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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

4.파울로 코엘료-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뒤아르

by 탄천사랑 2021. 7. 17.

파울로 코엘료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열 일곱의 나이,  외교관 아버지의 첫 발령지 브라질리아에서 자전거 사고로

크게 다쳐 입원한 병원에서 우연히 보게 된 책, '천국의 환영'에 빠져들며 빌레트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의 긴 시간, 청년이 된 에뒤아르는 어느 날, 
피아노 소리에 환영의 세계에서 서서히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아주 중요한 부탁이 있어요..'  베로니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고르 박사는 그녀의 말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청진기로 그녀의 폐와 심장을 청진했다.
그는 그녀의 반사신경을 테스트하고, 조그만 포켓 램프를 이용해 그녀의 망막을 검사했다. 
그녀에게서는 이제 비트리올(또는 모든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대로 말하자면, 아메르튐)
중독의 징후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화로 간호사에게 복잡한 이름의 약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어젯밤에 주사를 안 맞은 것 같군."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난 지금 기분이 좋아요."
"얼굴에 다 나타나 있는데 그래.  눈가의 검은 그늘, 피로, 반사 능력 저하,
 네게 남아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즐기고 싶다면, 

 제발,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내가 여기 온 건 바로 그 때문이예요.  난 즐기고 싶어요. 하지만 내 방삭대로요.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죠?"

이고르 박사는 안경 너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이제 두렵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될 대로 되라는 식은 아니에요.  난 살고 싶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나도 알아요. 

 난 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래서 원하는 게 뭐야?"

간호사가 주사기를 들고 들어왔다.  이고르 박사가 턱짓을 했다.
그러자 간호사가 베로니카의 스웨터 소매를 조심그레 걷어 올렸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죠?"
간호사가 주사를 놓는 사이 베로니카가 반복해 물었다.
"스물네 시간,  어쩌면 그 이하."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깨물었지만 북받쳐오르는 눈물을 끝내 참아내지 못했다.
"두 가지 부탁을 들어주셨으면 해요.  하나는,  내가 깨어 있을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일분 일분을 즐길 수 있도록 약이든 주사든 무엇이든 주세요. 
 잠이 쏟아지지만 난 자고 싶지 않아요.  할일이 너무 많아요.  
 내 삶이 영원하다고 믿었을 때 향상 나중으로 미루어왔던 것들요. 
 내 삶이 살아볼 만한 가치가 없다고 믿기 시작하면서 
 더이상 내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들요."

"두 번째 부탁은?"
"여기서 나가 밖에서 죽고 싶어요. 
 항상 내 눈앞에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가까이 다가가려는 

 호기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류블랴나 성에 가보고 싶어요,
 겨울에는 군밤을,  봄에는 꽂을 파는 아줌마에게 할 말이 있어요. 
 수없이 마주쳤는데 단 한 번도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본 적이 없거든요. 
 외투를 벗고 눈 속을 걷고 싶어요.  그 지독한 추위를 느끼고 싶어요
 (난 감기 걸리는 게 두려워 언제나 옷을 두둑이 입고 다녔거든요) 

 마지막으로, 이고르 박사님,  
 난 내 얼굴 위로 흐르는 빗물을 느껴보고 싶어요. 
 내 마음에 드는 남자들에게 미소를 보내고, 
 그들이 권하는 커피를 모두 마시고 싶어요, 
 늘 존재했지만 애써 감추어왔던 내 감정들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엄마에게 뽀뽀를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품안에서 울고 싶어요.

 아마 성당에도 들어가,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던 그 이미지들을 바라볼 거예요.
 이번엔 뭔가를 말해줄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남자가 클럽에 가자고 하면,  서슴없이 따라나서겠어요. 
 그리고 밤새 춤을 출 거예요.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리고는 그와 함께 침대로 가겠어요.
 
 이번에는 절대 그전처럼 나 자신을 통제하려 들거나 
 느끼지도 않는 쾌감을 느끼는 척하지 않을 거예요.
 난 나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지고 싶어요. 
 한 남자에게,  도시에,  삶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에."

