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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군대 간 아들에게

1 - 5. 신념이 있으면 선택이 쉽다.

by 탄천사랑 2022. 1. 8.

· 「공병호 -  군대 간 아들에게」

 

 

 

PART 1. 입대 전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것들.


5. 신념이 있으면 선택이 쉽다.
실용지식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지만, 기초지식은 학교에서 배우기 쉽지 않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옳고 그름을 가르쳐 주는 것은 지식이라기보다는 지혜에 가깝다.
하지만 지혜는 스스로 부딪혀서 깨닫기 전에는 얻어지지 않는다.
지혜의 바탕이 되는 것이 기초지식이다.
아래의 사례를 통해 지혜에 대해 생각해 보자.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렸던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교수가 생전에 쓴
<피터 드러커 자서전>은 흥미로운 책이다.
자서전을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순으로 글을 쓰는 것과 달리,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만남이나 깨달음의 순간들을 모아서 정리했다.
나는 좋은 책은 반복해서 읽는 편인데, 그의 책은 필요할 때면 여러 번 읽을 정도로 흥미롭다.
여러분도 시간을 내서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사례 가운데 두 가치는 내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어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에 관한 것이다.
두 가지 사례는 여러분이 군 복무 중에
어떤 활동에 우선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가와 관련해서도 귀한 정보를 제공한다.

첫 번째 사례는 자신의 주관을 갖고 세상의 대세나 유행,
그리고 주장이나 의견을 무작정 추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남들이 모두 한쪽으로 몰려갈 때 허겁지겁 그쪽으로 달려갈 것이 아니라
'이처럼 사람들이 한쪽으로 휩쓸려가는 것이 올바른가?'
혹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여기서 피터 드러커 교수는 '구경꾼(bystander)'이라는 멋진 용어를 제시한다.
언제 어디서나 '쿨'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무작정 다수가 움직이는 방향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에 따라 현명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가 바로 구경꾼이다.

1923년 11월 11일, 피터 드러커가 10대 소년이었을 때의 일이다.
그날은 오스트리아를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제가 퇴위하고 공화정이 선포된 날이었다.
1918년 11월 12일 공화국이 선포된 이후
오스트리아는 좌우익의 싸움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수도인 비엔나는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하는 사회민주당이 장악하였고
반면에 지방에서는 우익정당의 영향력이 강했다.

당시 비엔나 인구의 대다수는 사회주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공화정이 선포된 그날은 성대하게 기념식을 거행할 만한 승리의 날이었다.
도시에서는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노면 전차의 운행도 중지했다.
거리를 다닐 수 있는 차는 비상시를 대비한 소방차와 구급차 정도였다.
도시는 노동자들로 가득 찼다.
왕정의 시대가 가고 희망찬 노동자의 시대가 오기를 기다리는 이들의 뜨거운 열기가 시내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노동자들은
구역마다 붉은 깃발을 세우고 도로를 행진해서 시청 앞에 있는 광장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시내 중심부로 향하는 대열의 맨 처음을 차지한 사람들은 사회 당의 청소년 단원들이었다.
청소년 단원이었던 피터 드러커는 짜릿한 모험심과 열기를 느끼며 행진에 참여했다.
한동안 묵묵히 걸어가던 피터 드러커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자신을 뒤따르던 덩치 큰 의과대학생에게 깃발을 넘겨버리고 대열을 이탈해 집으로 향했다.
대열을 이탈해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드러커는 심한 고독감과 함께 다시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다수와 다른 길을 가고 있음에 우쭐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늦을 줄 알았던 아들이 일찍 돌아오자, 드러커의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몸이 어디가 좋지 않니?" 

그러자 드러커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 생애에서 최고로 기분이 좋아요. 제가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거든요."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대열을 따라가는 것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우쳤다.
그 사건을 통해 피터 드러커는 자신의 재능이나 강점에 대해 자각할 기회를 가졌다.
남들이 모두 어디를 향해 가든 그것은 남들의 선택일 뿐이며,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나는 내가 구경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라는 말과 더불어
'구경꾼은 만들어진다기보다 타고난다'라는 말을 남겼다.

무리와 자신을 구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는 각자가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이나 유행에 함몰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관점에 따라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피터 드러커는 타고난 구경꾼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아울러 평생을 통해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지적 투자를 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모두가 구경꾼으로 살아갈 수는 없고 이를 권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행동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중에도 
남들을 따라 무작정 달려가는 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저명한 경영 저술가인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위대한 기업의 선택>에서
사우스웨스트항공의 CEO 허브 켈러허(Herb Kelleher)와
프로그레시브의 CEO 피터 루이스(Peter Lewis)가
일궈낸 괄목할 만한 성공의 요인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다.

