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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의 서재 - 책 속에서 발견한 가지 않은 길, 가고 싶은 길

by 탄천사랑 2022. 11. 8.

월간 국회도서관 - 2022. 11.」  



겉은 여린 꽃이지만 속은 단단한 바위다. 고비마다 승부를 걸면서 살아왔다.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다른 길을 선택했다. 선택되기보다 선택하는 삶을 살았다. 
타인의 인정을 바라기보다 자신의 인정을 구했다. 그럭저럭 객체로 남기보다 열렬한 주체이고 싶었다. 
고민정 의원의 서재는 모든 선택의 중심에 있었던 그의 마음이 향하는 본원이다. 
글 임지영 사진 최충식
고민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바이블이 된 『강의』와 개인적 기록으로 남은 『태백산맥』 
책으로 빠지는 길은 참 여러 갈래다. 
고민정 의원에게 그 길은 ‘놀면서 배운다’는 유태인의 학습관처럼 자연스러운 놀이의 길이었다. 

“어릴 때 읽은 책 중 특별히 영향을 받은 책은 없어요. 
 교과서나 탐구 생활에 소개된 책을 읽은 게 전부였을 거예요. 
 ‘독서’라고 부를 만한 습관을 붙인 것은 대학에 입학한 후예요. 
 비로소 독서가 재미있는, 즐길 만한 취향으로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책을 읽는 것도 좋았지만, 어릴 적 읽은 동화를 ‘전지적 어른 관점’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도 좋았다. 

“젠더적 관점에서 동화들을 해석하곤 했어요. 
 어릴 때 읽은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왕자가 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 
 그사랑을 택하고 그 대가로 물거품이 되죠. 
 나중에 커서 다시 읽으니 똑같은 이야기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로 읽혔어요.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대가로 두 다리를 얻었고, 
 독립을 얻기는 했지만 대신 부모의 보호와 모든 것을 잃었으니까요.” 

여성에게 사랑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설파하고 싶어,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희생하는 결말을 비틀고 싶어 
한때는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동화’를 써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사고의 세계를 뒤흔든 신영복 선생의 글을 만났다. 

“특히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는 너무 많이 읽어 이제 제게는 바이블이 되었어요. 
 짧은 글도 있고 서화도 있고 깊은 시선에서의 해석도 어우러진 책입니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어떤 정치적 현안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여 고민할 때 이 책을 많이 참고합니다.” 

신영복 선생의 저서들로 인해 독서의 묘미를 깨달을 때쯤 동아리 모임을 통해 지금의 남편이 된 선배 조기영 시인을 만났다. 

한참 선배인 그로부터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추천받았다. 열 권으로 구성된 대하소설은 속독이 녹록치 않았다. 

세 권째까지는 등장인물,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외우기도 벅찼다. 인물의 이름을 메모해가며 겨우 읽었다. 그만둘까 싶었는데 세 권을 넘기고 나니 거짓말처럼 소설의 큰 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네 권째부터는 속도가 붙어 마지막 열 권까지 쉼표 없이 ‘직진’했다. 

마지막 권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에베레스트 정상에라도 오른 양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이 따랐다. 

그때가 대학 2학년, 한 편의 소설이 끝나고 또 한 편의 소설이 시작되었다. 

“저를 만나고는 싶은데 나이 차이는 열한 살이나 나죠. 
  만날 이유를 만들어야 되는데 딱히 이유는 없고, 
  열 권이나 되는 『태백산맥』이 저를 만나기에 딱 좋은 수단이었던 것이었죠.” 


서점은 온 가족이 가장 즐기는 피크닉 장소 
이미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지만, 그는 그 남자, 그러니까 『태백산맥』으로 그의 마음을 얻은 책을 사랑하는 시인과 결혼했다. 

집에는 언제나 가구나 살림보다 책이 더 많았다. 이사할 때마다 책을 한아름 솎아내곤 했다. 서재는 지식, 아니 책의 홍수 지대였다. 

