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꿈을 함께 이루어가는 행복 / 그의 비자금을 눈감아 주는 것
“머리가 길었네. 이발이나 하고 와야겠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그가 말했다.
그가 옷을 갈아입으러 안방에 들어가자,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던 그녀는 옷을 챙겨주러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문을 열자, 그가 옷장 위로 손을 올리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 보였다.
"이런 걸 여기다가 숨기고 피우면 되나?"
그녀는 그를 밀어젖히고는 옷장 위로 손을 올려 더듬었다.
그녀의 그가 집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하니까 옷장 위에 숨겨 두고 몰래 피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자 눈을 깜빡이며 조급해하는 남편.
더듬거리던 그녀의 손에 무엇인가가 잡혔다.
그런데 그것은 담배와는 다른 느낌의 봉투였다.
손으로 집어 열어보니 봉투 안에는 2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순간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느낌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니 이 사람도 이런 짓을 하나? 나만 바보같이 살았구나.'
그렇게 믿었던 그가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그 적은 월급 쪼개 쓰면서도 불평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왔는데,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고 고생하는 남편이 안됐다고 안쓰러워했는데,
누구 남편은 잠자는 사람 깨워서 옷 사 입으라며 돈 봉투 쥐어준다는데.
어떻게 이 인간은 고생하는 마누라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 혼자 쓰겠다고 비상금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머리가 핑 돌 것 같았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서 휙 돌아서서 주방으로 갔다.
"이거 그런 거 아냐.
회사에서 휴가비라고 나왔는데 돈도 조금이고 해서
창피해서 내놓기도 뭐하고 해서 그냥 여기 둔 것뿐이야."
그가 봉투를 들고 그녀를 따라오면서 변명을 했다.
그녀는 그런지도 모르고
'올해는 회사가 어려워서 휴가비도 안 주나 보다' 하는 생각에 피서를 가자는 말도 하지 못했었다.
“그냥, 자기 써라.”
그가 식탁에 봉투를 놓고는 이발을 하러 나갔다.
마지못해 그런 기색이 역력했다.
“절대로 안 써. 치사해서 안 쓴다고.”
그녀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이발하고 돌아온 그에게 저녁 밥상을 차려주고는, 말도 하기 싫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그가 출근한 뒤에 보니 돈 봉투는 여전히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돈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걸 그냥 들고 나가서 다 써버려? 어차피 공돈인데.
좋은 일 하는 샘치고 어머님께 드릴까? 아니면 모처럼 외식이나 할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저녁이 되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녀는 결론을 내렸다. 남편에게 돈을 돌려주기로.
하루 종일 생각해 보니,
겨우 20만 원을 숨겨 놓고 그렇게 쩔쩔매던 그가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도 뭔가 필요한 게 있으니까 그랬겠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기특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는 그저 처분만 기다리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봉투를 건네주었다.
“당신 용돈이 많이 부족했나 본데, 이거 당신이 쓰려고 했던 것이니까 당신이 써,
그리고 애들한테 용돈 좀 주고.”
그가 감동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애들은 모처럼 받은 거금을 들고 기뻐했다.
그녀는 자신의 현명한 결정이 나은 결과를 보면서 뿌듯했다.
어쩌면 그가 숨겨 놓은 비상금이 더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냥 눈감아 주기로 했다.
한 푼에 목숨 거는 주부들도 불쌍하지만, 벌어오는 남자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다고 생각했다.
비자금 없는 남편은 머리카락을 잃은 삼손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회생활, 특히 직장생활의 핵심은 사람들과의 어울림입니다. 어울리는 데 있어 돈은 ‘실탄’입니다.
그가 약간의 실탄을 남겨 놓았다고 해서, 그것을 이기적인 행동으로 몰아붙일 이유는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8.02.22. 20210217-1425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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