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 - 「시와 산책」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내가 귀하게 여기는 한 구절이다.
노인을 경외하는 것은,
내가 힘겨워하는 내 앞의 남은 시간을 그는 다 살아냈기 때문이다.
늙음은 버젓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한 결과일 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열차가 완전히 정지하기 전에 그러하듯,
흔들림 없이 잘 멈추기 위해서 늙어가는 사람은 서행하고 있다.
반면 나에게는,
지나야 할 풍경이 조금 더 남아 있다.
써야 할 마음도 조금 더 있다.
그것들이 서둘러 쓰일까 봐
혹은 슬픔에 다 쓰일까 봐 두려워,
노랑이처럼 인색하게 굴 때도 있다.
그 날 노인의 뒤에 서서,
그에게는 위로로써 나에게는 격려로써 저 시구를 읊조렸다.
노인에게는 멈추는 힘이,
나에게는 나아가는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노인의 등을 바라보고,
노인은 호수의 가슴을 바라본다. - p68 -
한정원 / 시와 산책
시간의흐름 / 2020. 06. 30.
'내가만난글 > 한줄톡(단문.명언.단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태주-꽃을 보듯 너를 본다/이 시집은 나의 시 가운데에서 (0) | 2021.06.13 |
---|---|
나태주-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하늘에 있는 별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0) | 2021.06.07 |
김사인-가만히 좋아하는/조용한 일 (0) | 2021.05.01 |
알랜 B치넨-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중년이란.. (0) | 2021.04.24 |
김정민-오늘, 행복을 쓰다/시간 부자가 되겠는가 시간 거지가 되겠는가? (0) | 2021.04.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