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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참으로 사람답게 살기위하여/仙人과 俗人의 차이

by 탄천사랑 2022. 3. 12.

김수환 -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위하여

 

 

86년 10월 쯤인 것으로 기억되는데,
외국 여행을 떠나려는데 마침 여야 국회의원 몇 분이 김포공항에 나오셨길래 농담삼아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평지에서는 마음을 닫고 지내니까 정치도 대화도 질 안되는 모양이니,
   산에 올라가 대화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한 분이  '그 말이 그럴 듯도 하다' 면서, 한자풀이를 해 보이더군요.
'사람(人)이 산(山)에 오르면 신선(仙)이 되지만,
  사람(人)이 골짜기(谷)에 내려오면 세속(俗)이 되고 만다.'고 말입니다.


나쁜 사람만 골랐을까?
정치는 본시 참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란 인간 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인간을 성장시키고 풍요하게 만들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치의 바탕도 역시 인간에 대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언젠가 <성탄 메시지>에서 정치나 경제의 윤리적-정신적 바탕은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귀담아 듣는 분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설교할 때나 사랑이지, 정치나 경제에 무슨 사랑이 설 자리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흔히
'정치는 본래 그런 거다.'
'정치라는 것은 으레 썩은 거다.'
'이것이 정치 현실이다.' 등등, 지난날 종교인들이 정치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발언을 하면,
정치인들은 종교인들이 정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정치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인가.
정말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닐 겁니다.
정치는 정말로 우리들을 위한 정치, 우리가 주인이라는 의식과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되어 나가야 합니다.
--


위 쳐다보면 하늘밖에 안 보인다.
정부-여당 안에는 훌륭한 브레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치 권력구조라고 할까, 

체제에 들어가면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그만 눈도 어두워지고, 잘못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의식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의식화'라고 하면,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남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 가고 있는가,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농민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우리의 이웃 형제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가 하는 것을 올바르게 알고 오늘의 역사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 의식화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의식화'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는 '용공'으로 매도되고 있는 것 같은데,
참된 의미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의 의식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만큼 발전했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밑바닥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을 체험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잘 사는 사람들은 못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못 사는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또 못 사는 사람들은 잘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도 잘 모릅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

 

백성의 눈물 닦아 주는 정치
진실로 우리나라는 정치가 잘못됨으로써 모든 것이 그르쳐지고 있습니다.
국민과의 신뢰도 그렇습니다.
정치를 믿지 않으니 국민들 서로가 믿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기 중심의 이기주의- 물질주의에 빠지고
도덕적으로 타락되고 형편없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정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우리부터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상호 보완적인 노력으로써만이 가능합니다.
일방적인 믿음의 강요는 실상 불신을 조장하는것이 될 뿐입니다.
남으로부터 믿음을 받으려면, 먼저 믿을 수 있는 자신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믿음은 또한 이제까지의 불신의 원인을 밝혀 내어 스스로 불신의 소지를 지워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과 화해는 나와 의견을 다리하는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같이 껴안을 수 있는 자세로부터 나옵니다.
나는 우리나라 우리 국민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국민의 대열로부터 인위적으로 낙오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음은 미음을 낳고, 마침내는 분열을 낳습니다.
우리는 국토의 분단과 민족의 분열이라는 현실 위에 서 있습니다.
더 이상 쪼개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 민족은 누구보다도 사랑과 화해의 일치를 지향해야할 시점과 위치에 서 있는 것입니다. (p206)
※ 이 글은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위하여>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김수환 -  김수환 추기경의 세상사는 이야기(참으로 사람답게 살기위하여)

엮음 - 신치구
사람과사람  - 1994.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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