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에뒤아르가 자신의 이야기를 마쳤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했고, 베로니카와 그는 둘 다 추위에 떨고 있었다.
"들어가자.
저녁 먹을 시간이야." 그가 말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난 벽에 걸린 그림에 사로 잡혔어.
그림에는 한 부인(카톨릭 신자들은 그 여자를 노트르담이라고 불러) 이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는데,
양손에서 빛이 나와 땅으로 퍼져나갔지
난 그림에서 내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했던 건 그 부인이 살아있는 뱀을 밟고 있는 거였어.
그래서 할머니에게 물어보았지.
'저 아줌마는 뱀을 무서워하지 않나요?
뱀이 발을 물거나 그 독이 퍼져 죽는 게 무섭지도 않은가 봐요?'라고 말야
할머니는 성경에 씌어 있는 대로, 뱀이 이 땅에 선과 약을 가져왔고,
그 부인이 사랑으로 선과 악을 다스린다고 설명해주셨어."
"그게 내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 있지?"
"내가 널 안 지 일 주일밖에 되지 않았어.
네게 '사랑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
아니,
내가 이 밤을 넘길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그 말을 하기에 너무 늦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미친 짓은 바로 사랑이야.
넌 내게 사랑 이야기를 해줬어.
난 솔직히 네 부모가 너의 행복을 원했다고 믿어.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너의 삶을 파괴할 뻔했지.
그러니까 그림의 부인이 뱀을 밟고 있는 것은 사랑에 두 개의 얼굴이 있다는 의미일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난 네가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기 때문에 나에게 전기쇼크를 가해달라고 간호사들을 부추겼던 거야.
내가 느끼고 있는 게 뭔지 나도 모르겠어.
난 사랑으로 이미 한번 파괴되었어." 에뒤아르가 대답했다.
"부러워하지 마.
오늘, 난 이고르 박사에게 이곳을 나가 영원히 눈을 감을 장소를 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어.
하지만 간호사들이 널 붙잡아 끌고 가는 걸 보았을 때,
난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바라보고 싶었던 게 바로 너의 얼굴이라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난 떠나지 않기로 작성했어.
네가 쇼크로 인해 잠들어 있는 동안, 다시 심장 발작이 일어났어.
이제 죽는그나.
생각했지.
난 네 얼굴을 쳐다봤어.
너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짐작해보려고 했지.
그리고 난 행복하게 죽을 준비를 했어.
하지만 죽음은 오지 않았어.
내 젊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 심장은 이번에도 잘 버터 냈어." 그가 고개를 떨구었다.
"사랑받는다는 걸 부끄러워하지 마.
널 사랑할 수 있게,
내게 그럴 힘이 있다면 하룻밤이라도 더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내버려 두기만 한다면,
난 네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대신,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병실로 와줬으면 좋겠어.
마지막 순간에 네 얼굴을 보게 해줘."
에뒤아르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베로니카는 그가 자신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고, 거기서 나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가 빌레트의 담 너머 산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얼었다.
"네가 여기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내가 널 데려갈께.
옷가지와 약간의 돈을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함께 떠나는 거야."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에뒤아르.
너도 알잖아."
에뒤아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옷을 가지고 욌다.
"우린 영원히 버틸 거야.
베르니카.
내가 천국의 환영들을 잊느라 이곳에서 보낸 똑같은 낮과 밤들보다는 훨씬 오래.
난 그것들을 거의 잊고 지냈어.
하지만 지금 천국의 환영들이 돌아온 것 같아."
"떠나자,
미친 사람들은 미친 짓들을 하니까."
그날 저녁,
저녁식사를 위해 모인 환자들은 그들 중 네 사람이 없어진 것을 알고 애석해했다.
제드카, 그녀가 오랜 기간의 치료 끝에 마침내 해방되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마리아, 늘 그렇듯, 영화를 보러 간 게 틀림없었다.
에뒤아르, 전기쇼크에서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모양이었다(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환자들은 모두 몸서리를 치며 조용히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끝으로 푸른 눈에 밤색 머리를 한 아가씨,
주말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던 그 여자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빌레트에서는 죽음을 절대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모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려고 애쓰기는 했지만
빈자리를 보고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p239)
--
저녁식사를 끝내고 '형제 클럽'의 회원들이 모였을 때,
한 회원이 마리아는 영화관에 가지 않았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떠났으며, 그들에게 편지를 남겼다고 말했다.
.....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봉투를 열었고 , 큰 소리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아직 젊은 변호사였을 때 한 영국 시인이 쓴 시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 시구들 중 하나가 나에게 큰 충격을 줬죠.
