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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일상에서 쉼의 여유와 흔적을 찾아서
유아 어린이/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02- 2/2) 억압형 부모

by 탄천사랑 2007. 12. 4.

· 「존 가트맨 -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

 

 

억압형 부모
억압형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축소 전환하는 부모와 공통점이 많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억압형 부모는 눈에 띄게 비판적이고 자녀의 정서적 경험을 설명할 때 공감대 형성이 부족하다.
아이의 부정적 감정을 단순히 무시하거나 
부인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이라며 비난까지 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자녀는 슬픔화, 두려움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꾸지람을 듣거나 매를 맞는다.
벌을 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억압형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감정과 관련된 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화가 나서 발을 쿵쿵 구르면 엄마는 딸애가 그렇게 화를 내는 원인을 인정하지는 않고 
딸애가 불쾌하고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종아리를 때리려 한다.
억압형 아버지는 아들이 잠잘 시간에 매번 울어대면 
'혹시 어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성가시다며 아들을 꾸짖는다.

억압형 부모는 아이의 정서적 경험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상황이 위안받아 마땅한지 아니면 비난받아 마땅한지, 
또는 벌을 받아야 마땅한지 결정하기에 앞서 참작의 여지가 있는지부터 평가하려 한다.
조는 이렇게 설명한다.

"티미가 침울한 이유가 정말이지 합당하다면, 
 예컨대 엄마가 밤에 외출하고 없어서 보고 싶어 한다든가 하면 말이죠. 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아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니까요.
 그러면 전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노력해요. 안아주든가 비행기를 태우든가 말이죠."

하지만 조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티미가 우울해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는 아들에게 쌀쌀맞게 말한다.

"전 얼굴을 찡그리면서 '가서 낮잠이나 자!'라고 하죠.
 티미는 떼를 쓰느라고 슬픈 척하는 거예요.
 그러면 저는 아이를 무시하거나 철 좀 들라고 얘기하죠."

조는 이러한 차이를 훈육의 한 형태라며 정당화한다.
"티미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저는 아들에게 '우울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라고 말하죠."

대부분의 억압형 부모들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눈물로 호소해서 부모를 조종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다.
어느 어머니는 
"딸애가 화내면서 우는 건 다 속셈이 있어요. 관심을 사려는 거죠"라고 말한다.

아이의 눈물이나 분노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적인 상황은 기싸움으로까지 불거진다.
부모들은 
'애가 나한테 원하는 게 있으니까 이렇게 우는 거겠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애가 더 울거나 더 화내거나 아니면 더 뿌루퉁해지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서 아이에게 화를 내고 벌을 준다.
수많은 축소 전환형 부모와 마찬가지로 억압형 부모 중에는 
감정에 대한 자제력을 잃을까 걱정하며 감정적인 상황을 두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키멜론의 엄마 진은
"화를 내면 자제력을 잃는 것 같아서 화내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반항적인 아이와 대립하면서 부모들은 신뢰하지 않는 감정과 행동으로 치닫는 것을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자신을 화나게 만들었다'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벌을 주는 것을 정당화한다.
진은 
"카메론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면, 저는 '그런 건 용서 못해!'라고 말해요.
 그런데도 계속 투정을 부리면 종아리를 때리는 거죠"라고 말한다.


자녀에 대한 깊은 관심이 역효과를 나타낸다.
성격이 불 같은 남자와 결혼한 린다는 지미가 '꼭 아버지처럼' 자랄까 걱정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들을 그렇게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한 나머지 린다는 자기 자신도 폭력적으로 대응한다.

"지미는 기분이 나쁘면 발길질을 하고 소리를 질러요.
 그러면 전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볼기를 때리죠.
 그게 옳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아이의 성격이 고약해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아요."

이와 비슷하게 어떤 부모들은 강인하게 키운다는 명목으로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면 꾸짖거나 벌을 준다.
두려움이나 슬픔을 표현하는 겁쟁이 소년이 되어서는 안 되며 
울보가 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믿는 억압형 아버지를 둔 아이는 쉽게 상처를 받는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자식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절대 표현하지 못하게 가르치기로 결심을 한 부모다.
어떤 아버지는 딸아이에 대해 매우 냉소적으로 말한다.

