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아내는 나와 틀린 사람이라는 느낌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문제만 해도 그랬다.
나는 될 수 있으면 아이들이 사서라도 고생을 해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우유 배달이나 신문 배달도 해보고,
저희들끼리 먼 곳으로 여행도 하면서 세상의 고달픈 단면들을 직접 체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내는 그럴 때마다 따끔하게 반박하곤 했다.
"요즘 세상에 얼마나 험한지 몰라서 그래요?
당신이 함께 따라다니면서 배달한다면 모를까.
애 혼자 그런 일을 시킬 수는 없어요."
나와 틀린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부부로서 서로를 대하는 방식도 나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나는 아내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고 자유룰 주는 남편이라고 자부해왔다.
반면에 아내는 시간이 갈수록 나를 독점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듯했다.
.... 나중에는 아내의 그런 독점욕이
내가 새로 시작하려는 일마다 일일이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 사실 아내와 나는 '틀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었다.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틀리다고 치부해버리는 순간,
우리 사이에 열려 있던 문들이 하나하나 닫혀왔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나와 아내의 다른 점들을 생각해 보았다.
몸이 아플 때 우리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
아내는 내가 옆에 머물면서 이마를 짚어주고, 과일을 깎아주기를 원한다.
외출하더라도 짬짬이 틈을 내어 전화를 걸어주기를 바란다.
몸은 좀 어떠냐고 부드럽게 물어주기를 원한다.
아내는 내가 그렇게 해줄때 따뜻한 위안을 받는 타입이다.
반면에 나는 아프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아무도 옆에 다가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한다.
아무것도 안 먹고, 아무도 안 만나고.....,
다른 점은 그것만이 아니다.
나는 매사를 거시적인 눈으로 보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장애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누군가 '꿈같은 소리' 라고 일축해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일단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다' 라고 생각하고 못할 일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반면에 아내는 미시적인 눈을 가졌다.
현실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찾고, 차근차근 풀어나갈 일의 순서를 정해야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 나는 참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다른 점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우리는 아주 멋진 팀이 될 수 있었다.
내가 먼 곳을 보느라 놓친 것들을 아내가 챙겨주고,
아내가 주저하는 순간이면 내가 추진력을 발휘해서 함께 걸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서로의 그런 차이점을 틀린 점이라고 여기는 순간,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나만 이해받기를 바랐던 것이다.
내가 아플 때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해준 아내를 나는 그저 당연하게 받아들었을 뿐,
특별한 배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가 자신의 성향대로 내 머리맡에 머물면서 이마를 짚어주고,
끊임없이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화를 벌컥 냈을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계속했다면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내게도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부끄럽게도 아내가 아플 때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해준 적이 별로 없었다.
밖에 나가서도 아내가 원하는 전화한 통 해주지 않았고,
저녁 무렵이면 아내가 아팠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었다.
그건 분명 아내에게 작은 상처로 남았으리라.
.... 50년을 살다가 사별한 다음에도 그 사람 속은 평생 알 수가 없었노라고 회상하기도 한다.
맞는 얘기다.
부부는 평생 서로를 탐구해야 하는 아주 특별한 관계이다.
부모나 자식과의 관계와 달리, 부부는 한 번 마음이 열리면 바다처럼 활짝 열리다가도
닫히기 시작하면 바늘 끝 하나 들어갈 자리도 없이 꼭꼭 막혀버린다.
서로의 '다른 점'은 부부의 마음을 활짝 열리게도 하고 닫히게도 하는 미묘한 부분이다.
다른 점을 각자의 타고난 계성으로 인정하지 않고 '틀린 점'으로 취급하는 순간,
부부 사이에는 상처가 자리잡기 시작한다.
처음 만났을 때의 마음처럼 '다르다'를 '다르다'로 기쁘게 인정하자.
세월이 흘려 '다르다'가 '틀리다'로 느껴진다면, 이전보다 꼭 두 배만 배려하는 마음을 갖자.
사랑보다 더 깊은 정과 배려로 똘똘 뭉쳐진 두 사람.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2인조보다 강력한 팀, 그들의 이름은 바로 부부이니. (p36)
중앙M&B - 2001.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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