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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성장교육(인문.철학.교양.

황보태조-꿩 새끼를 몰며 크는 아이들/우리가 무엇을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은

by 탄천사랑 2021. 7. 1.

황보태조 / 「 새끼를 몰며 크는 아이들

 

 

 

우리가 무엇을 습관적으로 하게 된다는 것은 그 일에 잘 길들여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리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소를 길들일 때에도 목에 지울 멍에를 너무 굵고 무거운 것으로 시작하면
소는 목을 흔들며 아예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처음부터 찰흙밭에서 무거운 쟁기로 쟁기질을 시키면 힘에 부쳐서
눈앞에 있는 밭고랑은 잊어버리고 이리저리 헛고랑만 타게 된다.
그래서 유능한 농부는 처음 쟁기질을 시킬 때 그 멍에를 없는 듯 있는 듯 가볍게 지운다. 
그리고는 찰흙밭이 아니라 모래밭에 내는 듯 마는 듯 가볍게 골을 낸다.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독서 습관을 붙어 주는 이 중요한 일에 욕심을 부린 나머지 아이들이 읽기 싫어하는 책이나 

어려운 책으로 시작한다면 그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다.   -p141-

 

--
여기서 우리는 아주 다른 발상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골 사람이 처음 도시에 가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대게 대도시에 처음 가면 역에서 내려 여기저기를 그저 돌아다니며
천천히 그 도시의 윤곽을 익혀 간다.
처음부터 역 주변의 모든 길을 샅샅이 알아 가면서 그 도시 전체를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
역 주변의 작은 골목이 어떻게 생겼건 상관하지 않고 대로를 따라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중앙로라는 것을 알게 되고 중앙로를 따라가다 보면 좀 더 작은 길도 알게 되고,
또 이 작은 길을 따라 가면 샛길도 알아 나중에는 택시 기사가 되어도 좋을 만큼
길을 훤히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공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철저히 익히면야 좋겠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철저히 하려고 들면 누구나 제풀에 지치게 되고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한 번쯤 해냈다 하더라도 다음부터는 그런 힘든 일은 기피하게 된다.
공부를 하루 이틀 하고 말 것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수 십 년을 해야 할 것인데 어릴 때부터 지치게 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오늘은 익히고 내일은 반드시 잊어 버려라'라고 말했다.
이것은 이제까지 아이들을 지도하는 많은 교육자와는 다른 발상이지만 그 효과는 매우 컸다.

나는 아이들이  '잊어버리면 어쩌나'하는 생각 때문에 갖게 되는 부담을 말끔히 없애 주었다.
'잊어버린다'는 부담없이 공부한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그것만 없으면 얼마든지 짜증 내지 않고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부담을 자꾸 지고 가다 보면 더는 지고 가기 어려운
짐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한 권도 다 떼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
"나는 자꾸 잊어버린단 말이야. 이것이 문제야. 
 나는 안돼.
 나는 또 꼴찌할 거야. 
 그러면 엄마 아빠는 또 신경질을 내시겠지?
 나는 머리가 나빠, 
 아이고.  미치겠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자신감을 잃게 되고 더 나아가 아예 공부 자체가 싫어지게 마련이다.
바로 '공부 공포증'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알게 모르게 이 증상을 갖고 있는 아이가 많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한 예방 주사가 필요한 것이다.
예방 주사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오늘은 익히고 내일은 반드시 잊어버려라'라고 말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말속에는 오늘만 재미있게 익히면 된다는,
오늘 익힌 것을 내일은 잊어버려도 우리 엄마 아빠는 절대로 나를 혼내지 않는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오늘만 그저 재미있게 열심히 해 보자는 마음으로 공부하게 된다.
오늘만 열심히 하면 그만,
더 지고 갈 공포(걱정)의 짐이 없으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한번 본 것이라도 내 뜻대로 쉽게 잊어버리는 것은 없다

"오늘만 익히고 내일은 반드시 잊어버려라"라고 하면 

아이들이 공부한 것을 다 잊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전에 한 번 방문했던 도시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다시 가 보면 새록새록 기억들이 떠오르게 마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 번 익힌 글자들을 내 의지대로 까맣게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니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내일은 잊어버려야지"하고 마음을 먹는다고 쉽게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잊어버릴 수 없을 때가 많다.
우리는 아픈 기억의 첫사랑을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다 세월이 많이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하여 우리를 미소짓게 한다.

이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잊어버려라" 하였다고 염려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말은 아이들에게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줄여 줄 뿐이며 
쓸데없는 걱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한 예방책에 불과하다.

아이들은 이 근심에서 해방되어 이제는 책장 넘기는 재미로(진도가 잘 나간다)
익히고 외우고 할 것이며 그러다 보면 3권, 2권, 1권, 4권을 다 떼게 되어
그야말로 즐겁게 책거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p167-

--
옛날 우리 할아버지는 소를 몰고 다닐 때에는 언제나 소를 앞세워 몰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주 어릴 때에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 소는 무조건 앞세워 

몰고 다니는 것으로 알았고 조금 지나서는 소가 당신의 손자를 뿔로 받아 다치게 할까 봐 
소를 앞세워 몰라고 하신 줄 알았다.

그러나 차츰 자라 꾀가 들자 소는 키워 농사에 농기를 써야 하며 그때를 위하여 송아지 때부터 

소는 앞세워 몰고 다니면서  '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들인다'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한 말인 것 같다.   

