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1997년 11월 21일,
베로니카는 드디어 목숨을 끊을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세 들어 살고 있는 수녀원의 방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남방을 끈 다음,
이빨을 닦았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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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이나 걸릴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신은 과연 존재할까?
베로니카는 모든 사람들이 던져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곧 알 수 있으리라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신이니 자신의 존재니하는 그런 문제에 그리 깊이 빠져들지 않았다.
공산주의 구체제의 공식 교육은 그녀에게 삶은 죽음과 함께 끝나는 거라고 가르쳤고,
그녀는 그 생각에 익숙해져 있었다.
부모와 부모의 부모 세대들는 여전히 교회를 찾았고,
기도와 순례를 했으며,
그들이 간구하는 말에 신이 귀 기울이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지만,
스물네 살의 나이에,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것을 경험해본 후에
(그녀의 경험이 아주 하찮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길!)
베로니카는 모든 것이 죽음과 함게 끝난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살을 선택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마침내, 자유. 영원히. 망각.
하지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었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수천 년 문명은 자살을 금기로, 혹은 모든 종교적 규범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다.
인간은 포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투쟁한다.
인류는 자손을 번식시켜야만 한다. 사회는 인력을 필요로 한다.
남자와 여자에게는 사랑이 식어도 함께 지내야 할 이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한 국가는 병사와 정치인 그리고 예술가들을 필요로 한다.
'솔직히 난 믿지 않지만,
신이 존재한다면, 신은 인간의 이해력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이해해야만 해.
불의, 탐욕, 비참함, 고독일 뿐인 이러한 혼돈을 창조한 건 바로 신 자신이잖아.
신의 의도는 훌륭한 것이었겠지만 결과는 형편없어,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보다 일찍 이 세상을 떠나기를 갈망한 피조물들에게 관대함을 보여야 해.
아니, 오히려 우리가 이 땅을 거쳐가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할지도 몰라.'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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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몸을 숙여 베로니카를 살펴보았다.
베로니카의 몸은 그녀의 자기 파괴 의지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결박당해 있었고,
튜브가 몸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간절한 애원의 눈길을 보냈다.
'이 튜브들을 빼줘,
조용히 죽어갈 수 있게 좀 내버려두란 말이야.'
"진정해요.
당신이 후회를 하든 여전히 죽기를 원하든, 그건 내 알바 아니예요.
내게 중요한 건,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에요.
환자가 발작적인 반응을 보이면, 규정상 난 진정제를 주사해야만 해요."
베로니카는 몸부림을 멈추었다. 간호원은 어느새 그녀의 팔에 주사를 놓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이상한 세계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방금 본 여자의 얼굴, 푸른 눈, 밤색 머리카락,
그리고 규정에 대해서는 한치의 의문도 품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일을 해치우는 차가운 표정만이 잠깐 스쳐갔을 뿐,
아무 기억도 없고, 꿈도 없는 세계 속으로.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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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는 얼마나 잤는지 알 수 없었다.
잠깐 깬 적이 있는것 같은데, 입과 코에는 여전히 생존 기구들이 연결되어 있었고,
'마스터베이션해줄까?'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은 듯한 기억이 났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려보았지만
그녀는 그 기억이 실제였는지 환각이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튜브는 제거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 여기저기 주삿바늘들이 꽂혀 있고,
심장과 머리에는 전극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양팔은 여전히 묶여 있었다.
그녀는 벌거벗은 채 시트 한 장만 달랑 덮고 있어서 추웠지만
덮을 것을 더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녀가 누워 있는 공간은 녹색 커튼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집중적인 치료에 필요한 기계들, 침대 하나,
햐안 의자 하나가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간호사가 그 햐안 의자에 앉아 독서에 열중하고 있었다.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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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떴을 때, 배로니카는 자신이 다른 장소로 옮겨졌다는 걸 곧 알아차렸다.
병실과 흡사한 넓은 방이었다. 팔에는 여전히 링거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지만,
나머지 튜브들, 다른 주삿바늘들은 모두 제거되어 있었다.
검게 염색한 머리카락과 콧수염이 전통적인 하얀 가운 때문에 더욱더 두드러져 보이는,
키가 무척 큰 의사 하나가 그녀의 침대 앞에 서 있고,
한 젊은 레지던트가 그 옆에 서서 메모판을 꽉 움켜쥔 채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제가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됐죠?"
그녀가 물었다. 말하는 게 힘이 들고, 발음을 정확히 할 수가 없었다.
"응급실에서 닷새, 그리고 이 방에서 두 주일, 아직 살아 있는 걸 하느님께 감사해요."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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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곳에 얼마나 더 있게 되나요?"
