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산양의 교육사업 실태는 대단히 열악하였다.
나는 학교에 부임해서 두 달이 되었는데도 월급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담뱃값조차도 절약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월급 십오륙 원의 싸구려 교원이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천명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단련된,
철근이 든 육체를 의지하여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사이에 얼굴은 누렇게 뜨고 야위어갔다.
그런데도 조금이라도 지위가 높은 사람이 오면 엎드려 기는 꼴이란 정말 '의식이 족하면서도 예절을 아는' 국민들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찌 된 까닭인지 나는 곧잘 리엔쑤가 헤어질 때 내게 했던 부탁을 회상하곤 했던 것이다.
그 무렵에는 그의 궁핍도 막다른 상태에 이르러
허덕거리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나타나서 겉으로도 당황해 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내가 그곳을 떠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그가 밤늦게 찾아왔는데 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겨우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쪽에서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필경이든 뭐든 한 달에 이삼십 원이면 되겠는데, 난..."
나는 이상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이처럼 비굴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므로 곧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는... 조금만 더 살아 있고 싶어..."
"그곳에 가서 힘닿는 대로 한번 찾아보겠네."
이것이 내가 그날 서슴없이 대답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러고 난 후에도 그 말이 언제나 내 귓가에 맴돌고 동시에 눈에는 리엔쑤의 모습이 떠오르며
더듬는 듯한 어조로 조금만 더 살아 있고 싶다고 하던 목소리까지 들려 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여기저기 부탁을 해보았다.
그러나 아무 소용도 없었다. 일은 없는데 사람은 많았다.
결국 남이 나에게 변명을 하고 내가 그 변명을 그에게 편지로 중계하여 줄 뿐이었다.
1학기 말이 되니까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 지방의 일부 인사들이 발행하고 있는 "학리주보"가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읽어 보면 당장 나인 줄 알도록 했고
내가 마치 학교의 소동을 선동하고 있는 것처럼 써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리엔쑤를 추천한 것까지도 당을 끌어들이는 음모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수업을 하러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문을 잠그고 집 안에 숨어 있었다.
때론 담배 연기가 창문 틈으로 새어 나가는 것조차 학교 소동을 선동한다는 혐의의 불씨가 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다.
리엔쑤의 일 같은 것은 도저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었다.
그런 일을 겪고 있는 중에 한겨울이 되었다.
온종일 줄곧 눈이 내렸는데, 밤이 되어도 그치지 않았다.
집 밖은 모든 것이 아주 고요했고, 그 정적 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은 그런 정적이었다.
나는 희미한 등불 아래 눈을 지그시 감고 고목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눈이 분분히 내려 마치 쌓일 수 있는 데까지 쌓여서 그 위에 계속적으로 쌓이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지금쯤은 고향에서도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느라 분주할 것이다.
나는 어렸을 적에 뒤뜰의 편평한 장소에서 어린 동무들과 눈사람을 만들던 꿈을 꾸고 있었다.
눈사람의 눈엔 두 개의 작은 숯덩이를 박았다.
새까만 눈이다.
그것이 번쩍하고 빛나는가 싶더니 별안간 리엔쑤의 눈으로 변했다.
"조금만 더 살아 있고 싶다." 옛날 그대로의 목소리다.
"어째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묻고 나서 곧 나 자신이 우스워지며 정신이 들었다.
그러고는 다시 단정하게 앉아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창문을 열어 보니 눈은 추측하였던 대로 더욱더 내려 쌓이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늘 듣던 하숙집 심부름꾼의 발소리였다.
그는 내 방의 문을 열고 여섯 치도 넘을 커다란 봉투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갈겨쓴 서체이긴 했지만 슬쩍 보기만 해도 '웨이함'이란 글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리엔쑤가 보낸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S시를 떠나고 나서 그가 내게 처음으로 보낸 편지였다.
나는 그가 게으른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식이 없어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때로는 소식이 없음을 원망스럽게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편지를 받아 들자 이번엔 또 까닭 없이 이상한 느낌이 들어, 서둘러 겉봉을 뜯었다.
안에는 휘갈긴 글씨로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었다.
선페이...
자네에게 뭐라고 경칭을 붙여야 할까.
빈칸은 그대로 두니 자네가 좋을 대로 경칭을 써넣어 주게나.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헤어진 뒤에 편지를 세 통 받았네.
답장은 쓰지 않았지.
이유는 간단하네.
우표를 살 돈이 없었어.
자네는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고 싶겠지.
모든 것을 털어놓고 알려 주기로 하지.
나는 실패한 거야.
전에 내가 실패했다고 여긴 것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그게 아니었어.
지금이야말로 정말 실패란 말일세.
전에는 남들도 내가 좀 더 살기를 희망했었고,
나 자신도 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네.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
그러나 살아가야 하는... 내가 좀더 살기를 바랐던 사람 자신도 살 수가 없었네.
그 사람은 적에 의해서 계획적으로 살해 당했다네.
누가 그를 죽었느냐고? 그것은 아무도 모르네.
인생의 변화는 실로 빠르더군.
지난 반년 동안 난 거의 거지꼴이 되다시피 했었네.
아니, 거지였다고 하는 편이 나을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었네.
그래서 나는 즐겨 구걸 행위를 했지.
이 때문에 추워서 몸이 얼어붙기도 했고 고독했고 힘들었지만 결코 절망과는 타협하지 않았네.
나에게 좀더 살기를 바랐던 사람의 힘은 이처럼 컸던 것일세.
