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자기개발(경제.경영.마케팅/*자기계발

김난도-아프니까 청춘이다/인생에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이른 나이는 없다.

by 탄천사랑 2021. 8. 21.

김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내 책상 위에는 가지 않는 탁상시계가 있다.
고장 난 것은 아니다.
내가 일부러 건전지를 빼두었다.
그렇다고 이 시계가 늘 서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매년 내 생일이 되면,  18분씩 앞으로 시곗바늘을 옮긴다.

 

방금 K군이 다녀갔다.
내일모레면 나이가 '계란 한 판'인데 제대로 이뤄놓은 것 하나 없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딱 부러지게 구체적인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단다.
답답해 미칠 것 같다며 오랜 시간 하소연을 하다가 돌아갔다.

 

서른,  금방 온다.
다들 하는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에 필요한 학점을 채우려면 4년 만에 대학 졸업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요즘엔 어학연수,  인턴,  아르바이트 등 취업에 필요한 경험과 '스펙'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자니 한 두 학기 휴학은 기본이다.
남학생들은 군대도 다녀와야 한다.
혹시 재수를 했거나 편입,  전과(轉科)를 한 경력이 있다면 다시 1~2년 추가다.
졸업 후에 고시나 유학 준비한다고 여기저기 학원 좀 다니다 정신 차려보면,  금방 서른이다.

 

비단 서른을 코앞에 둔 친구들이 아니더라도,  많은 청춘들이 시간의 속도 앞에서 전율한다.
대학 2학년들은 신입생 시절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3학년만 되어도 졸업이 목전에 다가왔다고 엄살이 대단하다.

 

덜컥 졸업은 했는데 일할 곳이 없는 청춘이라면,
흘려가는 하루하루가 고스란히 조급함과 낙담의 시간으로 남는다.
사회에 성공적으로 첫발을 내딛었다고 불안이 사라질까?
그런 기대는 섣부르다.
빨리 자리 잡고 싶고,  빨리 뭔가 이루고 싶고....,


지금 이 글을 읽는 그대도 적잖이 걱정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 나이 되도록 제대로 해놓은 것 하나 없구나...., "

 

그대 인생은 얼마나 산 것 같은가?

이 질문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물어보겠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24시간에 비유한다면,
그대는 지금 몇 시쯤을 살고 있는 것 같은가?
태양이 한참 뜨거운 정오?
혹시 대학을 방금 졸업했다면,  점심을 먹고 한창 일을 시작할 오후 1~2시쯤 됐을는지?

 

막연하게 상상만 할 것이 아니라 한번 계산기를 들고 셈해보자.
그대가 대학을 스물넷에 졸업한다 하고,  하루 중 몇 시에 해당하는지.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80세쯤 된다 치면,  80세 중 24세는 24시간 중 몇 시?
아침 7시 12분.

 

아침 7시 12분.  생각보다 무척 이르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라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대학을 졸업하는 스물넷이 고작 아침 7시 12분이다.

선생으로서 수많은 젊은이들의 성장기를 지켜본 나로서는,
이 7시 12분의 비유가 의미하는 바가 무척이나 크다고 생각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사회활동을 할 준비를 마치는 24세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이제 집을 막 나서려는 시각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은퇴를 하고 노년을 준비하는 60세는?
저녁 6시다.
직장인들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거나,  저녁시간을 즐기려는 때다.
참 절묘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인생 80세를 24시간에 비유하기를 좋아한다.

인생시계의 계산법은 쉽다.
24시간은 1.440분에 해당하는데,  이것을 80년으로 나누면 18분이다.
1년에 18분씩, 10년에 3시간씩 가는 것으로 계산하면 금방 자기 나이가 몇 시인지 나온다.
20세는 오전 6시,  20세는 오전 8시 42분이다.

 

이 시계는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인 80세를 기준으로 했으니,
앞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그대의 인생 시각은 더 여유로워질 확률이 높다.

언젠가 우리 학과의 홈커밍 행사에 오신 60세가 넘은 원로 졸업생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본인은 교사를 하셨는데

어느 장관이 갑자기 정년을 단축시켜버려서 아무 준비 없이 황망하게 정년이 닥쳤더라고,
처음엔 그 장관이 너무너무 미우셨단다.
하지만 지금은 그에게 정말 정말 감사한다고.

 

은퇴하고 나니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새로운 세상이 있더라며,
그 세상을 2년 일찍 알게 해 줘 고맙다고....,

나는 어르신의 말씀에 깜짝 놀랐다.

 

그렇다.
붉은 노을이 내려앉은 6시 이후에도 엄청나게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인생시계를 보여주면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생각보다 너무 이르다는 것이다.

 

쉰을 맞이한 선배에게  "이제 겨우 오후 3시예요."하고 알려줬더니,
연방 손가락을 꼽아보며   "정말이네?" 한다.
졸업을 맞는 스물넷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대다수가 

'나름대로 인생 꽤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오전 7시 12분밖에 안 됐어요?' 한다.

 

그렇다.
아직 많이 남았다.
아침 7시에 일이 조금 늦어졌다고 하루 전체가 끝장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너무 늦었어!"라고 단정 지으려는 것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기만'의 문제다.
혹시라도 포기나 좌절의 빌미를 스스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대,  아직 이르다.
적어도 무엇이든 바꿀 수 있을 만큼은,

책상 위의 내 인생시계는 오후 2시 24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 마흔여덟에 아직 오후 2시 30분도 되지 않았다니....,
쉰을 앞두고도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고개를 들어 아직 하루가 오롯이 남아 있는 내 인생의 탁상시계를 바라본다.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에 그런 대사가 있었다.

 

"인생에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이른 나이는 없다."   (p22)

 

 

김난도  /  아프니까 청춘이다

쌤앤파커스  / 2010. 12. 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