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魯迅) - 「고독한 사람(孤独者)」
5 .
상양에서 역성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태곡으로 갔다.
이렇게 해서 반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결국 일을 찾지 못한 채 나는 S시에 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S시에 도착한 것을 이른 봄날의 오후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듯한 날씨에 모든 것은 회색으로 덮여 있었다.
전에 살았던 집에 빈방이 있어 그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나는 오면서 여러 번 리엔쑤의 생각을 했다.
저녁을 먹고 곧 그를 방문하기로 했다.
나는 원시의 명산물인 진빵을 두 꾸러미 들고 질척한 길을 여러 군데 지나서,
길바닥에 길게 누워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개를 여러 번 피해 가며 겨우겨우 리엔쑤가 거처하는 집 앞에 도착했다.
집안은 매우 환하게 보였다.
고문쯤 되면 집 안까지도 이렇게 환해지는 것인가 싶어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보니 문 옆에 하얀 종이가 비스듬히 붙여져 있는 것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래서 나는 따량의 할머니가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불빛에 비쳐 뜰에 놓여 있는 관이 하나 보였고, 그 옆에 군복을 입은 병사 같은 사람이 한 사람 서 있었다.
또 한 사람이 그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따량의 할머니였다.
그 외에도 짧은 저고리를 입은 인부 차림의 사람들이 여러 명 한가하게 서 있었다.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따량의 할머니도 이쪽을 보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구! 언제 오셨어요?
이삼 일만 일찍 왔어도..." 대뜸 그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누가 ... 누가 세상을 떠났습니까?" 나는 이미 짐작이 갔지만 그렇게 물었다.
"웨이 선생이에요.
그저께 돌아가셨어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객실은 어두컴컴했다.
등불이 하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큰 방에는 흰 장례용 포장이 쳐 있었고, 밖에는 두서너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따량과 얼량이었다.
"저쪽에 뉘어 놓았어요." 따량의 할머니가 다가와서 손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웨이 선생이 출세하신 뒤론 내가 큰방까지 빌려 드렸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방에 뉘어 놓았지요."
휘장 앞에 다른 것은 없고 긴 탁자와 정방형 탁자가 놓여 있었고,
정방형 탁자 위에는 밥과 나물을 담은 그릇이 여남은 개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내가 문지방을 넘어서 들어가려고 하니까 갑자기 흰 상복을 입은 두 사람의 사나이가 나타나서
나를 막으며 퀭한 눈을 부릅뜨고 내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나는 급히 리엔쑤와의 관계를 설명했다.
따량의 할머니도 오더니 옆에서 거들어 주었다.
그러자 겨우 그들의 손과 눈빛이 부드러워지며 내게 앞으로 나아가 배례하도록 묵인해 주었다.
내가 배례를 하려고 하자, 별안간 '아이구, 아이구'하는 우는 사람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열두서넛 되는 아이 하나가 돗자리 위에 엎드려 있었다.
이 아이도 흰 상복을 입고 짧게 깎은 머리에 굵은 삼줄을 두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리엔쑤의 외갓집 사촌으로 그와는 가장 가까운 사이이고, 또 한 사람은 먼 친척으로 조카뻘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고인을 보고 싶다고 하니까, 그들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한사코 거절하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내 말에 납득이 갔는지 휘장을 열어 주었다.
이때 나는 죽은 리엔쑤와 만난 것이다.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는 주름이 잡힌 짧은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가슴 언저리엔 아직 핏자국이 있었다.
얼굴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수척해 있었다.
다만 표정만은 변하지 않고 옛모습 그대로였다.
가볍게 입술을 다물고 눈을 감은 모습이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코끝에 손을 대어 그가 아직 호흡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확인해 보고 싶었다.
모든 것에 죽음처럼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죽은 자도 산 자도. 나는 뒤로 물러났다.
그의 외갓집 사촌은 자진해서 나에게 무어라고 말을 걸어 왔다.
'동생'은 아직도 혈기왕성한 나이로 전도가 양양함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집안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친지 여러분들께도 염려를 끼치게 되었다는 말을 늘어놓았다.
리엔쑤를 대신해 사과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이런 인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산촌에 사는 사람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
죽음과 같은 정적이었다. 살아 있는 자도 죽은 자도.
나는 피로했고 몹시 무료하였다.
새삼 아무런 슬픔도 솟아나지 않았다.
나는 뜰로 나와서 따량의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게 입관 시간이 되어서 수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관에 못을 칠 때는 쥐띠, 말띠, 토끼띠, 닭띠인 사람은 반드시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 등을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샘물이 솟아오르듯이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그의 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그가 살아 있을 때의 상황에 대해서 말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웨이 선생은 운이 트이고 난 다음부터는 사람이 전과 아주 달라지셔서,
얼굴을 똑바로 쳐들고 가슴을 젖히고 다니셨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가도 전처럼 기를 못 펴고 있지 않았어요.
아시다시피 전엔 벙어리처럼 말이 없었잖아요.
저를 보고도 전엔 마님이라고 부르더니 이제는 '할멈'이라고 부르더군요.
정말 참 재미있었어요.
어떤 사람이 센쥐츄(저졍성 센쥐에서 나는 약초의 일종)를 보냈는데 그분은 드시지 않고 뜰에 버려두셨어요.
바로 이곳입니다.
그러고는 '할멈이 먹어.'라고 하더군요.
출세하시고 나니까 손님이 끊일 사이가 없어서 큰 방을 그분에게 내어 주고 우리는 이 곁방으로 옮겨 왔지요.
그분은 다른 사람과 달라서 출세하신 뒤에도 우리에게 곧잘 이야기를 했었어요.
한 달만 빨리 오셨더라면 그분의 그런 떠들썩한 모습을 보셨을 텐데...
