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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유엔거버넌스센터 - 누군가의 배경이 돼주는 기쁨

by 탄천사랑 2011. 8. 31.

·「사람과 책 - 2011. 07」  

 

 

꿈을 향한 도전 
누군가의 배경이 돼주는 기쁨(김정태 유엔거버넌스센터 홍보팀장)
그의 꿈은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다.
'미래'에 이상적인 무엇이 되기를 꿈꾸는 대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더 나은 무엇'을 그는 꾸준히 찾아왔다.
학문을 목적으로 떠난 독일 유학길에서 우연히 국제기구 전문가가 되고,
그 길의 모퉁이에서 홀연히 외교관의 길에 접어든 사람.
'앞길'의 경험을 토대로 '새 길'을 찾고, 그 길에서 그는 다시 새 꿈을 꾼다.
이토록 '자유로운' 공직자를 본 적이 없다.

그에겐 없다. 자동차도, 텔레비전도, 스마트 폰도 그는 갖고 있지 않다.
'그 없음'이 그를 자유롭게 한다.
막히는 도로 위에서 무력하게 보내는 시간도, 
재미없는 TV프로그램에 허무하게 빼앗기는 시간도,
타인과의 '연결'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시간도 덩달아 없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들에  집중하기 위해 자신의 삶에 일부러 들여놓지 않은 것들,
그걸 없앤 대가로 그는 19개월 된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꿈을 찾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더 깊이 귀 기울이며,
오래도록 관심 가져온 몇 개의 주제들로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집필한다.
'소유'와 '자유'는 반비례한다는 걸, 그가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다.


스펙엔 없는 '스토리'의 힘
"<스토리와 인간개발(가제)>이라고, 
작년에 펴낸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의 2편에 해당하는 책을 쓰고 있어요.
내 개인적 이야기를 담은 <청년, 세계를 편집한다(가제)>도 틈틈이 집필 중이고,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가제)> <어린이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가제)>
<월드비전(가제)> 같은 책도 동시에 쓰고 있고요.
관심 키워드가 분명하고 관련 자료만 차곡차곡 모아두면,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쓰는 게 생각만큼 어렵지 않아요"

이 '유능한 젊은이'가 근무하는 유엔거버넌스센터는 회원국들이 
자국의 환경을 개선하고 공공분야의 역량을 강화하도록 돕는 유엔사무국 직속기관이다.
한국 정부가 설립을 주도해, 2006년 9월 유엔 산하기구로는 유일하게 서울에 본부가 마련됐다.
거버넌스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 기업, 시민사회, 
국제기구 등이 함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논의해 가는 과정을 말한다.
국제회의, 위크숍, 세미나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인 까닭은 
유엔거버넌스센터가 '논의 과정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곳이기 때문이다.
국제공무원 외에도 그에겐 두 가지 업 業이 더 있다.
공익적인 콘텐츠를 기획하고 유통시키는 '사회적 출판기획가'와
개개인의 잠재력을 포착하고 지원하는 '휴먼 벤처 캐피털 리스트'가 그것이다.
두 업은 한곳에서 곧잘 만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저자- 역자 100명 발굴 프로젝트>다.
2007년부터 그는 잠재력이 충분한 
'초짜'들을 찾아내 관심 주제에 관련된 책을 쓰도록 권유하고 지원해 왔다.

그 결과 20여 명의 공동저자와 60여 명의 역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저서를 갖게 됐다.
맨 처음 '내가 무슨 책을 쓰느냐'라며 
고개를 가로젓던 그들은 지금 '다음 책'을 쓰고 있거나 준비를 하고 있다.

"안도현 시인의 <연어>에 이런 말아 나와요.
 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딘 땅처럼...., 책 속의 그 문장이 내 삶의 좌표가 됐어요.
 누군가의 배경이 돼주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이젠 경험으로 알아요"

저자를 발굴하는 일 말고도, 그에게 '배경이 돼주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일들은 많다.
국제문제 강연과 역량 발굴 워크숍을 꾸준히 진행해 청년들의 '꿈 찾기'를 적극 지원하고,
유엔 온라인 정보 센터를 운영해 국제기구에 진출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직업 선배이자 인생 선배로서 그가 후배들에게 즐겨 당부하는 말은 
최고가 되기 위해 스펙 쌓기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빛나는 존재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스펙은 '나는 이것이 부족해'라는 자기부정에서 출발하지만,
스토리는 '나는 이것을 잘해'라는 자기 긍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스펙과 스토리가 실은 한 몸이에요.
 빙산을 예로 들면 표면 위에 떠오른 것이 스펙이고 아래 가라앉자 있는 것이 스토리죠.
 정말 집중해야 할 것은 수면 아래 있는 나만의 이야기인데,
 표면 위에 조금 떠오른 것 때문에 너무 많은 에너지들을 쏟고 있어요.
 스토리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비교되는 게 아니라 특별하기 때문에 구별되는 거죠.
 스펙은 경쟁만을 부추기지만, 스토리는 협력을 이끌어내요.
 스펙은 혼자 꾸는 꿈이지만, 스토리는 내 꿈을 '함께 달성하고 싶은 꿈'으로 변모시키죠"