- 언제나 똑같은 물을 품고 있는 연못이 아니라, 넘쳐흐르는 샘처럼 돼라 -
난 항상 그가 틀렸다고,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휩쓸어
우리의 사랑과 열의로 그들을 익사시킬 위험이 있으니 넘쳐흐르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난 일생 동안 연못처럼 행동하려고, 내 내부의 벽 너머로 절대 나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
오랜 기간 치료를 받은 후에, 난 연못을 되찾았어요.
그리고 여러분을 만났죠.
여러분의 우정에,
여러분의 친절에,
우리가 함께 보낸 그 행복했던 순간들에 감사드려요.
우리는 함께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살았어요.
누군가가 정해진 시간에 우리에게 먹을 것을 던져주었고,
원할 때면 언제든 유리를 통해 외부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했어요.
하지만 어제,
피아노 연주일과,
오늘쯤에는 아마 죽었을지도 모를 한 아가씨로 인해,
난 이곳의 삶이 바깥의 삶과 동일하다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어요.
거기서도 여기처럼,
사람들은 그룹들끼리 모이고,
벽 뒤에 숨어 모르는 이가 그들의 보잘것없는 삶을 방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보호해요.
그들은 습관적으로 섹스를 하죠.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들을 연구하고,
즐겨야만 하기 때문에 즐겨요.
나머지 세상이야 어찌 됐건 자기 삶만 어찌어찌 꾸러 나가면 그만인 거죠.
기껏해야,
우리가 늘 그랬듯,
오로지 각종 문제들과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래도 그들만은 정말 행복하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텔레비전 뉴스를 보죠.
.....
지금 나는 모험을 찿아 떠나요.
내 나이가 예순다섯이고,
이 나이 때문에 많은 제한이 따를 거라는 걸 잘 알면서도.
난 보스니아로 갑니다.
거기엔 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직 그들도 내가 누군지 모르고 나 역시 그들이 누군지 모르지만요.
하지만 내가 쓸모가 있으리라는 걸,
모험에서 마주치는 위험이 천 일 동안의 안녕과 안락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걸,
난 이제 알아요.
쪽지를 다 읽자,
'형제 클럽'의 회원들은 모두 각자의 침실과 병실로 돌아갔다.
마리아가 이젠 완전히 미쳐버렸다고들 말하며.
에뒤아르와 베로니카는 류블랴나에서 가장 비싼 식당을 택해,
최고의 요리를 주문했고,
20세기 최고의 명주 중 하나인 1988년산 포도주 세 병에 점점 취해가고 있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들은 단 한 번도 빌레트에 대해,
과거나 미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너의 뱀 애기는 정말 좋았어.
하지만 네 할머니는 너무 늙어서 정확한 해석을 하지 못하셨어, "
몇 잔째인지 모를 잔을 채우면서 애뒤아르가 말했다.
"우리 할머닐 깔보지 마!"
벌써 얼근히 취한 베로니카가 소라를 꽥 지르자.
손님들 모두가 고개를 돌려 그들을 쳐다보았다.
....
그들은 도심에 있는 조그만 광장 한가운데로 갔다.
베로니카는 수도원의 자기 방 쪽을 쳐다보고는 순식간에 취기에서 깨어났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던 것이다.
....
조그만 광장 옆에는 언덕이 있었고 그 꼭대기에 성이 하나 있었다.
베로니카와 에뒤아르는 욕을 하고 깔깔대며,
얼음에 미끄러지기도 하고,
힘들다고 투덜거리기도 하며, 비탈을 기어올랐다.
성 옆에는 노란색의 거대한 기중기가 서 있었다.
....
"게다가,
성보다 기중기가 더 잘 보존되었어."
에뒤아르가 웃었다.
"넌 벌써 죽었어야 하는 거 아냐?
네 심장으론 이 비탈을 오르기가 힘겨웠을 텐테."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은,
하지만 두려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에뒤아르가 말했다.
베로니카는 그에게 긴 입맞춤을 했다.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봐.
영혼의 눈으로 이 모습 하나하나를 새겨둬.
언젠가 다시 그려낼 수 있게.
네가 원한다면,
내 얼굴부터 그려도 좋아.
꼭 내 모습을 그려줘야 해.
부탁이야.
신을 믿어?"
"응."
"그럼 날 그리겠다고 맹세해.
네가 믿는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
"한 가지 더,
날 그리고 나서도 계속 그림을 그려야 해.
맹세할 수 있어?"
"그건 자신이 없어."
"넌 할 수 있어.
그러면 난 너에게 이렇게 말해줄 거야.
내 삶에 의미를 줘서 고맙다고.
