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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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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라-저 살림하는 여자예요/내 부엌은 새벽의 수산시장

by 탄천사랑 2010. 10. 10.

최유라 -  「저 살림하는 여자예요

 


"안녕하세요! 아줌마."
"아이구, 색시 왔수?"
"오늘 들어온 것 중에서 어떤 게 가장 물이 좋죠?"
"생태도 좋구, 청어도 요즘이 가장 맛날 땐데."

새벽 4시.
쿨쿨 잠들어 있는 남편이 깰세라 살금살금 일어나 잠버릇 험한 준영이가 발로 차내버린 이불 제대로 덮어주고,
천사처럼 잠든 진영이 얼굴에 뽀뽀 한 번 하고 나서 
윗옷만 살짝 걸치고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하는 것은 결혼 후 한 달이면 몇 번식 치뤄지는 나의 일과이다.

우리 식구는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시간이지만 수산시장의 새벽은 너무나 활기에 차 있다.
한쪽에선 경매가 이루어지고 또 한쪽에선 지방에서 갓 도착한 생선 궤짝들을 내려놓기 바쁘고,
시장 안은 온통 정신없이 시끌벅적하게 돌아간다.

물이 질척질척 배어 있는 시장 안을 가로질러 단골집에 가면 
아줌마니 아저씨가 그날 들어온 생선 중에서 가장 물좋고 맛나는 제철 생선을 권해 주신다.
그러면 나는 생태 한짝, 청어 한짝씩 도매로 산다.

혹 보통 네 식구에 생선이 뭐 그리 많이 필요하겠느냐고, 
무슨 극성으로 수산시장까지 가서 궤짝으로 사들이냐며 흉보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네 식구가 먹어대는 생선의 양은 실로 엄청나다.

꽁치 같은 것은 한끼에 대여섯 마리는 구워야 되고 
생태도 양념구이 해 놓으면 몇 마리는 후다닥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정말 먹성좋은 식구들이다.

그래서 나는 생선을 몇 마리가 아니라 늘 궤짝으로 산다.
갓 경매가 끝나 산지에서 직송된 싱싱한 생선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값도 도매로 사기 때문에 반 이상을 절약할 수가 있다.

한 달에 몇 번씩 수산시장에 들르는 나의 스케줄은 우선 겨울에는 생태나 청어, 
여름에는 오징어나 서대 같은 생선을 궤짝으로 사고 난 뒤 아이들 간식으로 튀겨줄 대하 20마리, 
그리고 매운탕에 필요한 요것저것을 조금 더 챙겨서 사는 것으로 새벽 장보기가 끝난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대략 5시 30분 정도.
그때까지도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식구들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날 먹을 생선 몇 토막만 남긴 뒤 
나머지는 일일이 손질을 해서 먹기 좋게 랩에다가 한 토막씩 싸서 냉동실에 보관해 놓는다.

생태 같은 것은 일일이 내 손으로 직접 포를 떠서 전을 부쳐 먹을 수 있게 손질해서 
냉동실에 보관해 놓고 수시로 반찬으로 만들어 내놓는다.

"아니 최유라가 직접 생태포를 뜬다고?"하며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이다.

보통 다른 주부들은 주로 전을 할때 동태를 이용하지만 
나는 이미 한 번 냉동했던 생선은 절대 안 사고 믿지를 않는 까다로운 성격이라 생태로 포를 뜨는 것이다.

어린 시절 친정 엄마도 절대로 우리에게 동태로 포를 떠서 먹이는 일이 없었기에 
나는 다른 집도 다 생태로 전을 부쳐먹는 줄 알았다.
나 또한 그렇게 해오다 
어느 날 다른 사람들과 애기를 하다보니 포는 동태로 뜨는 게 일반화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생태포뿐만 아니라 대구나 방어 같은 것들도 생선가게 아저씨에게 안 맡기고 직접 포를 뜬다.
생선가게에서 뜨면 오ㅔㄴ지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마나 칼이 비위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생선에다 뿌려주는 소금도 미덥지가 않다.
결국 우리 식구 먹을 음식은 항상 내 손을 거쳐야만 안심이 되기 때문에 손수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선가게 아저씨나 아줌마처럼 벨 따는 거나 포 뜨는 것이 수준급이다.
아닌 말로 생선장사를 해도 될 정도이다.

생선포를 뜨면서 내가 왜 이렇게 선수가 됐을까 생각을 해보면 거기에 반드시 엄마의 모습이 있다.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한 달에 한 번씩 서울에 있는 수산시장엘 다녀오곤 했다.
집이 수원이라 수원에서 노량진까지는 너무나 먼 거리인 데다가 차도 없던 시절이니 
전철을 타고 갔다와야 하는 먼 길인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새벽이면 전철을 타고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장을 보러 다니셨던 것이다.