청춘들이 스펙에 목을 매는 이유 중 하나가 '불안'이다.
그거라도 쌓고 있지 않으면 이 매정한 21세기를 견뎌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딱한 청춘들에게 그는 충고한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그것부터 알아보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익숙한 곳에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려우므로,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라고.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스펙에게 실패는 감추고 싶은 경험이지만, 
 스토리에겐 실패를 통한 경험들이야말로 자랑하고픈 추억이니까요"


기회는 사람을 통해 온다.
대학시절 그의 전공은 한국사였다.
적성에는 맞았지만, 취업에 용이한 학문은 아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꿈이 없었던 그는 '중국어라도 익히기 위해' 졸업 후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곳에서 뜻밖의 사실 하나를 알았다.
친구에게 전화할 때조차 전달할 내용을 종이에 미리 써놔야 할 정도로 내향적이었던 그가 
외국 친구들 앞에서는 의사 표현이 제법 능숙했던 것이다.
국내에선 '썰렁하다'라고 욕먹기 일쑤이던 자신의 유머가 그 친구들에게 '먹히는'걸 보면서,
막연히 국제무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막연하던 그 꿈이 '진짜 꿈'이 된 건 귀국 후 미용실에서 본 잡지 기사 때문이었다.
월드비전 창시자 밥 피어스의 이야기였는데,
'하늘이 아파하는 것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해 달라'라는 그의 말이 가슴을 울렸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세상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며 살고 싶은 꿈이 그날 내게로 왔죠"

그에게로 날아온 그 꿈은 그를 국제대학원으로 이끌었다.
미국에서 6개월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 기구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의 2년은 그가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드는 데 집중한 시간이었다.
국제대학원인 만큼 해외에서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았는데,
그는 그 기회를 누구보다 열심히 활용했다.
겨울에는 북경의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여름에는 뉴욕대학교에서 행정학 개론 수업을 듣는 식이었다.
외교통상부에서 2개월간, 유엔 뉴욕 본부에서 6개월간 인턴 경력을 쌓기도 했다.
그 사이, 내향적인 성격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글을 많이 발표했어요. 
 관심 있는 주제로 기사를 써서 신문에 기고하기도 하고, 웹 사이트에 글을 연재하기도 했죠.
 논문도 단순히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의 결과물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외교통상부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때, 역대 사무총장에 대해 조사하는 일을 맡았거든요.
 그게 계기가 돼서 유엔 사무총장을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는데,
 한국에선 그와 관련된 논문이 처음인 데다 
 몇 달 뒤 반기문 총장님이 유엔에 입성하시는 바람에 과분한 관심을 받았죠"

2007년 새봄 유엔 거버넌스 센터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논문을 포함해 여기저기에 기고해온 글들을 제출했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 나이도 많고 쟁쟁한 스펙도 갖추지 못한 그는 
결국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국제기구의 일원이 됐다.
말 그대로,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 것이다.
이듬해인 2008년 여름 반기문 사무총장이 국내에 공식 방문했을 때,
그는 언론담당 수행원 자격으로 총장을 보좌하는 기쁨을 누렸다.
'특별한' 논문 덕분에, 총장과의 동행이 더욱 특별했음은 물론이다.

"돌아보면 참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평소 친분은 없지만 
 이런 문제에 이런 관심이 있으니 이런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이메일을 보내면,
 제 아무리 바쁜 유명인이라도 성실히 답해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꿈과 열정을 가진 사람에겐, 누구나 흔쾌히 손을 내밀어 준다는 걸 그때 알았죠"

이젠 누군가가 내미는 손길을 그가 잡는다.
몇 년 전 한 대학생으로부터 
유엔 거버넌스 센터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받은 적이 그는 있다.
인턴을 뽑을 계획이 없었기에 그냥 지나쳤는데,
다음날 그 학생으로부터 또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손수 작성한 보고서가 첨부돼 있었다.
제목은 '한국 NGO와 유엔'.
한 청년의 열정에 감동한 그는 결국 윗사람을 설득해 그 학생과 6개월을 함께 근무했다.
아주 즐겁게.

"행운이나 기회는 사람을 통해서 와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 꿈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거예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자신에게 기회를 가져다줄 옆 사람을 잊고 있었는가.
늦지 않았다고 그가 위로한다.
실패를 통해 성장하면 그게 바로 성공이라고,
'겨우' 서른네 살의 젊은이가 지혜로운 노인처럼 어깨를 토닥인다.
 

글 - 박미경 (자유기고가)
유엔 거버넌스 센터 -  http://www.unpog.org/

교보문고 홈페이지 -  http://www.kyobobook.co.kr/

참조 - 이병주교수의 글로벌잡스 -  https://blog.naver.com/bjlee2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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