'외적인 압력이나 사회적 규범조차 그들의 진로를 바꾸지 못했다.
  불확실하고 험난한 상황 속에서 군중의 광기를 따르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기준 즉,
가치와 목적, 장기적 목표, 엄격한 행동기준 등 우직하게 고수함으로써 성공을 거든 인물들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다수가 가는 길을 무작정 추종하는 일이 올바른 것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사례는 올바른 판단 기준 및 잣대와 관련된 것이다.
기준이 흔들리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사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특정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부정이나 불법을 합리화하기 위해 어떤 일도 저지를 수 있다.
도덕적 혹은 윤리적 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매사를 되물을 수 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가, 아닌가가 판단의 유력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런 기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 정도는 운 좋게 넘어갈 수 있지만 언젠가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다.

2012년 대선 선거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
악의적인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저들은 페어플레이라는 개념을 교과서가 아니라 실천으로 배워본 경험이 있을까?'
불행히도 우리 대부분은 과정의 정당성보다 결과를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을 받았다.
정당한 수단을 사용해서 정정당당하게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교육이 소홀했다.
나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면서도 별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우리 사회의 전체 모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든 좋은 결과만 얻으면 된다는 풍조를 만든 것은 결국 어른들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그렇게 이기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지도 않았다.
일단 이기고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사회 전체에 퍼졌고, 
이것은 사회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내가 청년들에게 스스로의 기준을 가지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이런 잘못된 세태에 물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쯤 해서 자신의 가치관을 확연하게 드러낸 피터 드러커 교수의 사례를 한 가지 소개하겠다.
이 사례 또한 젊은 날 우리가 갖춰야 할 확고한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훌륭한 교훈을 제시해 준다.

독일이 패전하였을 때 <뉴욕타임스>에는 나치 SS의 제2인 자였던 라인홀트 헨슈(Reinhold Hensch)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폭격당한 자기 집 지하실에 숨어 있다가
미군에게 발각되자 자살하였다는 소식이 실렸다.

그는 유대인과 집시, 그리고 나치의 적들을 근절하는 책임을 진 자로 훗날 ’괴물‘로 불리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피터 드러커 교수와 젊은 날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프랑크푸르트 게네랄 안차이거> 신문에서 함께 일한 경력 덕분이다.

1933년 1월,
유대인이었던 피터 드러커는
대학과 언론을 장악하려는 히틀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급히 독일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와 독일에서의 마지막을 보냈다.
그런데 밤 10시 무렵 예정에 없던 헨슈의 방문을 받았다.
헨슈는 드러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당신이 부럽소.
  나도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소.
  나치당 실세들의 모임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앉아 있으려니 얼마나 겁이 나던지,
  그곳에는 유대인을 죽이고 전쟁을 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인간들이 널렸소."

그 말을 듣자 드러커는 기다렸다는 듯이 헨슈에게 독일을 떠나 다른 길을 선택해 보라고 권했다.
"당신은 아직 서른 살도 안 됐고 딸린 가족도 없지 않소.
  경제학 학위도 있으니 별 어려움 없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텐데."

그러자 헨슈는 마침내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의 속내는 놀랍게도, 자기처럼 집안도 좋지 않고 학벌도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
권력과 돈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악의 세력에 동조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헨슈가 유난히 나쁜 사람인 걸까?
우리 또한 헨슈처럼 기준이나 잣대에 따라 악의 하수인으로 전략할 수 있다.
야심적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런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피터 드러커는 이 만남을 통해 자신이 평생 동안 간직하게 된 교훈을 이렇게 말한다.

"주기도문은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약한 존재인지를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신에게 청하는 것이다.
  악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지만 인간은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조건으로든 악과 흥정해서는 안 된다.
  그 조건은 언제나 악의 조건이지 인간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헨슈처럼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할 때 인간은 악의 도구가 된다."

정당하지 못한 목표를 합리화할 비극적인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특별히 총명하지도 않고, 두드러진 배경을 갖지도 못한 헨슈는
잘나가는 유대인 동료들을 제치고 한 번에 자신의 삶을 끌어올려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돈과 권력을 제공할 수 있는 그 '누군가'는 바로 히틀러를 중심으로 하는 나치 집단이었다.
그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의 세력과 기꺼이 손을 잡기고 결심했다.

이후 그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지식과 양식이 그런 행위를 합리화하는 데 동원되었음은 물론이다.
올바른 기준을 갖는 일,  그리고 자신의 주관을 갖는 일은 공짜로 쉽게 얻어질 수 없다.
성실한 준비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임을 기억하자.



※ 이 글은 <군대 간 아들에게>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공병호 - 「군대 간 아들에게」
흐름출판 - 2013. 05. 01.

  [t-22.01.08.  20220106-1534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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