전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사랑에 푹 빠지면, 세상의 모든 색깔이 진해진다.
나무의 초록도 하늘의 푸르름도 햇살조차도 그렇다.
그리고 원래 색이 없던 것,
예를 들면 목소리라든가 숨이나 땀마저도 색깔을 가지게 된다.
왜 그렇까.
사람들이 그렇게들 모두 인상파가 되어 버리는 것은, 그림의 가치 같은 것은 전혀 모르면서.
둘이서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밤 늦은 시간, 둘 다 약간 취해 있었다.
우리는 예의 바르게 나란히 앉아 있었다.
반대 차선의 차의 헤드라이트가 우리를 비쳤다.
J는 눈이 부신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라이트가 서너 번 그의 얼굴을 비췄다.
"눈 부셔?"
"응"
"왠지 등대가 생각난다."
"바다 좋아해?"
"갈까."
"지금!?" J는 웃음을 떠뜨린다.
"굿 아이디어."
그러나 우리는 물론 바다에는 가지 않았다.
아직 쌀쌀하다.
게다가 밤중에는 수영할 수 없다.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그의 침대 속에 있었다.
모래사장 대신에 침대. 파도 대신으로 이불, 우리는 웃으면서 옷을 벗었다.
부끄러운 같은 것은 손톱만큼도 느끼지 않았다.
주저하기에는 서로 너무나도 굶주려 있었다.
공복. 하지만 육체만의 배고 품은 아니었다.
마음도 가득 채우려는 듯 우리는 껴안았다.
빠진 부분을 메우려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메우기만 할 뿐 아니라 넘치게 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모든 감정이 채워지면 육체에는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공기에 닿으면 응고되어 버리는 약품이나 그런 것처럼 느낌이 반응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눈물, 내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떨어진다.
한숨 또는 신음 소리, 그는 다음에 숨을 쉰다는 것을 잊은 것처럼 숨을 몰아쉰다.
그것을 느끼면 나는 내 피부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다.
피부호흡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섹스할 때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생물 선생님은 거짓말은 안 하셨다.
어른이 되면 알 거라고 한마디만 해주셨더라면, 사람은 피부로도 호흡합니다.
단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엑스터시가 절정에 달해서 안쪽에서 넘쳐나올 때 뿐입니다.
육체가 서로 껴안는다는 행위 자체는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아마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 많은 남녀가 마찬가지로 몸을 데워 주고 있으리라.
비슷한 몸놀림으로 비슷한 한숨을 쉬면서.
그런대로 제각각의 개성적인 황홀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개개인만이 알 수 있는 조합에 의해서이리라.
그 두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공기가 은밀한 즐거움을 부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육체를 움직일 때,
공기는 전혀 다른 입자를 만들어 내서 거기에 시간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이제사 이렇게 됐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어떻게 될까, 우리는."
나는 이마에 흘려내린 그의 머리를 올려 주었다.
거기에는 나와 자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을 잊은 남자의 눈이 있었다.
나에게 몰입한 남자를 보는 것은 좋은 것이다.
나는 뼈저리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사랑 따위 고상한 것은 없다.
예를 들면, 배고픈 것을 참고 있던 참에 겨우 먹을 것을 입에 넣고 정신없이 씹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잠시 쉰다.
그가 몸의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볼 때의 모습은 바로 이와 유사하다.
이제부터 천천히 맛볼 거야, 라는 듯한 결의.
내 몸이 나를 잊는 것은 그 후부터다.
여자의 몸은 언제나 쾌락을 애태우는 속도를 알며, 남자의 몸은 쾌락의 감속 방법에 능하다.
나는 나에게 떨어지는 그의 시선을 생각한다.
그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선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현재에만 존재하는 이 시선은 하지만 내 인생의 한 시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 마음은 묶어서 내 살을 태운다.
이불이 이다지도 뜨거웠던가.
"어떻게 될지 나도 몰라."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려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포근하고 익숙한 담요를 갖는 것 같은 섹스도 있을 것이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애초에 그런 것은 포기하고 있다.
한동안의 완벽한 정적이 끝나고 그가 몸을 떼었을 때 나도 천천히 눈을 떴다.
성애가 끝난 뒤 모든 동물은 슬프다라는 말도 있다고 하지만, 그의 표정에 슬픔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보다는 새로운 배고품이 다가오는 것을 예감하고, 그때까지의 고독을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 궁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이 등에 다가갔다.
그는 천천히 나를 뒤돌아보았다.
나는 베개를 한 손에 끌어안으면서 물었다.
"괜찮아?"
"응."
"멍한데."
"우리 오래 갈까?"
글쎄. 배고픈 고독을 즐기는 동안은 계속되겠지.
길어도 좋고, 짧아도 좋아, 하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잠자리에서 나와 어떤지를 이미 안다.
이것을 주제로 삼아 새로운 간을 맞추어 가는 일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
아마 한참 동안은 이 기분이 지속되고 나의 일상생활은 감상에 젖을 것이다.
첫 잠자리는 언제나 기억의 사탕을 만든다.
