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01-160543]
공부하세요!
“공부하세요” 초보 미술투자가들에게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이것 한 가지다.
내 눈에 예뻐 보여서 샀는데 가격이 좀체 요지부동이라거나,
누군가가 좋은 작품이라고 바람을 넣어 큰 맘 먹고 구입했다가 오르기는커녕 되 팔 수조차 없는 작품임을 알고 울상이 된 얼굴에,
깔대기로 머리를 ‘통’ 쳐주며 해주는 말이다.
무표정한 얼굴에 냉정한 말투로, 다시 “공부하세요!”
우리집 거실에 걸어두고 감상‘만’ 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구입한 작품이라면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번거롭고 힘들게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다.
제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을 매일 보며 얻는 정서적 만족만으로 그 작품은 제 기능을 다한 셈일 테니.
하지만, 사람 욕심이란 게 거기서 끝이던가. 일석이조면 좋고, 일석 삼조면 더 좋다.
작품도 즐기고, 싫증이 났을 때 되팔 수 있다면 더욱 좋고,
되팔 때는 구입한 가격보다 더 많이 받고 팔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그렇다면 또 문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를 하면 좋은가? 막막한 기분을 이해한다.
미술은 언제나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테니.
그래도 조금만 신경써서 주변을 둘러보면 전문가의 가르침이 가득한 미술관련 기사와 서적이 많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선이어야 할 것은 작품을 많이 보면서 안목을 키우는 것.
최종적으로 작품을 구입할 때는 좀더 안전하게 전문가의 조언도 얻을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도 여전히 큰 돈을 투자하기엔 망설여지는 것이 초보 투자가들의 마음이리라.
우선은 작은 걸음이라도 떼보는 것이 좋다.
일단 그림을 사다보면 좀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
안목도 빨리빨리 올라간다는 것이 선배 컬렉터들의 조언이니까.
그렇다면 이제 방법은 두 가지다.
곧 죽어도 거장의 작품이어야겠다면 다소 저렴한 판화 작품을 구입하거나,
그래도 판화보다는 마띠에르가 살아있는 회화작품이 끌린다면 가격이 다소 저렴한 젊은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주식에 빗대자면 거장의 작품은 안정주, 젊은 작가의 작품은 성장주인 셈이다.
검증이 덜 되었다는 위험부담이 있긴 하지만,
신중하게 판단해서 투자한다면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해서 대박을 터트릴 가능성도 큰 것이 젊은 작가의 작품이다.
그렇잖아도 근래 미술시장에서 젊은 작가의 인기가 대단하다.
미술시장이 젊어졌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젊은 작가들의 작품수준이 질적, 양적으로 풍성해진 것.
최근 부상하는 젊은 작가들은 유학,
혹은 탄탄한 해외전시 경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그리고 소신있게 전업작가의 길을 걷는 이들이 많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갤러리의 전속작가제가 도입되는 등,
미술이 돈이 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전사들이 많아졌다.
고무적인 일이다.
작품을 구입하고 가장 허망한 경우는 투자한 작가가 더 이상 작업활동을 하지 않을 때이다.
슬럼프나 하향세라면 재기의 여지라도 있지만 생계 등의 개인문제로 붓을 꺽은 경우는 어쩌겠는가.
젊어진, 넓어진 미술시장
둘째, 비단 작가만이 젊어진 것이 아니라, 메이저 화랑의 2세 경영자들 덕에 갤러리스트들도 젊어졌다.
젊은 감각으로 젊은 작품들을 골라 전시할 수 있는 것이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씨의 차남 도형태 씨가 젊은작가를 주력으로 소개하는 두아트갤러리를 설립했고,
선화랑 김창실 씨의 딸 이명진씨가 사간동에 갤러리선컨템포러리를 열었다.
표갤러리 표미선 대표의 딸 하이디 장은 디렉터로서 해외관련한 업무를 일임하고 있고,
국제갤러리 이현숙 대표의 세 자녀들도 착실히 미술수업을 해나가고 있는 중.
