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위하여」
70년대의 한국판 '代父'
지난 70년대에 나는 '대부(代父)'라는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 정치가 대부의 세계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한탄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장관은 청와대에서 누구에게 매를 맞았고,
어떤 국회의원은 정보부에 끌러가 수염을 다 뽑혔고,
대통령 경호실장은 권총을 빼들고 자주 남을 위헙한다는 등 그 당시 별의별 소리가 다 흘러 나오지 않았습니까?
국민들은 두려워서 극도로 말조삼을 했고, 언론은 침묵했고,
어느 누구도 감히 권력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못했습니다만,
그들은 결국 '대부'의 마피아들처럼 서로 총잘을 하며 끝나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상황은 그 때와 많이 달라졌다 해도 정부는 깨끗이 그런 잔재를 씻어 내야 합니다.
공포를 이용하여 남을 다스리려는 사람은 '대부'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대통령이 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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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통령'이 되는 길은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라는 평범한 말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으나
성공한 대통령이 별로 없었던 것은 눈 앞에 보이는 국민보다 추상적인 목표를 중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익을 위해서' 라든가,
'역사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서' 라는 말로 국민을 채찍질하는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이 너무 영웅적인 이상에 불타서 국민을 몰고 가려는 것이 바로 독재의 시작입니다.
박 대통령과의 기차 여행
71년 말, 대통령에게
'국가 보위에 관한 비상대권'을 주는 법을 의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청와대의 엄포가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때, 나는 명동성당에서 성탄미사 강론을 하면서 "정부 여당에게 묻는다"고 전제하고,
"이런 비상대권을 대통령한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인가?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 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주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 미사는 KBS-TV로 생중계 방송이 되고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그 방송을 보고 있다가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니까 중계방송 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중계방송 책임자가 자리에 없어서 즉각 중단되지는 않았는데,
그 바람에 그 분은 그만 회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나 때문에 언론인이 희생된 것입니다.
나중에 중계방송이 중단되었으나, 그 때는 거의 다 나간 뒤었습니다.
그 이튼 날, 비상 각의가 열렸으나 마침 대연각 화재 사건이 발생해서 그 일은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듬해 봄인가, '대화를 하자'고 해서 박정희 대통령과 같이 기차를 타고 진해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화보다는 거의 일방적으로 박 대통령이 말을 하고, 나는 듣기만 했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대화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는데....,
그 때 느낀 것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 애정을 가진 애국자이고 우국지사이지만,
그것을 모두 자기 손으로 가꾸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수많은 사람이 수족처럼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침 그 날은 식목일 다음 날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내려갔는데, 비서실장이 메모지를 들고 항상 대통령 곁에서 있습니다
대통령이 밖을 가리키며
"비서실장, 저거 봐! 나무가 없잖아! 저기 어디지?" 그러면 비서실장이
"천안 어딘 것 같습니다" 라고 답하면서, 들고 있는 메모지에 적습니다. 박 대통령은 또 걱정합니다.
"주교님, 저 둑 좀 보십시요.
대한민국이 이래요.!"
김천 쯤을 지나는데, 박 대통령이 나 보고
"주교님, 여기가 무슨 역입니까?" 묻더군요. 그래서
"지금 대신역일 겁니다'라고 답했더니
"아, 그렇습니까?
저 플라타너스를 전지(剪枝)해서는 안 되는데,
저렇게 전지를 했어요" 하더니. 철도청 차장을 불러서 누가 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됩니까?
대통령이 무서워서 전지 하나도 마음대로 못하고 눈치 볼 것 아니겠습니까?
권위주의자의 권위
정차가에게 권위는 중요한 것입니다.
독알에서 공부할 당시, 아데나워가 수상이었는데, 그가 한 마디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쉽게 거부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나와 나의 정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말로 '모아 에몽 구베르느망' 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뭔가 비위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에 안 들지만 재미난다는 식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만큼 드골은 권위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도 그같은 아버지로서의 권위,
스승으로서의 권위가 자연스럽게 존재한다면 바람직 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야만 사회질서가 확립되어 갈 것입니다.
이승만 박사도 어떤 의미에서는 권위주의자였습니다.
그래도 그분의 권위를 그 시대에는 인정했습니다.
그분이 하야하고 이화장(梨花莊)으로 갈 때, 국민들이 박수를 친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당시 내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들은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히려 당신들보다 훨씬 더 크리스찬이다.
말하자면 원수끼리도 포용할 수 있다"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분은 원수는 아닙니다)
하여튼 그분의 좋은 점만은 인정할 줄 아는 아량을 우리 국민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나는 이승만 박사가 권위로써 민주주의 기틀을 잡아 주었더라면,
얼마나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해서 4.19가 났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같은 기대를 가져 보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비판받을 수 있는 점도 많았지만,
3선까지는 어떻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내고 민주주의 기틀을 잡아 놓고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심을 천심으로 아십시오
정치인으로서 어떤 인물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인가.
원리적으로 보면 '모든 사람의 자유와 책임의식에 바탕을 둔 도덕적인 힘에 의해
인간과 사회의 자기 완성이라는 공동선(共同善)을 향해 수고하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도덕적 힘이 아니라,
기계적이고 폭군적인 힘에 의거하는 정치인은 반드시 패망합니다.
공자는 자신에게 정치를 맡겨 주면 '1년은 어지간히 다스리고, 3년이면 융성'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1년이나 3년의 시간적 여건을 거론했다기보다 정치에는
'정의로운 명분이 늘 있어야 한다(必也正名乎)는 의미에서 덕치(德治)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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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전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과거에 정치가의 아내였으나 가정주부로서,
마르코스가 그녀의 가장 큰 약점으로 공개적으로 멸시 하다시피 말한 대로 아무런 정치적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얻고 여러 가지 시련과 난관을 이겨 내며 민주화를 착실히 정착시켜 갔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을 믿고 하나님에게 의지하면서 국민을 존중하고,
민심을 천심으로 알고 따르며,
진리와 정의를 실천하고, 아울러 적대자에게까지도 관용을 베푸는 화해를 추구하며 일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누구나 상식적으로 아는 정치의 정도(正道)와 양식을 따르며 성실하고 정직하게,
또 겸손한 마음으로 일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 지도자도 힘과 어거지로 정치를 하려고 하지 말고
상식으로 돌아가서 정치의 정도를 따르고 국민의 뜻을 존중할 줄 알면 됩니다.
잘못이 있을 때에는 이를 솔직히 시인하는 정직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는 쉽게 풀릴 것입니다. (p194)
※ 상기 글은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위하여> 일부를 필사한 것임.
김수환 -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위하여
엮음 - 신치구
사람과사람 - 1994.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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