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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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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석-위험한 심리학/"주인공은 바로 나라고!"

by 탄천사랑 2021. 10. 9.

송형석  - 「위험한 심리학」 

 

 

 

대화의 초점이 타인에게 가는 걸 못 참는 사람

내가 이번에 가입한 재즈 동호회는 나름대로 꽤나 수준 있다는 평가를 듣는다.
오늘은 처음으로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하기로 한 날,
다들 전문가 뺨칠 정도로 지식도 많고 열성적이어서 상당히 즐거운 대화를 하게 될 것 같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와글와글 10명이 모였다.
남자가 7명,  여자가 3명,  평소 재즈에 대한 이야기라면 열심인 사람들이라 그리 낯설지가 않다.
서로 대충 소개를 하고 나니 온라인에서처럼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려나왔다.

"뭉크 님이세요?  전 마일즈예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쪽은 상드예요.   서로 인사하시죠."

 

온라인 상의 아이디를 부르며 인사를 나누는 게 조금 어색했지만,
상드라는 여자 회원을 본 순간 생각이 다른 쪽으로 튀었다.
처음부터 눈에 딱 들어오는 상당한 미인인 데다 언변도 무척 화려하다.
그녀는 전에도 이 모임에 자주 나온 모양이다.
남자들이 온통 그녀를 중심으로 대화를 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지난번에 말씀하신 마일즈 데이비스 박스 세트 앨범 새로 나오는 거 그거 구하신다더니...."
"아, 그거요.
  너무 비싸서 인 샀어요.   요즘 돈이 좀 달려서."
"어머,  저 그거 샀어요."   다행히도 우리 대화에 그녀가 참여해준다.
"그 앨범 정말 멋져요.
  뭐랄까,   마일즈의 일생을 모두 관통하는 것만 같은 느낌.
  녹음한 곡들 중에서도 참 괜찮은 것만 모아 났더라고요."

 

.... 옆 사람들이 지미 스미스 이야기를 하자,   상드는 그쪽으로 갑자기 몸을 돌려 반응한다.
대화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
확실히 상드는 여주인공의 느낌이다.
말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아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음악에 대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채롭다.

 

이쪽 몇 명이 셀로니어스 몽크에 대한 애기를 한참 하고 있는데 상드가 끼어들었다.
"지난달에 미국에 가서 키스 자렛 트리어 공연을 봤어요."
여기저기서 ' 오오!'  하는 감탄사와 함께  '정말요? 부럽다' 는 말이 터져 나왔다.
"저 그때 무대 뒤에서 멤버들을 직접 보기까지 했어요."
"키스 자렛,  되게 까칠하다던데 어떻게 뵜어요?"
"그냥 무대 뒤쪽으로 돌아가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니까 나오던데요?
  드러머 하고 대화도 나눴어요."
"잭 드 조넷하고요?  무슨 얘기했어요?"
"뭐 그냥 음악 멋졌다,   고맙다 같은 애기.
  사람 참 좋더라고요.
  키스 자렛은 까칠한 것까진 잘 모르겠는데,   저한테 미소도 짓고 말도 많이 걸어줬어요."

 

.... 저 지난번 미국 갔을 때는 친구가 조슈아 레드맨과 안다면서 소개해줬어요!"
오!  또다시 모두가 열광적인 분위기로 답한다.
"아니 어떻게요?
  어떻게 만났어요?"
"자기 사무실에 와있다고,   빨리 오라고 해서 갔더니요..., "  획실히 상드가 이 모임의 왕비였구나.
그녀는 어느새 모든 대화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그의 마음에 들어가 보자
'인터넷 상의 아이디는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한다'는 말을 믿는가?
물론 신빙성이 좀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아이디 하나에도 그 사람에 대해 꽤 유용한 정보가 담겨 있다고 본다.
인터넷 아이디가 센스 듬뿍 담긴 재미있는 명칭이라면
최소한 그 사람의 의도 정도는 확인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나는 자신의 이름이나 생년월일로 만들어진 평범한 아이디를 싫어한다.
그 아이디의 주인이 별로 상상력도 없고 재미도 없는 사람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위에 나오는 '상드'라는 아이디는 내가 설정한 것으로,  쇼팽의 연인 '조르주 상드를 말한 것이다.
파리의 수많은 예술가들의 연인이었으며,  연약한 천재 피아니스트의 엄마이자 연인이었던 사람,
이런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라면 상드라는 인물의 정체성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참고로 나는  'Doctor MAD' 라는 아이디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를 통해 내가 스스로 괴짜이고 싶어 한다는 것,  위악적인 인물이라는 점,
어딘가 비뚤어진 천재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 정도는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세계 정복을 노리는 존재인 것으로 보아 자기애성 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의심해볼 수도 있다)

상드라는 여자는 위의 설정 상 일단 외모가 된다.
입 다물고 가만히만 있어도 주변 남자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외모가 괜찮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성격이 상당 부분 규정된다.
'예쁜 여자는 도도하다'
'예쁜 애들이 더 착하다'
'철이 없다'
'세상 험한 줄 잘 모른다' 등 수많은 선입견들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선입견을 100퍼센트 믿을 필요는 없지만,
이러한 선입견들이 상당히 높은 확률로 들어맞을 가능성 또한 인정해야 한다.
적어도 이런 생각들은 수만 년간 쌓인 선조들의 지혜(?)에 가까운 거거든.