이렇게 길들이는 일은 갓 태어난 송아지 때부터 시작한다.
어린 송아지는 향상 어미소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래서 큰 소가 쟁기질을 할 때도 따라다니는데 어떤 농부는 이때 송아지가 쟁기질을 할 때 

거치적거린다고 따로 매 두고 큰 소만 일을 시킨다.

그러나 우리 할아버지는 송아지도 어릴 때부터 밭고랑을 익혀야 한다고 
송아지가 어미소를 졸졸 따라다니게 그냥 두셨다.
이렇게 어릴때부터 사람 앞에서 고량을 따라 스스로 앞서 다니게 훈련을 시키신 것이다.

송아지 때부터 소는 짐승이므로 길을 잘 모른다고 향상 사람이 앞서 끌고 다니면
그런 소는 언제나 사람 뒤만 따라 다니다가 나중에 논이나 밭에서 앞세워 쟁기질을 시키면 

한 자락도 스스로 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보(步) 질이 나쁜 소나 보질이 안 되는 소는 다 그 때문이다.
사람도 어릴 때부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교육의 실제가 아닌가 한다.  -p226-

--
아이들이 '공부'라는 말에서 압박감을 갖는다면 

그 아이의 학교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하리라.
반대로 '공부'라는 말이 즐겁게 들린다면 그 아이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같은 말이라도 그 말을 알게 된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공부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는 처음 공부를 어떻게 시작했는가?
거기에 따라 공부라는 말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매 맞고 공부를 한 아이는 공부가 원수처럼 느껴질 것이고,
계속되는 부모님의 잔소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게속해야 하는 아이라면 
공부란 말은 지긋지긋한 것으로 느끼리라.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어릴때는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하긴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꾀가 생겨나면 무슨 핑게를 대서라도 공부를 멀리하게 될 것이다.

'엄마'라는말 속에는 행복, 눈물, 희망, 편안함 같은 온갖 좋은 느낌이 들어 있다.
엄마가 정성을 다해 자식을 키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 마음속에 

'공부'라는 말의 느낌이 좋게 자리하도록 온갖 정성을 다해야겠다.
이것은 아이의 머리가 좋고 나쁜 것과는 상관없고 오직 부모의 역할에 달려 있다.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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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우리 산골 마을에도 가로등이 세워졌다.
옛날 어둡던 저녁 시골길을 걸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산모퉁이를 돌아올 때마다 등골이 오싹했던 느낌을 기억할 것이다.
이제 드문드문 켜진 가로등만으로 

한결 기분까지 밝아져 옛날처럼 두려움에 떨면서 걷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런데 몇 달이 안 되어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졌다.
가로등이 밝게 켜진 시금치밭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수십 년 시금치 농사를 지어 왔는데 아직 이런 병은 없었다."
"씨앗이 나빠서 그런가?" 하며 야단들이었다.
시금치가 조금 자라더니 모두 꽃을 피워 버린 것이다.

시금치는 보통 늦봄에 꽃을 피우는데 겨울도 되기 전에 꽃을 피워버리니 

돈 한푼 만져 보지 못하고 밭을 갈아엎어야 할 판이다.
그런데 그것이 다름 아닌 가로등 때문이라는 걸 늦게야 알게 되었다.
이제는 또 싸움이 벌어졌다.

"누가 가로등을 세우라고 해서 우리 농사를 망쳐 놓았느냐?"며 
관계자와 시비가 시작되었다.  이제라도 가로등을 모조리 꺼야 한다느니 
동네가 어두우니 켜 두어야 한다느니 하며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이듬해에는 벼농사에도 문제가 일어났다.
가을이 다 되어도 가로등 근처에서는 이삭이 패지를 않고, 
겨우 팬 이삭도 누렇게 고개를 숙이며 익지를 않는 것이었다.

이처럼 가로등불이 식물에게 꽃을 피게도 하고 
곡식을 익지 못하게도 하는 것인 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식물에 꽃을 피게 하는 원인은 다른 것에도 있다.

이른 봄 배추 농사를 하는 사람들은 
배추가 결구되고 속이 꽉 차 오를 때에 꽃이 생겨 버리면 큰일이 난다.
이렇게 되면 '꽃이 생겼다." 해서 상품 가치가 떨어져 출하를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약간 꽃이 생길 때 가장 맛이 좋다)

이 꽃은 다른 원인이 아니라 온도 때문이다.
온도가 13ºC 이하로 떨어지면 대부분 화아분화(花芽分化)라 하여 꽃이 생긴다.
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 농사꾼은 어떻게 하든지 
한겨울에도 비닐하우스 안을 13ºC 이상의 온도로 유지시키려고 전열 온상을 하든가
미숙 퇴비를 듬뿍 넣은 온상을 만들어 배추 모종을 키운다.

이렇게 식물은 다양한 요인으로 꽃을 피운다.
어떤 것은 온도가 낮으면 꽃을 피우고 상추 같은 채소는 온도가 올라가면 꽃을 피운다.
이제는 우리 농사짓는 사람도 이 모든 것을 알아야 유능한 농사꾼이 될 수 있다.

자식 농사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공부할 의욕을 불려 일으키는 요인은 다양하다.
이 책이 자식 농사를 위해 
밤낮으로 애쓰는 모든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p269-  

 

황보태조 / 꿩 새끼를 몰며 크는 아이들
올림 / 2001. 0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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