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말을 백마리 가진 사람이라도
채찍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있다. -라다크 속담-
"왜 우리한테 방을 빌려줄 수 없습니까?
값을 잘 드리겠어요." 앙축과 돌마는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는 태도로 내려다보았다.
"응가왕 에게 말해보세요"라고 그들은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우린 이미 그 사람의 방을 쓰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 그 집은 상당히 시끄러워졌어요.
그 사람에게 방을 또하나 더 빌려야 될 이유가 없어요."
"당신들은 지금 응가왕과 함께 지내고 있어요.
우리가 당신들에게 방을 빌려주면 그는 마음이 상할 거예요."
"그 사람이 그렇게 옹졸하진 않을 거예요!
그러지 말고 방을 하나 빌려 주세요,
네?"
"먼저 그 사람에게 말을 하세요.
우리는 함께 살아야 돼요."
나는 1983년 여름을 잔스카르의 통데 마을에서
사회 생태학적 연구에 임하고 있던 교수들과 함께 보내고 있었다.
한 달쯤 지나서 그들 중 몇명은 조용한 연구를 위해 방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집은 어리고 소란스러운 아이들이 많았으므로
우리는 이웃집에 부탁을 해 보려고 하였다.
처음에 나는 앙축과 돌마의 거절에 화가 났다.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나에게 이 일은 너무나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의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라는 대답을 듣고 나는 생각을 좀 해보았다.
라다크 사람들에게 최우선의 문제는 공존인 것 같았다.
돈을 좀 버는 것보다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한 번은 소남과 그의 이웃사람이 목수에게 창틀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이 다 집을 키우고 있었다.
목수는 일을 마치자 창틀을 모두 그 이웃사람에게 가지고 왔다.
며칠 후에 나는 소남과 같이 그것을 가지러 갔다.
몇 개가 부족했다.
이웃사람이 자기가 주문한 것보다 더 많이 써버렸던 것이다.
창틀이 제자리에 놓이지 않으면 건축일을 더 할 수가 없고 창틀을 새로 만드는 데는
몇 주일이 걸릴 것이므로 이것은 소남에게 상당한 불편을 끼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화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웃사람이 잘못했다고 말하자 그는 그저
"그 사람이 나보다 더 긴급히 그게 필요했던 게지요" 라고만 말했다.
"해명을 하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 하고 내가 물었다.
소남은 그저 미소를 띠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뭐 하러 그래요?
어쨌든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는데요." -P55-
...
나는 한번 소남에게
"당신들은 언쟁을 하지 않습니까?
서구에서 우리들은 늘 하는데요" 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마을에서는 안해요.
아니, 하더라도 정말로 몹시 드물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내가 물었다. 그는 웃었다.
"참 우스운 질문이네요.
우리는 그저 함께 사는 거예요. 그뿐이죠."
"그럼, 만일 두사람이 의견이 다르면 어떻게 되나요?
-땅의 경계나 뭐 그런 문제로 말이에요."
"그런 일이 있으면 물론 얘기를 하지요.
그리고 의논을 해요.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P56-
...
협동은 많은 사회관습 속에 제도화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파스푼'이다.
마을의 각 가정은
출생, 결혼, 사망의 시기에 서로서로 도와주는 몇 가구로 된 집단에 속해 있다.
집단은 넷에서 열두 가구로 이루어지는데
때로는 다른 마을에서 온 사람들로 되어있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가족들을 해악과 질병에서 보호해준다는,
믿음이 같은 신을 섬긴다.
새해에 각 집의 지붕에 있는 작은 사당에서 그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
'파스픈'은 장례 때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다.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할 때까지 시신을 집안에 두는데(보통 1주일 정도)
가족들은 시신을 만질 필요가 없다.
'파스픈'의 구성원들이 시신을 씻고 준비하는 책임을 맡는다.
사망의 순간부터 시신이 불로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모든 일을 마련하는 것은 그들이고, 가족들은 불필요한 괴로움이 면제된다.
승려가 장례 기간 동안에 티베트 <死者의 書>를 읽어주려 온다.
죽은 이의 혼령에게 내 생의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마귀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순수한 흰 빛, '맑은 공(空)의 빛'을 향하라고 말해준다. -P61-
...
농사일의 많은 부분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하거나 '추쪼'같은 소집단이 함께 한다.
예를 들어, 추수 동안에 농부들은 농작물 거두어 들이기를 서로 도와서 한다.
농작물이 한 마을 안에서도 익는 시기가 다르므로 이 일은 잘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이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농작물이 익자마자 빨리 수확을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공동작업을 '베스'라고 부르고,
여기에는 흔히 여러 마을이 함께 참여하는데 그 이유는 순전히 경제적인 것만이 아니다.
어떤 농부들은 두 밭의 곡식이 동시에 익었어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기 위해
한쪽 밭의 추수를 미룬다. 사람들이 혼자서 추수하는 것은 거의 볼 수 없다.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모두가 어울려(향상 웃음과 노랫소리와 함께) 추수를 한다.
'라레스'는 공동으로 하는 짐승 돌보기이다.
매일매일 각 집에서 한사람씩 짐승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갈 필요는 없다.
그 대신 한사람이나 두 사람이
여러 집의 양과 염소들을 데려가고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일를 할 수 있게 한다.
사유재산도 함께 사용한다.
산 위 초지에 있는 작은 돌 오두막은 한 집의 소유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통 일을 해주거나 우유나 치즈를 주고 사용한다.
같은 식으로 곡식을 빻는 물레방아도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물레방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다른 사람의 것을 쓸 수가 있고,
물은 부족하고 곡식을 빻으려는 사람이 많은
늦가을에만 방앗간 주인에게 빻은 곡식을 얼마 주어 대가를 지불한다.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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