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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소리내고 먹으면 더 맛있다/원시 침대에서 '송현식 섹스 침대'까지

by 탄천사랑 2022. 1. 26.

송현 - 「소리내고 먹으면 더 맛있다

 

 

인생의 삼분의 일은 잠을 자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침대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새삼 읆을 필요가 없다.
침대에서 삶이 시작되고 침대에서 삶이 끝난다.
삶 중에서도 가장 황홀한 순간들을 침대 위에서 보내게 된다.

원시인들의 침대에서 '송현식 섹스 침대'까지 침대의 변천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원시 시대에는 땅을 파서 종려 잎, 갈대, 골풀,

소나무 가지 혹은 탄력 있는 그 밖의 다른 물건을 깔아놓은 구덩이가 바로 침대였다.

이처럼 초기에 인류가 사용한 침대는 단순했다.
그런데 B.C. 14세기에 투탕카맨이 세상을 떠났을 당시,

가죽끈 그물이 없이 완전히 나무로 된 왕의 침대가 있었다.

 

이 침대는 날씬한 다리를 가진 암소(사랑의 여신을 상징) 두 마리의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수평 막대로, 암소들의 발이 서로 붙어 있었다.

왕의 생존시에는 수평 막대를 이용하여 왕을 침대에 싣고 들고 다녔다.


심지어 왕은 침대위에서 알현받기를 좋아했다.
그리스인들은 제련술에 아주 능하여 청동 침대와 은제 다리가 있는 나무 침대를 만들었다.

 

그들은 격자 그물을 짜는 데 가죽끈을 이용했으며 아름다운 베개에다 털, 깃털, 식물성 섬유 등을 채웠다.
알렉산더 대왕은 가끔 자기의 침대를 용상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면 즉시 침대를 깔끔하게 손질하도록 하였다.
만약 잠잔 사람의 몸이 남긴 흔적을 칼로 찌르면, 그 사람에게 해가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훌륭한 농부들이어서 꿰멘 자루에 건초,

털, 깃털을 쑤서넣어 처음으로 본격적인 매트리스를 만들었다.
그들은 높은 침대를 좋아하여, 계단을 밟고 침대에 올라가기도 했다.
로마가 멸망하자 침대의 변화도 역시 쇠퇴했다.

 

게르만 부족은 흔히 잎사귀 침대 위에서 잠을 잤다.
9세기에 이르러 바이킹의 여왕 아사가 매장되었다.
여왕을 보다 행복한 세계로 보내기 위하여 한 척의 배에 널판지 침대와 깃털 이불을 실어 함께 묻었다.

 

영국에서는 부와 문명이 나란히 성장했고,

14세기에 이르러 부자들은 수를 놓은 모포와 보석으로 장식한 시트를 덮고 알몸으로 잠을 잤다.

가난한 사람들은 양털이나 짐승 가죽으로 몸을 덮었다.
십자군들은 동방에서 더블 베드 즉 2인용 침대의 아이디어를 얻어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경계심이 많은 기사들은 언제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인 침대 기둥에 칼을 걸어두고 잠을 잤다.
헨리 7세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의 침대에 성수를 뿌렸다.
르네상스 시대에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대륙에서는 침대를 매우 중시하였다.
여인들은 새카만 공단 시트 위에 누워 매혹적인 흰 살결을 자랑했다.
영국에서는 천막같이 켜튼이 네 기둥에 쳐진 침대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1세는 그와 같은 침대에서 집무를 했고, 거기서 대사들을 접견했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가 침대를 자그만치 413개나 주문한 적이 있다.
베르사유 궁에 있던 침대 하나에는 '비너스의 승리'라는 황금 글씨가 쓰여 있고, 진홍빛 덮개가 씌워져있었다.
심지어 그는 침대에서 판결을 내리기까지 했다.

 

한편 별난 침대가 문학 작품에도 등장한다.
셰익스피어는 그의 희곡 <십이야>에서 '웨어의 거대한 침대'를 인용했다.
이 침대는 원래 1570년 경에 만들어진, 크기가 18.5피트 곱하기 12피드(1.5미터 곱하기3.6미터)나 되었다.
이 침대는 르네상스 시대의 고딕형 침대였다.
그 뒤 12피드 곱하기 12피트 정방형으로 줄어들었고,이 여관 저 여관을 전전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사업가들이 그 위에서 요란한 성희를 즐기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집단적인 성희를 즐기기도 하였다.

 

1850년 대의 미국의 뉴욕주 워터타운에 제임스 리디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집으로 돌아가 그의 격자형 침대의 밧줄을 조일 생각을 하며 마차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4륜 마차의 용수철 좌석에 털썩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가 그는 철사를 꼬아 만드는 미국식 침대 스프링을 고안했다.
1930년 대에 이르러 스프링이 속에 들어간 매트리스가 거의 대부분의 침대 위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섹스 침대를 고안하여 목수를 사서 직접 제작한 적이 있었다.
이 글에서는 섹스 침대에 대한 긴 설명은 생략하고, 골자만 간단히 소개한다.

 

섹스 침대의 생명은 높이에 있다.
나는 처음에 침대의 높이를 정할 때 고심했다.
아내나 옆에 있었다면 체위를 여러까지 연출해 보고 높이를 정할 수 있었게는데,

아까 말했듯이 그때 나는 총각이었다.
그래서 내가 상상력과 눈짐작으로 정할 수 밖에 없었다.
여자가 이런 자세를 취하면 남자의 위치는 이렇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침대의 높이도 이런 정도가 되어야겠구나 하는 식으로 혼자서 추리하고 상상하여 정한 것이었다.
아마도 이제 생각해 보니, 무릎 위 이십센터쯤은 되었을 듯하다.
목수는 나무를 깎으면서 몇 번이나 침대가 너무 높다고 투덜댔다.
마침내 침대 다리가 내가 원하는 높이대로 맞춰 자를 때였다.
그때 나는 열일 제쳐두고 옆에서 지켜야 했다.
행여나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않고,

남의 속도 모르고 목수가 제 마음대로 침대 다리를 잘라버릴까 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섹스 침대가 완성되었다.
목수는 품삯을 받고 돌아가면서도 침대가 너무 높다고 혼잣말처럼 투덜댔다......(p55)

※ 이 글은 <소리내고 먹으면 더 맛있다>의 일부를 필사한 것임.

 


송현  -  소리내고 먹으면 맛있다
한교원 - 1991.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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