하여간 사흘이 멀다 하고 주연을 베풀고, 떠들어대고, 웃고, 노래 부르고, 시를 짓고, 마작을 하고... 굉장했어요.
그 양반 전에는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무서워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두려워했지요.
흠칫흠칫 놀라면서 작은 소리로 겨우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 무렵에는 곧잘 말도 했고 장난도 쳤어요.
저희 아이들과는 아주 친해져서, 짬만 있으면 아이들과 같이 방에서 놀았지요.
그분은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과 같이 방에서 놀았지요.
그분은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웃겼답니다.
혹 그분에게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르면, 곧잘 아이들에게 개 짖는 소리를 흉내내게도 하고 머리를 숙여 절을 하게도 했지요.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면서 그야말로 정말 떠들썩했었어요.
두어 달 전에 얼량이 구두를 사달라고 졸랐는데, 머리를 숙여 세 번이나 절을 시키고 난 후에 사주셨어요.
보세요,
지금까지 신고 있는데 아직 낡지 않았답니다."
흰 상복을 입은 사람이 한 사람 나오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리엔쑤의 병에 대해서 물어 보았지만 그녀는 거기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고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앓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가 언제나 활발하게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달쯤 전에야 비로소 그가 몇 번 각혈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에게는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자리에 눕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죽기 며칠 전에는 목이 막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스싼 대인이 한석한에서 먼 길을 일부러 와서 저금해둔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었지만, 한 마디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스싼 대인은 그가 벙어리 흉내를 낸다고 의심했었다.
그러나 폐병으로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을까...
"그런데 웨이 선생은 정말 이상한 버릇이 있는 분이었어요." 그녀는 갑자기 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저금 같은 것은 한 푼도 하지 않고 돈을 물쓰듯이 마구 써버렸단 말예요.
스싼 대인은 마치 우리들이 단물을 빨아먹은 것처럼 말하는데, 무슨 단물이 있었겠어요? 바보처럼 마구 써버리고 만 걸요.
물건 사는 것만 해도 그래요.
오늘 샀다가는 다음날 곧 팔아버렸단 말예요.
아니면 부숴버리고 말든가. 정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돌아가시고 나니까.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오늘만 해도 이렇게 쓸쓸한 장례식은 안 해도 됐을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충고도 해봤지요.
이젠 나이도 많으니 가정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예요.
지금 같으면 색시를 얻는 건 문제도 아니니, 만일 적당한 가문의 규수가 없거든 우선 첩이라도 하나 두는 것이 어떠냐고 그랬지요.
세상 풍속을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요.
그랬더니 그분은 별안간 웃음을 터뜨리면서 '할멈, 지나치게 남의 시중만 들다간 머리가 벗겨진단 말야.'라고 하시더군요.
아무튼 그 무렵엔 좋은 말을 해줘도 정신이 나간 것같이 그걸 곧이 듣지 않았어요.
만일 내 말을 듣기만 했었다면 지금 이렇게 혼자서 쓸쓸하게 저승길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지 않았을 것이고 적어도 몇 사람,
가족의 우는 소리라도 들었을 텐데..."
점포에서 일하는 고용인이 옷보따리를 등에 지고 왔다.
세 사람의 유족은 하의를 집어 들고 휘장 뒤로 들어갔다.
조금 있다가 휘장이 걷혔다.
하의는 벌써 갈아 입혔고, 계속해서 상의를 입히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겐 뜻밖이었다.
굵고 빨간 줄이 쳐져 있는 국방색의 군인 바지였던 것이다.
그것을 입히고 나자 다음은 군복 상의였는데,
무슨 계급인지 어디서 받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거기에는 번쩍거리며 금색 견장이 붙어 있었다.
리엔쑤는 입관되자 보기 흉하게 눕혀졌고 발치에는 노란 가죽신이 놓여졌다.
허리춤엔 종이로 만든 지휘도가, 고목같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거무튀튀한 얼굴 옆에는 금색으로 테두리를 두른 군모가 놓여졌다.
세 사람의 유족이 관을 붙들고 한바탕 소리 높여 울었다.
그러고 나서 울음을 그치고 눈물을 닦았다.
머리에 삼줄을 두른 어린아이가 나갔다.
싼량도 나갔다.
아마도 둘은 모두 쥐띠, 말띠, 토끼띠, 닭띠 중의 어느 하나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인부가 관의 뚜껑을 메어 올렸다.
나는 가까이 가서 마지막으로 영원히 이별하는 리엔쑤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잘 맞지도 않는 의관 속에서 입을 다물고 눈을 감고,
입가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이 우스꽝스런 시체를 냉소하고 있는 듯이 조용히 누워 있었다.
관에 못을 치는 소리와 함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울음소리를 끝까지 다 듣지 못하고 뜰로 나왔다.
발 가는 대로 걷노라니 어느덧 문 밖에 나와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길이 너무도 환해서 머리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니
짙은 구름은 이미 여기저기 흩어져 버리고 둥그런 만월이 차가운 빛을 발하며 중천에 걸려 있었다.
나는 걸음을 재촉하면서 묵직한 압박감 속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발버둥질쳐도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귓속에서 무언가 몸부림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언제까지라도 계속되려는 듯 그치지 않았다.
드디어 그것이 몸부림치며 나왔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 마치 상처 입은 늑대가 울부짖는 것처럼
비통과 분노와 비애가 섞인 아픈 고통 속에서 흘러나오는 가냘픈 신음 소리였다.
내 마음은 가벼워졌다.
나는 축축한 돌길로 달빛을 안고 평안하게 걸어갔다. - 끝 -
루쉰(魯迅) - (단편소설2집) 고독한 사람(孤独者)
역자 - 김시준
을유문화사 - 2008.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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