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환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책을 들어다보고 있노라면,
신기하기도 했다.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책 한 권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가로 한 뼘 남짓,
세로 두 뼘가량,
두께는 엄지손가락의 절반쯤이나 될까.
그러나 일단 책을 펼치고 보면,
그 속에 담긴 세상은 끝도 없이 넓고 아득했다.
넘실넘실 바다를 건너고 굽이굽이 산맥을 넘는 기분이었다.
책과 책을 펼쳐 든 내가,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공간은 얼마쯤 될까.
기껏해야 내 앉은키를 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책과 내 마음이 오가고 있는 공간은,
온 우주를 다 담고 있다 할 만큼 드넓고도 신비로웠다
번쩍번쩍 섬광이 비치고 때로는 우르르 천둥소리가 들리는듯하였다. - p21 -
안소영 - 책만 보는 바보
보림 - 2005. 1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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