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 수성 에세이」
속이 뒤집어진다
이연희
"에구~ 내가 정말 엄마 때문에 못 살겠다."
엄마가 또 내 속을 확 뒤집는다. 엄마는 수시로 내 속을 긁어놓는다. 남이 눈치채지 않게 은근히 속상하게 한다. 내가 힘드니, 요양보호사가 있을 때 목욕하라고 애원하다시피 부탁했다. 내 아픈 사정을 알면서도 엄마는 그냥 모르쇠로 나간다. (다른 일도 많은) 요양보호사(에게) 가 다른 일도 많이 하는데 미안해서 말을 못 하겠단다.(다나 뭐라나.) 요양보호사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나한테 시킨다.
칠십이 다 되어가는 햇√늙은이(인)가 나보다 살집이 더 많은 엄마를 목욕시키려니 힘이 든다. 열악한 환경의 욕실에서 거꾸로 엎드리다시피 해서 등을 밀고 몸을 씻기고 나면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어지럽다. 지은 지 육십√년 넘은 단독주택의 욕실이 오죽할까. 매사에 야물지 못하고 몸도 물렁팥죽인 나는 엄마를 목욕시키고 나면 얼굴과 머리에 구슬 같은 땀이 줄줄 흐른다. 어깨 석회화건염으로 팔도 어깨도 신통치 않아 엄마 목욕시키는 게 힘이 들어 죽을 맛이다. 왜 매일 오는 요양보호사 두고 일요일에만 들리는 나한테 목욕시켜 달라고 할까?
"네가 김 선생보다 더 살뜰하게 잘 씻겨주잖아(.)"
(아이고, 죽겠다.)
나에게는 두 분의 엄마가 있다. 나를 낳은 엄마는 산후가 좋지 않아 더 이상 출산을 못 하게 되었다. 그 시절 종가의 맏며느리가 딸 하나만으로 끝낼 수는 없지 않은가! 명문 K 여고 출신의 자존심 센 엄마는 과감히 종부의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엄마가 먼저 합의이혼을 제안했다고 들었다. 당시 교사로 외지에 계시던 아버지께 고모가 찾아가서 이혼을 막으려고 애도 많이 썼다고 한다. 양반집에서 이혼이 당치않다고 온 대소가가 말려도 소용이 없었단다. 이혼을 하고 두 돌이 채 안 된 나를 떼놓고 엄마는 떠나갔다.
몇 년 후 새엄마가 들어와 알밤 같은 아들을 연년생으로 셋이나 낳았다. 오매불망 손자를 바라던 할머니의 원이 풀렸다. 심성이 고운 편인 새엄마였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 경제 사정과 날카로운 아버지 성정 그리고 양육에 지쳐서 얼굴엔 늘 그늘이 있었다. 새엄마의 웃는 얼굴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나는 친엄마의 소식을 모르고 살았다. 사실 별로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데 뭐가 (그리) 애틋하고 그리울까. 행여 친엄마를 몰래 만날까 단속이 심하고 무서운 아버지라 결혼 후에야 겨우 몰래 내왕을 할 수가 있었다. 만나보기 전에는 얼굴도 기억이 안 나 길에서 만나도 못 알아볼 것이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던 친엄마는 나이가 들자 내게 의지하고 싶은 맘을 비췄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일찍 헤어져 공유한 기억이 하나도(별로) 없고 애틋한 마음조차 없었기에 내 생활이 제약받는 게 싫었다.
나의 거절로 엄마는 십여 년을 요양원에서 생활하다 돌아가셨다. 마지막 이 년 동안(이태 동안) 파티마병원에 입ㆍ퇴원을 일상생활 하듯이 반복했다. 처음에는 집 가까운 요양병원에 모셔놓고 매일 찾아갔었다. 요양병원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고 하기에 반찬을 해 날랐다. 긴병에는 효자 없다고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 일주일에 두 번씩만 찾아갔다.
"너희 집에 가서 나을 때까지 좀 있으면 안 되나?"
"싫다. 안 된다. 내 비위가 약해 대소변 못 받아낸다. 팔 아프고 출근도 해야 하는데 우리 집에 오면 난 어쩌라고(,) 안 된다."
강한 내 (단호한) 거절에 고개 돌려 눈물 닦던 모습이 요즈음도 가끔 떠오른다. 코로나 사태가 불거지기 직전에 엄마는 돌아가셨다. 내가 엄마를 목욕시켜드린 건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친엄마는 목욕을 몇 번 시켜드리지도 못하고 하늘 여행 보냈다. 그런데 새엄마는(를) 매주 힘에 부치게 목욕시키려니 속이 상한다. 괜히 돌아가신 친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목욕시키고 나면 나는 팔과 어깨가 아파 병원 신세를 질 때도 종종 있다. 발뒤꿈치까지 밀어주길 바라는 새엄마한테 성이 나지만 성질을 낼 수도 없다. (새)엄마는 11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그로 인한 경증 치매도 있기 때문이다. 뜻대로 안 되면 어디서나 소리 지르는 걸 예사로 한다. 예전에는 음전한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였던 새엄마였는데 어느새 목소리 큰 여전사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미안함도(이나) 부끄러움도 엄마의 몫이 아니다. (무뎌진 새엄마다.) 나는 오늘도 속으로 돌아가신 친엄마한테 먼저 죄송하다고 말하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새엄마를 목욕시킨다.
"미안해 엄마~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니 이해해줘."
※ 이 글은 <카페. 수성 에세이>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글 - 이연희
카페. 수성 에세이 - cafe.daum.net/suseong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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