유학파 작가들이 국제감각에 맞는 작품들로 해외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처럼
화랑도 유학파 출신의 2세 경영자들의 입김이 작용하면서 그 경영방식을 국제적인 마인드로 무장했다.
영어사용에 무리가 없는 화랑 2세들은
국제 아트페어를 종횡무진 누비며 국제적 안목으로 선별한 수준 높은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 데 여념이 없다.
역으로 해외의 좋은 작가를 한국에 소개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아라리오갤러리, PKM갤러리, 원앤제이갤러리 등
젊은 디렉터가 젊은 작가를 주력으로 다루는 신생갤러리들의 활동도 주목할 만하다.
셋째, 컬렉터층까지 젊어졌다. 젊어졌고, 넓어졌다.
한국도 드디어 문화선진국이 되어가고 있는 증거일까?
의식주의 해결로 만족하는 1차적인 삶에서 벗어나 문화를 즐기고 소비하는 선진시민이 되어가고 있는 증거들이 포착된다.
더 이상 미술품 구입은 ‘돈많은 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정황들이 보인다는 말이다.
지난 4월, 인사동의 노화랑에서 100만 원 짜리 소품(4호 정도)을 모아 마련한 <작은 그림 큰 마음>전을 주목할 만하다.
두 번에 걸쳐 열린 이 전시를 통해 300여 점의 작품이 팔려 나갔다.
저렴한 가격대에 반해 중산층의 소비자들도 ‘그림구입’에 열을 올린 까닭이다.
이렇듯 미술품 거래가 대중화되면서 저가형 아트페어 생겨났다.
MANIF는 <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이란 제목의 저가작품 위주의 아트페어를 지난 4월 9일부터 14일까지 열렸다.
판매총액이 작년보다 30%가 늘었고, 평일 천 명, 주말 2천 명 정도의 관객이 몰렸다고 하니 그 열기가 짐작이 간다.
이 전시와 관련한 흥미로운 통계가 나와 있다.
수시로 화랑을 찾는 미술애호가 인원이 만명,
그중 1년에 3~4회 이상 작품을 구매하는
전문컬렉터의 수가 100~200명에 불과한 한국 미술시장에서 미술을 감상할만한 교양이 있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계층은 과장급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정해진 전시명이 <김과장, 전시장 가는 날>인 것이다.
한편, 인사동이나 강남의 고급스런 전시장이 아닌, 동네의 작은 가게에서 옷을 사듯 그림을 구입할 수 있다.
이태원의 ‘한 집 한 그림’이 그 예.
후미진 동네골목의 협소한 공간에, 젊은 작가의 소품작을 걸어두고 판매하는 이 공간은 부담 없이 들어와,
부담 없는 가격에 그림을 구입할 수 있다.
5만원부터 천만원에 이르는 다양한 가격대의 작품이 있지만,
주력으로 파는 것은 30만원 안팎의 작품들이다.
이 공간이 내세우는 것은 콜렉터와 작가와의 만남.
이제야 막 성장하는 작가들을 다루기 때문에 작가의 비전을 보고 후원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구입한다.
이러한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돼 있기에,
콜렉터들끼리는 ‘그림계’를 만들어 작품을 살 정도.
‘그림계’로 7명 정도의 콜렉터가 모여 한번에 5만원을 모으면, 한 사람은 35만원짜리 작품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쌈지아트마트’도 같은 경우다. 100여명이 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빽빽하게 걸어 정말로 슈퍼마켓처럼 작품을 판매한다.
이들을 주목해 보자
앞서 말했듯, 판화도 소품도 싫다면 젊은 작가를 발굴하면 된다.
요즘 미술시장에서 잘 나가는 젊은 작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옥션측에서 제공한 2004년 이후 소더비, 크리스티, 본햄스, 필립스의 경매 결과를 합산한 자료를 보자.
1980년생 최소영이 청바지를 이어 붙여 부산 풍경을 캔버스에 옮기는 작품으로 젊은 작가 중 해외 경매 낙찰금액 1위를 차지했다.
총 6점의 작품을 약 4억원에 달하는 가격으로 판매했다.
