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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경-눈물을 그치는 타이밍/내겐 너무 특별한 무엇

by 탄천사랑 2022. 3. 2.

이애경 -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개업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손님 하나 없는 핀란드 헬싱키의 카모메 식당,
그곳에는 매일 컵을 닦고 청소하며 손님을 기다린다
가끔씩은 테이블 앞에 앉아 졸기도 하는 작고 단아한 여인이 있다.
소소한 일상과 감동을 느릿하게 담아낸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かもめ食堂)>의 주인공 사치에다.
그리고 기묘한 이유로 그녀와 함께 기거하게 된 두 여인.

영화는 이들에게 어떤 과거가 있는지, 어떤 인생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미도리는 이유가 불분명한 눈물을 한 번 찔끔 흘릴 뿐이고,
마사코는 바다를 바라보며 이따금 잃어버린 짐을 찾는 전화를 할 뿐이다.
대신 영화는 세 명의 여인에게 왜 이곳 핀란드까지 오게 됐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는 뭐든 잘될 것 같았어요." - 사치에
"눈을 감고 지도를 찍었는데 핀란드가 나왔어요." - 미도리
"에어 기타(air guitar) 대회를 보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 마사코


그들은 도도한 목표나 번쩍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나오지 않았다.
그랬다면 뉴욕이나 다른 대도시로 갔을 것이다.
세 여인이 선택한 곳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곳,
느긋하고 느린 숲의 도시 헬싱키다.


어떤 것을 결정할 때 꼭 특별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심장 깊숙이 꼭꼭 숨겨 두었거나 미루어 놓았던 열정이 비집고 나오는 순간,
혹은 마음속에서 미세한 진동을 느낄 때 어떤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 선택의 순간은 꽃이 피어나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오직 나에게만 전달되는 감동에서 비롯될 수 있다.
혹은 무작정 역에 가 곧 출발하는 기차표를 사서 떠나는 것처럼
순식간에 올라오는 두근거림으로 결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결정하든지 간에 내가 결정하기에 특별해진다는 사실.
때문에 결정한 곳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작지만 큰 실행은 나에 대한 예의이자 존경심의 표현이다.
내 결정의 특별함을 믿어 주고 기다려 주는 것 또한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특권.
다른 사람의 결정을 흉내 내지 않고,  타인의 속도를 따라가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가는 것.
헬싱키의 그들이 특별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p208)

※ 이 글은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이애경 -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허밍버드 - 2013.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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