베로니카가 입을 다물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렸다.
의사와 환자는 서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p175)

--
에뒤아르는 베로니카가 이고르 박사의 진료실에서 나와 병실로 가는 것을 보얐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었다.
전날 밤,  그녀가 그에게 자신의 몸을 열어 보여주었을 때처럼 정직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영혼을 그녀에게 열어놓고 싶었다.

그 유혹은 정신분열증을 이유로 빌래트에 입원한 후로 그가 겪은 시련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유혹을 뿌리쳤고, 

그런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욕망이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기는 했지만.

"그녀가 주말까지 버티지 못할 거라는 걸 여기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어.
 그러니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


아니면, 바로 그 때문에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좋은 것인지 모른다. 
.....
며칠 전, 그와 같은 또래의 여자 하나가 피아노에 앉아 <월광 소나타>를 연주했다.
음악 탓인지,  아니면 달 탓인지,  아니면 빌레트에서 보낸 세월 탓인지 모르지만,
에뒤아르는 또다시 천국의 환영들로 동요되는 자신을 느꼈다.

그는 여환자들의 공동 침실까지 그녀를 쫓아갔다.
한 간호사가 지나가려는 그를 막았다.
"에뒤아르, 넌 여기 들어갈 수 없어. 정원으로 돌아가. 
 해가 뜨고 있어. 오늘은 날씨가 좋을 거야."  베로니카가 돌아다 보았다.
"좀 자야겠어. 일어나서 이야기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청년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일부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에게 음악을 이해하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볼 만한 능력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입으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눈으로는 모든 걸 말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공동 침실의 문가에서,  

그의 두 눈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그녀에게 말하고 있었다. 애정, 사랑,  

'정신병 환자들과 지내다 보니 그새 나도 미쳐 버렸나 봐.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그런 걸 느낄 수 없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니까'

베로니카는 되돌아가 그에게 입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간호사가 그걸 보고 이고르 박사에게 보고할 수도 있었다.
그 의사가 정신분열증 환자와 입맞추는 여자를 빌래트에서 나가게 해 줄 리 없었다.

에뒤아르는 간호사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베로니카에 대한 이끌림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강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다스리고, 

그가 비밀을 털어놓는 유일한 사람인 마리아에게 조언을 구해야 했다. (p182)

--
그는 빌레트에서 달아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아주 엄격해 보여도, 빌레트의 보안에는 많은 틈들이 있었다.
하지만 일단 내부로 들어오면 바깥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틈들은 틈이면서도 틈이 아니었다. 

서쪽 담은 온통 금간 곳 투성이어서, 큰 어려움 없이 넘을 수 있었다.
담을 넘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에뒤아르는 금방 들판에 있을 것이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 분만 달리면

크로아티아로 향하는 도로에 가 닿을 수 있을 터였다. 

전쟁이 끝났으니,  형제들은 또다시 형제였다.

국경도 이젠 예전만큼 철저하게 감시하지 않았다.
운만 좀 따른다면,  여섯 시간 후에는 베오그라드에 가 있을 수도 있었다.

에뒤아르는 여러 번 그 행로를 따라 탈출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더 멀리까지 가라는 신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도중에 매번 빌레트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런데 그 신호가 마침내, 

푸른 눈에 밤색 머리카락을 가진 한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걸 알고 있다고 믿는 불안스런 표정을 하고서.

에뒤아르는 곧장 벽을 향해 나아가기로,  떠나기로, 

슬로베니아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춰버리기로 결심을 했다.
그런데 여자가 자고 있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작별인사는 하고 떠나야 했다. (p184)

--
"그만 해, 에뒤아르."
"나랑 같이 가요." 

그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모두들 그의 단호한 어조에 놀랄 테니까. 그래서 무릎을 끓고 눈으로 애원했다. 
모두들 깔깔거리며 웃었다.
"마리아.  그 녀석한텐 당신이 성녀로 보이는 모양이네.
 아마 어제 한 명상 덕택인가 봐."  누군가가 농을 했다.

수년간의 침묵을 통해 에뒤아르는 말없이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눈에 집중시킬 수 있었다.
베로니카가 그의 애정, 그의 사랑을 짐작했으리라는 걸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매달리는 그를 보고 마리아도 그의 절망을

이해하리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좀 더 버티다가,  결국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그래, 산책이나 하러 가자.  신경이 날카로워진 모양이구나."