그것은 혀에 올려 놓으면 눈물겹도록 달콤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새벽녘에 나는 J의 방을 나섰다.
택시를 잡을 수 있는 데까지 바래다주겠다는 그의 제의를 거절하고 나는 골목길을 혼자서 걸었다.
몇 번이나 하이힐의 굽이 보도에 걸려서 넘어질 뻔했다.
그때마다 몸속에서 그의 체액이 다리 사이를 따라 흘려내리는 것을 느끼고는 혼자 얼굴을 붉혔다.
그날 밤 이후 나는 J의 방을 가끔씩 찾게 되었다.
특히 아침이 좋았다.
아직 잠에서 덜 깬 그의 몸을 내 키스로 깨우는 것이 즐거웠다.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에 그의 방에 들른다.
교통체증에 시달리지도 않고 좋아하는 남자의 잠에서 막 깬 얼굴도 볼 수 있다.
왠지 선취점을 올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생의 쾌락이라는 분야에서 남들보다 두어 시간 먼저 시작했다는 의식에서.
J는 영문과 학생이었으므로 방 안에는 원서라든가 사전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영자신문도.
그가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마시면서 막 배달된 신문을 흟어버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이 무렵 알았다.
"열심인데." 내 말에 그는 웃었다.
"그냥 알고 싶어서, 새로운 뉴스를, 모르는 말로."
"나도 알고 싶어, 모르는 것을, 모르는 말로."
그는 나를 바닥에 밀치고 옷을 벗겼다.
잉크 냄새, 민주당에 관한 사설이 땀으로 등에 배이는 것을 걱정하면서 나는 그를 받아들였다.
나는 몰랐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몸을 움직이고 발끝으로 쌓여 있는 페이퍼백 더미를 무너뜨리고 오래된 퀸 사이스 사전의 페이지를 구겼다.
"남편에게 죄스럽다고 생각한 적 있어?" 나는 그의 말에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저었다.
"없어"
"흐응, 하지만 보통은 죄의식이 뒤따르든가 할 때 그런 말하잖아.'
아마 일 년 전이었으면 뒤따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와 함께 J에게 더욱 더 빠져들고 집착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결혼한 상대 이외의 사람과 자는 것을 대단한 사건으로 알았으니까.
그러나 무엇이 대단하단 말인가.
사랑하지 않아도 섹스할 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어른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매혹적인 섹스가 그런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랑의 참맛은 진지해지는 것에 있다.
구분된 시간 안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상대방의 모든 부분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감미로운 성(性)을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를 잃은 빈 껍데기를 잠자리에 두고 오는 기술,
집중력을 질질 매단 채로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곳에는 질투와 집착이라는 독이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나의 결혼생활은 아늑함을 죽었다.
즉 나는 잠자리와 일상생활을 구별할 줄 모르는 여자였던 것이다.
물론 남편은 그런 나에 지쳤다.
그리고 나도 나 자신에게, 남편이 아주 쉽게 다른 여자와 잘 수 있다고 확인하는 나날에서 나는 포기하는 것을 배웠다.
할 수 없어.
모르는 사람을 섹스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은, 사실 멋있고 즐거운 일인 걸.
결혼 후 처음으로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했을 때 나는 어깨를 들썩했다.
내가 그렇게도 완고하게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눈앞의 이 남자는 이렇게 편하게 멋진 쾌락을 주지 않는가.
남편이 이런 것을 원하는 것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는 옷장 안에 어떤 속옷을 숨기고 있는지 감출 줄 아는 여자를 원했던 것이다.
"나는 이따금 생각하는데....," J가 조용히 말하기 시작한다.
"당신이 만약 남편하고, 나와 섹스하고 나서 자면 마음이 쓰릴 거라고."
그는 결코, 잤어?라고 묻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대답하지 않는다.
"옛날 어렸을 때 해 질 무렵 혼자서 비깥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파 왔어.
나는 병인 줄 알고 당황했어, 매일매일 그랬거든, 저녘떄만 되면 따끔거리는 거야.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애잔하다는 말을 몰랐던 거지, 심장 병인 줄 알았으니.
이런 일이 생각난 것도 지난번에 당신이 이 방에서 나갔을 때 비슷한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야.
저 실크 속옷이라든가 그것을 벗겼을 때의 살색 같은 것을 이미 아는 남자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나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아 J. 그건 몰랐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거야.
나와 J는 모두 몇 번 잤을까.
어떤 방식으로 살을 섞고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처음 다섯 번째까지 정도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그의 얼굴은 깊숙한 맛을 더해 갔다.
약간 고통이 담긴 듯한 표정이 매우 사랑스럽게 여겨졌다.
왜 사람들은 성적인 쾌락을 느낄 때 아픔을 느꼈을 때와 비슷한 표정을 짓는 것일까.
