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 - 「소리내고 먹으면 더 맛있다」
섹스 침대의 높이는 일정하게 잘라 말할 수 없다.
연주자의 키에 맞도록 조절해야 한다.
침대의 이상적인 높이를 조절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여자가 침대 가장자리나 난간에 엉치뼈가 걸리게 누워서 두다리를 위로 치켜든다.
그리고는 두 다리를 가장자리에 편히 다가 서 있는 남자의 양어깨에 걸친다.
이때 남녀의 궁합이 맞는 위치, 남자에게 불편하지 않은 위치가 되는 것이 이상적인 섹스 침대의 높이다.
최문숙 씨는 쉰일곱 평 아파트에 사는데 아파트는 거실을 중심으로 해서 남쪽에 테라스가 나 있고,
서쪽 왼켠으로 넓은 침실이, 오른켠엔 건넌방과 목욕탕, 부엌과 그에 딸린 방이 자리잡고 있다.
안방은 장방형으로 넓이가 대여섯 평쯤 된다.
누런 장판지로 바닥을 바른 위에 엷은 귤색 보로을 깔고 뿔테 안경을 얹은 서안을 방 한 가운데 놓았다.
하얀 인조 실크 커튼을 통해 스며 나오는 은은한 빛이
서안과 어울리고 방바닥에 얼비쳐 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을 준다.
이 안방은 매우 간결하고 검약스런 차림이다.
가구라야 문 오른쪽 벽에 놓은 문갑과 한쪽 무릎을 고쳐 세우고 앉은 새색시처럼 작은 경대
그리고 그 맞은편 벽의 아담한 이층장이 전부이다.
작은 상자 둘과 흙빛 고동빛 도자기가 둘, 그리고 편지뜯게 가위, 자가 꽂힌 지통을 가지런히 위에 얹고
비단자수를 놓은 중국제 쓰레기통 둘을 옆에 두었다.
뭣하나 흐트러지거나 반듯하지 않거나 흘린 데가 없다.
김필규 씨 집은 이층 양옥이다.
일층에는 응접실, 거실, 식당과 부엌, 안방이 있고, 이층은 두 아들의 방으로 꾸며져 있다.
안방은 문이 동쪽에 있고, 남쪽에는 커다란 창문이 나 있어서 바깥뜰이 내다 보인다.
벽과 천장은 하얀 한지로 온통 말끔하게 도배를 했다.
한지 도배의 침착하고 그윽한 분위는
다른 어느 고급 벽지도 흉내내기가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안방에 들어와서도 새삼 든다.
방의 꾸밈이 대단한 절제를 지키고 있다.
화가 장욱진 씨의 작은 그림 둘과 한자로 '연당'이라고 새긴 작은 목판 하나만이 걸려있는 것 말고는
벽돌이 그냥 여백으로 남겨져 있다.
게다가 세간들마저 더없이 간소하고 또 하나같이 소품들뿐이어서,
이것 저것 많이 갖다 놓아야 잘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인들 중에는
심지어 좀 쓸쓸하다고 여길이도 없지는 않을 듯 했다.
박여숙 씨의 집은 남산 중턱에 있다.
거실로 들어가면 왼쪽에 안방이 있다.
문갑이나 반닫이, 탁자같은 우리 나라 고가구와 함께 좀 많은 듯한 그림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안방하면 으레 장롱이나 문갑같은 가구에 병풍이나 보료, 값나가는 동양화 등의 세간을 생각하기 쉬운데,
대부분 서양화인 그림들이 몇 개 안되는 목기들과 어색함 없이 잘 어울린다.
목기의 빛깔에 맞추어 짠 창틀에 창호지를 붙여 안방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했다.
창호지 문이라는 것이 방의 분위기를 포근하게 해주면서도 커튼의 구실도 겸하여, 경제적이고 편리하다.
이 안방은 내외의 침실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불장으로 커다란 장롱을 하나 들여놓았다.
커다랗다고 해보았자 캐비닛 하나쯤의 크기였지만 어찌나 답답하고,
앉아 있노라면 공연히 주눅들게 내려다보는 뜻한지 이부자리를 들고 다니며 옮기는것이 좀 거추장스렇긴 해도
아에 이불장을 건너편 부엌 옆방으로 옮겨버렸다.
탁자나 받닫이들도 작고 나지막한 것으로 골라 위압감 없이 아는한 분위기가 되도록 배려했다.
에어컨을 감추느라 하는 수 없이 한쪽 벽에 그림을 좀 걸긴 했지만
그림도 방바닥에 앉은 눈 높이여서 그리 부담이 되지 않도록 될 수 있는 대로 낮추었다.
삼층장 위의 큰 그림은 일부러 벽에 걸지 않고 걸쳐 놓았는데 임시로 갖다놓은 느낌이 들긴 해도 변화가 있고,
가끔 그림을 바꾸기에 쉬운 듯하다.
벽이나 천장은 흰색으로 통일하여 집 자체가 단순한데다
가구 또한 조선목기가 추가되어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지만,
그림이나 조각같은 장식품을 자주 바꿀 수 있어 늘 새롭고 다양한 분위기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해 둘 것은
포장(인테리어)보다 백 배 천 배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갖고 싶은 욕심이란 사실이다.
이 대목은 밑줄을 그어 두고 늘 잊지말기 바란다. (p58)
※ 이 글은 <소리내고 먹으면 더 맛있다>의 일부를 필사한 것임.
송현 - 소리내고 먹으면 더 맛있다.
한교원 - 1991.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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