그러나 이제 그것마저 없어져버리고 말았어.
동시에 나는 자신이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네.
다른 사람은 어떨까? 그들 역시 자격이 없네.
동시에 내가 사는 것을 희망하지 않는 자를 위해서라도 나는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세.
다행히도 나에게 건실하게 살아갈 것을 희망해 준 사람은 벌써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누구의 마음도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되네.
남이 상심하는 것을 나는 원치 않거든.
그러나 이제 그런 사람은 이미 없어졌다네.
통쾌하기 짝이 없지. 편안해졌단 말일세.
나는 전에 내가 증오하고 반대하였던 일체의 행위를 실행하려 하네.
전에 존경하고 주장했던 일체의 것을 배척하는 것이지.
나는 이번에야말로 실패했어... 그리고 승리했단 말일세.
자네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내가 영웅이나 위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아,
그 사정이라는 것은 지극히 간단하네.
나는 요즘 뚜 선생의 고문이 되었는데, 봉급은 매달 80원을 받는다네.
선페이... 자네는 나를 어떻게 보는가? 마음대로 생각하게.
나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자네는 아직도 내 옛날의 객실을 기억하고 있겠지.
우리들이 시내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헤어질 때의 그 객실 말일세.
나는 지금도 그 객실을 쓰고 있네.
거기에는 새로운 손님이 있고, 새로운 선물, 새로운 찬양, 새로운 아부, 새로운 출세. 새로운 비굴함이 있고,
새로운 마작과 파티, 새로운 멸시와 적의, 새로운 불면증과 각혈이 있다네...
자네의 지난번 편지에 따르면 자네의 교원 생활도 신통치 않은가 보군.
자네도 고문을 해볼 생각은 없는가? 내게 알려 주면 내가 힘써 보겠네.
사실 문지기라도 상관할 게 있는가. 같은 거야.
새로운 손님과 새로운 선물과 새로운 찬양이...
내가 사는 이곳에는 많은 눈이 내렸네.
자네가 있는 곳은 어떤가? 지금은 벌써 한밤중일세.
두어 번 가량 피를 토했더니 정신이 아주 맑아졌어.
자네가 가을 이후 줄곧 내게 세 통의 편지를 보내 준 것이 생각나는군.
정말 미안하네.
그래서 이렇게 자네에게 편지를 쓸 생각이 든 거야.
설마 자네가 그렇다고 해서 놀라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네.
이후로는 두 번 다시 편지를 쓰지 않을 걸세.
내 이 습관은 자네가 알고 있던 그대로일세.
언제 오겠나? 빠르면 만날 수 있겠지...
그러나 내 생각으로 우리들은 아마도 결국 같은 길이 아니었던 것 같아.
그렇다면 아무쪼록 내게 관한 것은 잊어버리게.
나는 진심으로 이전에 자네가 나를 위해서 생활문제를 생각해 준 데 대해서 감사하고 있네.
그러나 지금으로선 내게 관한 것은 모두 잊어 주게.
나는 이제는 다 잘되었다는 말일세.
12월 14일 리엔쑤
이 편지는 나를 어처구니없이 놀라게 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한 번 자세히 되풀이해서 읽어 보니 아무래도 약간의 불쾌감이 남았다.
그러나 또 동시에 어느 정도의 유쾌함과 안심이 섞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더욱이 그에게 생활의 걱정이 없어졌다는 것은 어쨌든 나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비록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도움이 되어 주지는 못했지만...
문득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쓸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별로 할말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쓰지 않기로 했다.
확실히 나는 점차 그를 잊어 가고 있었다.
내 기억 속에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일도 없어져버렸다.
그런데 편지를 받고 열흘도 못 되어서 S시의 학리학보사로부터 그 곳에서 발간하고 있는 "학리칠일보"를 꼬박꼬박 우송해 왔다.
나는 이런 종류의 것은 보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지만, 이왕 보낸 것이니 가끔 아무렇게나 뒤적여 보는 일도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리엔쑤를 회상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그에 관한 시문이 곧잘 게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설야에 리엔쑤 선생을 배알하다'라든가, '리엔쑤 고문의 아름답고 높은 글 모음집'이라는 것 등이다.
어떤 때는 '학리한담'란에 그가 전에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일들이 재미있고도 이상스럽게 서술되어,
그것이 '일화'로서 은연중에 '비범한 사람은 반드시 비범한 일을 행한다.'는 의미를 풍기고 있었다.
이런 일로 그를 생각하곤 했지만, 어쨌든 그의 모습은 차차로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또 그와의 관계가 날마다 깊어져 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때로는 까닭없이 불안과 지극히 가벼운 초조를 불현듯 느낄 때도 있었다.
다행히 가을이 되니 이 "학리칠일보"는 보내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산양의 '학리주보'에 '유언 즉 사실론'이라는 장편의 논문이 매호마다 게재되게 되었다.
내용은 모군에 관한 소문이 이미 공정한 신사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은 특정한 몇 사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나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매우 조심하면서 전처럼 담배 연기조차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조심한다는 것은 일종의 성가신 고역으로서 그것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리엔쑤에 관한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결국 나는 그에 대한 것은 사실상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나도 결국은 여름방학까지도 견뎌 내지 못하고 5월 말에 산양을 떠나게 되었다.
루쉰 (魯迅) - 고독한 사람(孤獨者)
역자 - 김시준
을유문화사 - 2008.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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