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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

· 메이브 하란-세상은 내게 모든 것을 가지라 한다1/아무튼 축하하오.

by 탄천사랑 2021. 9. 25.

메이브 하란 -  「세상은 내게 모든 것을 가지라 한다」

 

 

메트로 텔레비전 방송국의 정력적이고 야심만만한 여성 프로듀서이며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리즈 워드는 잠옷 속으로 자신의 왼쪽 가슴을 애무하는 손길에 잠을 깼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고 그 쾌감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 손이 잠옷 아랫도리 속으로 슬쩍 들어왔을 때 그녀는 반사적으로 등을 구부리며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았다.

 

"맙소사! 여덟 시 십 분이잖아!"  그녀는 남편 데이빗의 손을 밀쳐내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홉 시 십오 분에 콘래드 전무와 회의가 있는데!"  그녀는 마룻바닥에 잠옷을 벗어던지고 욕실로 뛰어갔다.
층계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그녀는 아이들 방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너무 조용했다.
조용하다는 건 언제나 좋지 않은 징조였다.
폭풍 전야의 고요처럼,   대체 제이미와 데이지 는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녀는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데이지의 침실 문을 열었다.
제이미는 문쪽으로 등을 돌린 채

새로 산 배트 맨 차림을 하고 누이동생의 목에 억지로 배트맨의 망토를 붙잡아 매려 하고 있었다.
방바닥은 서랍에서 껴낸 양말과 타이츠로 엉망진창이었다.

제이미가 죄지은 듯한 눈길로 고개를 들었다.
"저게 있어야 해요.
  데이지가 로빈이 되려면 타이츠를 입어야 한다구요.
  안 그래, 데이지?"
"그래. 난, 로빈이야."   데이지가 맞장구를 쳤다.

리즈는 학교에 늦는다고 소리를 지르려다 꾹 참았다.
그 대신 제이미에게 입맞춤을 해주고는 침실로 되돌아가 옷장에서 옷을 꺼냈다.

 

메트로 TV의 여자들은

연예부 담당자에서 화장실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보그(Vogue)>지에서 금방 빠져나온 사람들 같았다.
리즈로서는 그 여자들을 따라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남편은 자존심이 상해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녀는 이불을 사정없이 젖히고 제이미의 운동복을 건네 주었다.
"여보, 제이미는 당신이 맡아요.
  난 데이지의 옷을 갈아입힐 테니까."  그녀는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벌써 여덟 시 이십오 분이었다.
맙소사.   맞벌이하는 엄마의 기쁨이라구?  좋아하네.

 

한 팔로는 데이지를,
다른 한 팔로는 그녀가 어젯밤 읽었어야 했던 보고서를 겨드랑이에 끼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남편은 신문을 읽고 있었다.
어느 때처럼 그는 식탁 주위에서 벌어지는 소동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재
남의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자기 토스트만 만들어 먹고 있었다.

 

어떻게 영국의 시인 던(Donne)은 어떤 남자도 섬이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아침 식사 때는 모든 남자들이 다 섬이다.
여자들이 숨가쁘게 헤엄치는 바다 한가운데 전혀 별개의 것인 양 멍하니 떠 있는 섬인 것이다.

데이빗은 그녀에게 퇴짜 맞은 일이 아직도 섭섭한지 다른 아침보다 한결 더 신문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으깬 바나나, 코코 팝스 아래 깔린 신문을 집어들었다.
그 바람에 신문지 위에 있던 우유가 그녀 쪽으로 엎질러졌다.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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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그녀의 차례였다.
리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심호홉을 하고는 일부러 마크 라울리 쪽은 보지 않고
똑바로 앞을 보면서 천천히 방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녀는 마지막 몇 분간 머릿속을 다시금 정리해 놓았다.
이제 그녀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사직 선언을 위한 말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않으시오, 리즈"
놀랍게도 콘래드는 면접 때 그녀가 앉던 자리가 아니라 자기 곁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할말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서,
그리고 이 일이 끝나는 대로 집으로 달려가 아이들을 보리라고 생각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문득 자기들 상관의 정부(情婦)인 클로디아에게 자리를 줄 것이면서도 시침미를 떼고
상냥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이 다섯 사람의 남자들에 대해 화가 치밀었다.

 

게다가 그녀로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히스테리컬'하다든지 '호전적'이라는
불복종의 전형적인 딱지가 붙게 될 터였다.
그녀는 이자들에게 남성적인 가치라는 것이 사업을 운영하는 유일한 방식도,
최선의 방식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무님."   그녀는 도전적으로 턱을 치켜들었다.
"무슨 말씀을 하실 건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제가 한 두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요."
"얼마든지 말씀하시오.
  우리 모두는 이제 당신 말에 귀를 기울어야 할 테니까 말이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그녀는 그제야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는 말을 멈췄다.
"그 말씀은.....,"
"그렇소.
  그렇게 놀랄 것은 없어요.
  난 벌써부터 당신이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데 귀재라는 걸 알고 있었소.
  그 때문에 당신을 고용한거니까 말이요.
  하지만 당신이 제시한 수치 덕분에 우린 모두 몹시 놀랐소.
  특히 여기 있는 마크 씨가 말이오."

 

그는 마크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그러자 마크도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튼 축하하오.
  우린 당신에게 메트로 TV의 신임 프로그램 편성자의 자리를 드리겠소." (p44)

 

 이 글은 <세상은 내게 ... >에 실린 일부를 필사한 것임.

 

 

 

메이브 하란 -  세상은 내게 모든 것을 가지라 한다

역자 - 한기찬
둥지  - 1992. 1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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