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미 외 - 부부로 산다는 것」
작은 행복을 찾아 나서는 여유 / 다툼에서 계기를 발견하는 것
차 안의 공기는 살벌했다.
두 아이는 엄마 아빠 눈치를 보느라 말 한마디 못하고 있었다.
그는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구겨진 종이처럼 인산을 쓰며 앞만 보고 운전했다.
그녀 역시 그런 남편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우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운전 네가 해라."
"안 해. 내가 지금 운전하게 생겼어?
도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지 알고나 당하자. 왜 그러는데?"
"운전 네가 하라고 했잖아."
"안 한다고 했잖아."
"그럼 뒤로 가서 앉아."
"왜? 뭣 때문에? 나는 지금 꼼짝도 하기 싫어."
"그럼 내려라.
운전도 하기 싫고 뒤로 가기도 싫으면 차에서 내려라. 꼴도 보기 싫어."
"정말이야? 알았어. 내리라면 못 내릴 줄 알아?"
그녀는 안전띠를 뜯어내듯 풀고 차 문을 꽝 닫고 내렸다.
그리고 식당 안에 들어가 커피 한 잔을 뽑아 마셨다.
끓어오르는 화를 커피 한 잔으로 진정시키기에는 부족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잠시 후 딸아이가 뛰어와서는 소리쳤다.
"엄마, 아빠가 빨리 오래."
"안 가, 아빠가 엄마한테 와서 사과하기 전에는 절대 안 가."
딸아이가 뛰어갔다 와서는 말한다.
"엄마, 아빠가 엄마 안 오면 우리끼리 그냥 간다고 전하래."
"아빠 마음대로 하시라고 전해" 그녀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딸아이가 또다시 뛰어갔다.
하지만 20분쯤 지나도록 아이는 오지 않았다.
그녀가 주차장에 가보았더니 그들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저녁 9시, 여름 휴가철이 끝날 무렵이었다.
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각각의 안식처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뭐지. 정말 이럴 수도 있단 말이지.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이 남자가 나는 여기 버려두고 갔다는 말이지.
그래 두고 보자.
나를 버리고 갔으니 얼마나 편할지 보자.'
주머니를 뒤져보니 커피 마시고 남은 잔돈 700원이 잡혔다.
막내 남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이유는 묻지 말고 최대한 빨리 여기 휴게소에 좀 와줘"
"무슨 일이야?"
"있다가 이야기 해줄 테니 빨리 좀 와."
동생은 사고가 생긴 줄 알고 서둘러 그녀를 찾아왔다.
"매형은?"
"그 잘난 매형이 나만 남겨놓고 집으로 갔다."
"뭐? 누나가 뭐 잘못했어?"
"몰라, 이유도 모르고 지금 이러고 있다."
"매형 정말 이상하네. 누나가 잘못했어도 집에 가서 문제를 해결해야지.
돈도 없는데 여기에 혼자 남겨놓고 갔단 말이야?
같은 남자지만 정말 너무하네.
가자 우리 집으로." 그렇게 해서 동생 집에 갔다.
"현석야, 매형한테 전화하지도 말고 만약 전화 오면 모른다고 해라.
누구한테도 하루 내가 여기 있다고 하지 마.
엄마한테도.... 알았지?"
그녀는 동생에게 다짐을 받고, 스스로도 집에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회사에도 하루 결근을 했다.
오후 늦게 회사에 전화했더니 역시나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한다.
그녀는 무릎을 쳤다.
'그래 바로 이거야. 어디에다가 나를 두고 가, 그것도 고속도로 휴게소에.
어디 얼마나 애타는지, 애타는 게 뭔지 한번 느껴봐라.'
다음 날 회사에 출근을 했다.
그리고 전화는 무조건 바꿔주지 말고 '출근하지 않았다'라고만 대답하라고 시켜두었다.
역시 남편으로부터 확인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그다음 날, 퇴근해서 집으로 갔다.
잠시 후 그가 들어왔다.
그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닫았다.
그녀는 아이들 저녁을 해결해 주고 문을 걷어찼다.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를 거기에 두고 갔으면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얘기를 해야 할 것 아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을 해줘야 내가 알지.
남편이라는 사람이 이럴 수 있어?" 문이 열리더니 그가 말했다.
"어디 있다 이제 왔어?
나는 시외버스 아무거나 타고 올 줄 알았지?"
"이 아저씨야,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라.
어떤 사람이 화난다고 마누라 고속도로에 버리고 가는 걸 잘했다고 하는지.
게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서는 시외버스가 어디 있냐?
다 필요 없고, 한 마디만 해봐.
왜 화난 거야?"
"그날 낮에 밖에서 삼겹살 구워 먹을 때 네가 인상을 쓰면서 구웠잖아?
어른들 계시는데, 얼마나 보기 싫었는지 알아?" 그녀는 기가 막혔다.
"생각을 한번 해봐.
10년 만에 찾아온 더위라는데, 그 뙤약볕에서 고기를 굽는데 얼마나 더운지 알아?
당신은 그 많은 고기, 네가 혼자 다 구울 때 뭐 했는데?
고생한다고 냉수라도 한 잔 줬어?
그리고 그게 고속도로에 버리고 올 만한 사유가 돼?
세상 여자 죄다 불러놓고 물어봐. 그런 일을 당하고 가만히 있을지."
그들은 한 장의 각서를 만들었다.
각서.
1.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은 상태에서 지레짐작하지 않으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는다.
2. 무슨 일이든 서로 의논한다.
3. 휴게소에 아내를 버리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좋지 않은 일이라도, 좋은 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계기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부부로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그 안에서 계기를 찾아낸다면 상황을 바꿀 수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그 계기는 반성에서 비롯됩니다.
※ 이 글은 <부부로 산다는 것>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8.02.16. 20210216-1714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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