거실의 제일 큰 벽면은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등장하는 비밀의 서재처럼 온통 책으로 채워져 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쌓아올려져 있는데 그것으로도 부족해 아이들 방까지 책꽂이를 들여놓았다. 집이라는 공간이 미처 감당하지 

못한 책들은 지역 사무실에 가져다 놓았다. 어쩌면 그 책들을 읽을 지역 주민들이 있을지 몰라서였다. 책을 솎는 데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 도서목록 1호는 남편이 학창시절 모은 손때 묻은 책들이다. 

“남편은 80년대 학번이에요. 
  옛날 사회민주주의 관련 서적이나 사회, 인문학 서적들은 개정판이 나와서 새롭게 해석된 책들이 있어요. 
  그런데 당시 손때 묻히며 읽었던, 해석이 좀 불안정한 책들을 굳이 버리지 못하더라고요. 
  맨날 그 책들을 놓고 그만 버리자, 아니다 더 읽어야 한다, 싸우죠(웃음).” 

책은 가족을 잇는 가장 친숙한 매개다. 그는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이나 칭찬처럼 접하게 했다. 덕분에 아이들은 독서를 ‘즐거운 놀이’로 여기게 되었다. 

“애들이 뭔가를 잘했다, 
  그러면 저희는 서점을 갑니다. 
  밥을 잘 먹었다든가 엄마, 아빠의 부탁을 잘 들어줬다든가 
  동생하고 안 싸웠다든가 하는 칭찬거리가 있으면 다 같이 소풍을 가듯 서점으로 향하죠.” 

그가 ‘그 녀석들’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서점으로 떠나는 여행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아이들이 읽을 책을 골라주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미션’이다. 고전에 해당되는 동화책들은 이미 어린 시절에 다 읽었고, 최신작 중 소설부터 과학, 사회 분야 서적들까지 다양하게 읽히고 싶은 것은 엄마의 욕심이다. 하지만 그는 엄마의 욕심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생각, 선택이 엄마의 직업이나 시선에 갇히는 것이 두려워서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에게 엄마의 직업을 ‘회사원’이라고 소개했을까. 

“5학년인 큰 녀석과 2학년인 작은 녀석 둘 다 책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아요. 
 무엇이든 다 읽게 장려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설사 집어 든 책이 만화책일지라도 칭찬해 줬어요. 
 위인전이든 만화책이든 종이를 접하는 체험 자체가 소중하다고 여겼거든요.” 

한때는 여유가 생기면 무조건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다는 부부,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 게 유일한 불만이었다는 엄마와 아빠의 일상은 어느덧 아이들의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투영되었다. 

“저희 가족이 제일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이제 책 보자’는 말이에요. 
  그리고 엄마와 아빠 옆에는 늘 책이 있어요.” 

매일 책을 읽는 엄마와 아빠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애서가의 DNA를 지니게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느리고 더뎌 보여도 끈질기고 강한 이유 
생꽃길만 걸었을 것 같지만, 의외의 가시밭길도 걸었다. 걸음이 유난히 더디고 힘겹게 느껴질 때면 그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떠올리곤 했다. 사랑과 죽음, 그리고 생에 대한 아주 무겁고 아주 가벼운 네 명의 남녀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그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는 것은, 테레사가 갈등을 겪고 있는 자신의 엄마에게 한 말이었다. 

“나는 너를 위해 희생했는데 너는 왜 내 말을 듣지 않느냐고 따지는 엄마에게 테레사는 말하죠. 
  나는 한 번도 당신에게 희생을 요구한 적이 없는데 왜 늘 내게 희생을 했다고 얘기하느냐고. 
  당신은 당신의 선택으로 그렇게 한 것이고 나는 내 선택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말이지요. 
  그 말은 옳아요. 
  누구나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집니다.” 

정계 입문 후 그는 총선에서 한 번, 당내 경선에서 한 번 모두 두 번의 선거에서 이겼다. 두 번의 승리는 ‘고민정’이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정치적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만족스러운 지점에 안온하게 머물지 않았다. 청와대 근무 시절에는 몇 번 사표를 던졌고 출근을 하지 않은 적도 있다. 스스로 설득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항의였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기도 하고, 과감하게 다른 길을 가기도 했다. 1급 승진과 부대변인에서 대변인으로의 수직 상승은 모두 그 스스로 돌파하고 싸워서 얻어낸 것들이다. 방송사 입사 6년도 안 돼 휴직을 하고 중국으로 1년간 유학을 떠났다. KBS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정치권을 택했다. 