"케이티가 슬퍼한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해 주겠습니까?
 간지러운 위로라도 할까요?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자기 문제는 자기가 알아서 해결해야 해요."

이 아버지는 딸애가 화를 내면 '눈에는 눈'이라는 식으로 맞불작전을 편다.
딸아이가 화를 내면 같이 화를 내는 것이다.
케이티가 '발끈해서 화를 내면' 아버지는 종아리나 손바닥을 때린다.

물론 억압형 부모 중에서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비난하고 혹독하게 구는 경우는 드물다.
특별한 상황에서만 억압형 부모가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참을 수 있는 시간 동안만큼 아이가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용인하는 부모도 있다.
우리 연구에 참여한 한 아버지는 아이들이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면 머릿속에 자명종을 떠올린다.

"전 머릿속의 자명종이 울리기 전까지 아이의 투정을 참지요.
 하지만 자명종이 울리면 그때는 벌을 줍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가 특히 슬픔을 경험하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슬픔을 에너지 낭비로 보기 때문이다.
자신을 '냉정한 현실주의자'라고 묘사한 한 아버지는 아이가 슬퍼하는 것은 
'전혀 쓸모없이, 전혀 건설적이지 못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반면 어떤 부모들은 슬픔을 소중하면서도 한정된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그 한정된 자원을 사소한 문제로 다 써버리면 정작 큰 슬픔에 써야 할 눈물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억압형 부모가 '눈물의 양'으로 슬픔을 측정하든지 '슬퍼할 시간'으로 측정하든지 간에,
이들 부모에게 문제는 여전히 똑같다.
아이가 낭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앤드루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아들 찰리에게 애완견이 죽는 것과 같은 중요한 일을 위해 슬픔을 남겨 두라고 말하죠.
 장난감을 잃어버리거나 책이 찢어지는 일 때문에 슬퍼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요.
 하지만 애완견이 죽는 건 슬퍼할 만한 일이잖아요."

이렇게 슬픔을 자원에 비유하는 가정에서 성장하는 아이가 하찮은 일에 슬픔을 낭비하면 
어떤 벌을 받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만약 부모가 자신의 유년기를 정서적으로 방치된 채 보냈다면 
슬픔을 정서적으로 특권을 가진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사치로 볼 가능성은 더욱 크다.
우리 연구에 참여한 카렌은 어렸을 때 부모에게 버림받고 친척 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이제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 그녀는 어린 시절 정서적으로 어떠한 위로도 받지 못했기에 
딸애의 침울한 기분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축소 전환형 부모와 억압형 부모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
오늘은 자신이 축소 전환형 부모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내일은 오히려 억압형 부모처럼 행동할 수도 있다.

축소 전환형 부모와 억압형 부모의 자녀들 역시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양쪽 집단의 아이들 모두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한다.
자신의 느낌이 부적절하다거나 타당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듣다 보면 
아이들은 자기 내부에 무언가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다고 믿게 된다.
자기 존중감에 상처를 입는 것이다.
또 감정을 조절하는 법과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기가 힘들어진다.
이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집중하고 학습하고 또래와 어울리는 것을 훨씬 어려워한다.

게다가 자신의 느낌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꾸지람을 듣거나 격리되거나 맞은 아이들은 
감정적 친밀감은 아주 위험한 것이며 모욕감과 버려졌다는 느낌,
고통, 학대로 이어진다고 여기게 된다.
불행히도 이런 아이들의 정서 지능은 상당히 낮을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결과의 비극적인 모순은, 
그 어떤 부모든지 자녀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이런 행동을 한다는 점이다.
정서적 고통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부모는 눈물이 흐르거나 
벌컥 화를 내게 만드는 상황을 피하거나 아예 없애려 한다.
부모는 강인한 남자로 키우겠다는 명목으로 두려움을 표현한 아들에게 벌은 준다.
상냥한 여자로 키우겠다는 명목으로 딸에게 화를 꾹 참으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역효과만 낼 뿐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다스릴 기회가 없었던 아이는 성장해서도 
인생의 어려움에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내 아이를 위한 사랑의 기술>에 실린 일부 단락을 필사한 것임.

[t-07.12.04.  20211210-150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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