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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작가책방(소설/ㄱ - ㄴ

책을 열고 감사하는 글 - 일상의 황홀/구본형

by 탄천의 책사랑 2007. 12. 26.



일상의 황홀 - 구본형/을유문화사 2004. 11. 04.

 

책을 열고 감사하는 글
기록은 사라져 가는 것들을 붙잡아 줍니다. 
기록은 이미 사라진 것들에게 옷을 입히고 영혼을 불어넣어 다시 내 눈앞으로 되돌려 줍니다. 
그것은 초혼의 주술이며 시간을 머물게 하는 마법입니다. 
그러나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은 사라져 가는 일상이 아니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지겨움입니다. 

살바도르 달리가 ‘늘 똑같은 일상을 되풀이하는 인간의 맹목적 습성을 공격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듯’, 
나는 물결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일 달라지는 변화와 특별함을 즐기기 위해 기록을 남깁니다. 
나는 그것들을 기록함으로써 하루가 다른 하루와 달리 그 하루로 이미 특별했던 것을 즐깁니다. 
나는 내가 죽을 때, 
조금씩 다른 하루들을 무수한 카드처럼 펼치며 그 각각의 카드의 특별함에 감흥하고 싶습니다. 
무수한 물결, 
그것들은 같은 것 같지만 하나도 같지 않은 전혀 새로운 것들이며, 
단명한 것들이며, 순간순간 생성되고 무너지는 영원한 변화입니다. 
나는 그 변화들을 하루하루 기록해 남기고 싶었습니다.

내 기록의 일관성을 지키는 유일한 법칙은 하루를 기록하면서 그 하루 속의 생각과 행동 속에, 
‘사람이 살고 있었는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루 속에서 구현되는 내 생각 내 행동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원칙, 
그러니까 원칙 중의 원칙입니다. 
내 마음이, 
사람이 떠난 빈집이 되지 않도록 마당을 쓸고, 
꽃을 심고, 
굴뚝에 연기가 나게 하고, 
붉은 고추를 햇볕에 내다 널고, 달빛이 창문을 넘어 방안 가득하도록 하루를 쓰고 싶습니다. 
내 하루 속에 사람이 살아 있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형태는 하루의 기록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나는 더욱 자주 기록하여 내 삶의 기록이 되게 하려 합니다.
기록은 사라져 가는 것들을 존재하게 하고 잊혀져 가는 것들을 있게 함으로써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곧 내 삶의 모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 많은 하루들 안에 나는 ‘내 안에 사람이 살아 있던 날’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곧 성장이고 훌륭한 자기경영이기 때문입니다.


2004. 10.
구본형.


※ 이 글은 <일상의 황홀>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12.26.  20211225_15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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