젊은 의사가 눈을 내리 깔았다. 순간, 베로니카는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에게서 대답이 나오는 순간,
이제는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을 그녀 삶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기라도 할 것처럼,
"말해줘도 좋아. 환자들 사이에 이미 소문이 돌고 있어.
그러니 결국 어떻게든 알게 될 거야.
이곳에서 비밀을 간직하기란 불가능하니까."
나이든 의사가 말했다.
"좋아요. 당신의 운명을 결정한 건 바로 당신이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는 이래요.
수면제의 작용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당신의 심장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어요. 심실에 희저가 있었고..., "
단어 하나하나를 힘주어 말하며 젊은 의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간단하게, 요점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이든 의사가 말을 잘랐다.
"당신의 심장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어요.
그래서 머지않아 박동을 멈추게 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베로니카가 겁에 질려 물었다."
"심장이 박동을 멈춘다는 건 단 한 가지,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죠.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
"언제쯤이요?" 그녀가 소리쳤다.
"닷새, 아니면 길어야 일 주일."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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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감옥인가요?" 책을 읽다 말고 자신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시선으로 좇고 있던 간호사에게 베로니카가 물었다.
"어뇨. 여긴 정신병원이예요."
"난 미치지 않았어요." 간호사가 웃었다.
"여기선 다들 그렇게 말해요."
"좋아요. 그럼 난 미쳤어요. 그런데 미쳤다는 게 도대체 뭐죠?"
간호사는 베로니카에게 너무 오래 서 있으면 안 된다고 타이르고는
침대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미쳤다는 게 도대체 뭐죠?" 베로니카가 다시 물었다.
"내일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세요. 자, 이제그만 자러 가요.
안그러면, 나도 그러고 싶진 않지만, 당신에게 진정제를 주사할 수밖에 없어요."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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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알아,
하지만 설명할 수는 없어. 네가 나에게 던진 첫 질문, 기억해?"
"미쳤다는 게 뭔지 알고 있냐고 했어요."
"그래, 바로 그거야.
이번엔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대답해줄게.
미쳤다는 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해.
마치 네가 낯선 나라에 와 있는 것처럼 말이지.
너는 모든 것을 보고, 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식하지만
너 자신을 설명할 수도 도움을 구할 수도 없어. 그 나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건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느껴본 거예요."
"우리 모두 미친 사람들이야.
이런 식으로든 저런 식으로든."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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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떨림은 소심하고 억제된 미약한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울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녀는 스르륵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간호사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간호사는 책을 놓고,
베로니카를 휩쓸고 있는 슬픔의 물결이 스스로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둘은 그렇게 반시간가량을 꼼짝도 않고 있었다.
한 여자는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울고 있었고,
또 한 여자는 슬픔의 이유도 모르는 채 위로하고 있었다. (p84)
...
"내가 운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에요. 난 내가 혐오하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면제를 먹었죠. 하지만 내 안에 내가 사랑할 수도 있는
다른 베로니카가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어요." 베로니카가 말했다.
"도대체 뭐가 자신을 혐오하게 만들지?”
"아마 비겁함이겠죠. 아니면 잘못하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영원한 두려움이거나.
몇 분 전만 해도 난 행복했어요,
죽움을 선고받았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있었죠.
그런데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다시 깨닫게 되자, 더럭 겁이 났어요."
...
그녀는 가장 쉬운 일에서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강하며 무심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허약했고, 학업이나 운동시합에서 결코 두드러진
성적을 거든 적이 없으며, 가정을 화목하게 가꾸지 못했다.
그녀는 자잘한 결점들과 싸우느라 지쳐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는 쉽게 무너졌다.
독립심 강한 여자처럼 행동했지만,
내심으로는 같이 지낼 사람을 열렬히 갈구했다.
그녀가 나타나면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지만,
그녀는 대개 홀로 밤을 보냈다.
...
바로 이런 이유로, 그녀에게는 자기 자신
(누구나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 데
써야 할 힘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타인들, 그들을 이해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고,
그들 자신이 만든 방어막 속에 갇혀 그녀처럼 모든 것에 무관심했다.
좀더 삶에 개방적인 누군가를 만나면, 그들은 그 사람을 즉각 거부하거나,
열등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매도하여 상처를 입혔다.
좋다. 그녀가 고집과 결단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치자.
그런 그녀가 지금 도달한 곳은?
공허. 완전한 고독. 빌레트. 죽음의 앙티샹브르(불어로 '대기실'이라는 뜻)
자살 기도에 대한 후회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베로니카는 이번에도 그것을 단호히 뿌리쳤다.
그녀는 지금, 이제껏 스스로에게 용납하지 않았던 감정,
즉 증오를 몸서리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p87)
파울로 코엘료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역자 / 이상해
문학동네 / 2001. 0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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