황홀하게 입술이 녹아드는 듯이 육체의 문이 열린 후에 찾아오는 약한 고통, 육체의 쾌락과 마음의 쾌락이 동거하고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쾌락에 몸을 맡길 때마다 잃어버리는 무엇인가의 존재를 우려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는 그때의 내가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픈 것과 기분 좋은 것은 닳은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
쾌락에 숨이 막히는 것과 고통에 호홉이 멎어 버리는 것과 구별하기 힘들다.나의 엑스터시는 항상 막연한 불안감과 잇닿아 있다.
나는 그럴 때 언제나 이렇게 생각한다.
이대로 세상이 끝나 버리면 좋겠다고, 온 세계의 모든 시계가 파괴되어 버리면 좋겠다고,
물론 제정신을 차려 보면 세상은 그대로 움직이고 있으며, 시계도 시간을 새기고 있다.
이 일에 나는 항상 실망한다.
섹스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내가 허리를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도 어떤 나라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또 다른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남자와의 섹스는 특등품이다.
잠자리의 쾌락을 아는 사람에게 세계의 불행을 걱정할 자격이 있을까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세게의 위기보다 지금의 나에게는 남자의 손가락 놀림 쪽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뒤 나는 그런 나 자신을 약간 부끄럽게 여긴다.
쾌락을 다 마친 후 사람은 일종의 도덕가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사랑과 섹스가 연결되면 방탕한 시간이 생긴다.
그것은 너무나도 개인적으로 모든 도덕을 거절한다.
어느 날 나는 J의 방에서 머리핀을 발견했다.
우연히 들여다본 침대 밑에 그것은 떨어져 있었다.
가짜 보석이 많이 달린 귀여운 그것을 보고 나는 젊은 여자의 존재를 느꼈다.
어떤 여자애일까.
나는 그 머리핀을 만지작거리면서 희미하게 상상했다.
그가 빼 주었는지 아니면 그 여자애가 뺐는지, 하여튼 머리가 긴 여자애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위에 있을 때 머리핀이 떼어졌다면 까만 머리가 그의 어깨에 흘려내려 얼마나 성적 매력을 더해 주었을까.
내 머리는 짧다.
목에 키스할 때는 편리하니까 괜찮아 하고 나는 생각하고 머리핀을 원래 장소에 돌려놓았다.
우리는 평소처럼 섹스했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실 그는 나와의 시간을 소중히 다루었다.
나를 보면 기다렸었다는 욕망을 언제나 얼굴에 띠었다.
나는 이것에 답하는 일이 조금도 싫증 나지 않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입맞춤을 하고, 어둠 속에서 손끝으로 서로의 피부를 데워 주는 것을 사랑했다.
이런 때 옛날의 나였다면, 이젠 떨어질 수 없어라든지, 나는 당신 거야, 등의 진부한 대사를 입에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는 미래에 관해서 생각할 힘은 없고 나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자기를 다른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性愛를 감미롭게 하기 위한 연기다.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의식하지 않은 채 자기 자신에게 연기를 한다.
나는 더 이상 연기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이 조금 슬프다.
나는 구체적인 현상만을 믿는다.
J의 손길이 닿으면 눈물이 고인다거나, 소리 아닌 소리가 그의 팔에 힘을 주게 한다거나,
서로 손가락을 맞잡으면 사랑스러움이 솟구쳐 정열적인 말이 만들어지는 것들을,
즉 거짓말하지 않는 몸이 말하는 것을 나는 믿고 싶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위해 우리는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았던가.
자기 전에는 그렇게도 원했었는데, 아직은 끝내고 싶지 않다.
내가 공유하는 시간이 다 되었다고 느낀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그의 베개 밑에 립스틱이 있었던 것이다.
머리핀을 발견했을 때는 그 여자애가 떨어뜨린 것을 모르고 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기의 존재를 나에게 알리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침대 위에서 립스틱을 바르는 여자는 없다.
그녀가 일부러 그것을 베개 밑에 넣어 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나를 안은 뒤의 곤한 잠에 빠져 잇는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이 남자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여기까지 계속된 것은 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나는 더 갖고 싶은 것일까.
아직도 이 남자한테서 엮어져 나오는 것이 남아 있는 것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내 시선이 침대 옆 탁자에 머문다.
아침에 읽은 신문이 그대로 널려 있다.
그것을 들고 익숙지 않은 영어를 흝어본다.
마음이 애잔해지는 것을 심장의 병이라고 생각했었다니 바보 같은 사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정신을 빼앗겼던 거야.
나는 신문 기사에서 두 개의 단어를 고르기 위해 주의를 기울인다.
그 단어란, 'good' 과 'by', 'bye'는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이걸로 됐어. 뜻은 같은데 뭐,
나에게는 작별 편지인데, 자세히 보니 로비 이스트와 정치가에 관한 기사 위에 줄이 쳐져 있어서, 쓴웃음이 나왔다.
전혀 로맨틱하지 못한 이별이 서글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알고 싶은 거야, 새로운 뉴스를, 모르는 말로, 우리는 서로에 관한 사실을 전했을 따름이다. (p120)
※ 이 글은 <120% COOOL>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입니다.
야마다 에이미 - 120% COOOL
역자 - 박정윤
웅진출판 - 1994.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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