꼬마 여자애가 예쁘게 생겼으면

사람마다 진심을 담아 '아유, 예쁘게 생겼네' 하며 말을 건네는 게 일반적이다.
아이가 서너 살만 되어도 자신이 예쁜지 아닌지는 대략 짐작한다.
사람들이 아이들에게는 예의상 예쁘다고 하지 않느냐고?  아이도 그게 빈말인지 아닌지 정도는 안다.

 

꼬마 입장에서도 자신이 예쁘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무기인지 잘 알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가서 귀여운 얼굴로 칭얼거리고 삐친 척하면 모두가 넘어간다.
이렇게 시작한 인생은 초등학교를 지나 얼굴의 변화가 오면서 많은 갈등을 낳는다.
어릴 때는 참 귀여웠던 얼굴이 점점 평범한 얼굴로 변하는 경우,
그 아이는 인생의 외로움을 깨달아버린다.
초등학생 때 전교 1등 하던 아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 반에서 15등 할 때의 마음이랄까.

 

반대로 어릴 때 귀여웠던 아이가 크면서도 어른들에게  '예쁘다, 우리 집에 시집와라' 같은 말을
숱하게 듣고,  주변에 얼굴 붉히면서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남자애들을 몇 명씩 보게 된다면?
그 아이는 가진 재주 하나 없고 아는 거 하나 없어도 자부심 넘치는 여자로 성장할 것이다.

 

물론 늘 그렇듯이 변수는 있다.
부모가 양육을 잘했다거나,  아이가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않는다거나 등등,  이런 여러 가지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에 선입견이라는 것이 100퍼센트 실현되지는 않는 것일 게다.

 

위에서 상드는 사람들의 대화에 아주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좋게 말해 '능동적'인 것이고,  실제로는 대화 여기저기에 모두 다 끼어든다.
뭔가 많이 아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는 하는데, 

그녀가 한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다지 내용이 없다.
단순한 느낌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것도 많다.
계속 의심하고 들면 '과연 저 사람이 이 앨범을 드러나 봤을까?'하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처음 만났을 뿐이고 관계도 어색하니까,
말을 좀 많이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 극 중 화자인 나는 이 여자가 자신의 경험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하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로 듣고 있다.
만약 여자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아마 '거짓말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쁘니까 용서하고 있다.

 

위에서 상드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사람의 관심이 자신에게 쏟아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가진 장점들 때문에 크게 이상해 보이지는 않지만,
만약 그녀가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면 다들 짜증을 냈을 것 같다.
아직은 어색한 모임이라 그 사람의 경험을 깊게 물어보지는 못하지만 어쩌면 누구를 만났네,
무엇을 들어봤네 하는 것이 모두 과장된 얘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심각하게 말한다면 모든 것이 거짓일지도 모른다.

 

상대의 말이 너무 화려하고 멋지게 들릴 때는 조심해야 한다.
예전에 보았던 환자 중에서 대화의 거의 80퍼센트 이상이 거짓말이었던 사람이 있었다.
들을 때는 그렇게 흥미진진할 수가 없다.
유명 연예인과 친구고,  집안은 몰락한 재벌이고,  자신은 제법 큰 술집을 운영하고 있고,
외국 유학은 기본이고,  여러 번 대화를 하다 보니 어딘가 앞뒤가 잘 맞지 않아서
나중에 보호자에게 사실을 확인해보았다.
거의 모든 것이 가상이었다.
물론 망상 수준은 아니었고,  자신이 한 말이 부끄러워 끝까지 나를 피했던 케이스다.

 

물론 상드에 대한 생각과 추측이 처음부터 확실하게 다가왔다 하더라도,
확신하려면 적어도 5번은 더 만난 뒤에 판단을 하라.
그녀는 단순히 술을 좀 먹어서 기분이 들뜬 것일지도 모른다.
예쁜 그녀는 원래 착하고 진지한 여자인데,  술만 먹으면 좀 가벼워지는 성격일 수도 있다.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타입일까
상드의 인격적 특성은 무엇일까?
그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관심의 중심이 되고 싶어 하는 성향,
자신의 말이 진실하고 논리적으로 들리게 하는 것보다 감정적,
인상적이어서 순간의 시선을 끌려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이렇게 자신의 성적 - 인격적 특징을 타인에게 과도할 정도로 어필하는 스타일을 두고
대게 '히스테리성 인격'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히스테리'라는 말은 흔히 여자들이 사소한 이유로 짜증을 낼 때 사용되면서
'짜증'과 거의 동격으로 쓰이곤 하지만,
실제로는 프로이트 이전 시절부터 여성의 감정 변화를 설명할 때 쓰는 단어였다.
프로이트 역시 자신의 정신분석이론을 만들 때 어떤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 바 있다.

 

.... 그러나 한 꺼풀 벗기고 들여다보면 말에 자세한 알맹이가 없고 얘먜한 표현,
얘먜한 결론을 잘 내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 상대의 경우에는 은근히 짜증을 느끼게 된다.
'어딘가 내 타입은 아니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리게 된다.

 

여성의 경우 상대에게 묘한 성적 기대감을 불려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것이 유혹적이든, 가너리 게 보이든, 쾌활하게 보이든, 울적하게 보이든),
사실 이 부류의 여성은 성관계를 통해 얻는 만족감이 적은 편이다.
게다가 이들이 이끌리는 상대는 다소 자극적인 부류가 많다.

 

아무리 봐도 이상적인 상대이고 괜찮은 남자인데도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유부남이나 애인 있는 남자에게 열렬한 사랑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물론 본인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p129)

※ 이 글은 <위험한 심리학>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송형석  -  위험한 심리학 
청림출판 - 2009.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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