안성하, 이환권, 유승호, 홍경택이 그 뒤를 잇는다.
하지만 새로운 경매가 있던 다음날이면 이 기록은 속속 갱신된다.
지난 5월 27일 열린 홍콩 크리스티의 아시아컨템포러리 경매에서
홍경택의 이 6억 5천 2백여만원에 낙찰돼 해외 경매 최고 낙찰가를 기록한 것.
작년 5월 홍콩 크리스티에서 김동유의 〈마릴린 먼로 vs. 마오 주석>이 3억 천 500만원에 팔린 기록을 갈아치우는 것이다.
홍경택이 1968년생으로 젊은 작가인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
해외미술시장에서 잘 나가는 이 밖의 젊은 작가들을 살펴보면,
최영걸, 최우람, 지용호, 이지송, 함진, 김성진, 데비한, 민정연, 김은진, 박민준, 김도균, 성낙희 등이다.
이들은 해외 시장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에서도 좋은 판매 결과를 내고 있다.
이렇게 소위 ‘잘 나가는’ 젊은 작가들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첫째, 독특한 소재, 혹은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김보민, 사공우, 유승호, 이동욱, 이동재, 지용호, 최소영, 최수앙, 천성명, 함연주, 함진, 홍성철 등이
여기에 속하는 작가들이다.
청바지만으로 캔버스에 형상을 만들어내는 최소영은 물론이요,
타이어를 이용해 기이한 형태의 생물을 만들어내는 지용호,
곡물을 캔버스에 붙여 인물을 그리는 이동재,
라인 테이프로 동양화를 그리는 김보민처럼 특이한 재료를 이용하는 작가들은 콜렉터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젊은 작가들은 악보, 머리카락, 청바지, 고무줄 등 미술재료로 사용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영역을 개척하고 있고,
파리만한 크기의 조각을 제작하는 새로운 발상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깨알만한 글씨의 조합으로 형상을 만들어내는 유승호의 경우도 그 발상이 놀라운 경우.
축소됐지만 굉장히 사실적인 묘사로 인물상을 만들어내는 이동욱, 최수앙,
다소 엽기적이면서도 귀여운 형상을 빚는 천성명은 조각 파트에서 두드러지는 작가들이다.
천성명은 지난 3월에 열린 아르코아트페어를 통해 국제적 명성을 확립했고,
최수앙은 KIAF행사장에서 작품이 설치된 구역이 통행이 마비될 정도로 관객들의 관심을 끈 바 있다.
둘째, 극사실적인 구상 그림.
강형구, 김상우, 김성진, 박성민, 박지혜,
변웅필, 이광호, 안성하, 이지송, 이정웅, 정보영, 정명조, 황순일, 허양구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담배, 사탕, 붓, 책, 고깃덩어리, 정물 같은 소품이나 인물 혹은 신체 부위 등
디테일이 요구되는 소재들을 오일이나 아크릴 등의 순수회화 재료로 극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이다.
안성하의 경우는 서울옥션이 제공하는 젊은 작가 해외 경매 총 낙찰 금액에서 최소영의 뒤를 잇는다.
8점의 작품이 총 2억 2천만원 정도에 낙찰된 바 있다.
1977년 생으로 역시 상당히 젊은 작가군에 속한다.
이지송의 경우 소더비 경매에서 50호가 2,800만원에 팔리자
아트포럼뉴게이트에서 개인전을 열 당시 구입 문의가 쇄도했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을 팔지 않았다.
작품 제작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 1년에 3~4점 밖에 제작하지 못하기 때문.
이정웅의 경우는 국내 개인전 당시 솔드아웃된 바 있고,
황순일의 경우 지난 5월의 KIAF에서 단독부스를 꾸려 선전했다.
한국 크리스티에서 작품을 구입했다고 하니 조만간 해외경매 낙찰소식도 들릴 듯 하다.
셋째, 노동집약형 작품.
문성식, 정재호, 정수진, 천성림, 박민준, 남경민, 홍경택의 작품은 시간과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작품들이다.