그들은 다시 정원으로 갔다.  멀찍이 떨어져,  아무도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없다는 확신이 서자,  에뒤아르가 침묵을 깼다.


"네가 빌레트에 온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어요.
 부모님을 창피하게 만드는 일도 그만두었고, 야망도, 모두 포기해버렸죠.
 그런데도 천국의 환영들은 날 떠나지 않았어요."
"나도 알아.  그 애긴 벌써 여러 번 했었지.  네가 무슨 말하려는 지도 알아.
 떠날 시간이 됐다는 거겠지."   마리아가 대답을 했다.


에뒤아르는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녀도 똑 같은 걸 느끼고 있던 걸까?

"그 아이 때문이야.  우린 이미 병원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수도 없이 봤어.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대게 모든 희망을 잃은 후에 죽어들 갔지.

 그런데 처음으로,  앞날이 창창한 젊고,  예쁘고,  건강해 보이는 아이한테
 그 일이 닥친 거야. 

 베로니카는 유일하게 영원히 빌레트에 머물길 원치 않는 아이일 거야.
 그 때문에 우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었지
 '그럼 우린, 우린 여기서 뭘 찾고 있는 거지?라고 말야."  마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시했다.  (p187)

--
베로니카는 식은 땀에 흠뻑 젖은 채  소스라치듯 잠에서 깨어났다..
몹시 시끄러웠다.  더 잘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소란은 끈질기게 계속되었다.  그녀는 일어나,  약간은 멍한 상태로 살롱으로 갔다.
그때 마침 두 간호사가 에뒤아르를 끌고 가고 있었고, 

다른 간호사들이 주사기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예요?"  그녀가 외쳤다.
"베로니카!"
에뒤아르의 목소리였다.  정신분열증 환자가 그녀에게 말을 한 것이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놀라움과 창피함을 동시에 느끼며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한 간호사가 그녀를 막아 섰다.

"뭐 하는 거예요?  난 미쳐서 이곳에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한텐 날 이런 식으로 취급할 권리가 없어요!"

그녀가 간호사를 물리치는 사이,  다른 환자들은 무서울 정도로 괴성을 질려대며

소란을 피웠다.  이고르 박사만 만나보고 당장 떠나버려야 할까?
"베로니카!"  그가 다시 그녀를 불렸다.
에뒤아르는 초인적인 노력으로 두 남자의 품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하지만 그는 뛰어 달아나기는커녕,  전날 밤과 똑같은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모두가 하던 것을 멈추고 에뒤아르의 다음 동작을 기다렸다.
간호사들 중 하나가 다시 그에게 다가갔다.
에뒤아르가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그를 노려보았다.


"순순히 따라갈게요.  당신들이 날 어디로 데려갈 건지 알아요.
 사람들에게 겁을 주려는 것도,  그려니 잠시만 기다려줘요."

간호사는 위험을 감수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상황은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넌 나한테....

 넌 나한테 소중한 존재인 것 같아."  에뒤아르가 베로니카에게 말했다.
"넌 말을 할 수 없어.  넌 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아.
 넌 내 이름이 베로니카라는 걸 몰라.  넌 어젯밤 나와 함께 있지 않았어
 제발, 거기 있지 않았다고 말해줘!" 
"난 거기 있었어."

그녀가 그의 손을 잡았다. 

미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고,  음란한 말들을 해댔다.
"널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한 가지 치료를 받게 할 거야."
"나도 따라갈께."
"그럴 필요 없어.  그 치료가 고통스럽지는 않다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정신이 더 빨리 돌아오니 

 진정제보다 오히려 더 났다고 말해도 넌 겁에 질리고 말 거야."