난 내가 겪은 모든 것을 겪기 위해,
자살을 시도하고 심장을 망쳐놓고 널 만나고 이 성에 오르기 위해,
내 얼굴을 네 영혼 속에 영원히 새기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거야.
너로 하여금 네 자신의 길을 되찾게 하는 것,
그게 내가 이 세상에 온 유일한 이유야.
내 삶이 아무 소용도 없었다고 느끼게 만들지 마,"
"아마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조금 전에 네가 말했듯이,
나도 널 사랑한다고 네게 말해주고 싶어.
믿지 않아도 좋아.
바보짓일지도 모르지.
내 환상들 중 하나거나."
베로니카는 에뒤아르의 품에 바싹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이 믿지 않는 하느님에게 자신을 이대로 데려가 달라고 빌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 역시 눈을 감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잠이,
꿈 없는 깊은 잠이 찾아들었다.
죽음은 달콤했다.
죽음에선 포도주 향이 났다.
죽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에뒤아르는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걸 느꼈다.
눈을 떴을 때는 저 멀리 동이 트고 있었다.
"도청에 구호소가 있으니 거기 가서 자도록 해.
여기서 이러고 있다간 얼어 죽기 십상이야."
경비가 말했다.
그 찰나의 순간, 그는 지난밤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해냈다.
그의 품에 뻣뻣하게 굳은 여자 하나가 안겨 있었다.
"그녀가.....
그녀가 죽였어요."
그런데 그때였다.
여자가 몸을 뒤척이고는 눈을 떴다.
"무슨 일이야?" 베로니카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냐.
기적이야.
하루를 또 살 수 있어." 에뒤아르가 일어서며 대답했다.
이고르 박사가 진료실로 들어와 등을 켜자마자 남자 간호사가 노크를 했다.
"오늘은 일찍 시작되는군."
그가 중얼거렸다.
베로니카와의 면담 때문에 그날 하루는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는 일 주일 내내 그 면담을 준비해왔다.
지난밤에는 잠까지 설쳤다.
"안 좋은 소식입니다.
환자 둘이,
대사 아들하고 심장에 문제가 있던 아가씨가 사라졌습니다." 간호사가 어물거리며 말했다.
"도대체 뭣들 하고 있었던 거요!
이 병원은 보안면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
"아무도 달아나려 하지 않으니까요.
우린 도망치는 게 가능한지도 몰랐어요." 겁에 질린 간호사가 대답했다.
.....
이고르 박사는 메모장을 꺼내 책상위에 놓았다.
메모를 시작하려다가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등을 끄고,
떠오르는 태양이 뿌옇게 밝혀주는 책상에 앉아 얼마 동안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리곤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성공했던 것이다.
....
이고르 박사는 그가 가고 있던 길에 본의 아니게 뛰어든 한 젊은 아가씨 덕분에
그가 과학적으로 실험해볼 기회를 얻게 된 치료법만을 논문에서 다루기로 마음먹였었다.
그녀는 아주 심각한 상태로,
수면제 중독에 의한 초기 혼수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
그녀는 거의 일 주일 동안 삶과 죽음 사이를 헤맸다.
이고르 박사가 그 기발한 실험을 구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단 한 가지,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
거기에 모든 게 달려 있었다.
그녀는 살아남았다.
심각한 후유증도,
돌이킬 수 없는 문제도 없이,
건강을 잘 보살피기만 한다면,
그녀는 박사 자신만큼이나 오래,
아니 훨씬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이었다.
....
이렇게 해서,
이고르 박사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페노탈이라는 약을 그녀에게 투여함으로써,
그는 심장발작 효과를 가장하는 데 성공했다.
일주일 내내 그녀는 그 약이 든 주사를 맞았다.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돌이켜볼 시간이 있었으니,
그녀는 몹시 두려웠을 것이다.
....
오늘,
그는 그녀를 만나 꾸준히 놓은 주사 덕분에 심장 발작의 추이가 완연히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작정이었다.
베로니카의 탈출 덕분에,
그는 다시 한번 그녀를 속이는, 그리 유쾌하지 못한 경험을 면할 수 있었다.
햇살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때쯤이면 환자들이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에 모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곧 대기실은 환자들로 북적댈 것이고,
일상의 문제들이 물밀듯이 밀려들 것이다.
그러니 논문에 대한 메모를 빨리 끝내두는 편이 나았다.
그는 다시 베로니카의 경우를 꼼꼼하게 글로 옮겨 적기 시작했다.
건물의 열악한 보안에 대한 보고서는 나중에 작성할 것이다.
1998년, 성(聖)베르나데트 축일 (p257)
파울로 코엘료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역자 / 이상해
문학동네 / 2001. 0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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