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영 -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그런 기분 알아?
돌아갈 곳은 분명히 있는데 그곳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모를 때 심정 말아야.
뉴올리언스에 도착한 첫날,
야경을 보겠다고 해 질 무렵 혼자 숙소에서 나와 몇 시간 동안 드라이브를 즐겼다.
그러다 피곤해져서 숙소로 돌아갈 때쯤 그만 길을 잃어버린거야.
차에 내비게이션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길을 잃어버릴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갑자기 네비게이션이 먹통아 돼버린 거야.
처음에는 그냥 배터리가 다 된 줄 알고 충전 케이블을 연결했는데 그래도 내비게이션이 말을 듣지 않았어.
그래서 그냥 지도를 보면서 가려고 지도를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지도가 없는 거야.
그제야 난 숙소에서 나올 때 지도를 가져오지 않았고.
심지어 숙소의 주소와 연락처도 챙기지 않았다는 걸 알았어.
그 순간,
얼마나 당황스럽고 아찔했던지 갑자기 아랫배가 쑤시면서 아프기 시작했어.
내가 아는 거라곤 오직 숙소 이름뿐,
거리 이름도 몰랐고,
그게 대략 어디쯤 인지도 기억나지 않았어.
담배 몇 개비를 허비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면서
무작정 내가 왔을 법한 길을 거슬러 가는데 점점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만 같았어.
주위를 아무리 둘려봐도 모든 게 낮설기만 했거든.
뉴올라언스는 길이 워낙 미로처럼 되어 있는데다,
몇 년 전 불어닥친 태풍으로 도시 전체가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융단 폭격을 맞은
독일의 드레스텐처럼 페허가 돼버렸거든.
그곳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는 바람에 집이 절반도 넘게 비었대.
시간이 늦어서 거리엔 오가는 사람들도 없었어.
설령 있다 해도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결국 몇 시간 동안 헤매다 지쳐서 어딘지도 모르는 어두운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 멍하니 앉아 있었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륵 흘러내리더군.
돌아갈 길을 모르는 내가 처량하게 느껴졌고 그러다 왈칵 무서워졌거든,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계속 쏱아지는데 정말 대책이 없었어.
그렇게 한참을 울고 앉았는데
갑자기 내 뒤로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이는 불빛이 켜지면서 순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거야.
엉뚱한 짓 하지 말고 손을 잘 보이게 해서 차에서 내리라는 마이크 소리가 들렸어.
난 또 한 번 당황하면서 서둘러 눈물을 닦고 아주 기다시피 해서 천천히 차에서 내렸지.
그랬더니 경찰이 내게로 다가오면서 손전등으로 내 얼굴을 비추더라.
경찰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내가 방금 전까지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당황하더라.
아마 그때 누구라도 날 봤다면 내가 울고 잇었다는 사실을 알아챘겠지.
경찰은 순찰차에 타고 있던 동료에게 사이렌과 라이트를 끄라고 지시했어.
그리고 나더러 여기에 차를 세워두면 안 된다고 했어.
그는 내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
내가 강도라도 만난 줄 알았나봐.
난 터지려는 눈물을 꾹 참으며 처음 놀이동산에 갔다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말했어.
"바보 같지만 길을 잃어버렸어요.
내비게이션을 따라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갑자기 고장이 나는 바람에 ....,"
그는 숙소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더니 순찰차로 돌아가서 어디론가 무전을 치더라.
그의 동료가 내게로 와 이런저런 걸 물었어.
차로 갔던 다른 한 명이 다시 내게로 와서 내가 묵는 숙소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네더군.
난 그 쪽지를 받아들고 이렇게 물었어.
"그런데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죠?"
그제야 그들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걸 알았던 거지.
그들은 한참을 뭐라고 설명하더니 내가 잘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했는지 자기들을 따라오라고 그러더군.
그들은 내 앞을 천천히 달리면서 내가 묵고 있는 숙소까지 데려다줬어.
뉴 올리언스 거리를 삼십분이나 달려서 말이지.
도착하자마자 너무 고맙다고 하자,
그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어서 방에 가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좀 쉬라고 했어.
많이 힘들어 보인다며,
그리고 한국은 어떤지 모르지만 미국은 정말 큰 나라니까 다음부턴 지도를 꼭 가지고 다니라고 당부하고선 돌아갔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서 생각헸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에 대해서,
돌아갈 길을 모르는 바보가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경험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가끔은 바보가 되어 누군가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준다는 것이 얼마나 괜찮은 일인가에 대해서도,
지긋지긋한 관계들 속에서 어디론가 조용히 숨고 싶을 때,
난 이 일을 되새기게 될 것 같아.
결국은 돌아올 수밖에 없는 지도를 들고 결국 그 길을 돌아올 테고,
다시 그 사람들 속에서 그 관계를 고마워하면서 살아갈 테니까.
그렇게 결국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을 테니까. (p125)
※ 이 글은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김동영 -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달 - 2007. 0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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