21대 총선에 출마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쉬운 지역구를 마다하고 정면승부를 택했다. 이왕이면 센 사람과 붙고 싶었고, 서울 광진 을에서 서울 시장 출신의 오세훈 후보를 만났다. 세상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 그리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고민정만이 할 수 있는 선택, 실리나 명분보다 ‘마음’이 우선이었기에 갈 수 있는길이었다. 정치인이 된 후 정치를 읽는 눈을 키우고 리더십을 쌓고 싶었던 그는 정치나 정당에 관한 책들을 다독했다. 어느 날 지인이 그에게 ‘의원님이 롤 모델로 삼으셨으면 좋겠습니다’하고 책 한 권을 건넸다. 『메르켈 리더십』이었다. 

“메르켈은 어릴 적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어요. 
  하루는 체육시간에 다이빙대에 올라갔는데 아래에서 ‘메르켈! 넌 겁쟁이라 못 뛰어내릴 걸’이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메르켈은 한참을 미동도 않고 서 있었어요. 
  그대로 내려올 것만 같던 소녀는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 아득히 높기만 한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렸죠. 
  이 책은 메르켈이라는 리더에 관한 책이자 진심에 관한 책이에요.” 

뻔한 리더십에 관한 교훈이 아니라 ‘진심’에 관한 책이라는 점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듯했다. 책은 딱 절반쯤에 갈피가 꽂혀 있다. 

“요즘은 너무 바빠 책을 잘 읽지 못해요. 
  저도 그게 불만이에요. 
  절반만 읽었는데도 공감할 만한 부분이 꽤 많아요. 
  메르켈에게서 저를 보기도 하고요.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머지 절반은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읽고 싶어요. 
  아니, 꼭 읽을 거예요.” 


언제나 전율을 지속하는 나침반이고 싶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테레사가 그랬듯, 분열된 국론을 아울러야 했던 메르켈이 그랬듯 선택도 책임도 그의 몫이었다. 2017년 2월 4일, 그는 북 콘서트에서 인재 영입으로 합류하며 한 통의 편지를 낭독했다. 문재인 후보에게 쓰는 편지였다. 

- 모두 어려울 때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어 주십시오. 
   나침반 속 지남철은 늘 여윈 바늘 끝을 떱니다. 
   하지만 그 전율이 멈추면 더 이상 지남철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기득권은 끊임없이 대표님을 흔들겠지만, 
   전율을 멈추지 않고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돈이나 권력이 아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살고 싶은 세상,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주십시오. 
   저 또한 작은 지남철이 되어 그 길을 함께 하겠습니다. -

나침반의 떨림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떨림을 멈춘 나침반은 더 이상 나침반이 아니라는 가르침은 지금도 금언처럼 가슴에 새기고 있다. 이전까지 고민정이라는 정치인의 성장을 고민했다면 지금은 그가 속한 당, 대한민국을 이루는 거대한 한 축인 당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때로는 다수의 의견에 반하는 의견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당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정치인은 늘 선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에는 자신의 판단이 맞았는지 틀렸는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나침반의 떨림인 셈이다. 

“아직 고민이 많은 것을 보면 나침반이 쓸 만한 것 같아요. 
  고민 없이 결정을 내리는 때가 올까요? 
  만약 온다면, 그때야말로 제가 경계해야 될 삶이라고 생각해요.” 

고민도 많고 정도 많아 ‘고민정’이라며 웃는 그는 남편 조기영 시인과 함께 꾸린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이라는 바람이 내게로 불어왔다』를 펴냈다. 책의 서문은 이렇게 장식되어 있다. 

‘내게는 특별한 시인이 있다. 
 시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올 때면 꽃향기가 났고, 
 그의 시를 가슴에 품었을 땐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그 사랑은 그로 하여금 세상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게 했다.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마음의 눈으로 발견하게 했다. 그를 스쳐간 수많은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이 말하지 않는, 일일이 고하지 않는 우주의 소리를 오늘도 그는 책이라는 소라 껍데기를 통해 귀 기울여 듣는다. 진심으로, 진심을 다해.


월간 국회도서관 https://www.nanet.go.kr/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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