베로니카는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은 것을 후회했다.
그녀는 창피함을 감추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길,
그녀 안에 있는 가장 천한 것을 지켜보고도 

여전히 애정으로 그녀를 대하는 그 남자를 두 번 다시 보지 않길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마리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행위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 앞에 서 있는 그 청년에게조차도.
"같이 갈래."
간호사들은 그렇게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정신분열증 환자는 제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순순히 그들을 따랐다. (p195)

--
한 시간 후, 

침대에 누워 있는 청년과 그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아가씨를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는 병실로 제드카가 들어왔다.  그녀는 가까이 다가가다가

베로니카가 또 토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베로니카는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제드카가 도움을 청하려 밖으로 나가려 하자,  베로니카가 고개를 들었다.
"별일 아니에요.  또 발작이 온 거예요.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제드카는 그녀의 한쪽 팔을 붙들어 부축하고는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여긴 남자 화장실이에요."  베로니카가 말했다.
"아무도 없어. 걱정하지 마."

그녀는 더러워진 털 스웨터를 벗기고는, 그걸 빨아 라디에이터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직 셔츠를 벗어 베로니카에게 입혀 주웠다.
"그냥 가져. 너에게 작별인사를 하려 온 거야."

베로니카는 더이상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멍해 보였다.
제드카는 처음에 앉아 있던 의자까지 그녀를 다시 데려갔다.

"조금 있으면 에뒤아르가 깨어날 거야.

 아마 처음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해내지 못하겠지만 곧 기억을 되찾을 거야.

 널 금방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않아요.  난 나 자신조차도 알아볼 수가 없는걸요."  베로니카가 대답했다. 
.....
제드카는 베로니카의 눈빛이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여자가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침대 앞에 앉아서 잠든 남자를 바라보며 보내기로 작정했다면,

 난 거기에 사랑이 있다고 말하겠어. 

 또 이렇게도 말할 거야. 
 그 사이 그녀가 심장 발작을 일으켰는데도 

 오로지 그 남자와 떨어져 있지 않기 위해 잠자코 앉아 있었다면.

 그건 그 사랑이 아직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라고."

"그건 절망일 수도 있어요. 

 더이상 태양 아래에서 투쟁을 계속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려는 시도 말이예요. 

 다른 세계에 사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베로니카가 반론을 폈다.

"우린 모두 자기 자신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어.
 하지만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면,
 그 모든 세계들이 서로 어울려 태양계, 성좌, 은하계를 형성하는 걸 알 수 있지."

베로니카는 일어나 에뒤아르에게 다가가서 애정 어린 손길로 그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얘기를 나눌 누군가가 있어 그녀는 행복했다.  (p201)

--
에뒤아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베로니카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
그는 금방 베로니카를 알아보았다.
"잠들어 있는 동안 , 넌 천국의 환영들에 대한 이야길 했어."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녀가 말했다.  천국의 환영들?  그래, 천국의 환영들, 

에뒤아르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다.
바로 그 순간,  여간호사가 주사기를 들고 들어왔다.
"지금 이 주사를 맞아야만 해. 이고르 박사님의 지시야."
간호사가 베로니카에게 말했다.

"오늘 벌써 한 대 맞았는걸요.  난 싫어요. 

 이젠 여기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어요.
 어떤 명령,  어떤 규정에도 따르지 않을 거예요,

 당신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강요할 수 없어요."
간호사는 이런 종류의 반항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안됐지만, 우리도 강제로 주사할 수밖에 없어."
"내 말 들어봐.  주사를 맞도록 해."  에뒤아르가 끼어들었다.
베로니카는 스웨터의 소매를 걷어올렸다.  간호사가 주사를 놓으며 말했다.
"착한 아이인걸,

 이 음침한 병실에서 나가 바깥에서 산책이나 좀 하는 게 어때?"

"넌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부끄러워하고 있어."
정원을 거닐면서 에뒤아르가 말했다.
"부끄러웠지.  하지만 지금은 자랑스러워.  천국의 환영들이 뭔지 알고 싶어.
 나 역시 그걸 거의 볼 뻔했거든."
"빌레트의 건물들 너머,  더 먼 곳을 바라봐야 해."
"그럼, 그렇게 해."

에뒤아르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병실의 벽 쪽도 환자들이 말 없이 거닐고 있는  정원 쪽도 아닌,  다른 대륙,
가뭄과 억수 같은 비가 번갈아 이어지는 어떤 나라의 한 거리를 향해.  (p214)

 

 

파울로 코엘료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역자 / 이상해
문학동네 / 2001. 0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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