생선을 그것도 궤짝으로 사서 머리에 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집에 들어서서는 
바로 토막토막 손질을 해서 냉장고에 넣고 일일이 포를 떠서 전을 부치거나 
매운탕을 맛있게 끓여 놓으시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와 내 동생 정임이는 엄마가 서울의 수산시장엘 갔다 오는 날이면 오늘은 무슨 맛있는 생선을 사올까 
내기를 하기도 하고 입에 군침이 돌도록 엄마가 돌아올실 때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곤 했었다.

그러했던 내가 어느 새 두 아이의 엄마가 돼서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추억을 줄 수 있는 엄마가 된 것이다.

이렇게 부지런히 수산시장을 드나들다 보니 여늬집 같으면 생선 매운탕 한 번 해먹으려면 
아마 장을 따로 봐야겠지만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매운탕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이
"여보! 우리 오늘 저녁은 매운탕!"하면 즉석에서 매운탕을 끓여낼 수가 있다.

혹 강원도로 놀러갔다 올 떄도 나는 삼숙이, 오징어, 청어, 이면수 같은 모든 생선을 
산지에서 싱싱한 걸로 잔뜻 사와서 시어머니에게 나누어 드리기도 하고 냉동실에 잘 보관해 놓고 먹는다.

물론 나처럼 한 달에 몇 번씩 수산시장에 가는 것은 
전업주부라면 몰라도 맞벌이 주부에겐 무척 힘든 일일 것이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구경삼아 수산시장에 가서 싱싱한 생선을 사다가 잘 보관해 놓고 식구들에게 먹이면 어떨까?
맛있고 싱싱한 생선을 먹이는 즐거움도 있지만 
우리 엄마처럼 아이들에게 시장을 갔다 오는 엄마의 시장 바구니에서 과연 무엇이 나올까를 기다리게 만드는 
그런 추억을 심어 주는 엄마가 되면 어떨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알뜰 가계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길 바란다.
참고로 내가 생선 요리하는 비법이라면 비법을 좀 소개해 볼까 한다.


생선을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

1. 엿장구이
일식집에 가면 나오는 엿장구이는 
매운 걸 못먹는 아이들이나 달짝지근한 맛을 좋아하는 어른들에게 적당한 구이법이다.

마늘이나 파 같은 양념을 안 하는 이유는 
파나 마늘이 타서 생선이 지저분하게 되기 떄문이며
강한 맛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엿장구이 양념 : 간장 - 물엿 - 설탕 - 참기름 약간 -  간장을 다시마물에 풀면 더욱 맛있어진다.
1. 엿장구이 하는 생선으로는 대개 흰살생선이 적당하다.
2. 삼치나 도미 같은 흰살생선을 깨끗이 손질한 뒤
    후라이펜에 기름을 두르고 뒤집어가며 완전히 익힌다.
3. 완전히 익은 생선에 준비한 엿장구이 양념을 앞뒤로 발라줘가며 몇 번 앞뒤로 굽는다.
4. 다 익은 생선 위에 새콤한 레몬즙을 살짝 뿌려서 먹는다.

최유리식 조리 포인트
다시마물에 간장 풀리가 중요하다.

2. 생선조림
생태 - 도루묵 - 고등어 - 병어 같은 생선을 잘 손질한 뒤
양파를 냄비에 잔뜩 깔고 그 위에 양념장을 끼얹어서 익히는 조림법이다.
우리집 아이들은 이렇게 생선조림을 해주면 밥 한 그릇은 눈깜박할 사이에 비우는 밥도둑이 된다.

생선조림장 양념 ; 간장 - 설탕 - 마늘 - 파 - 고춧가루 - 깨소금 - 참기름 약간
1. 양파를 꿁직굵직하게 썬다.
2. 충분히 달구어진 냄비에 기름을 한 방울 두르고 구 위에 양파를 깐다.
3. 양파 위에 양념장에 재운 생선을 발라서 얹어놓고 뒤적뒤적해가며 생선을 익힌다.
    양파의 향이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기도 하고 무 대신 양념이 밴 양파를 맛있게 먹을 수도 있다.

최유리식 조리 포인트
무 대신 양파를 많이 쓴다.    (p165)
※ 이 글은 <저 살림하는 여자예요>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최유라 - 저 살림하는 여자예요
제삼기획 - 1997.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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