문성식의 경우 지난 1월 국제갤러리에서 그룹전을 열었을 때, 오프닝 날 곧바로 작품이 매진된 바 있다.
문성식은 2005년, 26살이라는 최연소의 나이로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한 경력을 가진 실력있는 작가다.
정수진의 작품은 소속 갤러리에 대기자 콜렉터 명단이 수십 명이라고.
전시 당시 100×100cm 작품 가격은 1,800만원.
인기에 비해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어서 곧 상향 조정할 전망이라고 한다.
한편, 홍경택이 크리스티에 출품해 한국 작품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무려 4년간의 작업과정을 가진 것이다.
작업에 투여한 노동력만을 가격으로 환산해도 충분히 납득이 되는 액수다.
투자의 핵심은 애정
대개의 작가군이 국내외 시장에서 두루 인기를 얻고 있지만, 유독 한국시장에서 더욱 사랑받는 작품들이 있다.
박수근이나 이중섭처럼 국민화가로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는 작가들이란 말이다.
단 박수근이나 이중섭은 한국땅을 떠나면 국내 시장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나,
이 젊은이들은 국제적인 입지도 탄탄히 다져가고 있으니 투자로서는 더욱 가치가 있다 하겠다.
홍지연, 도성욱, 김지혜, 손동현, 김은진, 임택, 이이남 등이 대표적인 작가들.
개인전을 열었다하면 솔드아웃되는 것은 물론, 작품을 구입하려면 대기자 리스트에 올리고도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이들의 가진 공통된 특징은 동양적인 정서 또는 코드를 현대식 조형감각으로 버무린 작품이라는 것.
홍지연은 전통 민화를 모티브로 차용해 민화 속 소재들과 다른 시공간의 요소들을 병치시킨다.
작년 5월, 뉴욕 소더비스에서 열린 컨템포러리 아트 아시아에서 두 점의 작품이 예상가의 1.2배인 900만원에 낙찰됐다.
김지혜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권위적인 문화인 <책가도>를 오방색의 화려한 색채와 결합된 <현대적 정물화>로 표현한다.
지난 8월말에 열린 개인전의 모든 작품이 솔드아웃되었고, 대기자로 올려달라는 콜렉터가 여럿이라고 하니 그 인기가 독보적이다.
100호 크기가 1000~1300만원 정도에 거래됐다.
손동현 역시 작가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 없을 정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을 하는데다 제작하는 족족 팔려나가는 판국이니 당연한 노릇이다.
하지만 2006년 갤러리 전시가 기준으로 160×130cm 정도의 작품이 550만원으로 저렴한 편.
1980년생의 젊은 작가다.
임택, 이이남도 KIAF에서 큰 인기를 얻은 작가들이다.
도성욱도 지난 5월말에 열린 개인전의 작품들이 솔드아웃되었다는 소식이다.
물론 시장을 통해 검증된 작가들에 투자하는 것이 좀더 안정적인 방법일 수 있겠으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이 부단한 공부를 통해 얻는 감식안으로 자신의 눈에 드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 금융인 출신 갤러리스트는 미술투자의 성공비결로 ‘애정’을 꼽았다.
애정에서 비롯된 관심과 공부가 결국은 돈이 되어 효자노릇을 하더라는 것이다.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공부라고 생각하고 꾸역꾸역 억지로 지식을 넣거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림을 보고, 소유하기를 좋아하고 즐기다 보면 결국은 좋은 투자를 한 셈이 될 것이다.
마치 조건 없는 사랑으로 자식을 키우고 나면, 어엿하게 자라 노년을 부양해 주듯이.
이나연 기자
'문화 정보 > 보고(영화.미술.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스틸 앨리스(Still Alice, 2015) (0) | 2022.12.09 |
---|---|
더 디그(The Dig)/붙잡아야 하는 순간들이 있어요 (0) | 2022.12.06 |
자코메티를 그리다 (0) | 2022.07.21 |
중앙일보-한국 영화 첫 월드스타, 하늘의 별이 되다. (0) | 2022.05.09 |
영화- 시네마 천국 (0) | 2022.04.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